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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대신 자동차 내주고 신속히 타협
[Cover Story]트럼프발 무역전쟁의 암운- ③ 한국의 대응
[97호] 2018년 05월 01일 (화) 조계완 kyewan@hani.co.kr
‘선방’ 평가에도 ‘농업 지키기’ 등 성과는 불분명… 자유무역협상 개정하고도 통상 압박 노심초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구잡이식 ‘관세 폭탄’에 같은 액수의 보복관세로 맞서면서 힘겨루기를 하는 중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은 일찌감치 손을 들었다. ‘발등의 불’인 철강 추가 관세를 피하기 위해 자동차 분야를 양보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지었다. 미국의 강공으로 시작된 이번 협상 결과의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무차별 공세를 퍼부은 뒤 실속을 챙기는 트럼프식 통상 압박은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조계완 <한겨레> 기자
   
▲ 2018년 3월26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미국 철강 관세 협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철강 추가 관세를 피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FTA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지었다. 연합뉴스
“국제통상 게임에서 협상력은 노련한 특정 협상가의 협상 기술보다 당사국 경제력과 산업기술 경쟁력에 달려 있다. 협상 전문 조직과 인력을 배가하기에 앞서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적 노력이 중요하다.”(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자유무역협정(FTA) 등 금전적 이익과 손실이 걸린 통상협상 테이블에서 한쪽의 협상 우위 혹은 열위를 판가름하는 조건은 그 협상이 깨져 파국에 이를 때 누가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느냐에 달렸다는 게 불문율이다. 김 교수의 말은 협상 결렬 때 더 큰 피해를 입는 국가는 수출상품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쪽일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형성된 판도는 아무리 치밀하고 노회한 협상 전략가가 나선다 해도 뒤집기 어렵다는 얘기다.
 
수출입액이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무역 의존도)이 60~70%에 이르는 ‘수출경제’ 한국(2017년 수출액 5737억달러)으로선 수입 규모 세계 제1위(2017년 2조4천억달러)인 미국 시장 전략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규모뿐이 아니다. 박천일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은 “미국 시장에서 다른 제품과 경쟁해 팔리는 제품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와 상징성을 갖는다”며 “미국 시장에서 밀려나면 세계 다른 시장 공략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2018년 3월28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한-미 FTA 개정 협상과 미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수입 철강 관세 ‘한국 면제’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협상 개시 석 달 만에 조기 타결해, 협정 발효(2012년 3월) 6년 만에 협정문 일부가 개정되는 큰 변화를 맞았다. 김 본부장은 “농축산물시장 추가 개방을 막아내고, 미국산 자동차 부품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라는 미국 요구를 막아내는 등 우리가 설정한 핵심 민감 분야에서 우리 입장을 관철했다”며 “신속히 협상을 타결해 개정 협상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제거했다”고 설명했다. 협정 개정안 정식 서명은 5월로 예상된다.
 
전반적 협상 평가
양국은 현재 협정개정안 문안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법률 검토와 국회 비준 절차가 남아 있다. 우리 쪽 관심사항인 미국의 무역구제(수입규제) 조사 과정의 절차적 투명성을 어떤 문구로 협정문에 넣을지,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와 관련해 소송 남용 금지와 국가 정책주권 보호 규정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도 더 논의해야 한다.
 
김 본부장은 한-미 FTA 협상 결과 브리핑에서 “한-미 FTA를 지킨다는 것보다는 국익을 지키는 자세로 협상에 임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협상 전권을 위임받은 나로서는 상대에 꿇릴 것 없는 협상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협상 타결 뒤 다른 자리에서는 “농업 등에서 미국이 추가 개방을 요구하면 나도 즉시 ‘협상을 깨버리겠다’며 맞설 준비가 돼 있었다”고도 했다.
‘원칙적인 협상 타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 본부장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협상 구조와 판도 속에서도 “(협상 타결에) 필요한 수준에서 (상대방에) 명분을 제공하되 우리 쪽 실리를 확보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양국 간 손익계산서를 따진다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우리가 선방한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대로 미국은 실리를 얻고 한국은 명분을 챙긴 협상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애초부터 ‘양국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적 요구로 시작된 개정 협상인 만큼 우리 통상 당국의 “상호 호혜에 근거한 확대 이익 균형 추구”는 사수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2017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폐기 언급을 단순한 블러핑(엄포)이 아니라 ‘실체적 위협’이라 판단하고 즉각 개정 협상에 착수하자고 우리가 먼저 나선 사정을 고려하면, 김 본부장의 “한-미 FTA 폐기 불사” 언급이 상대를 위협하기는 매우 힘들었을 터다.
 
   
▲ 수출용 자동차가 줄지어 있는 울산 현대자동차 수출선적부두. 한-미 FTA 개정 협상에 따라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픽업트럭 관세가 20년 연장되고,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안전기준이 완화된다. 연합뉴스
자동차, 철강, 농업 그리고 ISDS
특히 미국은 한국산 화물자동차(픽업트럭) 관세(현행 25%) 철폐 기간을 기존 협정문 ‘발효 이후 10년차(2021년)’에서 20년차(2041년)로 연장했다. 국내 자동차업계가 미국에 수출하는 픽업트럭 물량은 거의 없지만, 미국 현지 생산공장 건설 등 대미 생산·수출 계획을 다시 짜게 됐다.협상 결과를 간략히 살펴보면, 자동차 분야에선 안전·환경 기준 유연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미국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됐다. 미국의 자체 안전기준을 충족하면 한국 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간주해 한국 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자동차를 업체당 현행 2만5천 대에서 5만 대로 늘렸다. 연비·온실가스 관련 현행 기준을 2020년까지 유지하되, 2021~2025년에는 미국 기준 등 글로벌 트렌드를 고려해 개편하기로 했다. 미국의 완성차 업체가 한국 시장에 수출하는 연간 4500대(2009년 기준) 미만에 대해서는 미국의 배출가스 환경기준만 충족하면 수입을 허용하는 소규모 제작사 제도는 유지하기로 했다.
 
우리 쪽이 얻어낸 분야로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개선을 들 수 있다. 한국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자본이 이 제도를 남용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차단하고, 이 제도로 한국 정부의 정당한 정책·주권 권한이 침해받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협정문에 담기로 한 것이다. 미국의 파상적 수입규제 공세와 관련해 무역구제 조처를 발동할 때 사전에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도 넣기로 했다.
철강은 관세 부과에서 ‘국가면제’를 받는 대신, 2015~2017년 대미 평균 수출물량(383만t)의 70%(268만t) 수준으로 쿼터(2017년 대비 74%)를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추가 관세 면제 대가로 수출 물량 감축을 제시해 타협에 이른 셈이다. 김 본부장은 “철강에서 관세를 면제받는 국가가 점점 더 늘어나면, 트럼프가 ‘미국 철강공장 가동률 80%로 상향’이라는 애초 목표 달성을 위해 철강 수입관세를 다시 상향 조정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우리로서는 다른 국가들보다 빨리 철강 관세 명단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자칫하면 우리가 쪽박차게 되는 격”이라고 말했다. 철강 관세 면제라는 당면 목표 달성을 위해 주고받기를 통한 한-미 FTA 타결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협상 과정에서 한국 협상팀은 처음부터 농업시장 추가 개방 불가 방침을 밝히고, 협상 범위와 의제를 일부 분야에 한정하고 최소화하는 ‘소규모 패키지 딜’을 미국 쪽에 줄곧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김 본부장이 협상 개시 이전부터 “농업은 레드라인”이라고 못박은 것은 좋은 협상 전략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다. 김 본부장은 4월 초 이번 협상에서 아무런 농업 관련 논의가 없었다며 “농업에선 미국 쪽 요청도 전혀 없었다. 물론 우리가 양보할 생각도 없었다”고 밝혔다. 미국의 농업부문 추가 개방을 막아냈다고 했으나, 사실은 추가 개방 요구가 아예 없었다는 얘기다. ‘농업 양보 불가’라는 협상 카드를 미리 내보이는 바람에 미국이 농업 쪽을 포기하는 것을 빌미로 자동차에서 더 많은 양보를 챙긴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는 것이다.
우리 쪽이 미국에 얻어낸 또 다른 대표적 성과로 꼽은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개선도 과연 성과로 볼 수 있는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국제통상)는 “미국은 처음부터 자동차 협상을 원한 것 같다”며 “미국이 현행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를 그대로 지키겠다며 자국 관심 사항으로 설정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자동차 요구와 한국의 철강 관세 면제 요구를 맞교환하는 ‘소규모 패키지 딜’에서 협상이 조기 타결된 배경에는 미국의 이해가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 우리 쪽은 “미국이 여러 관심 사항을 무리하게 요구해 관철하려 한다면 한국 국회에서 비준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를 펴며 ‘소극적으로’ 미국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이런 사정을 고려해 기존 협정문의 전면 개정보다는 몇 가지만 개정하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한 셈이다.
 
   
▲ 2018년 3월28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록히드마틴 조립공장에서 열린 한국 공군의 F-35A 1호기 출고식에서 이성용 공군참모차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한국 기업과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FTA 폐기 위협 이후 미국산 무기와 에너지 수입을 크게 늘렸다. AP 연합뉴스
사실 한국의 대미 상품무역수지는 2016년 232억달러에서 2017년 179억달러로 22%나 줄었다. 트럼프가
이번 개정 협상을 평가할 때, 자동차·철강 등 품목별 협상 결과와 함께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한-미 양국이 자발적 무역 파트너가 돼 맺은 한-미 FTA가 날로 거세지는 트럼프발 전방위 통상 압박 공세 속에서 방어막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협정문 관련 조항들을 고쳤는지 여부다. 트럼프는 무역·안보 동맹국인 한국산 제품에도 반덤핑·상계관세,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등 무차별 수입규제 공세를 펴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는 이를 피해가거나 누그러뜨리는 안전장치 역할을 전혀 못하고 한없이 무력한 상황이다.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고 위협하자 2017년 한 해 동안 한국 기업과 정부가 합작해 미국산 제품(무기·에너지 등) 수입을 크게 늘린 데 따른 것이다. 한-미 FTA 협상 테이블 바깥에서 트럼프는 협정 개정의 목적인 ‘무역 불균형 해소’를 이미 달성했기에 협정문 자체를 굳이 대폭 개정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무기력한 자유무역협정
지금은 “칼라 힐스 미 무역대표가 나타나면 그 나라는 무역통상이 초토화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보호무역주의가 맹위를 떨쳤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와 흡사한, 국제 무역질서 대격변의 시대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차장(통상지원단)은 “미국은 ‘보호무역’ 대신 ‘공정무역’이란 표현을 써가며 보복을 한다”며 “일련의 트럼프발 보복무역 강도는 너무나 놀라워 내 눈을 의심할 정도”라고 말했다. 미국은 상대방의 불공정 무역이 입증되지 않았다 해도 일단 미국 시장 수입제품 조사에 착수한 뒤 시한을 못박아놓고 상대국과 협상에 나선다. 미국 말을 듣지 않으면 곧장 관세 부과 등 보복 조처에 나서는 프로세스를 반복하고 있다.
한-미는 이번 협상에서 한쪽 당사국이 무역구제 조처를 발동할 때 ‘반덤핑 관련 현지실사·조사자료 공개’ 등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는 내용을 협정문에 담기로 했다. 그러나 일방적인 ‘자국 우선주의’ 통상보복을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구속력 있는 조항을 5월 정식 서명이 예정된 협정문에 담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현종 본부장도 “이번 협상 결과로 향후 대미 통상 리스크가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장담하긴 어렵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 즉 8년간 집권할 가능성도 있는데 그동안 통상 압박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두 나라가 공동선언문에서 “이번 개정 협상 타결은 한-미 간 교역과 경제관계를 발전해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진전을 대표한다”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한-미 FTA 재협상 타결 뒤에도 기나긴 ‘트럼프 통상 압박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협상 타결 직전에 트럼프가 ‘원더풀 국가(한국)와 원더풀 딜을 거의 끝내가고 있다’고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원더풀’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대만족을 표시했다”며 “반면 우리 통상 당국이 발표한 합의 내용을 보면 협상이 뭔가 싱겁게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차이가 단순히 양국의 손익계산법이 다른 데서 비롯된 것인가?”라고 말했다. 발표된 협상 내용 이외에 여러 세부 내용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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