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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침묵의 살인자를 처벌하라!
[Trend ]네덜란드 흡연자, 담배회사 형사고소
[97호] 2018년 05월 01일 (화) 마르코 에퍼스 economyinsight@hani.co.kr
사남매 키우는 폐암 말기 40대 여성 “담배 없애달라”… 라이트 담배가 더 위험
 
전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에서 흡연이 법적으로 금지될 수 있을까? 네덜란드 여성이 유명 담배회사 4곳을 형사고소했다. 그동안 민사 손해배상 소송은 여럿 있었지만, 형사고소는 처음이다. 여성의 주장대로 담배가 오랜 기간에 걸쳐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담배회사가 이를 알고도 돈벌이를 위해 중독성 있는 담배를 판다는 혐의가 인정되면 흡연은 법적으로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연대가 담배회사 경영자에게 형사책임을 지게 하려 한다. 담배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기호식품일까, 천사 가면을 쓴 독극물일까? 흡연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국민건강권 보호일까, 개인 자유의 침해일까?
 
마르코 에퍼스 Marco Evers <슈피겔> 기자
 
   
▲ 필립모리스 대표 담배 브랜드인 말버러가 미국의 한 편의점에 진열된 모습. 네덜란드 40대 여성이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 등 유명 담배회사 4곳을 사기·상해·살인미수·살인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REUTERS
베네딕테 피크(60)는 살인범을 잘 안다. 지난 수십 년간 그의 일상 업무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최고의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 수차례 선정된 피크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변호한다. 이번에 그가 맡은, 역사를 새로 쓸 소송의 피고와 같은 악당은 만나본 적이 없다. 재판은 아마 피크의 인생에서 가장 크고 흥미진진하며 중요한 소송이 될 것이다.
 
피크는 폐암에 걸린 고객을 대신해 암스테르담 검찰청에 고소장을 냈다. 그는 네덜란드 검찰이 전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형사고발에 따른 수사를 하도록 강제하려 한다. 피고인석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담배회사 4곳(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재팬타바코인터내셔널·임페리얼타바코베네룩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앉을 것이다.
 
피크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사기·상해·살인미수·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 피크는 “말할 때 신중해야 한다”며 ‘너는 내가 잡는다’고 말하는 듯한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물 샐 틈 없는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흡연자와 유족이 담배회사에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담배회사가 형사고소를 당한 적은 없었다. 미국에서는 담배회사에 민사소송을 낸 원고에게 수백만∼수십억달러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종종 내려졌다. 하지만 합법적인 산업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독극물 제조자와 살인 집단으로 취급해 형사고소를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고 피크는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 스위스 뉴슈타텔에 있는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 연구·개발 본부. 담배에는 설탕·감초·코코아 등 30여 종 첨가제가 7% 들어 있다. 설탕은 흡연을 더 쉽게 해주지만 연소시 중독성 있는 발암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만든다. REUTERS
“담배회사를 없애라”
네덜란드에서는 담배산업에 대해 유례없는 시민봉기가 일어나고 있다. 이 움직임은 다른 국가에 역할모델이 될 수도 있다. 이 유명한 변호사의 형사고소에 네덜란드의 모든 대학병원과 일부 대형 민간병원이 참여했고,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암스테르담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 van Leeuwenhoek) 암센터가 가세했다. 종양학회와 혈관외과학회, 가정의학회, 산부인과학회, 산업의학회, 조산사협회, 간병사협회, 심장학회, 신경정신의학회, 소아과학회, 치과학회, 중독치료사협회, 암치료지원재단, 네덜란드 암환자협회도 함께했다.
 
암스테르담시도 공식적으로 형사고발에 참여했다. 위트레흐트시도 참여를 고민 중이고, 대형 의료보험회사들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2018년 2월 초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국민 중 54%가 담배 제조회사를 형사고발하길 원했다. 담배는 전세계적으로 매년 700만 명 이상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중 2만 명이 네덜란드인이다. “마치 사람들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고 피크는 말했다.
 
이와 유사한 형사고소가 2018년 1월 중순부터 프랑스 파리 검찰청에 계류 중이다. 네덜란드 사례를 모범 삼아 다른 국가에서도 형사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독일 시민단체들이 관심을 보이면 문의해달라. 기꺼이 우리가 가진 자료를 모두 무료로 주겠다”고 피크가 말했다.
 
이들의 봉기는 작지만 슬픈 사연으로 시작됐다. 시발점은 당시 에이설호수 인근 즈볼러에 사는 41살 안네 마리반펜이었다. 2014년 사남매를 둔 마리반펜은 전이성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는데, 항암 치료가 효과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여성은 자신이 왜 암에 걸렸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는 15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그 뒤 많은 이들처럼 담배를 끊지 못했다.
 
새 면역요법 덕분에 마리반펜은 아직 살아 있다. 날마다 진통제인 모르핀 주사를 맞는다. 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좋다. 지금까지 그는 돈도 손해배상도 원치 않고 있다. 더 큰 것을 바란다. 담배산업이 없어지는 것이다. 마리반펜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자녀들이 14살, 15살, 16살이 돼 자신처럼 쉽게 담배업계의 덫에 빠지지 않길 바란다. “이것이 그의 유산이다.” 변호사 피크가 말했다.
 
그러나 마리반펜이 폐암에 걸린 것은 자업자득 아닌가? 그에게 흡연을 강요한 사람은 없었고, 모든 담뱃갑에 흡연이 사람을 죽인다는 경고 문구가 쓰여 있다. 왜 이제 와 다른 곳에 책임을 전가하는가?
 
수년간 담배산업 반대 캠페인을 해온 안톤 판 레이우엔훅 암센터의 폐전문의 반다 드칸터(58)가 피크를 지원사격했다. “사람들은 담배를 전혀 모른다.” 담배가 장기 흡연자 3명 중 2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담배업체들이 중독성을 최대한 강화하기 위해 악마적 방법으로 담배산업을 조작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욱 적다.
 
궐련의 약 7%는 첨가제다. 설탕, 감초, 코코아 등 30여 종의 물질이 들어간다. 설탕은 흡연을 더 쉽게 해주지만 연소시 중독성 있는 발암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만든다. 담배에는 기관지 확장을 도와 연기가 최대한 폐 깊숙이 침투할 수 있게 하는 물질도 들어 있다. 기침억제제는 자연적인 보호 반사를 약화시켜, 특히 청소년이 흡연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물질이 없으면 기침 때문에 청소년들이 담배에 중독되는 일이 줄어든다.
 
“시험 삼아 담배를 피워보는 청소년 3명 중 2명은 날마다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가 된다”고 반다 드칸터는 말했다. 중독은 대부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뒤 2∼4주부터 일어난다.
 
그 뒤 담배를 쉽게 끊을 수 있는지는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무엇보다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 중 많은 이들이 15번 염색체에 의존성을 강화하는 특정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 터키 남성은 유전적으로 니코틴을 빨리 분해하는 효소 변이체를 만든다. 그 결과, 이들은 흡연을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하루에 평균 2갑 이상 피우고, 니코틴을 섭취하기 위해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는 ‘헤비 스모커’가 된다.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있는 사무실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성. 2014년 전이성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안네 마리반펜은 “담배산업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며 담배회사를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REUTERS
의도적 살인 행위
“흡연자가 담배를 즐긴다고 여기는 것은 치명적인 오해다.” 반다 드칸터가 말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흡연자 중 80%는 금연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흡연자들은 뇌 안에 니코틴 농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담배를 피워야만 한다. 니코틴 농도가 하락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질적이 된다. 담배를 피워야 불안감이 사라진다. 폐전문의는 “이 때문에 흡연자가 담배를 피울 때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1970년대에 말버러 제조사 필립모리스 연구원들은 담배에 암모니아를 첨가하는 것이 니코틴 중독성을 크게 높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암모니아는 프리니코틴 함량을 높이고, 니코틴을 7초 안에 뇌로 전달한다. 니코틴이 뇌에 전달되는 속도가 빠를수록 중독성이 높아지고, 중독성이 강해질수록 흡연자의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진다. 그와 함께 담배 제조사의 수익도 늘어난다. 바로 담배업계의 치명적인 논리다. 드칸터는 “왜 이런 제품을 시장에 유통되도록 허락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발장에는 “담배가 어린이를 비롯한 초심자들이 빠르게 중독되도록 설계돼 있다”고 적혀 있다. 담배업계의 사업모델은 고객의 자유의지를 상실시키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종종 사망에 이르는 중독성 질환을 과학적으로 유도하는 일은 최소한 의도적인 상해로 봐야 한다”고 피크는 주장했다.
 
피크 변호사가 감춘 카드는 더 있다. 예를 들어 피크는 담배의 현재 형태는 합법적인 상품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유럽연합(EU)에서는 담배 연소시 자연 발생하는 유해 물질량이 법적 허용 기준인 타르 10mg, 니코틴 1mg, 일산화탄소 10mg을 초과하지 않는 담배만 팔 수 있다. 이 때문에 시험기관이 주기적으로 실험실에서 테스트를 한다. 흡연 기계를 이용한 표준 검사로 일반적인 흡연자가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 얼마나 많은 유해 물질을 흡수하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다.
 
피크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담배회사들은 이 실험실의 테스트를 독일 자동차회사들이 디젤엔진의 배기가스 테스트를 조작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조작하고 있다. 대부분의 담배 제품 필터에는 공기가 통하는 미세한 통로가 있다. 실험실에선 담배 연기 외에 깨끗한 주변 공기도 필터를 통해 테스트 기계 안에 흡입돼 연기를 희석한다.
 
하지만 인간은 담배를 피울 때 손가락이나 입술로 이 구멍 중 다수를 눌러 막는다. 실제로는 허용된 유해 물질량의 몇 배를 흡입하지만, 흡연자들은 담배회사와 달리 이를 알지 못한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악명 높은 일상용어가 된 이 ‘사기 담배’는 최소한 심각한 사기죄의 성립 요건을 충족한다고 피크는 생각한다.
 
이보다 더 좋지 않은 것은, 이런 필터에 뚫린 구멍 중 일부가 흡연자가 담배를 피울 때도 계속 열려 있는 것이다. 담배 연기를 빨아들일 때마다 주변 공기도 같이 빨아들인 흡연자는, 이 때문에 자신이 피우는 담배가 순한 담배 재료를 사용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유럽연합에서 이를 금지하기 전까지 담배업계는 이런 제품을 오랫동안 ‘라이트’(Light) 담배로 광고했다.
 
라이트 담배 이용자들은 몰랐겠지만, 이를 파는 담배회사들은 라이트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이 부족한 니코틴을 채우기 위해 연기를 더 자주, 더 깊이 흡입하거나 담배를 더 많이 피울 것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 결과 담배 한 갑당 폐암 발생률이 지난 10년간 늘어났다.” 드칸터가 말했다. 특히 유해 물질이 적게 든 담배를 샀다고 믿던 라이트 담배 이용자의 폐암 발생 위험은 현재 일반 담배 이용자보다 높다. 공기가 통하는 필터는 담뱃잎 연소 온도를 낮추고, 이로 인해 발암물질인 타르가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피크 변호사는 담배회사 경영자들의 파렴치한 관행에 혐오감을 느낀다. “나는 의도적인 살인이라는 주장을 지지한다.” 범인이 탐욕 때문에 피해자에게 총을 쏘면 이는 명백히 의도적인 살인이다.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죽지 않고 수십 년 뒤에 죽더라도, 의도적으로 그리고 결과를 충분히 인식하면서 범행을 저질렀다면, 이 역시 명백한 살인이다. “왜 범인을 징역형에 처해서는 안 되는지 모르겠다.”
 
피크는 이미 1년6개월 전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조사가 2018년 2월 중순까지 진행됐다. 긴 조사 기간은 검찰이 이 결정을 내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준다. 2018년 2월 중순 검찰은 피크에게 이 사건의 검토를 종결한다고 알려왔다.
 
피크가 예상한 결과였다. 소송 결과의 여파가 너무 크고 무겁다. 담배업계가 형사고소로 기소돼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이를 근거로 네덜란드 정부에 수많은 민사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뒤따를 것이다.
 
피크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네덜란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3개월 안에 상급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무엇보다 판결이 미칠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항소는 당연한 것이다.
 

변호사 피크는 말한다. “10년이 걸리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병 속에 갇힌 정령이 이제 풀려났다. 

*2018년 5월호 종이 잡지 53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8년 9호
Der Aufstand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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