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이슈
     
갑질 근절 성과보다 더딘 재벌개혁
[국내이슈]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개혁 1년
[97호] 2018년 05월 01일 (화) 곽정수 jskwak@hani.co.kr
불공정 계약 개선으로 가맹점주 등 숨통 트여… 시한 연장에도 재벌 자발적 변화는 미흡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가장 기대를 모은 인사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다. 재벌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갑’들의 일상화된 탈·편법과 불공정거래를 앞장서 비판해온 그가 불공정 척결 권한과 책임이 있는 공정위 수장이 됐기 때문이다. 2017년 5월 임명된 김 위원장이 곧 취임 1년을 맞는다. 갑질 근절과 재벌개혁으로 대표되는 ‘김상조식 개혁’ 성과와 과제를 짚어본다.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
 
   
▲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간 상생방안 발표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과 기업 관계자들. 공정위는 김상조 위원장 취임 뒤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갑질 근절에서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연합뉴스
“경제민주화의 본령은 갑질 근절입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2018년 4월9일 청와대 유튜브 채널에서 경제민주화 청원에 이렇게 대답했다. 경제민주화 청원이 2월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처음 올라온 뒤 두 달 만에 20만 명 이상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새 정부의 첫 경제장관급 인사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친기업’을 내건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하고 김대중·노무현·박근혜 대통령은 공통적으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국민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모두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전도사’라는 김상조의 발탁은 문 대통령의 경제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보증수표로 인식됐다. 김 위원장은 새 정부 경제개혁의 ‘아이콘’이 됐다.
 
   
 
갑질 근절 우선 과제로
“김상조 위원장이 최우선 정책 과제로 갑질 근절을 설정한 것은 전략적으로 잘한 일이다.” 주진형 전 더불어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의 이 평가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갑질 근절은 재벌개혁과 함께 경제민주화의 양대 핵심 과제다. 김 위원장 스스로도 취임 뒤 가장 큰 성과로 갑질 근절을 꼽는다. “우리 경제 곳곳에 스며 있는 불공정 문제, 이른바 갑질 근절을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이를 통해 많은 국민이 경제민주화가 구름 위에 있는 추상적 이야기가 아니라 내 생활에 직접 관련된 것이라고 조금씩 느끼고, 새 정부에 많은 기대를 거는 것 같다.”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보다 갑질 근절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 “하도급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의 삶을 개선하는 갑질 근절은 경제민주화의 본령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벌개혁보다 갑질 근절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국민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2017년 12월14일 출입기자 송년간담회에서)
 
공정위가 추진한 대표적인 노력은 분야별 불공정거래 근절 대책 실시다. 하도급·가맹·유통·기술유용 대책 4가지가 이미 발표됐다. 2018년 상반기 발표 예정인 대리점 불공정행위 근절 대책까지 나오면 ‘갑질 근절 5종 세트’가 완결된다. 예를 들어 하도급 거래 공정화를 위해 원사업자(대기업)가 정당한 이유 없이 수급사업자(중소기업)에 전속거래를 강요할 수 없도록 했다. 법 집행을 강화하고 피해 구제 실효성을 높인 것도 눈에 띈다. 과징금을 높이고, 검찰 고발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하는 대기업은 손해액의 최대 10배를 보상하도록 했다.
 
‘갑질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들어온 가맹 분야에서는 가맹본부나 임원의 부도덕한 행위로 가맹점 피해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을 하는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 가맹본부가 필수적으로 공급하는 품목에 이윤을 붙이는 방법으로 가맹점주의 고혈을 짜내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도 내놨다. 최무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갑질 근절 대책의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경제적 강자와 약자 사이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힘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다. 둘째는 업계 자율의 상생 노력 확산이고, 셋째는 법 위반 기업의 제재 강화와 신속한 피해자 구제다.”
‘김상조표’ 갑질 근절 노력은 서서히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인테리어 비용 지원 확대, 계약 갱신 계약권 무기한 보장, 구입 강제 품목 축소와 가격 인하, 최저수입 보장….’ 주요 가맹본부들은 3월16일 서울 여의도에 모여 최근 새롭게 내놓은 상생 방안을 협의했다. 특히 치킨업종 교촌과 화장품업종 이니스프리는 가맹점이 가맹본부의 요청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도 공사비의 최대 65%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4월5일에는 대·중 소기업들이 상생 방안 발표회를 열었다.
공정위의 제재 강화는 기업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0개월간 하도급법 위반에 대한 공정위의 고발은 모두 6건이었다. 월평균 기준으로 박근혜 정부의 3배다. 최무진 국장은 “연말이 되면 가맹점주 인테리어비 감소, 판촉비 부담 감소 등 갑질 근절의 성과를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수백억원대 배임 의혹을 받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공정거래위는 재벌의 자발적 개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2018년부터 재벌그룹 조사와 제재를 시작했다. 연합뉴스
‘소걸음’ 재벌개혁
김상조 위원장은 갑질 근절을 강조하면서도,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임을 인정한다. 상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는 가운데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는 여전히 낙후돼 투명성과 책임성이 부족하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편법적 경영권 승계 관행도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인 공정경제 질서가 저해되는 것은 물론 중소기업 생존 기반마저 훼손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특유의 재벌개혁론을 편다. 그는 출입기자 송년간담회에서 건배사로 ‘우보천리’를 외쳤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뜻이다. “취임 초기 ‘팔 비틀기식’ 개혁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실패한다. 지난 30년간 개혁이 실패한 것은 6개월 이내에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조급증 때문이었다.” 그는 혁명이 아닌 진화의 길을 선택했다. “우리 사회를 바꾸고 공정경제를 만드는 방법은 진화가 돼야 한다.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의 지속가능성과 예측가능성, 일관성을 강조한다. “임기 3년간 지속가능하고 예측가능한 방법으로,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후퇴하지 않게 누적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우리 현실 속에 뿌리내리게 하고, 사회와 경제 주체들의 행동과 인식을 조금씩 바꾸면서, 누적된 변화를 통해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는 불가역적 변화를 만들고 싶다.”
김 위원장은 취임 뒤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 방지를 위한 법적 기반 구축, 총수 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강화 방지와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 총수 일가 사익 편취와 부당 내부거래 근절, 금산분리 원칙 준수 등을 추진했다. 재벌 총수의 사익 편취와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전담하는 기업집단국도 신설해 재벌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재벌 조사는 하림(2017년 7월)과 대림(2017년 9월), 2곳에 그치는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기업집단국 인원 충원과 교육이 2017년 말에야 끝난 이유도 있지만, 김 위원장 특유의 재벌개혁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대신 김 위원장은 4대그룹 간담회(2017년 6월), 5대그룹 간담회(2017년 11월)를 통해 자발적인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내는 이른바 ‘포지티브 캠페인’을 추진했다.
 
개혁 단체들 비판 목소리
“개혁 속도가 너무 늦다. (개혁을 하기에) 이렇게 좋은 환경인데 아쉽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한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김 위원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재벌개혁에는 낮은 점수를 준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등 김 위원장에게 우군이었던 시민단체들도 “재벌개혁이 안 되면 갑질 근절도 불가능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점차 높이고 있다. 포지티브 캠페인의 미흡한 실적이 비판의 주된 이유다. 김 위원장은 애초 2017년 말을 개혁안 발표 시한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성과가 지지부진하자 2018년 3월 말로 연기했다. “각 그룹이 안고 있는 현안과 문제점은 대한민국이 다 안다. …변화의 끝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결정할 의지가 없다.”(출입기자 송년간담회)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가 3월 말 순환출자와 일감 몰아주기 해소 방안을 내놓으면서 김 위원장도 한숨 돌리게 됐다. 공정위 집계 기준으로 2018년 4월 현재 12개 재벌이 개혁안을 내놨다. 재계 8위인 한화도 5월 안에 일감 몰아주기 해소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대기업집단의 자발적인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일관되게 촉구해온 결과, 대기업집단에서 핵심 순환출자 고리 해소, 일감 몰아주기 개선을 포함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선안 발표는 긍정적이지만, 그 내용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 김 위원장이 소장을 맡았던 경제개혁연구소는 “그룹별 소유지배구조 개선안은 그동안 문제로 지적된 사항에 대한 최소한의 조처만을 담고 있다. 획기적인 개선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계 1위 삼성의 침묵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삼성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은 이건희 회장→물산→생명→전자로 이어지는 핵심 출자 고리와 관련된 금산분리 문제”라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문재인 정부의 집권 기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우므로 시장과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김 위원장도 삼성이 관건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견해다. “삼성이 결단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과 관련된 불확실성이다. 이 부분이 확정된다면 삼성도 조만간 비가역적 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부터 ‘채찍’도 병행
김상조 위원장은 2018년 들어 기존 재벌개혁 방향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전략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매달 1개 그룹 이상 조사 또는 제재를 할 것이다.” 당근(포지티브 캠페인)과 채찍(조사와 제재)의 병행 작전으로 해석된다. 2018년 1월에는 금호아시아나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일감 몰아주기 조사, 하이트진로의 재벌 3세 소유회사에 대한 부당지원과 일감 몰아주기 제재가 단행됐다. 2월에는 아모레퍼시픽이 조사를 받았다. 4월에는 효성 역시 재벌 3세 사익 편취 혐의로 제재를 받았고, SPC가 부당지원 조사를 받았다. 하이트진로와 효성에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 외에 재벌 3세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가 2018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작업에도 재벌개혁 과제가 포함될 전망이다. 신봉삼 기업집단국장은 “지주회사 제도 개선, 공익법인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 차단, 사익 편취와 부당지원 행위 규제 개편 등이 주요 과제”라며 “제도 개선에 앞서 정확한 실상 파악을 위한 조사도 병행해 실시 중”이라고 강조했다. 1월에는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에 악용된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대기업집단의 브랜드 수수료 수취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4월에는 브랜드 수수료 공시제도를 개선했다. 또 계열분리제도를 악용해 친족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사례를 차단하기 위해 계열분리 이후 부당지원이 적발되면 친족 분리를 취소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 중심 성장 대신 사람 중심 경제를 제시했다. 사람 중심 경제의 세 축은 공정경제, 혁신성장, 일자리·소득 중심 성장이다. 갑질 근절과 재벌개혁으로 대표되는 공정경제는 경제의 기본 토대이자 질서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소수 대기업과 부자에게만 집중되고 대다수 중소기업, 자영업자, 노동자는 소외되는 양극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바로 설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문재인 경제팀은 개혁 성향 인사들이 탄탄한 팀워크를 이루고 있다. 주요 인사들만 꼽아도 청와대에는 장하성 정책실장, 홍장표 경제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정부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포진해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도 같은 팀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 1년간의 재벌개혁 성과에 50점 이상이라고 자평하면서도 아직 갈 길이 굉장히 멀다는 점을 인정했다. 역대 정부가 경제개혁에 실패한 근본 원인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경제팀이 개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국민이 무한정 기다려줄 것으로 기대한다면 너무 순진하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2년차는 개혁이 더욱 탄력받아 앞으로 치고 나아갈지, 아니면 역대 정권처럼 힘을 잃고 표류할지의 갈림길이 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내가 공정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재벌구조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5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