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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금융개혁’ 이끌 금감원장은?
[국내이슈]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낙마
[97호] 2018년 05월 01일 (화) 권순우 progress9@naver.com

중도 사퇴 최흥식·김기식 후임 놓고 설왕설래… 원승연 부원장·이동걸 회장 등 거론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임명된 금융감독원장이 잇따라 낙마했다. 최흥식 전 원장에 이어 김기식 전 원장이 중도 사퇴한 것이다. 후임 원장으로 누가 물망에 오르고 있을까? 금융감독 이해도가 높기로는 관료가 최적이지만, ‘개혁’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직 관료가 등판할 시점은 아니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 2018년 4월16일 서울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간담회를 마치고 나서는 김기식 전 금감원장. 피감기관 지원을 받은 외유성 해외 출장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 전원장은 취임 2주 만에 사퇴했다. 연합뉴스
2018년 4월16일 선거관리위원회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6년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에 5천만원을 후원한 것과 관련해 “종전 범위를 현저히 초과해 공직선거법에 위반한다”고 밝혔다. 피감기관 돈을 받아 해외 출장을 갔다는 비판에 꿈쩍도 하지 않던 김기식 원장은 선관위 결정 직후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선임된 지 고작 2주 만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기관장 중 중도 사퇴한 인사는 2명이다. 한 명은 김기식 전 원장이고, 또 다른 한명은 김기식 원장 전임인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이다.
 
두 수장이 연이어 불명예 퇴진하자, 금감원 임직원들은 혼란을 넘어 좌절에 빠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제 혈맥인 금융을 감독하는 당국의 수장으로 정치적 인물이 낙점되고 정치적 이유로 퇴진하니 감독 당국의 ‘영’(令)이 안 선다”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 금감원 건물. 최흥식 전 금감원장에 이어 김기식 원장까지 낙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금감원 내부가 혼란에 빠졌다. 연합뉴스
중도 퇴임 금감원장의 공통 키워드
중도 퇴임한 두 명은 각각 다른 사유로 사퇴했지만, 첫 번째 공통된 키워드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제19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비례대표로 활동했던 김기식 전 원장은 꼼꼼하고 집요했다. 그는 피감기관의 커피 한 잔, 강연비 몇 푼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이은재 한국행정연구원장은 스타벅스에서 커피값 1만2700원을 썼다고 지적받았고,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은 직원들 강연 요청을 받아 용돈 벌이를 한다고 질책을 받았다. 심지어 기자들이 언론재단을 통해 연수 간 것도 김기식 전 의원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피감기관인 한국거래소 돈으로 우즈베키스탄을, 우리은행 돈으로 중국과 인도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돈으로 미국과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사퇴의 결정적 요인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기 직전 남은 정치후원금을 후일 자신이 소장이 된 더좋은미래 연구소에 셀프 기부한 일이었다. 공적인 돈을 사적으로 썼다고,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을 갔다고 ‘국회의원 김기식’이 지적했던 그 사유로 ‘금융감독원장 김기식’이 낙마했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도 마찬가지다. 최 전 원장이 금감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가장 주력했던 일은 금융권 채용 비리 검사였다. 우리은행부터 시작된 채용 비리 검사는 국민, 신한, 농협 등 모든 은행으로 번졌고 제2금융권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채용 비리 의혹이 나온 은행들은 한목소리로 “추천한 것은 맞지만 압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합격 여부만 확인해 통보해줬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최흥식 전 원장은 은행의 변명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2013년 본인이 하나금융지주 사장 시절 지인 아들을 청탁한 의혹이 제기됐다. 최 전 원장은 “추천한 것은 맞지만 채용 절차에 관여하진 않았다”고 청탁 의혹을 부인했다. 본인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변명 그대로였다.
중도 퇴진한 두 원장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 가는 일은 너무나 공공연한 일이었고, 금융회사 고위 임원이 인재를 추천하거나 합격 여부를 확인해주는 것 역시 관행이었다.
국민 눈높이로는 부적절해 보이겠지만 그들이 활동했던 국회의원, 금융권 고위 임원의 행동반경 안에서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들이 그 영역의 다른 사람보다 더 부도덕하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들은 주로 지적하는 위치에서 지적받는 공직자로 신분이 변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도덕성 기준이 현저히 높아졌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두 원장의 두 번째 공통된 키워드는 ‘금융감독 부재’다. 두 원장은 금융감독원장이었지만 본질적인 의미의 금융감독에 주력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의 금융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국가가 주는 라이선스를 받아 이자를 착취하고 고연봉, 고배당으로 자기들 배만 불린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미지다. 전문 분야라는 특징을 이용해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것도 금융을 보는 일반인의 시선이다. 이런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임직원 연봉을 깎고 금리와 수수료를 낮추고 낙하산 인사들을 쫓아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임기 중에 집중했던 채용 비리 검사 역시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이다. 하지만 채용 비리는 금감원이 해야 할 업무와 거리가 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위험을 진단하고 금융시스템을 감시해야 한다.
최흥식 전 원장이 이끄는 금감원은 경찰이 해야 할 수사에 기꺼이 총대를 멨다. 당시 경험 많은 한 검사팀장은 채용 비리 검사가 금융감독 업무가 아님을 간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장 뜻에 반한 그 팀장은 지방으로 좌천됐다. 금융감독 업무에서는 별다른 방점을 찍지 못한 최 원장이 무리하게 검사권을 휘둘러 결국 자신도 사퇴하게 된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김기식 전 원장은 2주라는 짧은 임기였지만 두 차례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보여준 언사는 금융감독과 거리가 멀다. 김 원장은 저축은행 CEO를 불러 금리를 낮추라 압박했고, 자산운용사 CEO를 불러 수익률을 높이라고 지적했다. 대출금리를 낮추고 펀드 수익률을 올려주면 사람들은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금리는 시장가격이고, 수익률은 위험과 반비례한다. 감독 당국 수장이 대놓고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
 
물망에 오르는 후임 금감원장은
김기식 전 원장이 사퇴하며 다시 공석이 된 금융감독원장이 누가 될지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금융개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진보 성향 전성인 홍익대 교수,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금감원장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들은 비판적 감시자로 남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약 부단장을 맡았던 주진형 한화증권 대표도 높은 인지도와 함께 거론되지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후문이다. 금융감독원장은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자리인데도 거론되는 인사 수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금융감독 이해도가 높기로는 관료가 최적의 카드지만 ‘개혁’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직 관료가 등판할 시점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경제팀에 이미 합류한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이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금감원장으로 이동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원승연 부원장은 원장 두 명이 낙마하는 동안 금감원을 그나마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증권 배당 오류 사건도 신속하게 정리했다.
 
이동걸 회장도 국가적 난제였던 금호타이어, STX조선, 한국GM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둘은 특별히 문제될 소지가 적고 문재인 정부와 코드도 잘 맞은 인사다.
새 원장이 해야 할 문재인표 금융개혁의 방향성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관치금융 탈피와 이를 위한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금융개혁이라고 이야기하거나, 소비자 보호를 금융개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고위 인사들을 쫓아내거나, 재벌들이 금융회사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재벌개혁을 금융개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중심 지속성장 경제구현을 뒷받침하는 금융’을 내세웠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금융의 사회적 구실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개발 시대에는 집중적인 산업 지원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내는 구실을 했다. 동북아금융허브, 메가뱅크 등을 통한 개혁은 금융이 하나의 산업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금융위기 뒤에는 전세계적으로 요구되는 포용적 금융을 중요한 역할로 꼽는다.
 
포용적 금융은 금융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반대의 두 가지 미션을 한번에 수행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대출을 예로 들면, 과거 은행은 담보만 충분하면 상환 능력과 상관없이 대출을 해줬다. 상환을 못하면 곧바로 담보를 회수해 처분했다. 담보가 집이라면 집을 빼앗고, 공장이라면 공장을 빼앗았다. 대출에서 포용적 금융의 첫걸음은 상환 능력을 적절히 평가해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대출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서민이 지나치게 높은 금리로 고통받지 않도록 적정한 금리의 대출을 만들어내는 것도 포용적 금융 영역이다. 높은 수준의 신용평가 기법과 건전성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배려가 접목돼야 수행할 수 있는 일이다.
 
‘개혁’이라는 단어에 부합하기 위해 금융감독 수장이 성급하게 주먹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권력이 주먹으로 금융을 치면 금융은 시장을 통해 그 부담을 사회로, 특히 가장 약한 사람에게 전가한다. 저축은행 대출금리를 강제로 낮추려 하면 저축은행은 사람들을 대부업체, 불법 사채업자로 밀어낸다. 중소상인을 지원하겠다고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낮추면 카드론을 받는 서민들의 이자율이 올라간다.
 
금융감독원장은 차가운 시장 메커니즘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높은 전문성과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함을 갖춰야 한다. 은행뿐 아니라 사회안전망으로서 보험과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 경제의 마중물이 될 증권까지 금감원장이 감당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시장 참여자들이 금융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고 실천해가도록 소통하고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갖춰야 한다. 화끈하진 않지만 사회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금융을 만들어가는 금융감독원장을 기대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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