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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공화국’ 병폐 줄이는 근본 처방
[국내이슈] 토지공개념 개헌안 의미와 영향
[97호] 2018년 05월 01일 (화) 이태경 red1968@naver.com
토지재산권 속성 비춰 사회적 제약 강화가 헌법 정신… 집값 안정, 시장경제 활성화 기여
 
청와대가 2018년 3월21일 공개한 개헌안에서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토지공개념 내용을 명확히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개헌안에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간다. 이런 내용의 ‘토지공개념 개헌안’이 발표되자 보수 야당과 일부 언론은 ‘사회주의 헌법’이라느니, ‘사유재산제 근간을 흔든다’느니 하며 악의적 선동에 골몰하고 있다. 토지공개념 역사, 사유재산제 침해 여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의 관계 등을 통해 토지공개념 개헌안 의미와 그 영향을 살펴본다.
 
이태경 헨리조지포럼 사무처장
 
   
▲ 2018년 3월26일 김외숙 법제처장(오른쪽) 등이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토지공개념 내용을 명확히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미 현행 헌법에는 명시적이진 않지만 토지공개념이 반영돼 있다.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해야 한다”(헌법 제23조 2항), “국가는 국민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헌법 제122조) 같은 조문에 토지공개념 정신이 스며 있다. 헌법재판소도 여러 결정에서 토지를 다른 재화와 구분해 다루며 토지공개념을 확고히 지지해왔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개정 헌법에 명문화하려는 것은 절박함 때문으로 풀이된다. 토지를 포함한 부동산이 사회 불평등 심화의 주된 원인이며,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명시해서라도 부동산 자산의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지공개념의 역사
건국 이후 토지공개념은 이승만 정부부터 시작됐다고 평가해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이승만 정권이 한국전쟁 직전에 단행한 농지개혁에 토지공개념 정신이 담겼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에서 조봉암 농림부 장관이 주도한 농지개혁은 유상몰수·유상분배 방식이었다. 지주에게 불리하게 설계된데다 전쟁이라는 참화가 덮치면서 지주계급 소멸을 불러왔다. 또 자작농이 폭발적으로 늘고 소작농 비율은 현저히 줄어, 농지개혁은 대한민국을 비교적 출발이 평등한 나라로 재편하는 데 기여했다. 농지개혁은 남한의 적화를 막고, ‘한강의 기적’을 연출한 일등공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투기 공화국’으로 만드는 데 큰 몫을 한 박정희 정부도 임기 말에는 토지공개념에 관심을 기울였다. 1970년대 말 신형식 건설부 장관은 “우리나라와 같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토지의 절대적 사유물이란 존재하기 어려우며, 주택용과 일반 농민의 농경지를 제외한 토지에 대해서는 공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에서 이런 점이 확인된다.
 
그렇지만 토지공개념이 일반 시민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노태우 정부 때다. 노태우 정부는 전두환 정부 후반기에 진행된 부동산 경기 부양책과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의 영향으로 촉발된 부동산 대폭등에 적극 맞섰다. ‘주택 200만 호’로 상징되는 1기 신도시 건설과 토지공개념 3법(택지소유상한제·토지초과이득세제·개발부담금제)이 대표적 정책 수단이었다. 실수요는 주택 200만 호 건설로 흡수하고, 투기적 가수요는 토지공개념 3법으로 차단한다는 노태우 정부의 복안은 적중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안정을 찾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은 거의 10년 동안 평온했다. 다만 토지공개념 3법 가운데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은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위헌 결정, 토지초과이득세법은 과세 기술상 문제 등의 이유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각각 받았다.
 
임기 내내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벌인 노무현 정부는 토지공개념 정신을 한층 더 구현하려고 분투했다. 역대 정부의 숙원이던 보유세 현실화를 종합부동산세 형식으로 실현했다. 토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천명한 것으로, 토지공개념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 3월21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춘추관에서 개헌안 가운데 토지공개념을 담은 ‘경제부분’과‘지방분권’을 설명하고 있다. 개헌안에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갈 전망이다. 연합뉴스
토지재산권의 본질
문재인 정부의 토지공개념 개헌안을 두고 일각에선 사유재산제와 사유재산권을 흔든다고 아우성친다. 무지의 소산이거나 악의적 왜곡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담긴 사유재산권 보장, 재산권 행사의 사회적 구속성, 토지재산권의 특수성 등에 비춰볼 때, 토지공개념 개헌안은 사유재산제 근간을 해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23조 1항 1문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명시해, 사유재산제와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같은 조항 2문은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며 사유재산의 구체적 내용과 범위를 입법자인 국회에 위임했다. 또 제23조 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법률로써 내용과 한계가 확정된 구체적 재산권도 행사할 때는 공공복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재산권의 사회적 구속성 혹은 기속성이라고 한다.
 
토지재산권은 분명 재산권의 하나다. 하지만 본질적 속성과 사회적 영향력 등의 측면에서 다른 재산권보다 무거운 사회적 구속을 받아왔다. 헌법적 관점에서 보면, 토지공개념은 토지재산권에 가중된 사회적 구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토지재산권의 속성이나 토지재산권 행사가 사회에 끼치는 엄청난 영향력에 비춰, 재산권 가운데서도 훨씬 더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행사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구속성이 높은 토지재산권이라 해도 제한에는 엄격한 요건과 한계가 따른다. 헌법 제37조 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토지재산권은 이 세 가지 목적을 위해, 필요한 범위 안에서, 법률이라는 형식으로 제한할 수 있다. 필요한 범위라는 관점에서 수단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구성 요소로 하는 과잉 금지 원칙이 적용된다. 또 토지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사유재산제의 전면적 부정, 재산권의 무상몰수,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 등을 재산권의 본질 내용을 침해한 사례로 들었다.
 
따라서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수준의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헌법 정신에 따라 입법기관인 국회가 명문화된 토지공개념을 법률 형식으로 제도화하는 후속 과정을 거쳐야 하고, 토지공개념 관련 법률은 당연히 헌법재판소에서 사법 심사 대상이 된다. 헌법재판소가 구체적 법률 규정을 놓고 과잉 금지 원칙과 본질 내용 침해 금지 원칙 등을 기준으로 위헌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 필요할 따름이다.
 
   
▲ 2018년 4월17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국민시국강연회에서 개헌 저지 결의를 다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토지공개념이 반영된 개헌안을 사유재산제 근간을 흔드는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비난했다. 연합뉴스
‘미친 부동산’의 진정제
토지공개념의 헌법 명문화는 토지와 주택 등 부동산 자산에 고율의 보유세와 각종 개발이익환수 장치의 헌법적 근거를 더 명확하게 한다. 불로소득 환수의 입법 재량 범위가 한결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또 기존 토지공개념 관련 입법들 가운데 유독 과세와 관련해 엄격하게 심사했던 헌법재판소의 관점과 태도도 전향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토지공개념 개헌은 극심한 주거난으로 고통받는 서민과 청년에게 ‘복음’이 될 수 있다. 토지와 주택을 갖지 못한 대한민국 국민의 실존적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바로 주거 문제다. 일자리와 학교가 몰려 있는 서울에선 아파트 중위 가격이 7억원을 돌파했다. 7억원이면 연봉 3천만원을 받는 임금생활자가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23년을 모아야 하는 돈이다. 서울의 전세가가 매매가의 70% 언저리라고 볼 때, 전세로 산다고 해도 5억원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빚내서 집 사라’는 식의 부동산 경기 부양과 초저금리에 힘입은 부동산 광풍은 서민은 물론 중산층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집값과 전셋값 폭등이 1400조원을 넘어선 기록적 가계부채의 주범이다. 2017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85.9%로 최고치를 경신했고, 갈수록 커지는 대출이자 부담은 국민 생활수준을 떨어뜨리고 소비를 위축시킨다. 더욱이 청년에겐 내 집 마련은 고사하고 안정적인 전셋집 장만도 언감생심이다. 부모 잘 만난 소수를 뺀 압도적 다수의 청년은 월세 부담에 허리가 휘고 있다.
 
토지공개념 개헌과 그에 따른 입법·행정 조처는 투기 목적의 주택 소유 욕망을 억제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의 토지공개념이 고율의 보유세 형태로 구현되면 다주택자 가운데 상당수가 부동산 시장에 매물을 내놓을 것이고, 주택 매매와 전·월세 가격 하향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민과 청년에게 미친 듯이 오른 주택과 전·월세 가격이 떨어지는 것만 한 희소식도 드물다.
 
시장경제 순기능
경제학 창시자라 할 애덤 스미스, 비교우위론과 차액지대설을 창안한 데이비드 리카도, 고전주의 경제학을 종합한 존 스튜어트 밀 등은 지주를 증오했다. 지주가 자본가나 노동자와 달리, 가치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자본가나 노동자가 피땀 흘려 생산한 가치를 지대 형식으로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다. 그는 고전주의 경제학자의 사유를 받아들여 토지단일세(Single Tax)를 제안했다. 토지단일세란 정부 세입을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에 부과하는 지대세만으로 충당하자는 것이다. 그는 토지단일세로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가장 큰 장애물인 지대사유제의 폐해를 극복하려 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과 헨리 조지의 문제의식과 해법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지금 더 적확하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2016년 국민대차대조표(잠정)’ 보고서를 분석해 2017년 6월 내놓은 결과를 보면, 대한민국 국부 총액 1경3078조원 가운데 86%가 부동산 자산(1경1310조원)이었다. 전체 토지 가격은 1964년 1조9300억원에서 2016년 6981조원으로 3617배 올랐다. 지난 20년 동안(1997~2017년) 땅값 상승률은 400% 정도로, 물가상승률(146.7%)과 임금상승률(61.9%)보다 훨씬 높다.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에선, 2007~ 2015년 해마다 발생한 부동산 불로소득이 같은 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웃돈다. 토지 가액을 기준으로 2013년 현재 개인 토지 소유자 상위 1%가 전체 개인 소유지의 26%, 상위 10%가 65%를 갖고 있다. 법인 토지에서는 상위 1%가 전체 토지의 75%를 차지했다. 해마다 300조원 넘는 지대가 극소수 토지 소유자의 주머니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소수의 개인과 법인이 토지 소유라는 이유만으로 토지가 낳는 천문학적 규모의 가치를 대부분 가져가는 ‘지대 독식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인 것이다.
 
사회와 공공이 만들어낸 토지 등 부동산 가치를 소유자가 독식하는 사회는 계층·세대·지역별로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를 심화하고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킨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막대한 불로소득은 기업가정신과 근로의욕을 위협하고, 토지의 효율적 사용을 저해한다. 경기변동의 진폭 확대와 예산의 낭비·왜곡을 부추긴다. 아울러 토건형 산업구조를 고착하고, 인허가 등을 둘러싼 부정부패를 양산한다. 토지공개념은 이런 병폐를 줄이는 근본적 처방이다. 부동산 소유자들이 챙겨온 불로소득을 생산 주체인 기업 투자 자금과 노동자 소득으로 돌려줌으로써 시장경제가 더욱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한다.

지대사유의 폐해로 고통받는 대표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는 토지공개념 명문화는 이미 오랜 역사를 지녔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질서와 아무런 충돌도 일으키지 않으며,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해 꼭 필요하다. 헌법에 명문화하는 공개념 대상에 토지 외에 ‘천연자원’과 ‘환경’을 포함한다면 그 의미는 한결 커질 수 있다. 공공 자산인 천연자원과 환경은 그 속성과 사회적 영향력이 토지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헌법 개정안이 “토지·천연자원·환경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로 바뀌기를 기대해본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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