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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불가 ‘서민 계좌’ 담뱃가게서 개설
[Issue ] 프랑스 ‘니켈 계좌’의 인기 비결
[97호] 2018년 05월 01일 (화) 쥐스탱 들레핀 economyinsight@hani.co.kr

신용불량자 등 금융소외 계층 입출금, 이체, 수당 수령… 서비스 확대는 시간 걸릴 듯

‘서민을 위한 은행’ ‘모두의 은행’을 표방하는 금융 서비스가 프랑스에서 인기다. 신용대출 없이 단순 입출금 서비스 정도만 제공하는 ‘니켈 계좌’는 은행거래가 불가능한 금융소외 계층에게 요긴하다. 2017년에만 30만 개 계좌가 신설됐다. 일반 기업이 운영하는 이 계좌는 고객 다수가 취약계층이다. 니켈 계좌는 이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적잖이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쥐스탱 들레핀 Justin Delépine<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프랑스 니스의 담뱃가게에 설치된 니켈 계좌 단말기. 신용불량자도 신분증과 휴대전화, 연회비 20유로(약 2만6천원)만 내면 프랑스 전역 2만5천여 담뱃가게에서 간단히 니켈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REUTERS

서민을 위한 은행. 바로 ‘니켈 계좌’의 설립 목표다. 니켈 계좌를 개발한 ‘전자지불금융’(FPE)이라는 회사가 은행이 아닌 일반 기업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니켈 계좌를 만든 리야드 블랑누아르와 위그 르브레는 은행거래가 금지된 신용불량자를 비롯한 금융소외 계층이 쉽게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융소외란 신용불량자라서 신규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없거나, 지점이 없는 산간벽지에 살아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등 다양한 상황에서 생겨난다.

니켈 계좌가 일반 은행 계좌와 다른 점은, 마이너스 잔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신용대출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통장에 잔고가 없으면, 출금도 이체도 되지 않는다. 12살 이상 모든 개인은 니켈 계좌로 입출금, 자동이체, 송금 등 기본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보통의 성인에게 니켈 계좌의 장점은 가족수당과 활동연대소득(RSA) 등 각종 사회복지수당을 받을 때 사용하거나 임시직 취업에 필수적인 은행계좌명세서(RIB) 발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계좌가 없다면, 신용불량자들이 RIB를 발급받기 위해 ‘계좌 개설권’을 주장해야 하는데, 이는 복잡할 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떨어진다.

니켈 계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적어도 개설 계좌 수만 보면 그렇다. 2014년 처음 나온 뒤 4년 동안 80만 개 이상의 계좌가 개설됐고, 그 가운데 30만 개가 2017년에 만들어졌다. 니켈 계좌 이용객의 60%가 최저임금보다 낮은 소득을 벌며, 32%는 실업자였다. “소득계층 하위 30%에게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우리가 유일하다.” 소시에테제네랄은행의 온라인뱅킹 계열사인 부르소라마의 전 회장 위그 르브레의 설명이다. 달리 말해, 저소득층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니켈 계좌는 더 이상 신용불량자도 개설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계좌가 아니다. 2017년 가을 크레디아그리콜은행은 월 2유로(약 2600원)만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에코’(Eko) 서비스를 개시했다. 마이너스통장 개설은 제외됐다. 카르푸은행의 ‘시잼’(C-zam)은 카르푸 전국 매장에서 단 몇 분 만에 원격으로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서비스다. 체크카드가 발급되며, 이용료는 5유로다. 계좌 관리 명목으로 연간 12유로의 수수료가 붙는다. 물론 이런 몇몇 시중은행 서비스와 니켈 계좌는 여러 측면에서 구분된다.


담뱃가게에서 계좌 열기
니켈 계좌는 금융 신기술과 담뱃가게 유통망의 믿기 힘든 조합이 빚어낸 작품이다. 실제 프랑스 담뱃가게총연맹은 처음부터 니켈 계좌 설립 프로젝트를 지원한 후원자이자, 니켈 계좌 모기업인 FPE의 주식 5%를 보유한 주주이기도 하다. 담뱃가게(담배, 복권, 신문, 잡지 등을 파는 가게 -편집자)는 규모의 이점이 있다. 총연맹 소속 담뱃가게들은 전국적으로 2만5천 개에 이를 만큼 촘촘한 판매망을 자랑하고, 누구나 아는 대중적 장소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 지점이 없는 지역에서 담뱃가게의 위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프랑스 담뱃가게의 32%가 주민 수 2천 명 미만인 마을에 있는 점을 고려할때, 담뱃가게 유통망은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니켈 계좌를 취급하는 담뱃가게는 3천 곳에 그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담뱃가게에서 니켈 계좌를 개설할 수 있을 것이다.
위그 르브레는 금융소외 계층의 은행 서비스 이용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은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자체라고 생각한다. 니켈 계좌를 취급하는 담뱃가게는 계좌 이용료 20유로(약 2만6400원)의 15%인 3유로를 수수료로 받는다. 사실 담뱃가게 관점에서 3유로의 수수료는 추가 소득의 원천이라기보다, 잠재고객이 가게를 다시 방문하게 하는 수단이다. 물론 파리에 있는 한 담뱃가게 겸 바의 관리인 민호처럼 니켈 계좌 취급을 중단하려는 사람도 있다. 서비스 제공에 요구되는 시간에 견줘 수익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 프랑스 파리에 있는 BNP파리바 은행 본점. 2017년 BNP파리바가 니켈 계좌 지분 95%를 인수함으로써 금융소외 계층 대상 서비스가 어떻게 달라질지 관심이 쏠린다. REUTERS

단순성과 투명성
담뱃가게총연맹 외에 니켈 계좌의 또 다른 파트너가 2017년 등장했다. 덩치도 크다. 바로 BNP파리바 은행이다. BNP파리바는 니켈 계좌의 자본 95%를 인수했다. 니켈 계좌 설립자들은 이 인수를 계기로 니켈 계좌의 사이버 보안이 더욱 강화되고 실시간 지급 서비스의 품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니켈 계좌의 영업 자율성도 유지되고, 온라인 서비스를 근간으로 하는 현재의 영업 모델도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서비스 인터페이스부터 담뱃가게에 설치된 기기까지 니켈 계좌의 모든 것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계좌 잔액 실시간 조회와 잔액 증명서 발급도 가능하다. 니켈 계좌는 고객에게 지극히 단순한 약속을 한다. 몇 분 만에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계좌 명세서와 체크카드를 손에 쥐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계좌 개설에 복잡한 과정이나 서류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신분증과 휴대전화, 연회비 20유로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그런데도 계좌를 만들 때 대부분의 담뱃가게 주인이 고객을 돕는다. 이에 대해 민호는 매장 안 계산대와 복권 판매대 사이에 놓인 니켈 계좌 개설용 장치를 가리키며 “많은 고객이 읽을 줄 모르거나 자판을 제대로 치지 못해, 내가 직접 모니터를 보며 고객을 도와주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고객의 64%는 니켈 계좌에 번 돈을 예금해두고 주거래 계좌로 이용한다. 하지만 뛰어난 접근성 덕분에 니켈 계좌가 주거래 계좌 외의 용도로 쓰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파리의 또 다른 담뱃가게 주인 바이통 후아에 따르면, 많은 고객이 여름휴가 동안 국외에서 이용하거나 다른 은행의 카드 재발급을 기다리는 동안 니켈 계좌를 개설한다.

니켈 계좌의 또 다른 특징은 투명성이다. 니켈 계좌 누리집에 모든 서비스 요금이 공시된다. 요금은 주로 거래 건별로 부과된다. 출금 수수료는 담뱃가게 현금지급기 출금 때 0.5~1유로, 입금 수수료는 입금액의 2%다. 일반 은행에서는 입출금 수수료가 없거나 카드 발급비에 포함돼 있는데, 건별로 부과되는 사례는 드물다. 니켈 계좌에 입출금 비용이 드는 것이 오히려 고객을 안심시키는 요소다.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고객이 명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니켈 계좌는 2017년 8월을 기점으로 더 이상 손실을 기록하지 않고, 2018년에는 흑자를 낼 전망이다.

공동설립자 위그 르브레에 따르면, 니켈 계좌의 연평균 관리비는 46유로다. 은행 수수료 비교 사이트 ‘파노라방크’에서 확인한 일반 은행의 계좌당 관리비 190유로보다 훨씬 싸다. 물론 니켈 계좌는 일반 은행 계좌보다 제공하는 서비스가 적다. 기본적으로 마이너스 잔고가 불가능해, 그에 따른 비용을 줄일 수 있다.

 

   
▲ 프랑스 니스의 카르푸 할인매장에 설치된 카르푸은행 지점. 이 은행은 연회비 12유로와 월이용료 5유로를 받고 누구에게나 원격으로 은행 계좌를 개설해주는 ‘시잼’(C-zam)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REUTERS

니켈 계좌의 단점
위그 르브레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계좌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이너스 계좌는 결국 금융소외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가족협회(UNAF) 이사이자 ‘금융소외감시센터’ 회원인 모르간 르낭은 “마이너스 계좌가 개인을 점점 더 큰 어려움에 빠뜨리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마이너스 계좌에 여러 지급건이 청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잔고 불가는 한도가 필요한 사람에게 유용할 수 있다. 고정 소득자에게 적합한 방식이다. 반면 소득이 가변적인 사람과 마이너스 잔고 불가 조항은 맞지 않는다. 월이 아닌 연 단위로 따져야 소득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는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금융소외 관련 저서를 여러 권 집필한 경제학자 조르주 글루코비조프는 원래 사고 관리비에 근거를 둔 사업모델이 아니라는 점을 니켈 계좌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는다. 그에 따르면, 금융소외 계층은 일반적으로 은행에 관심이 없다. 고객의 마이너스 잔고가 사전에 승인된 액수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청구되는 요금 전부를 감당하는 사고 관리비는 금융소외 계층을 더욱 ‘수익성’ 있게 만드는 도구로 인식된다.

이런 사고 관리비가 니켈 계좌의 수수료 체계에 포함됐다. 심지어 최근 몇 달 동안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다. 두 번째로 거부된 이체부터 10유로 수수료가 부과된다. 위그 르브레는 낭비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주장한다.

니켈 계좌의 또 다른 단점은, 제공 서비스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니켈 계좌는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같은 필수재를 구입하기 위한 소비자 대출이나 금융 충격을 흡수하는 저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런 서비스의 확대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아직 우선 고려할 사항은 아니다. 언젠가 대출과 저축 분야까지 니켈 계좌의 서비스가 확대된다면, 이들 서비스는 ‘애그리게이터’(Aggregator) 형태를 띨 것이다. 보험 비교 사이트처럼 여러 곳에서 제시하는 가장 좋은 조건의 서비스만을 모아놓은 사이트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BNP파리바가 니켈 계좌를 인수한 상황에서 과연 니켈 계좌가 최대주주의 경쟁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고객에게 소개할 수 있을지 하는 점이다.


금융소외란?
경제학자 조르주 글루코비조프는 정부가 은행 서비스를 필수불가결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사회복지수당도 임금도 은행 계좌가 있어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계좌 개설권’을 보장하는 법이 있지만, 신용불량자가 이 권리를 행사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계좌 개설권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금융소외 문제는 은행 계좌 개설이나 은행 거래 금지보다 훨씬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른다. 글루코비조프는 금융소외를 “한 개인이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정상적 생활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은행 서비스 접근과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정의한다.

금융소외는 은행이 △특정 고객을 거부 △특정 고객층에게만 상품 정보 제공 △불안정한 지역이라는 이유로 은행 지점을 열지 않는 등의 사례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또 특정 서비스를 특정 고객층에게만 한정함으로써 해당 고객층에 속하지 않는 고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에 과다 수수료를 청구할 수도 있다.

금융소외는 이용자 자신이 그 원인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리볼빙 서비스처럼 은행이 아닌 카드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도 있다. 결국 금융소외의 경계와 결과를 명확히 파악하기란 어렵다. 이런 현상이 대규모 사회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소비자신용 전문기업 코피디스가 시장조사 전문 연구소 CSA와 함께 벌인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4분의 1이 달마다 적자를 메꾸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둘 중 한 명은 1년에 한 번 이상, 다섯 중 한 명은 매달 은행 잔고가 마이너스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8년 4월호(제378호)
Compte-Nickel: une banque pour tous
번역 박현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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