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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지렛대로 삼은 트럼프의 ‘정치전쟁’
[권말 특집]격랑에 휩싸인 세계 철강산업- ①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배경과 전망
[96호] 2018년 04월 01일 (일) 조계완 kyewan@hani.co.kr
11월 중간선거와 재선 의식한 행보… 철강보다 무역수지 적자폭 감소 위한 압박 카드 
 
2018년 4월 한국 철강산업의 역사나 다름없는 포스코가 창립 50돌을 맞는다. 포스코로 대표되는 한국 철강산업은 ‘제조업 한국’ 의 뼈대다. 이 뼈대가 최근 위기에 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물리는 행정명령을 발동해 세계 철강산업을 격랑으로 몰아넣었다. 유럽과 중국 등이 즉각 맞대응을 선언하면서 무역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조계완 <한겨레>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월23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태양광과 세탁기 등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책상에 앉아 한곳을 응시하고 있다. REUTERS
미국의 철강 수입 규제 근거가 된 미 국내 통상법은 무역‘확장’ 법인데 왜 오히려 무역 ‘제한’ 수단이 된 것일까? 애초 무역확장 법은 1962년 케네디 행정부 당시 전세계와의 자유교역 확대를 위해 제정됐다. 단, 수입 제품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경우 규제할 수 있다는 조항(232조)을 두었을 뿐인데, 이 조항을 트럼프가 철강에 들이댄 것이다. ‘ 세계 수입시장 1위국’인 거대한 소비시 장 미국은 자국 시장 보호, 특히 ‘무역 보복’을 위한 각종 조항을 통상 관련 여러 국내법에 걸쳐두고 있다. 자유로운 교역 확대를 표방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회원국 중 하나이면서도 자국 국내법에 각종 보호무역 수단들을 갖춰놓은 셈이다.
 
미국이 모든 수입산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 명분으로 ‘안보’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중국산 과잉으로 촉발돼 수년째 몸살을 앓고 있는 전세계 철강 과잉 생산·공급 상황에서 미국 철강기업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게 트럼프가 추구하는 ‘ 실리’다. 전세계 철강 공급과잉 물량은 약 7억6천 만t(2017년 한국철강협회 추정)에 이른다. 미국 내 철강시장 수입 물량은 연간 3592만t(2017년)으로, 미 상무부는 232조 수입 철강 규제 목표를 “미국 철강산업 공장 가동률을 현재의 72%에 서 80%까지 올리기 위해 연간 총 1330만t의 미국시장 철강 수입을 규제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한 해에 수입 물량 1330만t을 줄이려면 모든 수입산 철강에 관세 25%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성격 강한 ‘관세전쟁’ 
트럼프가 ‘정치적 목적’으로 수입 철강 관세 부과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가 오는 11월 중간선거와 재선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지지·후원 그룹인 중산층 백인(노동자들)에게 호소하려는 목적에서 철강 품목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보호무역주의 공세가) 여기서 끝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전선으로 넓힐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송재빈 철강협회 부회장은 “트럼프가 미국 철강왕 카네기의 흘러간 옛 전설을 부활시키려는 것 같다”며 “미국은 이미 20여 종에 이르는 한국산 철강제품에 60~80%의 고율 ‘반덤핑 관세’를 물리고 우리 정부의 철강 보조금을 문제 삼아 ‘상계관세’ 까지 부과하고 있는 판인데, 여기에 232조에 근거한 추가 관세 25%까지 더 물리겠다며 수출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각 2013·2014·2015년에 반덤핑 조사(규제)가 시작된 한국산 유 정용 강관·송유관·열연강판의 경우 규제 이전에 6억~8억달 러였던 대미 수출액이 2016~2017년에 연평균 3억~6억달러로 줄었다.
 
사실 트럼프의 철강 관세 폭탄은 철강 수입 자체를 막겠다는 심산보다는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철강제품을 지렛대로 무역수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이 뒤에 깔려 있다. 미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상품 수지 흑자를 내는 중국·한국·일본 등 전세 계 교역 상대국에 ‘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양보 해법’을 내놓으라며 통상 압박을 가하는 셈이다. 3월1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지명자는 위원장 내정을 며칠 앞둔 2월11일 방송된 뉴욕 라디오 <AM 970> 인터뷰에 서 “캐나다,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가 (도중에 232조에 따른 관세 25% 부과 대상국에서) 면제됐다. 모든 유럽 국가도 면제될 것으로 장담한다. 아시아의 우리 동맹국들도 면제될 것으로 단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면을 때려 시선을 끈 뒤 거래를 하는 것이 그(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트럼프식 협상 방식”이라며 수입 철강 25% 관세 부과가 트럼프의 협상 전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 철강 관세 25% 부과’ 행정명령이 발효되 는 시한(3월23일) 이전에 부과 대상국에 막판 면제해줄 수 있는 조건으로 “미국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고 무역 적자를 개선하며 대미 수출이 미국에 가하는 위협을 해소한다면…”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달아 관세 면제 국가 추가를 시사했다. ‘국가별 관세 면제’뿐 아니라 미국 내 생산·공급 부족으로 수입이 불가피하거나 국가 안보상 필요한 품목은 이번 수입 규제 철강제품 목록에서 제외하는 ‘품목별 예외’도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한국을 포함해 미국 시장에 철강을 수출하는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은 혼란 속에 철강 관세 발효를 앞두고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USTR) 대표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펼쳐야 했다. 
 
특히 트럼프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국 인 캐나다·멕시코와 동맹국인 오스트레일리아는 잠정 면제해 준 터라, 한국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3차 개정협상(3월 15~16일 워싱턴 개최)과 철강을 연계해 ‘한국산 철강 예외’를 얻기 위한 총력전을 벌였다. 철강을 볼모로 트럼프가 쏘아올린 ‘피 아 식별 없는 전세계 통상 전쟁’ 신호탄에 자동차 등 다른 품목에서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축소할 양보안을 제시하며 ‘철강 타협’을 모색한 것이다. 철저한 비즈니스맨이자 노회한 협상가인 트럼프의 면모가 이번 철강 관세 분쟁 국면에서 유감없이 발휘된 셈이다. 그러나 무역수지 불균형이라는 ‘트럼프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고통 분담을 놓고 국내 산업·업종별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사회적 갈등이 터져나올 공산이 커졌다. 철강을 위해 왜 우리(자동차·농업)가 희생되냐는 것이다. 
 
트럼프는 3월8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나프타가 합의에 도달할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관세 폭탄을 일단 피한 캐나다·멕시코도 나프타 협상 전개에 따라 다시 관세국에 포함될 여지를 남기는 주도면밀한 발언을 잊지 않았다. 나프타 재협상 전략상 철강 관세를 압박 카드로 삼아 협상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개정 협상이 진행 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3월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특파원 간담회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도 국가안보 예외 조항을 전가의 보도로 오용·악용해 식량·가스 등에 다양한 수입제한조처를 할 수 있어 (전세계 무역전쟁이) 우려된다.  우리도 복잡한 주판알을 튕기게 됐다”고 말한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철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두 사안이 연계되면서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 수 있는, 비용·손실이 가장 적은 최적의 묘안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대미 철강 수입국 세계 3위(물량 기준)인데다 중국산 철강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 2018년 3월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미국 무역확장법 제232조 민관합동대책회의에서 철강업계 대표들이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자유무역협정 한계 드러나 
이번에 수입 규제 대상이 된 철강제품은 판재류, 파이프·튜브 등 5개 품목이다.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38억달러) 가운데 이 5개 품목의 수출액은 27억8천만달러(2017년 기준)에 이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트럼프발 철강전쟁의 의미’란 보고서에서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매기면 연간 대미 철강 수출이 40억2천 만달러(2017년 기준. 한국과 미국의 철강 무역액 통계는 한국관 세청, 미국 상무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자료에 따라 각각 다름) 에서 31억4천만달러로 21.9%(8억8천만달러)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른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로 한국 경제의 총부가가치(국내총생산)가 향후 3년간 1조3천억원 이상 줄고 취업자도 1만4천 명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품 가운데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파이프·튜브(석유 시추 유정용과 송유관 등 에너지산업용 강관)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파 이프·튜브 수입 시장에서 한국산은 1위(시장점유율 20%·14억 9천만달러)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특히 유정용 강관은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이 43.4%로 종전의 1위였던 미국 (32.9%)을 따돌리며 각축을 벌이는 제품이다. 미국 시장에 강관을 주로 수출하는 박훈 휴스틸 사장은 3월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철강 민관합동대책회의에서 “(미국 시장을 피해) 동남아로 가려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고, 캐나다에도 들어갔지만 물량이 미국만큼 많지 않다. 미국 정부에 봐달라고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통상 당국 고위 관계자는 “금 전적 이해가 걸린 통상 게임은 상대방이 통상 규제를 철회·변경하도록 이끌어내는 효과적이고 강력한 압박·보복 카드를 제시해야 하는 세계”라며 “그러나 우리는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로,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규제로 나서면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더 큰 보복을 당할 수 있어 그러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2018년 3월15일로 발효 7년차를 맞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철강·세탁기·자동차 등 전방위에 걸친 트럼프의 무차별적 통상 장벽 앞에 한없이 무력한 위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김양희 교수(대구대 경제학)는 “트럼프의 일방적인 한 국산 수입 규제 공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어떤 힘도 못 쓴 채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다”며 “2007년 협상 당시부터 ‘거대경제 권 미국과 높은 수준에서의 시장개방협정은 상대국 시장이 큰 만큼 우리 수출에 유리하지만 동시에 비대칭적으로 힘의 우위를 가진 미국에 우리가 끌려다닐 수 있다’는 양면이 있었는데 지금 그 한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4월호 종이 잡지 97쪽에 실렸습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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