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특집
     
안팎 위기 딛고 초우량 글로벌 기업 진화
[권말 특집]격랑에 휩싸인 세계 철강산업- ② 창립 50돌 맞은 포스코
[96호] 2018년 04월 01일 (일) 최하얀 chy@hani.co.kr
생산과잉·보호무역주의 기승에도 실적 호전… 전리품 취급하는 권력 입김이 최대 위협 
 
철강은 제조업의 근간을 이룬다. 철강 없는 자동차, 중공업 산업은 생각할 수 없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극복하는 과정에선 ‘제철 보국’이란 말이 쓰였다. 제철을 성공시켜 나라에 보답하자는 뜻이다. 산업 근대화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종합제철소 건설 특명을 내렸다. 그 결과 1968년 4월1일 포항종합제철 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세계적 철강 대기업으로 성장한 포스 코의 시작이다. 포스코의 50년 역사에는 영욕이 엇갈린다.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초우량 글로벌 기업이라는 영광 뒤에는 주인 없는 거대 기업을 전리품으로 여기며 이권을 챙겨온 권력의 그늘이 짙게 남아 있다. 
 
최하얀 <한겨레> 기자 
 
   
▲ 2018년 첫날 포스코 광양제철 1고로공장에서 철광석을 녹여 쇳물로 만드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단일 제철소로는 세계 최대인 광양제철 고로공장의 조강 생산량은 하루 1만5600t에 이른다. 연합뉴스
흔히 포스코를 ‘국민기업’이라고 한다. 민간기업인데도 이렇게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포항제철의 종잣돈이 대일청구권 자금이었기 때문이다. 애초 박정희 정부는 외국의 기술과 자금 지원을 받아 철강산업을 시작하려 했다. 1966년 미국 코퍼스를 중 심으로 5개국 8개사가 발족한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과 세 차례 협상한 끝에, 이듬해 기술과 자금 지원에 관한 기본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을 믿고 1968년 4월1일 포항제철을 창립했으나, 협약은 1969년 파기됐다. 차관 심사를 마친 세계은행이 한국의 종합 제철 건설은 무리한 시도라는 보고서를 내는 등 국외 여론이 부정적이었던 까닭이다. 그러자 나온 아이디어가 대일청구권 자금 전용이었다. 1965년 타결된 한-일 협정에 따라 10년간 무상공여(3억달러), 유상자금(2억달러), 민간 차관(3억달러) 형태로 일본이 주기로 한 돈 가운데 약 1억달러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아닌 포항제철 건설에 쓰였다.
 
포항제철이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됐기에 박태준 초대 회장은 ‘제철보국’을 내세웠다. 박 전 회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철강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 박 전 대통령에게서 ‘철강 특명’을 받은 뒤 제철소 건설 사업에 ‘하면 된다’란 군인정신을 불어넣었다.
 
‘철강왕’ 박태준의 군인정신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 해서 앞에 보이는 (동해) 영일만에 빠져 죽어야 한다.” 포스코 하면 꼭 따라붙는 ‘우향우 정신’도 박 전 회장의 당시 연설문에서 나온 것이다. 제철소 건설 시작 이듬해인 1971년 여름 열연공장 기초공사가 석 달가량 늦어지자 ‘24시 간 공사’ 체제로 전환해, 두 달 만에 5개월분의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마무리했다는 얘기도 유명하다. 1970년 4월1일 영일만에서 첫 삽을 뜨고 3년 만에 조강 연산 103만t 체제의 1기 설비가 준공됐다. 그리고 네 번의 확장 사업을 거쳐 1983년 5월25일 조강 연산 910만t의 종합제철소 건설에 성공했다.
 
그다음은 광양이었다. 제2제철 실수요자로 선정된 포항제철은 광양에서 국내 최초로 바다 위에 제철소를 지었다. 1987년 조 강 연산 270만t 규모의 광양제철소 1기를 준공했고, 1991년까지 4기 공사를 끝냈다. 박 전 회장은 1991년 10월3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 “각하! 불초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 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 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포항제철은 광양 3기를 준공한 뒤 크게 늘어난 생산력을 소화할 국외시장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1994년 조강능력 2200만t의 세계 2위 철강업체로 우뚝 섰다. 특히 집중한 국외시장은 중국과 베트남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중국 톈진, 순더, 장자강 지역 등에 현지 기업과 합작회사를 세우고 냉연강재 등을 생산했다.
 
1994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도 포항제철의 글로벌 기업 도약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당시 포항제철은 2000년까지 연간 2800만t 생산에 필요한 설비 증설비 15조6천억원을 국 외 증시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작업인 뉴욕증시 상장으로 3억달러 투자를 이끌어냈다. 한국전력, 삼성전자, 금성(현재 LG), 유공(현재 SK) 등 다른 한국 기업들이 국외 자본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물꼬를 텄다는 평가도 받는다.
 
1998년 닥친 외환위기는 포항제철이 민간기업으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포항제철 등 11개 공기업 민영화 계획을 내놓았다. 해당 기업들의 정부 지분을 매각해 구조조정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보유하던 포항제철 지분 26.7%는 내외국인에게 분산 매각됐다. 매각이 마무리된 2000년 10월 포항제철은 ‘지배주주 없는 사기업’으로 완전 민영화됐다. 그리고 2002년 3월15일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포스코로 바꿨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54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정탁 포스코 전무에게 100억불탑을 수여하고 있다. 포스코는 철강 공급과잉과 보호무역주의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도 전년 대비 63.9% 늘어난 104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연합뉴스
민영화로 글로벌 기업 발판 
민영화 뒤 포스코는 초우량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0 년대에는 자동차 강판, 석유·가스 운송용 강관에 쓰이는 강판, 스테인리스 강판, 고급 전기 강판을 4대 전략제품으로 선정하고 기술 개발과 생산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2003년 영업이익률이 20%대에 이르렀고, 2005년에는 27.3%라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포스코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인 것은 ‘파이넥스 공법’의 도입이다. 파이넥스 공법 이전까지는 용광로에 철광석과 석탄을 넣어 쇳물을 뽑아냈다. 이를 위해선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석탄을 고체로 만드는 코크스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다. 포스코는 이 공정 없이 값싼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석탄을 대형 용융로에 넣고 산소를 주입해 철광석을 녹이는 파이넥스 공법을 2007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 쇳물은 용광로에서 생산된다’는 철강업계의 100년 상식을 50년도 채 되지 않은 포스 코가 깬 것이다.
 
그러나 포스코의 경영은 순탄치 않았다. 정권 교체기마다 회장이 임기(3년)를 채우지 못하고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 ‘포스코 회장 잔혹사’는 박태준 전 회장의 1992년 퇴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박 전 회장의 퇴임은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 유당 김영삼 대통령 후보와의 불화로 선거운동을 지원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태준 사단’의 한 사람인 황경로 전 포항제철 회장은 2012년 6월1일 <한겨레> 인터뷰에 서 “김영삼 후보의 도움을 거절한 대가로 박 회장이 퇴진했다”며 “박 회장은 ‘와이에스(YS)는 5분만 말해보면 바닥이 드러나는 데,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도움을) 거절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수립 뒤 포스코를 상대로 강도 높은 국세청 세무 조사와 검찰 조사가 이어졌고, 박 전 회장은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그 뒤를 이은 황 회장 체제도 6개월밖에 가지 못했다. 그다음 정명식 회장 체제는 내부 갈등 끝에 1년 만에 끝났다. 약 1년 반 사이 회장이 세 번이나 바뀐 것이다. 이후 포스코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 출신인 김만제 전 재무부 장관이 회장을 맡게 된다.
 
그러나 1997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을 이끌던 김 종필, 박태준과 손잡은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김대중 정부에서 박 전 회장이 총리를 맡으며 ‘박태준 사 단’이 대거 포스코에 복귀했고, 김만제 회장은 임기를 못 끝낸 채 물러났다. 1998년 3월 취임한 유상부 회장은 2003년 연임을 시도하다 주주총회 하루 전날 돌연 사퇴했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 퇴진 압력설이 불거지기도 했고, 박태준 당시 명예회장과 갈등을 빚은 결과라는 해석도 나왔다. 뒤를 이은 이구택 회장은 외부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최고경영자 (CEO) 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지배구조를 개선했지만, 그 또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09년 사임했다.
 
포스코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기업지배구조평가에서 2004년, 2007년, 2008년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핏줄’을 경영권의 유일무이한 근거로 삼는 재벌 체제가 아닌 몇 안 되는 대기업이다. 이런 포스코의 지배구조를 만든 사람이 장하성 청 와대 정책실장이다. 장 정책실장은 2006년 이구택 회장의 요청으로 최고경영자 후보추천위원회를 설계했다. 그러나 ‘입김’은 그 뒤에도 불어닥쳤다. 제도의 설계만큼이나 운용이 중요했지만, 정치권력은 포스코를 가만두려 하지 않았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가운데)이 2017년 11월 서울중앙지법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 전 의원은 포스코의 민원을 해결해주고 뇌물을 챙긴 혐의로 1년3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이명박 형제와 정준양
포스코에 정부 지분은 1%도 없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흡사 정 치권력을 쥔 이들의 ‘전리품’ 취급을 받았다. 특히 이명박 정권 때는 ‘주인 없는 기업’ 포스코로 이권을 챙기려는 권력 실세들의 움직임이 유난히 두드러졌다.
 
이구택 회장의 뒤를 이어 2009~2014년 재임한 정준양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회장 선임 때부터 이상득 전 의원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2017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이 전 의원에게 1년 3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포스코 민원(신제강공장 공사 중단 사태)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자신의 측근이 운영하는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뇌물을 챙긴 혐의다.
 
그러나 이는 ‘새 발의 피’라는 지적이 많다. 정준양 회장은 취임 뒤 문어발식 기업 인수와 무리한 국외 자원 개발 투자에 나섰다. 새 먹거리 창출을 앞세웠지만, 문제가 된 사업들을 들추다보면 이상득 전 의원의 그림자가 나오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 성진지오텍 인수다. 성진지오텍은 인수 전 신기술이나 특허가 전혀 없고 부채비율이 1600%에 이르는 부실기업이었다. 이런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을 포스코는 2010년 5월 1598억원에 사들였다. 더욱이 성진지오텍의 당시 전 정도 회장이 보유한 주식에 상당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전 회장의 경영을 허용했다. 전 회장은 이 전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기업 인수로 포스코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준양 회장은 1심에 이어 2017년 8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잃어버린 5년’과 혹독한 구조조정
정준양 회장 재임 시절 포스코의 재무구조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2009~2014년 자원 개발 사업 등으로 계열사가 36개에서 71개로 급증했지만 돈을 벌지 못했다. 외려 부채비율은 2009년 58.7%에서 2014년 88.3%로 치솟았고, 영업이익률은 10.6%에 서 4.9%로 곤두박질쳤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 (S&P)는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무디스는 A1에서 Baa2로 떨어뜨렸다. 사람들은 이때를 포스코의 ‘잃어버린 5년’이라고 한다.
 
재도약을 위한 구조조정은 혹독했다. 2014년 권오준 회장 등 장 뒤 4년 동안 진행된 구조조정 건수만 150건이다. 비핵심 철강 사업을 대거 매각했고 모두 7조원 규모의 누적 재무 개선 효과를 냈다. 실적만 놓고 보면, 포스코의 최근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다. 포스코는 2017년 연결 기준 매출액 60조6551억원, 영업이익 4조6218억원을 기록했다. 2011년 이후 최고 실적이다.
 
경영 상태가 크게 호전됐지만,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검찰의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과정 어딘가에서 포스코가 다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은 2018년 2월 포스코건설의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1995년 포스코건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에게 매입한 서울 도곡동 땅과 관련된 게 아니냐는 말이 많다. 최근에는 이상득 전 의원이 에콰도르를 방문한 뒤 진행된 포스코건설의 현지 엔지니어링 회사 산토스CMI와 EPC 인수 건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포스코 건설은 2011년 1월 두 회사를 1천억원에 인수한 뒤 2017년 초 70 억원에 되팔아 막대한 손실을 봤다. 매각 직전엔 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까지 해 실제 손실액은 1800억원에 이른다.
 
이와 별개로 현 권오준 회장 동창이 권 회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포스코 협력업체들로부터 금품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 중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5월 방미, 11월 방 중 경제사절단에 권 회장이 포함되지 못하면서 중도하차설도 여러 차례 불거졌다. 2017년 연임에 성공한 권 회장의 남은 임기는 2년이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포스코가 실적 개선을 발판 삼아 먹구름을 걷어내고 새 도약을 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2018년 4월호 종이 잡지 100쪽에 실렸습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4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