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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잉여 시대 선제적 대응 필요
[Finance] 미국의 ‘완전고용’이 뜻하는 것
[96호] 2018년 04월 01일 (일) 윤석천 maporiver@gmail.com
미국의 고용시장은 봄날이다. 2010년 10%이던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져, 2017년 10월부터 4.1%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직업 갖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일할 수 있는 ‘완전고용’ 상태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 수와 현재 비어 있는 일자리 수가 거의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신화’다. 현 실적이진 않다.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고, 기술 발전과 자동화에 따라 기계가 사람 일을 대체하는 현상이 더 빨라질 것이다. 2030년 미국에서만 4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 미국 일리노이주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금속상자를 조립하고 있다. 미국은 경기 호전으로 실업률이 2017년10월부터 4.1% 수준을 유지해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REUTERS
‘완전고용’이란 경제학 용어는 자칫 심각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조건이 붙는 개념이다. 구직자가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이거나 새로운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자리를 언제든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는 노년층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반드시 ‘좋은 일자리’를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정도의 보수가 주어지고 가치를 느낄 생산적 일을 한다면 좋은 일자리다. 미국의 고용시장이 과거 침체기보다 개선된 것은 틀림없지만, 상황이 완전히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부분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는 여전히 공염불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많은 자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지역자문위원회(Community Advisory Council)의 역할은 지역사회와 중산층 이하 소비자들의 이익을 대변해 이들의 경제적 상황을 연준 이사회에 자문하는 것이다. 이 위원회가 최근 ‘ 임금이 2018년의 열쇠라면’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핵심은 연준 이 은행과 정치인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일 게 아니라 임금 소득자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 실업률은 하락했지만 좋은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2017년 현재, 미국 일자리 넷 가운데 하나는 저임금 직업이다. 중위임금을 기준으로 할 때 그렇다. 네 가구 가운데 한 가구는 빈곤 경계선 아래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지역자문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낮은 실업률은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국은 실업률 하락을 근거로 금리를 올리려 한다. 2018년에만 세 차례 이상을 계획하고 있다. 완전고용이란 신화에 기대, 금리 인상을 시도하고 있다. 정말 그래도 될까? 실업률 지표는 금리 조 절의 명분이 될 수 있을까?
 
노동시장의 대전환 
경제는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엔 없던 새로운 기회와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도 그 하나다.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사람과 임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형태는 과거엔 그리 흔하지 않았다. 신경제는 기존 고용구조를 전면적으로 파괴하기도 한다. 우버나 리프트와 같은 회사에 소속된 운전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일자리는 분명 우리에게 추가 수입을 안겨준다. 시간 날 때 짬 짬이 일해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안정된 일자리가 있는 사람에겐 분명 기회다.
 
문제는 이런 일이 상시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런 일자리를 본업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며, 실제 수입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돈을 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에 따르면, 우버나 리프트에 속한 운전사의 중 위임금은 세전으로 시간당 3.37달러(약 3600원)에 지나지 않는다. 절반 정도는 그 이하를 번다. 전체의 74%가 최저임금보다 적은 돈을 벌고 있다. 신경제가 모두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다. 오히려 노동 유연성을 극대화해 직업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2018년 2월 경영컨설팅 기업인 베인앤드컴퍼니는 노동시장에 대한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놨다. ‘노동2030: 인구, 자동화, 불평등의 충돌’이란 보고서는 2030년까지의 노동시장 변화를 전망했는데, 그리 반가운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자동화는 2030년까지 미국 일자리의 25%를 없앨 것이다. 저임금 직종의 일자리가 가장 빨리 사라지고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현재 고용시장 구조로 보면 재앙에 가깝다. 그리 먼 미래 에 닥칠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흐른다. 2030년까지는 불과 10여 년이 남았다. 오늘을 사는 대부분이 겪게 될 현실이다.
 
인간이 기계로 대체되면 생산성이 늘 어나 결국 성장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기술 낙관론 자들이 이런 전망을 한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발전하는 기술로 기계는 더 좋고 싸게 만들어질 것이다. 이 기계들은 주로 공장의 노동자나 반복적 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생산성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인공 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계는 훈련되고 경험이 풍부한 인간을 대체해, 인지 작업을 수행하면서 생산성을 한층 높이게 될 것이다. 이런 추세는 기업에 호재가 될 수 있다. 기계에 투자하고 종업원을 해고하면 더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늘 고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제품을 사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해고된 노동자는 과거보다 소비를 줄일 것이 분명하다. 물론 가격이 낮아지면서 생기는 신규 수요는 새 일자 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렇지만 이 보고서는 이 주장에 강하 게 반박한다. 더 많은 신규 수요가 생겨나더라도 미국에서만 약 4천만 개의 일자리가 영구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규 수요 발생으로 늘어나는 일자리는 사라지는 일자리의 겨우 18%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잉여 시대 도래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2018년 2월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반기 통화정책 보고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준은 실업률 하락을 근거로 2018년에 세 차례 이상 금리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 REUTERS 
앞으로 10~12년 안에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은 노동잉여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현재 미국에는 약 1억6천만 명의 노동자가 있다. 이 가운데 4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을 것이다. 아무리 낙관적인 가정을 해본들 상황은 반전되지 않는다. 새 일자리가 생겨나더라도 그것이 사라진 일자리를 대체 할 수 없고, 그보다 좋을 확률도 높지 않다. 노동자 임금은 기계로 대체되기 전부 터 이미 하락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은 감소하고 있다. 그 비중은 1951년 64%에서 2016년 57%로 하락했다. 점점 강화되는 자동화 추세는 이를 더욱 악화할 것이다. 신기술로 자동화 비용이 떨어지고, 기계와 경쟁해야 하는 인간의 임금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예외는 있다. 고숙련 전문가와 기업가 들은 지금보다 많은 돈을 벌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유쾌한 상황은 될 수 없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간극만 더욱 벌 어질 뿐이다. 앞으로 닥칠 미래가 과거와 는 다른 문제에 봉착할 수 있음을 뜻한다. 가령 국가의 개입과 같은 조처가 없다면 소비 성장은 둔화될 것이 분명하다. 다수 대중은 소비 여력을 잃고 극소수 계층만이 소비를 늘리게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소비 감소가 불가피하다. 긍정적으로 본다고 해도, 소비 둔화로 완만한 성장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악은 무엇일까?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 분열로 이어지고,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늘어나는 것이다. 국가의 간섭 이 대중의 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은 다수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확률이 낮지만, 정치인이 소수의 편에 설 수도 있다. 자신들 역시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침체는 지금보다 훨씬 빈번해지고, 빈곤은 선진국에서도 심각한 화두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경기 조절을 책임지는 중앙은 행은 과거의 잣대에 매몰돼 통화정책을 시 행하고 있다. 실업률은 더 이상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작동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별다른 조처 없이 노동잉여 시대로 진입한다면, 다시 말해 통화정책의 근간을 바꾸지 않은 상태로 고실업 시대에 들어선다면, 중앙은 행은 어떤 수단으로 경기를 조절할 수 있을까?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동원한다 해도 실업 문제를 치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용시장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동화로 생산성이 증가해 실업 문제가 묻힐 수도 있다. 그러면 중앙은 행은 금리를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상황이 되면 빚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대중의 삶은 더욱 나락으로 빠질지 모른다.
 
중앙은행과 정부는 노동잉여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현재의 도구만으론 불충분하다. 무엇보다 자동화 시대를 막을 방법이 없다. 다가오는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설령 완전고용 상태라 하더라도 고용의 질을 생각해 통화정책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실업률이 아닌 다른 지표를 이용해 통화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대량실업 시대에 대 비한 정책을 선제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로봇세가 됐든 부유세가 됐든, 극소수에게 쏠린 부를 대중에게 재분배하는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노동잉여 시대는 곧 닥칠 우리 세대의 미래다. 피할 수도 없다. 준비를 게을리한다면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 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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