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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Cover Story] 유럽 경제가 돌아왔다- ② 호황의 딜레마에 빠진 독일
[95호] 2018년 03월 01일 (목) 크리스티안 라이어만 등 economyinsight@hani.co.kr
유례없는 경제 호황에 설비투자 과열 우려… 유로존에 묶여 경기 안정시킬 정책도 제한
 
2017년 독일 경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주요 경제지표가 모두 상승세를 탔다. 어쩌면 지나친 호황기였을 것이다. 일부 독일 경제학자들은 과열 현상을 경고했다.
 
크리스티안 라이어만 Christian Reiermann
얀 슐테 Jan Schulte <슈피겔> 기자
 
   
자동차 공장 노동자가 조립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독일 경제전문가들은 아직 물가 상승 압박이 없는 만큼 각 사업장의 임금 인상 여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REUTERS
 
2017년 12월31일 새해를 앞두고 축배를 드는 대다수 독일인은 마음껏 기뻐해도 되는 이유가 최소 두 가지는 있었다. 2017년을 되돌아보면 경제적 관점에서 아주 성공적인 해였고, 2018년에는 경제가 더욱 잘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2017년 크리스마스 직전 경제학자들은 너도나도 새해 경제전망치를 조정하기 바빴다. 그들은 전망치 상향 조정에 그치지 않고 장밋빛 미래를 경쟁하듯 쏟아냈다.
 
2018년 독일 경제성장률은 2.3%로 예측된다. 이는 불과 몇 개월 전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안정기에 접어든 국민경제에 이 정도 경제성장률은 엄청난 실적이다. 독일 기업과 노동자 모두 세계 경기 호황의 과실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유로존의 놀랄 만한 경제 회복은 독일 성장 동력의 견인차 구실을 한다.
 
2017년 가을 독일 총선 이후 새 정부 구성 협상에 나선 정당들에 독일 상황은 최상이다. 세수입, 고용률, 수출 모두 최고치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독일 경제는 앞으로도 꽃길만 걸을 것처럼 보인다. 모든 민간 경제연구소가 정부 산하 경제연구소와 마찬가지로 새해에는 독일 경제가 더욱 활황을 맞을 것으로 내다본다. 킬세계경제연구소(IfW)와 독일연방은행은 경제성장률이 2.5% 수준으로 가속화하고, 이는 여러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리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독일 정부의 세수입은 더욱 늘어나고, 취업자는 약 50만명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베를린독일경제연구소(DIW)의 최근 경기보고서 제목은 ‘호황기 독일’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구인난으로 사람을 찾지 못한 일자리가 100만 개 넘는다. 수공업 등 각종 산업의 주문량이 넘쳐나고, 일부 기업은 주문을 넣으려는 기업에 대기표를 배포한다. 수공업자는 납품 문의가 들어와도 더 이상 견적을 보내지 못할 정도다. 많은 업계 관계자가 “고객사들이 자사의 주문을 받지 않으면 앞으로 거래를 끊겠다고 위협한다”고 말할 정도다.
 
엇갈린 현 상황 평가
여러 긍정적 지표가 쏟아지지만 현 독일 경제 상황에 대한 경제학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호황’과 ‘붐’이라는 긍정적 용어와 더불어 ‘과열 양상’이라는 경고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하늘땅만큼 상이한 용어의 사용은 경제 전문가들이 독일의 현 경제 상황과 미래를 얼마나 다르게 판단하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실제 경제학계에선 두 진영이 팽팽히 맞선다. 한 진영은 현재의 경기 호황이 계속 이어질 거라는 낙관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독일 경제에 아직 어떤 문제의 징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호황이 몇 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낙관주의 진영의 대표 주자로 독일경제연구소와 독일연방은행이 있다.
 
독일 경제자문위원회와 킬세계경제연구소로 대표되는 독일 경제 회의론자 진영은 독일 경제가 안고 있는 위험을 자주 언급한다. 킬세계경제연구소는 몇 개월 전 ‘독일 경제가 과열 양상을 띤다’는 표현을 제일 먼저 썼다. 새로 구성될 독일 정부가 어느 진영의 손을 들어주냐에 따라 앞으로 몇 년간 완전히 다른 경제정책이 나올 것이다. 문제는 과연 어느 진영이 옳은가다. 과연 어느 진영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나?
 
국가 경제가 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뛰어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은 대표적인 과열 양상 징후다. 경제학자들은 이와 관련해 ‘잠재성장력’이라는 표현을 쓴다. 잠재성장력은 국가 경제가 보유한 자본과 경제 발전 수준, 생산성 수준, 노동력 유무, 사회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결정된다.
 
고령화 사회이자 고도로 발전한 산업국가인 독일은 기본적으로 온건한 경제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경제전문가들은 독일의 연간 잠재 경제성장률을 1.3%로 추정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실제 경제성장률은 1.3%를 상회하고 있다.
 
국가 경제가 경기 후퇴 시기를 겪은 뒤 산업 가동률이 떨어진 동안에는 실제 경제성장률이 잠재 경제성장률보다 높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호황기인 현재 독일에서 공장은 완전 가동 중이다. 독일 경제자문위원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2017년 국내총생산(GDP)이 잠재 경제성장률을 무려 0.6%포인트 웃돌았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건설업 가동률이 과도하게 높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모든 경제학자가 건설업 가동률이 몇 년간 계속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독일연방은행은 2019년 건설업 가동률이 적정 수준보다 3% 높을 거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산업별 초과 가동률은 장기적으로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기업들은 교대근무를 쉴 새 없이 돌리고 인력을 추가로 충원한다. 노동시장에 노동력이 바닥나 신규 인력 충원이 어려울 경우 기존 직원을 야근 형태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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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올 법한 모범적 이야기를 도르트문트의 무르트펠트 합성수지 공장에서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인력이 더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안드레아스 발라(49) 대표 뒤에 컴퓨터로 작동되는 밀링머신(절삭기계)이 검은 금속판을 깎고 있다.
 
직원 400명 규모의 이 중소기업은 음료병이나 식료품 가공용, 자동차 제작용 등으로 쓰이는 플라스틱을 생산한다. “현재 주문량이 넘쳐나 3교대 근무 도입까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다.” 발라 대표는 3교대 근무를 도입하면 하루 24시간 공장을 가동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도르트문트 실업률이 10%로 여전히 높은데도 전문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무르트펠트 합성수지는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전 매출액을 2012년에 회복했다. 이후 주문량이 계속 늘어났다. 수개월 전부터 공장설비는 100% 가동 중이다. “이렇게 주문량이 쏟아져 들어올 줄 예상치 못했다”고 발라 대표는 놀라워했다. 무르트펠트 합성수지는 대량생산 업체가 아니다. 고객사마다 특수 플라스틱 부품 생산을 발주하며, 특수 플라스틱 부품 단 하나가 필요한 고객사도 적지 않다.
 
보통 주문이 들어오면 14일 이내에 납품하지만, 지금은 주문량이 워낙 많아 납품까지 평균 일주일이 더 소요된다. 기존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면 장단기적으로 임금수준이 올라간다. 이에 따라 구매력이 올라가면 가격 상승을 견인한다. 전문용어로 이 현상을 ‘임금과 물가 상승 악순환’(Price/wage spiral·임금 인상이 생산성을 초과하면 물가 상승으로 연결되는 악순환 -편집자)이라 한다. 임금과 물가 상승 악순환은 경제 과열의 주요 특징으로 간주된다.
 
“독일 경제가 임금과 물가 상승 악순환의 덫에 걸린 징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르셀 프라처 독일경제연구소장이 힘줘 말했다. 독일 경제에 가격 상승 압박이나 우려할 만한 임금 상승 징후가 없다는 것이다. 노조는 지난 몇 년간 눈에 띄게 집단 움직임을 자제했다. 최근 몇 년 실질임금 상승률이 대폭 둔화됐지만 그 원인은 무엇보다 낮은 인플레이션에 있다. 임금이 3% 이상 오른 사업장이 거의 없고, 2017년 임금은 평균 2.3% 인상에 그쳤다. 보수적인 독일연방은행의 이코노미스트들조차 노조에 향후 몇 년간 임금협상에서 소극적 자세를 버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기업들, 생산 병목 제거
적극적으로 임금협상에 나서라는 메시지는 최근에야 반향을 얻는 듯하다. 독일금속노조(IG Metall)는 향후 협상에서 임금 6% 인상을 요구할 방침이다. 물가도 별다른 상승 압박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은 1.7%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완만한 상승세에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독일 인플레이션율이 유럽중앙은행 목표치인 2%에 도달하거나 이를 상회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임금과 물가 상승의 압박이 없는 건 유럽연합의 열린 국경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유럽연합 시민들이 독일로 일자리를 찾아 대거 몰려오고 있다. 노동력의 지속적 유입은 지금까지 노조의 임금 인상 협상력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동시에 세계화는 독일 제품이 경쟁에 노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소비자는 임의적 가격 상승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다수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고 생산량을 확대해 호황기의 전형적 현상인 생산량 병목현상을 해소하고 있다. 뮌헨에서 자동차로 1시간 떨어진 콜버모어에 있는 자동차 생산용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생산업체 로파(Rofa) 역시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압박을 받는 동시에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베엠베(BMW)와 재규어 등이 로파의 대표 고객 업체다. 로파의 볼프강 코차어 회장은 향후 5천만유로(약 678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로파의 연매출이 3억1500만유로(약 4271억원)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투자 규모다.
 
로파의 투자는 시급하다. 자동차 생산용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생산 설비는 쉼없이 돌아가고 있다. “1994년 이후 생산 설비가 완전 가동 중”이라고 코차어 회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식료품 재분류에 필요한 창고 관리 시스템 설비 제작 가동률은 120%다.
 
투자 과열은 새로운 기회와 함께 위험도 안고 있다. 모든 생산 설비가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공장이 준공과 동시에 바로 가동되는 것도 아니다. 호황기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위험이 커진다. 경제가 좋을 때는 영원히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해 투자가 부적절한 설비로 흘러가기 쉽다.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부적절한 할당’이라고 지칭한다. 잘못된 투자는 호황기에 늘어나는데, 투자의 적절 여부는 시간이 흐른 뒤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투자 증대는 ‘불황이 조만간 다가온다’는 조기 지표로는 적합하지 않다. “경기 과열이라고 계속 떠들어본들 잘못된 신호를 보낼 뿐”이라고 마르셀 프라처 독일경제연구소장이 말했다. 그는 경기 과열 지적이, 유럽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정책을 포기하도록 촉구하는 데 악용되는 것을 우려한다.
 
실제 독일연방은행은 통화동맹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처럼 딜레마에 빠져 있다. 유로존 전체 회원국이 독일처럼 호황을 보이기는커녕 정반대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유로존 회원국은 최근에야 불황과 성장 둔화를 극복했다. 이들 회원국으로선 통화정책을 너무 졸라매는 것은 시기상조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 체제의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 전체를 고려하기 때문에 기존 통화정책의 변화는 일단 없을 것이다. 뮌헨 IFO경제연구소의 경기전문가 티모 볼머스호이저는 “유럽중앙은행이 경기 호황의 파급효과를 줄이려 뭔가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유럽중앙은행은 독일과 달리 불황에 시달리는 대다수 유로존 회원국에 초점을 맞춰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생각에 잠긴 옌스 바이트만 독일연방은행 총재. REUTERS
 
새 정부의 과제
통화정책이 더 이상 경제의 핵심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면 국가만이 경제 과열을 막는 데 개입할 수 있다. 하지만 유로존에서 독일 정부는 통화정책이 없다. 활용할 수 있는 것은 금융정책뿐이다. 한 예로, 독일 정부는 은행에 자기자본비율을 늘리는 의무를 부과해 대출 한도를 제한할 수 있다.
 
볼머스호이저 경기전문가는 증세라는 다른 수단을 제안한다. “국가는 구매력과 수요를 억누르기 위해 증세를 단행할 수 있다.” 매년 재정 흑자 폭이 증가할 때는 이런 정책이 독일 국민을 납득시키기 힘들다. 증세를 단행하면 국가 흑자 폭이 더욱 늘어난다.
 
새로 구성될 독일 정부는 감세 단행 유혹도 물리쳐야 하지만, 재정을 다시 경제에 투입해도 안 된다. 두 가지 모두 경기를 추가 부양하는 구실을 할 것이다. 새 정부가 그렇지 않아도 과열 양상을 띠는 경기의 추가 부양을 피하려 한다면 흑자로 기존 국채를 상환해야 한다.
 
하지만 연정 구성을 협상 중인 기독교민주·기독교사회연합과 사회민주당의 두 거대 정당은 이런 논의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양대 정당은 추가 투자를 위해 상당한 돈을 마련하고, 동시에 경제와 소비자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감세는 현재 시점에서 경기에 순행하는 정책일 뿐이어서, 호황을 추가로 견인할 것”이라고 볼머스호이저는 경고한다.
 
독일 정치권은 현 상황에 맞지 않는 경제정책으로 경제 과열을 부채질할 수 있다. 호황의 부작용은 다음 불황기에 확연히 드러날 수 있다고 볼머스호이저는 내다본다. “독일 경제가 정상적 확장 경로에서 이탈하면 다음 경기 순환기에는 더 깊이 추락할 것이다.”
 
ⓒ Der Spiegel 2018년 1호
Wachstum mit Turbo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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