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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제작 급증해 대형 배우 ‘구인난’
[Culture & Biz] 드라마에서 멋진 남주인공이 사라진 까닭은?
[95호] 2018년 03월 01일 (목)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대박 드라마’가 드물어졌다. 주 시청자인 여성을 텔레비전 앞에 끌어모으는 남주인공의 흡인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군입대에 이어 드라마 제작 증가로 매력 있는 남주인공 구하기가 쉽지 않다. 주식 투자처럼 상당한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영화업계가 제작 편수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과 달리, 드라마업계는 제작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채권 투자처럼 수익과 손실의 폭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최근 제작이 크게 늘고 있는 드라마업계를 들여다 본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tvN 드라마 <도깨비> 제작발표회에서 공유(맨 오른쪽) 등 출연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선 흡인력 강한 남주인공의 부족 등으로 큰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드물다. 연합뉴스
 
드라마 ‘덕후’가 아니라 주중 한두 편 드라마를 골라 보는 ‘일반 시청자’인 내게 요즘 텔레비전 앞으로 끄는 드라마가 없는 것은 서운한 일이다. 최근 집중해서 본 드라마가 무엇이었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2017년 초 막을 내린 <도깨비>, 그해 6월과 7월 뜨겁게 열광했던 <비밀의 숲>에서 생각이 멈췄다. 한 해에 기억에 남는 드라마가 단 두 편이라는 이야기니,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다. 최근 종영한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흥미롭게 봤지만, 정통 드라마와는 조금 달라 범주를 구분해야 할 것이다.
 
왜 눈길을 끄는 드라마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남주인공에 다소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여성 시청자를 드라마로 이끄는 힘 가운데 70%는 남주인공 몫이라고 생각해왔다. 매력적인 여주인공도 중요하지만 매력적인 남주인공 없는 드라마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주 시청자인 여성에게 던지는 남자 배우의 ‘판타지’가 매주 드라마를 기다리게 하는 주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출연자에게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요즘 드라마 남주인공들의 힘이 다소 약해 보였다. 예전 같으면 주조연급이었을 배우가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드라마도 종종 보였다. 배우보다는 스토리가 중요하다지만, 매력 있는 배우가 캐릭터를 완성하는 법이다.
 
드라마 제작자들과의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제작자들도 비슷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남주인공 기근 현상의 원인으로 군입대 문제를 들었다. 예전에는 드라마에서 ‘뜬’ 배우들이 영화로 빠져 남자 배우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최근에는 김수현, 이민호 등 걸출한 스타들이 군에 입대하면서 이들을 대체할 배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제작 편수 조절하는 영화
맞는 분석이지만 조금 미흡해 보였다. 지금의 현상이 배우 몇 명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한 영화 투자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국내 영화들의 수익성과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암묵적으로 연간 제작 편수를 조절한다고 했다.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전체 용량이 있는데 무작정 양이 늘어나면 수익성은 물론 영화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숫자를 살펴보니 이해가 갔다. 한국 영화시장에서 해마다 만들어지는 상업영화는 대략 70~80편이다. 독립영화까지 포함하면 300~400편이지만, ‘수익성’을 따질 만한 상업영화는 이 정도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국내 상업영화 수익성을 분석할 때 쓰는 기준을 적용한 수치다. 영진위는 스크린을 100개 이상 확보하거나 제작비가 10억원 이상인 영화를 상업영화로 정의한다. 그 추이를 보면 2012년 70편, 2013년 63편, 2014년 67편, 2015년 70편, 2016년 82편으로 조금씩 늘고 있다. 영화 자본시장 규모나 영화관 수 증가와 비교해 증가폭은 크지 않다. 일정한 도를 넘지 않도록 업계가 스스로 노력한다는 증거다.
 
드라마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2017년 제작된 드라마는 모두 109편으로, 2016년의 89편을 크게 웃돈다. 2014년 102편, 2015년 98편, 2016년 89편으로 줄어들다 2017년 20편이나 늘었다. 전년 제작 편수의 20% 이상이 더 만들어진 셈이다. 한 해에 이 정도 늘어나면 제작 역량이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이런 폭발적 증가는 종합편성채널이 적극적으로 드라마를 제작, 방영한 데 따른 것이다. 2017년 방영된 드라마를 채널별로 분류하면 KBS 23편, MBC 29편, SBS 21편, tvN 18편, JTBC 12편 등이다. 지상파의 드라마 편수에 큰 차이가 없다고 가정할 때, 종편 등에서 방영한 30편에 2017년 증가분이 고스란히 포함됐을 수 있다.
 
종편에서 드라마가 늘어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방영 드라마가 연달아 히트하면서 채널 이미지 제고에 드라마가 유효하다는 점이 입증된 게 크다. 정부가 종편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우자 채널의 ‘종합’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드라마 편성을 늘린 탓도 있다. 그 바람에 2018년에는 다시 20편 이상 늘어난 약 130편의 드라마가 제작, 방영될 전망이다. 어떤 시장에서든 공급량이 갑자기 늘어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나는 상품을 만들 원재료 조달 문제이고, 또 하나는 시장의 수요 문제이다. 첫 번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상품의 질이 떨어진다. 두 번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경쟁이 격화돼 가격이 떨어지다 마침내 시장에서 퇴출된다.
 
   
서울 시내 영화관에 설치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홍보물. 영화업계가 국내 영화들의 수익성과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연간 제작 편수를 조절함으로써 ‘천만 관객’이 든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드라마 증가로 배우·스태프 품귀
영화산업에선 첫 번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온 측면이 강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요의 한계가 이미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의 국내시장은 포화상태에 직면한 지 오래다. 한국 사람들의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는 4.2회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영화 점유율도 50%를 웃돌아 미국을 제외하고는 자국 영화 비율이 가장 높다. 하지만 인구가 무한정 늘어날 수 없기에 국내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국외시장을 확장해야 하는데, 안타깝지만 한류 열풍에도 한국 영화의 국외 판매 실적은 그리 좋지 않다.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으나, 국내시장에서 영화산업의 영향력과 비교할 때 수출액이 크지 않다. 영화업계는 국내시장에서 수익률을 최대화하는 방안에 집중해왔다. ‘천만 관객’ 영화가 한 해 한두 편은 반드시 탄생하도록 집중력을 발휘하면서도, 너무 많은 영화가 좌판에 깔리지 않도록 조절해온 것이다.
 
드라마 산업의 ‘계산법’은 다르다. 흔히 영화를 주식 투자에, 드라마를 채권 투자에 비유한다. 영화는 관객이 많이 들면 수익도 비례해 늘어나,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보면 제작비 수준에 못 미치는 적자 영화가 훨씬 많다. 2016년 제작된 상업영화 82편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19편(23%) 정도다. 나머지 영화는 모두 적자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전체 평균 수익률은 8.8%를 기록했다. 크게 성공한 영화의 수익으로 적자를 메웠다.
 
반면 드라마는 일단 편성이 결정되면 제작비 회수의 위험이 대부분 사라진다. 방영 뒤 시청률이 올라가면 광고가 더 많이 붙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방송사의 수익이다. 투자사로선 초기 제작비 일부를 투자하면, 시청률이 낮더라도 방영권료로 제작비를 거의 회수할 수 있다. 시청률이 올라가면 드라마에 삽입한 간접광고, 주문형비디오(VOD)나 케이블방송 판매, 수출 등으로 추가 수익도 얻을 수 있다.
 
영화보다 수익률이 낮지만 손실 위험은 더 낮기 때문에 채권 투자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런 속성으로 영화에는 주로 벤처캐피털이 투자해온 반면, 드라마에는 은행권 등이 제작비 대출과 투자를 해왔다. 매번 성공하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영화는 벤처캐피털과 궁합이 잘 맞는다. 높은 수익률보다 안정적 자금 회수가 더 중요한 은행권과는 드라마가 더 맞아떨어진다.
 
드라마는 일단 채널 편성만 되면 최소 수익이 확정되기 때문에, 드라마 품질 유지를 위해 제작 편수를 조절할 필요성이 적다. 시청률은 부가 수익의 크기를 좌우하는 문제일 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방송사들이 원하는 만큼 제작 편수를 늘리는 것이 당연한 생리다.
 
이처럼 수요에 의해 공급이 탄력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분야에서는 단기적으로 원재료 조달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의 질적 성장으로 시청자의 눈높이가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이를 맞춰줄 작가와 배우, 스태프의 규모는 제한돼 있다. 시장의 성장에 따라 배우와 스태프의 공급도 늘어나겠지만, 1년에 20% 이상씩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선 공급이 따라가기 어렵다.
 
국외시장 확장도 한몫
더욱이 국외시장까지 확장돼 공급 문제가 더 부각될 수 있다. 최근 넷플릭스 등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와 VOD를 통해 국외에서 한국 드라마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직접 한국 드라마를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드라마 제작비의 10분의 1 수준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한국 드라마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존재다.
 
넷플릭스를 통한 콘텐츠 무역 효과에 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실제 다양한 국가의 콘텐츠 수출을 더 확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영화 수출 방식과 비교할 때, 넷플릭스가 영미권 외 국가의 콘텐츠를 더 많은 나라에 배포한다는 것이다. 다만 독점 계약 형식이 많은 넷플릭스의 정책 때문에 최우수 콘텐츠가 유통되는 비율은 떨어졌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국외에서 1등급으로 분류되지 않으므로 넷플릭스를 통한 수출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콘텐츠 산업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이제껏 수요자 중심으로만 사고해왔다. 최근 양상은 어느덧 공급 문제도 생각할 만큼 콘텐츠 산업이 성장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물론 이 기회에 이전과는 다른 신선한 드라마를 선보일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하지만 양적 성장에 맞춘 질적 재정비도 필요하다. 최근 MBC가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해 드라마 방영 시간을 70분에서 60분으로 줄이고 드라마 제작 편수도 줄이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반갑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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