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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둔감 파생상품 시장파괴 주범
[Finance] 갈수록 잦은 금융시장의 ‘발작’ 증상
[95호] 2018년 03월 01일 (목) 윤석천 maporiver@gmail.com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란 단어가 유행이다. 섬광처럼 급작스러운 시장 붕괴를 뜻한다. 시장의 상승 분위기가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을 때 느닷없이 찾아오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돌발적인 시장 붕괴는 더 이상 이례적인 이벤트가 아니다. 주가가 하루에 3~4% 오르내리는 일이 잦아졌다. 2000년 이후부터 주가 변동폭이 4%를 넘는 날이 40년 전에 비해 6배 이상 흔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갈수록 잦은 금융시장의 발작 증상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를 짚어본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2018년 2월5일 다우지수가 한때 6% 이상 폭락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식중개인이 주가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여러 파생상품이 나와 주가 변동폭이 4%를 넘는 날이 40년 전보다 6배 이상 흔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REUTERS
 
미국 이론 물리학자 마크 뷰캐넌은 <내일의 경제>에서 ‘플래시 크래시’의 증가가 정보기술(IT) 발달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옳은 얘기다. 2018년 2월5일(현지시각) 미국 주식시장의 플래시 크래시를 촉발한 것 역시 알고리즘 기반의 자동화된 매매시스템이다.
 
시스템트레이딩이란 매수·매도 거래 주문을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하는 것을 말한다. 시스템트레이딩 기계에 특정 규칙(알고리즘)을 적용해 주문하도록 하는 것이 알고리즘트레이딩이다. 기계는 머뭇거림, 후회 같은 인간의 감정이 없다. 미리 입력된 조건이 충족되면 무조건 사고판다. 예를 들어 특정 이동 평균선이 무너지면 매도 주문을 내는 방식이다. 인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주저할 수 있다. 지표는 팔라는 신호를 보내도 과감히 실행하지 못하는 게 인간의 심리다. 그러나 기계는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는다. 특정 조건에 이르면 사전에 입력된 명령을 수행한다.
 
알고리즘은 사람이 만들어낸다. 사람의 생각은 대부분 비슷하다. 결국 알고리즘은 비슷한 조건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기 마련이다. 만든 사람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겠지만 그 편차는 크지 않다. 그래서 알고리즘 매도는 또 다른 알고리즘 매도를 연속적으로 불러온다. 그 결과 시장은 투매로 폭락할 수 있다. 알고리즘 매매가 활성화하면서 시장의 급변동은 불가피한 일이 되었다. 최근 미국 증시의 급락세는 기계들이 점령한 세상의 결과물이다. 이는 기술적 분석이다.
 
사람들은 조용하던 시장이 왜 이토록 큰 변동성에 휩싸이는지 그 이유의 기본적 분석도 내놓고 있다. 채권시장의 장기금리와 임금 상승 기조가 기준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는 불안감을 낳아 변동성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미국 월가 전문가들은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이 예상보다 일찍 3%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세수 부족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채권 금리가 오를 거라고 보는 것이다. 동시에 일본과 유럽중앙은행은 이미 자산 매입 축소에 나섰다. 영국 중앙은행도 금리 인상을 강하게 시사한다. 국제시장에서 금리 인상 기조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시중의 유동성이 줄어든다는 소리다. 자산시장엔 분명 악재이니 틀린 분석은 아니다.
 
시장 붕괴의 진짜 원인
이런 기술적 혹은 기본적(펀더멘털) 분석만으로 시장의 변동성 확대를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빠진 게 있다. 좀더 자세히 현재의 국면을 들여다보면 붕괴는 필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곡되고 위험한, 새로운 투자 상품과 전략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레버리지화된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의 폭발적인 성장세, 그리고 거기에 결합한 이름도 생소한 각종 전략이 그것이다. 이들 상품과 전략은 도박판에서도 볼 수 없었던 파생상품 중의 파생상품이다. 이들이 시장구조를 파괴하고 있다.
 
상장지수펀드와 상장지수증권은 둘 다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으로 거래소에서 매매할 수 있다. 상장지수펀드는 자산운용사가 지수에 포함된 자산을 사고판다. 미국 시장의 상장 지수펀드 규모는 3조달러(약 3254조원)로 추산된다. 미국은 원금의 3배까지 투자하는 레버리지 ETF를 허용하고 있다. 2017년 말 기준으로는 3조4400억달러에 이른다. 금융위기 전인 2007년과 비교해 약 6배 커진 규모다. 3배까지 레버리지 투자를 한다면 기초자산 가격이 34% 정도 하락할 때 고객의 증거금이 모자라는 원금 손실 상황이 발생한다. 원금 손실이 생기면 자산운용사는 자사의 손실을 막기 위해 고객 자산을 임의로 파는 반대매매를 한다. 시장은 점점 하락세에 접어들고 추가적인 고객 이탈이 가시화한다. 자산운용사는 이론적으로 그만큼의 물량을 더 팔아야 한다. 매도세가 연쇄반응을 불러오면서 폭락을 부르는 구조다. 더욱이 일부 상장지수펀드는 규모가 작은 하이일드채권(고수익 위험 채권)이나 이머징마켓(신흥시장) 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한다. 이들 펀드 고객의 이탈은 시장의 붕괴를 부를 수 있다. 시장이 작아 소규모 매도세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상장지수증권이다. 이 증권의 주요 특징은 실물거래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수익을 보장하는 구조다. 설사 기초자산의 가치가 0으로 수렴해도 펀드 가입 투자자는 어느 정도 돌려받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보증한 증권사의 여력이다. 증권사가 고객 돈을 돌려줄 만큼 충분한 여력이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한마디로, 증권사의 보증만으로 고객의 수익을 보장한다. 게다가 기초자산에 반드시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문제다. 실물거래가 없을 수도 있어 고객의 손해가 곧바로 증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다. 역으로, 고객의 수익이 커질수록 증권사는 상환 부담이 커지게 된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폰지 사기’와 유사하다. 카지노가 따로 없다.
 
지수 추종 상품은 너무 다양하다. ‘공포 지수’라는 시카고옵션거래소의 변동성지수(VIX)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까지 있다. 이 지수가 하락할수록 이익을 내는 ‘숏 VIX 인버스 ETN’ 등이 2018년 2월5일 폭락 장세의 주범으로 인식된다. 이날 폭락장에서 VIX가 37까지 치솟자 하루 만에 돈을 모두 날린 ETN과 ETF가 나타났다. 두세 배 레버리지를 사용했다가 투자금을 거의 잃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노무라증권과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의 ‘숏 VIX 인버스 ETN’이 청산됐다.
 
다행히 이번에 청산된 노무라 등의 상품 규모는 30억달러(약 3조2300억원) 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의 변동성을 기반으로 설계된 상품의 규모는 1조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VIX 관련 상품은 빙산의 일각이다. 수많은 변동성 상품이 있다. 시장이 폭락한다면 이들 상품은 상환 위험에 노출될 게 확실하다. 투자자들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미국 달러 지폐들. 원금의 3배까지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한 미국의 상장지수펀드 규모는 3조달러(약 3254조원)로 추산된다. 금융위기 전인 2007년의 6배 정도다. REUTERS
 
위기가 되풀이되는 이유
이른바 ‘정크본드’ 시장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2018〜2019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고수익 채권의 액수는 상당하다. 이들은 차환(이미 발행된 채권을 새 채권으로 상환하는 것) 방식으로 만기를 연장할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높은 금리를 지급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싸게 빌렸던 돈의 무게는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를 맞아 점점 무거워진다. 물론 고율의 이자를 부담할 수 있는 기업도 있겠지만, 많은 기업이 이자 부담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고통은 필연이다. 고수익 채권 시장에 투자한 ETF와 ETN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주식시장만이 아니라 채권시장까지 포함한 금융시장 전반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인간은 잘 잊는다. 어쩌면 이는 축복일 수 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평생 가져가야 한다면 누구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불행을 종종 잉태한다. 과거를 너무 잘 잊기에 인간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다. 금융 거품이나 위기는 이미 여러 차례 발생했다. 붕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을 기억한다면 현재 같은 무분별한 차입거래나 신종 파생상품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의 탐욕과 무지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이른바 전문가들이 활개치고 있다. 수학, 물리학, 컴퓨터 지식으로 무장한 세력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이론적으로 위험을 제거한 상품과 전략을 쏟아낸다. 하지만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것은 없다. 본질적으로 금융시장의 이익이란 누군가의 손해를 전제하는 것이다. 모두가 이익을 보는 시장은 환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사람들까지도 “시장이 카지노와 같다”고 말한다. 미친 파생상품들이 세계 최대 금융시장을 유린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금융 규제 완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시장의 파국이 불가피하다. 생소한 이름의 ETF와 ETN이 판치고 있다. 그래도 시장의 전망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플래시 크래시에도 이런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다수다. 모두가 이익을 내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지만 이들의 꿈은 장밋빛이다. 상승장의 제일 큰 피해자는 언제나 그렇듯 개인이 될 수밖에 없다.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수많은 개미들은 전문가들이 보여주는 화사한 미래에 자신의 소중한 자산을 걸었다. 하지만 그 밝은 미래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내일의 시장이 두려운 이유다. 그런데도 한국의 금융시장은 이를 따라가고 있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 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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