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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도 ‘중동의 봄’은 오는가
[세계는 지금] 내우외환에 흔들리는 이란
[95호] 2018년 03월 01일 (목) 김욱진 kimwookjin@kotra.or.kr
이란이 정치·사회적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자간 핵합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경제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물론 최고 종교지도자까지 겨냥한 항의시위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지진과 폭설 피해는 이란 사회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김욱진 KOTRA 이란 테헤란무역관 과장
 
   
자유의여신상을 악마로 조롱하는 그림이 그려진 이란의 테헤란 거리를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경제제재 여파로 이란은 반미주의가 극에 달했다. REUTERS
 
이란 새해는 매년 3월21일 시작한다. 이란은 이슬람력을 양력으로 변형한 잘랄리(Jalali) 달력을 사용한다. 흔히 이란력이라 하는 잘랄리력은 이슬람력과 마찬가지로 선지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서기 622년을 첫해로 삼는다. 1년이 354일인 이슬람력과 달리 이란력은 한 해가 365일이다. 따라서 서기 2017년은 이란력으로 1396년이 된다. 서력에서 621년을 빼면 이란력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이란은 자국 사정에 맞게 날짜 체계를 구성했다. 춘분을 기준으로 해가 바뀌어 서력 3월21일이 이란력 1월1일이 된다. 즉, 2018년 3월21일은 이란력으로 1397년 1월1일이다. 이란력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정확히 3개월씩 구분된다. 이란인은 시간 흐름에 따라 계절 변화를 인식한다. 이란은 새해가 돼야 봄이 온다고 생각한다. 이란인은 새해를 노루즈(Nouruz)라고 한다. 우리말로 ‘새날’이란 뜻이다. 노루즈는 이란 새해를 기념하는 명절인 동시에 페르시아 문화권의 봄맞이 의식을 하는 날이다.
 
현재 봄을 앞둔 이란은 어수선하다. 나라 안팎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 이란의 대외관계는 미국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뒤 이란은 다시 ‘악의 축’과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타결된 이란 핵합의부터 위협받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 핵협상을 “역사상 최악”이라고 당선 전부터 말했다. 지금도 기본 태도에는 변화가 없다. 트럼프 행정부에 이란 핵합의는 분명 재고해야 할 대상이다.
 
이란 핵협상의 결과물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다. 이 합의안에 따라 이란은 가동 중인 핵 프로그램을 중단했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도 받았다. 이란의 핵개발 욕망을 묶어두는 대가로 서방은 오랫동안 지속된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2016년 1월의 일이다. 당시 빗장이 풀린 이란에 수많은 국가와 기업이 몰려들었다. 한국도 1962년 수교 이래 처음 대통령이 방문했다. 그만큼 이란은 뜨거웠고, 몸값이 하루가 다르게 올랐다.
 
종교국가와 반미주의
2016년 11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란 국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재가 풀려 경기가 회복하길 기대한 사람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중도·실용 노선으로 분류되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트럼프를 어떻게 상대할지 회의적 시각도 있었지만, 이란 유권자는 2017년 5월 대선에서 로하니에게 다시 힘을 실어줬다.
 
핵합의는 로하니 행정부 1기의 가장 큰 업적이다. 로하니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이마저 위협받게 됐다. 2017년 10월 트럼프는 대통령 권한으로 JCPOA 인증을 거부했다. 미국 공화당은 핵협상이 타결되기 직전, 대통령이 이란의 JCPOA 준수 여부를 90일마다 인증해 의회에 보고하도록 강제했다. 바로 ‘이란 핵합의 검증법’이다.
 
이란은 반발했다. 이란 핵협상은 다자합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 5개 나라와 독일이 이란의 상대였다. 다자합의인 JCPOA를 미국이 독자적으로 좌지우지할 권한은 없다. 그럼에도 2018년 1월 중순 트럼프는 인증 거부 카드에서 더 나아가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의회를 압박했다. 2018년 5월 중순까지 120일의 시간을 줄테니 이란 핵합의안 수정 방안을 찾으라는 뜻이다.
 
미국 의회는 단기간에 이란을 비롯한 협상 당사국을 설득해야 한다. 이란이 합의를 어겼다는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재협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란이 전향적으로 재협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합의안 수정은 불가능해 보인다.
 
재협상이 무산되면 미국은 이란 핵협정 주체에서 탈퇴할지 본격 고민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란을 다시 제재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미국이 합의안에 서명한 이상 독자적으로 제재할 수는 없다. JCPOA는 합의 당사국이 독자 제재를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란 내부 정세는 흔들리고 있다. 2017년 세밑, 이란 전역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종교도시 마슈하드에서 시작한 저항은 전국으로 번졌다. 처음에는 강경파 정치인들이 기획한 관제설이 돌았다. 온건 성향인 로하니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보수파가 현 정부의 경기 침체를 이슈로 들고나왔다는 분석이었다. ‘강한 이란’을 추구하는 세력은 로하니의 핵합의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얼어붙은 민심을 이용해 현 정부의 경제 실정을 부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시위가 방방곡곡으로 퍼지며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동안 쌓인 이란 국민의 불만이 일시에 표출됐다. 수도 테헤란에서는 대학생이 중심이 됐다. 여성은 우선 히잡 착용 의무부터 없애라고 요구했다. 2014년 한 조사에서 이란 여성의 49.2%는 히잡 착용이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답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이란 사회에서 히잡을 차별의 도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에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희망이 시위 흐름을 타고 밖으로 분출되고 있다.
 
히잡 폐지 주장은 약과다. 시위대가 제기한 문제는 날로 수위가 높아졌다. 성난 군중 일부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사진을 찢는 모습까지 카메라에 잡혔다. 이란에서는 철저히 금기인 일이다. 이란은 1979년 혁명으로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했다. 정교일치 체제로 알려졌지만 이슬람법 학자의 통치를 지향한다. 따라서 4년마다 국민선거로 뽑는 대통령과 별개로 종신직 최고 종교지도자가 있다. 초대 최고지도자는 이슬람혁명을 이끈 호메이니였고, 1989년부터 하메네이가 바통을 이어받아 2대 직위를 수행하고 있다. 국가원수인 최고지도자는 대통령을 인준하고 해임하는 등 절대적 국가 운영 권한이 있다.
 
시위대의 저항이 대통령을 넘어 최고지도자까지 향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란 체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불안정이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슬람 혁명 전까지 이란은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했다. 당시 왕인 팔레비는 이웃나라 터키의 세속주의를 모방하며 유럽 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이는 데 앞장섰다. 적극적으로 친미 기조를 유지했고, 이때 미국에 이란은 ‘중동의 헌병’이자 ‘페르시아만의 경찰’이었다. 하지만 혁명을 계기로 완전히 사정이 바뀐다. 이란은 하루아침에 종교국가가 됐다. 현재 반미주의는 이란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상징적 단어다.
 
   
2017년 11월 이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다친 소년이 치료를 받고 있다. 각종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란은 폭설과 지진 등 자연재해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됐다. REUTERS
 
흔들리는 민심
많은 국민이 혁명 전 이란에 향수를 품고 있다. 이란은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의 자원 대국이다. 대외관계가 악화되고 경제제재를 받으며 살림살이는 계속 팍팍해졌다. 시위대는 “무엇보다 이제 좀 잘살고 싶다”고 소리쳤다. 어떤 이는 “잘살려면 현재 이슬람공화국 체제로는 불가능하다”고 외쳤다.
 
체제를 비판하는 볼멘소리가 분출하자 이란 정부는 대규모 공권력을 동원했다. 이란 정부의 가장 큰 목표는 이슬람공화국 체제 유지다. 통치 방식에 균열을 내려는 움직임에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당국이 혁명수비대까지 동원해 시위 진압에 나서자 며칠 만에 저항은 일단락됐다.
 
이란이 맞닥뜨린 또 다른 과제는 자연재해다. 지리적 특성으로 이란에는 지진이 잦다. 2017년 11월 서부 이라크 접경 지역에서 진도 7.3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다. 500명 이상이 죽고, 부상자도 8천 명이 넘었다. 한 달 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무렵, 테헤란 근교에서도 지진이 일어났다. 1천만 명 넘게 사는 수도권까지 지진의 위협이 다가오자 주민들은 겁에 질렸다. 당국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기 힘들다.
 
2018년 1월 말에는 70cm 넘는 눈이 내려 테헤란이 마비됐다. 시민들은 차를 몰고 나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공항에선 비행기가 뜨지 못해 승객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예상치 못한 폭설로 도시가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재난에 대비한 사회 인프라와 시스템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눈은 녹았고 지진은 잠잠해졌으며 시위는 가라앉았다. 트럼프의 핵합의 흔들기도 주춤한 듯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이란의 고질적 문제는 여전하다. 실물경제는 나아지지 않고 현지 화폐인 리알화는 연일 약세다. 최근 일부 환전소는 외화를 사지도 팔지도 않겠다며 환율 고시마저 중단했다. 정부가 발표한 2017년 실업률은 11%대지만 사람들은 통계를 믿지 않는다. 희망을 잃은 이란 청년들은 대개 국외 유학과 이민을 꿈꾼다.
 
이란 정부는 내부 균열을 막을 때 주로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전략을 쓴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조직위원회는 이란 선수들에게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지급하지 않았다. 유엔 제재결의안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란 관영언론은 한결같이 삼성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문화적 자부심으로 충만한 이란인들은 자국 정체성이 훼손되는 사건에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노루즈는 이란 최대 명절이자 연휴다. 이란 사람들은 노루즈에 봄을 맞으러 2주 가까이 긴 휴가를 떠난다. 이란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도 이 기간만큼은 멈출 것이다. 잘랄리력 1397년이 되면 과연 이란 정세는 나아질까. 계절 변화를 맞이한 사람들처럼 이란 사회에도 따뜻한 봄볕이 깃들기를 바란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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