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커버스토리 > 2018년 | 이슈
     
억만장자 지름길? 제2의 닷컴 거품?
[Cover Story] 암호화폐 열풍, 그 현장을 가다- ① 금융권력 투쟁의 서막
[94호] 2018년 02월 01일 (목) 마르틴 헤세 등 economyinsight@hani.co.kr
“비트코인 가치 100만달러” 장밋빛 전망 우후죽순... 금융 기득권 “사회적 효용 가치 없다”
 
암호화폐가 가격 폭등으로 전세계 최고 인기상품으로 등극했다. 대안 화폐에 대한 가치 투자든, 단기 차액을 노린 투기든, 한 방을 노린 도박이든 이제 암호화폐는 외면할 수 없는 존재다. 각국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암호화폐에 얼씬도 말라”고 경고 수위를 높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암호화폐의 실루엣이 그만큼 거대해졌다는 증거다. 암호화폐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암호화폐의 원천기술인 블록체인을 지배하는 자가 마지막 승자가 될 것이다.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마르셀 로젠바흐 Marcel Rosenbach
아네 자이트 Anne Seith
빌란트 바그너 Wieland Wagner <슈피겔> 기자
 
   
미니 피규어로 제작된 광부가 곡괭이로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모습. 비트코인은 최대 2100만 개로 발행이 제한돼 있다. 이런 희소성이 비트코인 값을 높인다. REUTERS
 
앙증맞은 고양이(키티) 열풍만큼 비트코인 광풍을 제대로 설명해줄 게 또 있을까? 형형색색 고양이들은 둥글둥글하고 특이하게 생겼다. 고양이마다 생김새가 다르다. 고양이를 만드는 알고리즘 때문이다. 웃기게 생긴 고양이들은 인터넷에서 수집이 가능하다. 교배로 새끼를 낳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수집한 고양이는 3마리가 된다.
 
‘크립토키티’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축구 선수 사진 수집의 현대적 변형처럼 들리지만 엄연히 차이가 있다. 2017년 12월 초 크립토키티(Cryptokitties.io) 거래 플랫폼에서 한 크립토키티는 10만달러(약 1억600만원) 이상에 거래됐다. 반면 인기 없는 고양이들은 10달러(약 1만600원) 미만으로도 구입할 수 있다. 달러나 유로 같은 법정화폐로는 크립토키티를 살 수 없다. 고양이를 사려면 ‘이더’(Ether)라는 약칭의 암호화폐 이더리움이 필요하다.
 
암호화폐 이더는 최근 크립토키티 분양 열풍이 불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17년 초 8유로(약 1만200원) 수준이던 1이더는 2017년 여름에 잠시 300유로(약 38만5천원)를 넘었다. 2017년 12월21일 목요일에는 600유로(약 77만원) 이상으로 뛰었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크립토키티 열풍은 최근 암호화폐를 둘러싼 광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암호화폐란 개념은 암호기술을 토대로 하며 오로지 가상세계에만 존재해 붙여졌다. 지난 몇 주 동안 그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암호화폐 광풍의 핵심에 독일 토이토부르크 숲 인근 소도시 헤르포르트에 소재한 상장기업이 있다. 올리버 플라스켐퍼(45)는 비트코인 거래 플랫폼(www.bitcoin.de)에서 모든 암호화폐의 어머니이자 현재 가장 핫한 ‘비트코인’이라는 동명의 컴퓨터 화폐를 거래한다. 플라스켐퍼는 독일 유일의 비트코인 거래소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비트코인 광풍의 수혜자이자 피해자다. 현재 직원 10명을 둔 그는 “최근 하루 만에 1만 명이 새로 가입했다”고 전했다. 신입 사원을 시급히 채용 중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플라스켐퍼의 사업이, 그래도 앙증맞기라도 한 크립토키티보다 더 기괴할 수 있다. 플라스켐퍼는 크립토키티가 아닌 부호와 문자로 이뤄진 숫자들의 나열로 거래한다. 그가 거래하는 숫자들은 점점 비싼 몸이 되고 있다. 플라스켐퍼 거래소뿐 아니라 전세계 비트코인 거래소가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일부 거래소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일시적으로 2만달러(약 2100만원)를 넘었다가 곧장 수천달러 폭락했다.
 
얼마 전만 해도 암호화폐는 기껏 젊은 기술광이나 타고난 게이머, 금융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최대한 비밀스럽게 거래하려는 범죄집단을 위한 것으로 치부됐다. 이런 어두운 이미지가 비트코인에 어울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비트코인의 토대는 필명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로 알려진 1인 또는 2인 이상의 발명가가 2008년 작성한 9쪽짜리 기획안이다. 비트코인 기획안은 혁신적 기술 콘셉트와 획기적이면서도 파괴적인 힘을 가진 돈에 대한 철학을 토대로 삼았다.
 
2009년 1월 이런 콘셉트를 바탕으로 암호화폐의 ‘최초 블록’(Genesis Block)과 함께 비트코인 50개가 탄생했다. 비트코인 발명가들은 2009년 1월3일치 영국 일간 <타임스> 지면을 장식했다. 이 기사는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영국의 제2차 은행 구제금융에 대한 것이었다.
 
기사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비트코인은 은행, 중앙은행, 투자은행 등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중계기관이 필요 없는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기존 금융 시스템이 직면한 최악의 신뢰 위기 한복판에서 나카모토를 위시한 발명가들이 금융 시스템의 대체재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신뢰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했다고 비트코인 기획안에 적었다. 암호는 금융거래에서 금융기관을 불필요하게 만들며, 비트코인은 금융기관보다 더 신속하고 효율적이며 안전하다고도 진단했다.
 
   
 
기득권의 저항
금융계 기득권층은 오랫동안 비트코인 콘셉트를 과소평가하며 비웃었다. 신뢰라고? 무정부주의 암호광들의 미친 짓을 신뢰한다고? 암호화폐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여전히 부인할 수 없지만, 금융계의 오만은 어느덧 봄날 눈 녹듯 사라졌다.
 
비트코인 가치가 2017년 봄 순금의 가치를 넘어선 뒤 비트코인을 비웃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국제 금융위기 때 국가와 중앙은행에서 화폐 독점권을 빼앗겠다며 탄생한 콘셉트에서 무시할 수 없는 틈새시장이 형성됐고, 이 틈새시장은 이미 오래전 비트코인을 훌쩍 넘어섰다.
 
비트코인의 그늘에서 라이트코인, 아이오타, 그리고 두 번째 중요한 암호화폐로 떠오른 이더리움이 붐을 일으켰다. 과열 양상을 띠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이제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암호화폐 가격이 더 상승 곡선을 그릴 수도, 절대적 손실을 입을 때까지 급작스러운 하락 곡선을 그릴 수도 있다.
 
직접 비트코인 거래소를 운영하며 현재 ‘암호 억만장자’로 통하는 미국의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 같은 큰손들은 암호화폐의 가치가 계속 10배 또는 20배 뛸 것으로 기대한다. 비트코인 가치가 100만달러에 이른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핑크빛 전망은 윙클보스 형제처럼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으로 크게 이득을 보거나 비트코인의 수요 상승을 원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비트코인 반대파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독일의 연방은행, 연방금융감독원(Bafin), 도이체방크는 개인투자자에게 비트코인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이자벨 슈나벨 경제학 교수는 “비트코인의 가격 폭락은 전체 금융 시스템에 해를 입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조지프 스티글리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암호화폐는 사회적 효용 가치가 없고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암호화폐 반대파가 모두 중립적 견해를 보이는 건 아니다. 이들에게도 금융권력과 해석의 특권, 그리고 비즈니스가 걸려 있다.
 
암호화폐에 과도한 부담을 느끼는 전세계 정부들은 중구난방식 대처에 급급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특성상 거래를 금지하기가 쉽지 않다. 비트코인이 국가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독립 의지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기존 금융계 기득권은 자신들이 공개적으로 싹을 자르려는 암호화폐에 대처할 방안을 모색 중이다.
 
최근 미국 파생상품거래소 두 곳에서 암호화폐 선물거래가 시작되면서 투자자들이 암호화폐의 가격 상승과 하락에 베팅할 수 있게 됐다. 독일증권거래소도 암호화폐의 선물거래소 상장을 검토 중인데, 장외거래소 플랫폼인 360T를 통한 암호화폐의 직접 거래도 시연하고 있다.
 
중앙은행들 역시 비트코인에 대응할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일본 금융감독위원회는 2017년 봄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허가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페드코인(Fedcoin)을 실험했고, 스웨덴 중앙은행은 ‘E크로나’(E-Krona)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국 화폐의 발행과 조정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입장을 조율해 대응하려 한다. 2018년 상반기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국제결제은행이 암호화폐에 대처할 기획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화폐발행과 화폐정책의 독점권을 누려온 국가기관과 암호화폐의 무정부 세계가 권력투쟁 양상을 빚고 있다. 암호화폐는 엄청난 성장에도 여전히 난쟁이처럼 보이고, 시가총액은 10조달러(약1665조원)가 채 되지 않는다. 애플 한 회사의 시가총액이 전체 암호화폐의 시가총액보다 많다. 그럼에도 암호화폐는 이미 임계치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이 대폭락하더라도 암호화폐는 간단히 사라질 것이 아니다.
 
암호화폐의 토대가 되는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은 글로벌 금융업계에서 혁신을 촉발했다. 블록체인은 수많은 컴퓨터에서 동시에 작업하는 데이터뱅크를 뜻한다. 데이터뱅크에는 개별 거래가 아닌 서로 연계된 거래들이 블록으로 저장돼 블록체인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들은 블록체인의 수많은 활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모든 형태의 서류와 전체 공공 원장을 데이터뱅크에 저장할 수 있다. 스웨덴과 온두라스는 블록체인으로 위조가 불가능한 디지털 토지등기부를 만들고 있다. 이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사업모델들이 생겨나고 있다. 암호화폐를 인터넷이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비견할 역사적 발명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의 비트코인 열풍을 가늠하려면 뮌헨 막스포어슈타트 지구의 뒷골목이 적당하다. 인터넷은행 피도어(Fidor)의 마티아스 크뢰너(52) 대표의 사무실이 여기에 있다. 그는 3년 전부터 올리버 플라스켐퍼의 거래소와 협력하고 있다.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가 문어발식 확장을 하지 않는 이상, 독일 국내에서 암호화폐에 관한 한 인터넷은행 피도어와 플라스켐퍼의 거래소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됐다.
 
   
▲ 그림을 누르면 새 창에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열풍에 휩싸인 독일
“우리는 지금 비트코인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고객이 물밀듯 들어온다.” 피도어 고객들은 비트코인 거래소에서 우대를 받는다. 특히 고속 거래로 암호화폐를 신속히 매입할 수 있다.
 
크뢰너는 “어느 금요일 저녁 한 여성 고객에게 직접 피도어 사무실 문을 열어준 적 있다”고 말한다. 피도어 인터넷은행에는 지점 같은 구시대 유물이 없다. 1941년생인 여성 고객이 바로 계좌를 개설하려 했다. “왜 그리 급히 계좌를 개설하려고 하세요?” 크뢰너가 물었다. 여성 고객은 오버바이에른에 있는 주택을 이제 막 팔았는데, 그 돈을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오버바이에른 주택이라면 꽤 괜찮은 재테크 수단이라 크뢰너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 피도어는 고객에게 컨설팅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여성은 피도어에 계좌를 개설했고, 비트코인을 매입해 지난 몇 주간의 롤러코스터 장세 덕분에 지금쯤 억만장자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암호화폐에는 위험 방지 장치가 없다. 피도어와 비트코인 거래소는 암호화폐가 급락할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암호화폐를 비판적으로 보는 크뢰너는 비트코인을 전혀 구입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투기 거품을 목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2000년 독일 DAB은행에 임원으로 재직할 때 인터넷 광풍을 경험했다. 당시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으나, 닷컴 거품이 터지면서 적잖은 기업과 투자자들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에게는 비트코인 광풍이 당시 닷컴 광풍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다.
 
쾨르너의 협력 파트너 올리버 플라스켐퍼 역시 암호화폐에 회의적 반응을 보인다. “비트코인에는 여유자금만 투자해야 한다.” 비트코인 그 자체에는 당연히 가치가 내재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정화폐는 어떻게 현재 가치를 갖게 됐고, 미술수집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한 점 구입에 4억5천만달러(약 4801억원)를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뭔지 의문이 들 법하다. 금과의 연동이 끊어진 뒤 법정화폐에는 무엇보다 돈으로 뭔가를 살 수 있다는 국가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다.
 
비트코인이 가치를 갖는 요인은 희귀성이다. 비트코인은 최대 2100만 개를 발행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올리버 플라스켐퍼도 비트코인에 투자했을까? 초기에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프로젝트 비용이 필요해 대부분 매각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비트코인에 투자하기 전에도 내 연금은 안전했는데, 이제는 더 안전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 Der Spiegel 2017년 51호
Bitte ein Bitcoin
번역 김태영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마르틴 헤세 등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고경태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윤종훈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