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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디지털경제 지평을 연다
[Cover Story] 암호화폐 열풍, 그 현장을 가다- ② 광풍의 교훈
[94호] 2018년 02월 01일 (목) 마르틴 헤세 등 economyinsight@hani.co.kr
중국 거래소 정지 뒤 일본·한국이 비트코인 붐 주도… 블록체인 활용한 금융기술 변화 관심
 
비트코인의 상승장을 이끄는 곳은 단연 아시아 지역이다. 돈냄새에 민감한 중국은 일찌감치 비트코인 시장에 뛰어들었다. 일부 재력가들이 비트코인을 돈세탁 수단으로 활용하자 중국 정부는 거래를 전면 중단시켰다. 이에 일본과 한국으로 비트코인 열풍의 중심이 옮겨갔다. 일본은 3년 전 마운트곡스 거래소가 파산해 비트코인 거품으로 몸살을 겪었지만 지금 이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스위스도 비트코인으로 주목받는 나라다. 지방 소도시의 보안이 뛰어난 군사벙커를 개조해,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로 전세계 비트코인 업체들을 유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암호화폐 기술의 핵심인 블록체인을 활용한 새로운 디지털경제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기존 금융권력과 반란을 꿈꾸는 암호화폐의 빅뱅에서 결국 살아남는 쪽은 사람들의 신뢰를 먼저 얻는 쪽일 것이다.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마르셀 로젠바흐 Marcel Rosenbach
아네 자이트 Anne Seith
빌란트 바그너 Wieland Wagner <슈피겔> 기자
 
   
일본 도쿄의 대형 가전제품 매장 ‘빅카메라’ 입구에 붙은 비트코인 포스터 앞을 사람들이 지나치고 있다. 일본에서는 비트코인 결제가 확산되는 추세다. EPA 연합뉴스
 
비트코인 열풍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탐욕이다. 이는 독일보다 아시아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토요일 오후,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의 작은 홀은 긴장 섞인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학생, 가정주부, 연금생활자, 양복 입은 비즈니스맨 등 비트코인 세미나 참가자 가운데는 먼 길도 마다 않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최대한 빨리 부유해지고 싶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마유 공주’라는 뜻의 마유히메가 연단에 섰다. 본명이 사카이 마유미로 자신은 자녀를 둔 가정주부임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은 아주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는 비트코인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비트코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라고 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비트코인은 위험하지 않고, 비트코인 붐이 이제 제대로 시작됐다는 게 마유히메의 주장이다. “이제 비트코인을 살 때다. 최대한 빨리 말이다.”
 
비트코인 홍보대사이자 달변가인 마유히메는 전통적인 금융 경제가 파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일본의 엄청난 국가부채를 언급하며 경제 대폭락이 머지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할머니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경제위기 때 겪었던 것처럼 국가가 국민의 재산을 동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비’, 일본 ‘맑음’
비트코인 세미나는 아시아 전역에서 청중을 벌떼처럼 모으고 있다. 아시아만큼 암호화폐에 열정적이고 폭발적으로 투자하는 지역은 찾기 힘들다. 중국의 신흥 부자들은 초기부터 암호화폐에 눈떴고, 자신의 예금을 국가로부터 안전하게 보관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중국 화폐 위안화는 자유롭게 거래할 수 없어 많은 중국인이 재산을 비트코인으로 바꿔 해외로 옮기고 있다. 1년 전 전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상당수가 중국에서 이뤄졌다.
 
비트코인의 핵심인 채굴자들이 중국, 그것도 전기료가 싼 오지에 거주하는 일이 적지 않다. 복잡한 컴퓨터 프로세스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네덜란드 투자금융업체 ING그룹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건의 비트코인 거래에만 현재 1인 가구의 한 달 전기사용량이 든다. 암호화폐 전체 시스템의 경우 덴마크 규모의 국가가 한 해 사용하는 전력량이 소비된다.
 
중국에서 비트코인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비트코인의 무역 중심은 일본과 한국, 홍콩으로 옮겨갔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2017년 9월 중국 정부가 자본 유출과 돈세탁 범죄를 막으려 자국 비트코인 거래소의 폐쇄를 명령했다.
 
일본에선 회전초밥집부터 전력업체에 이르기까지 수천 개의 업체가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받는다. 다만 지금은 비트코인을 팔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당장 내일 비트코인의 가치가 껑충뛸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거래 수수료가 상당히 비싸진 탓도 있다. 차 한 잔 결제하는 수수료가 차 한 잔 가격보다 높다면 차를 사 마시는 데 이용할 가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트코인 알고리즘은 1초에 최대 7건의 거래를 허용하고 여러 단계를 걸쳐 거래되므로 결제까지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이 아닌 투기 대상이자 재테크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굳어지고 있다. 이런 비트코인의 단점 탓에 실제 화폐이자 결제 수단으로 통용되는 걸 목표로 한 비트코인캐시(Bitcoin Cash)가 막강한 지지자를 등에 업고 ‘포크’(Fork·시스템을 개선하거나 통째로 복사해 새로 만드는 것 -편집자)를 통해 떨어져나갔다.
 
일본에서는 기존 은행 역시 암호화폐를 기회의 수단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최대 규모의 미쓰비시 도쿄유에프제이(UFJ) 은행은 얼마 전부터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디지털화폐(MUFG Coin)를 발행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달리 이런 화폐의 가치 상승은 기대할 수 없다. 이 코인은 엔화와 일대일로 교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사용해 온라인 계좌이체를 편리하고 저렴하게 할 수 있다.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와 함께 통화경제가 재편되고 있음을 일본 사례가 보여준다. 유로·달러·엔 등 법정화폐는 기존의 독점적 지위를 장기적으로 잃을 수도 있다.
 
독일과 달리 일본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한 경고를 거의 들을 수 없다. 일본이 3년여 전 엄청난 비트코인 스캔들로 몸살을 겪었던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대목이다. 2014년 3월 도쿄에 본사를 둔 전세계 최대 규모의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Mt. Gox)가 파산했다. 마운트곡스는 전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70%를 담당했다. 마운트곡스의 파산으로 이곳에서 거래된 비트코인 수십만 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근 암호화폐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였고 그 여파로 비트코인 가치가 30%나 급락했다.
 
마운트곡스 파산은 민간이 운용하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2017년 12월 넷쨋주 암호화폐 수요가 늘고 선물거래가 시작되자 주요 거래소에서는 과부화와 거래 중단이 되풀이됐다. 암호화폐가 붕괴될 조짐이 나타날 때 예상되는 대혼란의 전조처럼 보인다.
 
암호화폐 세계를 방문해볼 장소는 많지 않지만 스위스 우리알프스(Uri Alps) 끝자락에 화려한 예외가 있다. 우리알프스에는 300m 규모의 과거 군사벙커가 있다. 군사벙커 지하통로에 들어서면 목소리가 메아리로 길게 돌아오는 거대한 공간이 중간중간 이어지는 섬뜩한 세계가 펼쳐진다.
 
수십 년 전 스위스 군대는 여기서 심각한 위급 상황을 대비해 훈련했다. 지금은 하드웨어와 데이터를 안전한 공간에 보관하려는 암호화폐 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몇 년 전부터 옛 군사벙커는 불과 몇 초 내에 데이터를 모두 삭제하는 테러와 전자기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컴퓨터센터로 변하고 있다.
 
   
2017년 12월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8년 암호화폐의 세계 흐름과 전망’ 콘퍼런스에서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활용 여지가 크다. EPA 연합뉴스
 
스위스 지하벙커의 변신
“암호화폐 업체들은 보안 욕구가 아주 강하다.” 암호화폐 업체 델탈리스(Deltalis)의 프랑크 하르츠하임 대표가 말했다. 암호화폐 영역에 일종의 포트녹스(Fort Knox·금괴 보관소를 갖춘 미군 기지 -편집자)를 제공하는 것이 사업모델이다. 비트코인 전자지갑 업체도 이곳에 입주해 있다. 여기에 현재 얼마나 많은 돈이 잠자고 있을까? 수백만유로? 수십억유로? “전혀 알 수 없다”고 하르츠하임 대표는 말한다. 고객은 기밀 유지에 큰 가치를 둔다고 했다.
 
자사 데이터센터가 암호화폐 업계 중심지 추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예민한 고객이 대상인 암호화폐 사업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하르츠하임 대표는 생각한다. 인구 3만여 명의 목가적인 소도시 추크는 암호화폐의 실리콘밸리로 발돋움하고 있다.
 
영향력이 막강한 이더리움 재단 등 여러 핵심 기업들이 우리알프스 지역에 입주했다. 이들 업체는 낮은 세율과 느슨한 규제로 암호화폐 업계에 구애하는 스위스 ‘암호화폐 밸리’에서 선구자 구실을 한다. 지역 시참사회(시의회가 선출한 시행정 담당 모임 -편집자)는 2016년부터 거주증명서 등 지자체의 여러 수수료 결제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허용하기로 결의했다. 이 결의는 스위스가 암호화폐 업계를 환영한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알프스가 보낸 구애의 손짓에 응한 업체들은 이더리움의 블록체인에 기반한 신규 사업모델을 차용하고 있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은 고양이를 교환하고 결제하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앱)을 프로그래밍하고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다. 스위스 추크에 입주한 분산형 보험 플랫폼 이더리스크(Etherisc)는 항공기 연착 등에 대비하는 보험을 제공할 온라인 기반 보험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고객이 결제한 항공편을 입력하면 해당 시스템이 실제 도착 시간을 토대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고객에게 지급될 손해배상액이 완전 자동으로 해당 항공사에 전달되고, 절차를 거쳐 고객에게 계좌이체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금융·보험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할 것이다. 금융서비스 업체 플로스바흐폰슈토르히(Flossbach von Storch)의 토마스 마이어 대표는 이를 확신한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 속한 골드만삭스에서 20여 년간 일한 마이어 대표는 2012년까지 도이체방크의 선임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그는 현재 신용거품과 과도한 부채를 끊임없이 유발하는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주도의 통화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편에 서 있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 시대 초기처럼 모색하는 단계에 있다.” 마이어 대표는 자산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분산 이전하고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저장하는 블록체인 등의 기술적 토대가 매혹적이며 이를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화폐, 유가 증권, 주택 등의 재화 거래를 블록체인 기술로 지금보다 훨씬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종 거래로 돈을 버는 공증인과 은행, 기타 중개인을 원천 배제하고 말이다.
 
‘화폐 경쟁’의 서막
블록체인의 활용 분야는 다양하다. 음악인들은 자체 플랫폼으로 직접 음원 유통을 실험하고, 자율주행자동차는 충전소에서 직접 결제할 수 있으며, 각국 정부는 공개 등기부를 실험하고 있다. 미국에서 치른 자신의 결혼식을 분산 데이터뱅크 기술을 이용해 녹화할 수도 있다.
 
화폐의 활용은 아직 끝난 실험이 아니다. “아마존 등 대기업들은 머지않아 자체 암호화폐를 유통할 수 있다”고 토마스 마이어 대표는 말했다. “대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아마존 계좌를 만든다면 말이다.” 아마존 등 ‘인터넷 공룡’ 기업들은 벌써 계획 실행에 착수했다.
 
마이어 대표는 향후 몇 년간 비트코인 같은 분산형 암호화폐,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감독하는 암호화폐, 아마존과 중국의 경쟁업체 알리바바 등 인터넷기업이 만든 암호화폐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예측한다.
 
법정통화를 독점한 금융기관들은 장기적으로 힘든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과거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처럼 서민들을 위한 은행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해 국민의 돈을 보호하고 가치를 수호한 중앙은행이라면 암호화폐 독점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반면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고 국가재정 지원에 충실했던 중앙은행은 앞으로 민간 암호화폐에 밀려날 것이다.
 
“결국 국민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 될 것이다.” 이런 전망을 내놓는 토마스 마이어 대표가 속으로 흐뭇해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 투기 거품의 증발 역사 >
• 1637년 튤립 |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튤립이 투기 대상이었다. 희귀종 튤립은 1637년 암스테르담 운하의 고급 대지만큼이나 비쌌다. 하지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튤립을 사려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네덜란드 전체 튤립 시장이 붕괴됐다.
 
• 1720년 미시시피 계획과 동인도회사 거품 | 프랑스 미시시피 계획과 영국 동인도회사의 과대평가는 유가증권거래소 과열로 이어졌다. 두 거품이 터진 뒤, 프랑스와 영국에서 수년간 경기가 침체됐다.
 
• 1873년 오스트리아 빈 주식과 부동산 시장 |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계박람회 개막 몇 달 전부터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빈 증권거래소에서 주가가 붕괴된 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120개 기업이 파산했다.
 
• 1929년 미국 뉴욕 주식시장 | 미국의 1920년대 주식시장 활황은 뉴욕 증권거래소 붕괴로 이어졌다. 그 결과 세계에 경제위기와 금융위기가 불어닥쳤다.
 
• 1970년대 은 | 미국 텍사스 헌트 형제는 은을 투기했다. 은 시장이 붕괴된 뒤 20년간 은 가격은 하락세를 멈추지 못했다.
 
• 1990년 거품 경기 | 일본은 1980년대 주가와 부동산 거품이 터졌다. 이후 일본 경제는 수년 동안 회복하지 못했다.
 
• 2000년 닷컴 거품 | 신경제 붕괴 뒤 수많은 소액투자자들이 자산을 잃었다.
 
• 2007년 부동산 | 미국에서 거품이 터진 뒤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여러 은행들의 파산과 함께 전세계 금융위기가 이어졌다.
 
ⓒ Der Spiegel 2017년 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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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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