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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문화 탓 시민 참여 사업 ‘걸음마’
[Issue] 프랑스에서 시민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부진한 이유
[94호] 2018년 02월 01일 (목) 앙드레아스 뤼댕제 economyinsight@hani.co.kr
독일·덴마크선 지역 협동조합이 신재생에너지 사업 주도… EU의 경쟁 강조도 걸림돌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에너지 전환’. 2013년 프랑스에서 에너지 전환법 관련 논쟁이 한창일 때 나온 문구로, 에너지 전환을 단지 기술·경제적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에너지 전환이야말로 시민들이 정책 이행에 얼마나 적극 참여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에너지 전환에 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시민 참여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앙드레아스 뤼댕제 Andreas Rüdinger 프랑스 국제관계 및 지속가능개발연구소 선임연구원
 
   
영국 노팅엄 시내를 달리는 전기버스. 영국은 1980년대 에너지 시장을 전면 자유화한 첫 번째 나라지만, 노팅엄 등 일부 도시에선 지역 에너지 공기업을 설립해 에너지 시장의 공적 관리를 강화했다. REUTERS
 
시민 참여 방식에 에너지 전환 관계자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하지는 않는다. 시민 참여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는 주류 담론으로 자리잡은 ‘공리주의적’ 접근이다. 시민 참여를 신재생에너지 생산 사업 발전의 지렛대로 본다. 이 접근에 따르면, 지역주민을 소액 출자 형태로 풍력발전단지나 메탄화단지 건설 사업에 참여시키는 것이 ‘주민 수용성’ 문제를 완화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현실에서는 물질적 보상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어떤 사업에 대한 주민 수용성은 일반적으로 해당 사업의 지배구조에 주민이 실질적으로 관여하는지와 관련이 깊다. 게다가 해당 사업이 지역경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지도 주민들의 참여에 달렸다.
 
두 번째 접근은, 환경운동가들이 주장하는 ‘시민 에너지’ 형태의 참여다. 운동가들은 에너지 전환을 정치적 프로젝트로 바라본다. 정부의 수동적·소극적 태도에 맞서 시민이 직접 에너지 시스템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탈적 자본주의가 에너지 시스템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선 더 더욱 시민 에너지 프로젝트가 시급하다.
 
많은 도시와 지역에서 주민과 지자체 당국이 힘을 모아 사회기반시설 운영에 나서고 있다. 독일에서는 2000년 이후 70개 이상의 지역 공기업(Stadtwerke·전력 사업이 민영화된 독일에서는 지방정부가 발전·배전 사업권을 민간기업에서 거둬들여 지역 에너지 공기업에 맡기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 -편집자)이 설립됐다. 베를린과 함부르크의 지역 공기업이 유명하다.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는 2013년 주민투표로 배전망 운영권을 되찾았다.
 
1980년대 에너지 시장을 전면 자유화한 첫 번째 국가인 영국에서도 노팅엄, 브리스틀, 리버풀 등의 도시가 지역 에너지 공기업 설립에 나서고 있다. 노팅엄 시당국은 ‘로빈후드 에너지’라는 상징적인 이름의 지역 공기업을 만들었다. 런던도 ‘에너지 재지역화’ 흐름에 발을 담그고 있다. 환경운동가 롭 홉킨스의 ‘전환 도시 운동’도 잊어서는 안 된다.
 
   
2018년 1월8일 프랑스 남부 풍력발전 마을을 방문한 니콜라 윌로 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발전기 내부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시민 참여가 부진하다. REUTERS
 
‘시민 에너지’ 모범 국가들
프랑스에서는 1946년 제정된 에너지법에 의해 그르노블의 CEG, 스트라스부르의 ES 등 120개 업체를 제외한 지역 에너지 공기업의 신규 설립이 금지됐다. 120개 ‘역사적’ 지역 에너지 공기업들은 프랑스 전력 수요의 약 5%를 감당할 뿐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도 지역 신재생에너지 생산 협동조합의 출현을 막지 못했다. 선구자들의 부단한 노력에 힘입어 오늘날 신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설립 사업은 점점 더 많은 지자체와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 같은 정부 기관의 지지를 받고 있다.
 
어떤 이들은 시민 신재생에너지 생산 사업을 ‘곁가지 현상’으로 치부한다. 또 다른 이들은 미래 에너지의 판도를 예고하는 전조로 간주한다. 어쨌든 프랑스에서 시민 에너지 사업은 부차적 위치에 있다. 실제 프랑스의 시민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여전히 ‘에너쿠프’(Enercoop), ‘공유 에너지’(Energie Partagée), ‘알테르나티바’(Aternatiba) 같은 시민 네트워크나 단체, 환경·시민 운동가들의 전유물이다. 환경에너지관리청의 2016년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의 시민 참여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모두 160건이고 지상 풍력발전의 약 3%와 태양광발전의 약 0.7%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2016년 프랑스의 전체 전력생산량은 531테라와트시(TWh)며 이 중 풍력과 태양광의 비중은 5.5%에 불과하다. 풍력과 태양광은 프랑스의 중요한 전력 공급원과 거리가 멀다.
 
 
유럽의 다른 지역 상황은 프랑스와 판이하다. 독일에서는 시민이야말로 녹색에너지 혁명의 주인공이다.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독일 시민은 농민과 함께 2000년 이후 설치된 발전 설비의 거의 50%를 보유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시민 에너지운동 초기엔 원자력발전에 반대하는 환경운동 진영이 홀로 운동을 이끌었다. 조합주의 문화가 강한 전통에 힘입어 시민 에너지운동은 점차 대다수 가구의 지지를 얻게 됐다. 독일 국민 4명 가운데 1명은 협동조합 구성원이다. 1천 개 넘는 에너지 생산 협동조합 가운데 가장 큰 곳은 조합원이 3만9천 명에 이르고, 투자액도 엄청나다. 독일 시민들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모두 1천억유로(약 127조원)를 투자했다. 이런 시민 참여 방식은 단순한 전력 생산을 넘어선다. 지자체의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이나 기업들이 실효성 없다고 판단한 난방망 사업의 자금조달에 필수불가결한 모델이 됐다.
 
덴마크는 또 다른 모범 사례다. 덴마크에서는 전력기업들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시민들이 지역 협동조합으로 풍력발전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2013년 풍력발전에서 협동조합의 비중은 80%에 육박했다. 국가전략에서 시민 에너지의 중요성을 인정한 스코틀랜드는 시민 에너지 사업의 정량적 목표를 설정한 첫 번째 국가다. 2020년까지 완료할 목표로 정한 500MW(신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의 6.5%)는 2015년에 달성했다.
 
프랑스에서 시민 에너지 사업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문제는 돈이 아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계 저축률이 높은 국가 축에 든다. 수천억유로가 금리 0.75%에 불과한 정기예금 계좌에 잠들어 있다. 프랑스 국민이 정기예금보다 수익률이 높고 의미도 있는 지역 에너지 사업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것은 무엇보다 문화적·정치적·규제적 요인 때문이다. 정책 수립에서 중앙정부의 입김이 세고 에너지 공공서비스 원칙이 강해 시민의 에너지 사업 참여는 오랫동안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2017년 프랑스 대선과 총선에서 드러난 것처럼, 프랑스 정치 담론에서 에너지 문제는 여전히 부차적인 주제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의 풍력발전단지. 브란덴부르크는 독일에서 신재생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주로, 그 비중이 전체 발전 전력의 75%가 넘는다. REUTERS
 
부작용 키운 규제 개혁
독일, 덴마크, 스코틀랜드의 경험은 몇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시민 에너지가 대규모 사업으로 쉽게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적절한 규제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반면 3년 전 유럽연합(EU)의 신재생에너지 지원 메커니즘 개혁은 잘못된 규제가 신재생에너지 부문의 비약적 성장세를 어떻게 단숨에 꺾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독일에서는 2009~2013년 연평균 230건의 시민 에너지 사업이 새로 추진됐지만 2016년에는 그 수가 80건으로 급감했다.
 
2014년 이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회원국이 기존 신재생에너지 전력 의무 구매제도를 폐지하고 좀더 경쟁적인 지원 메커니즘을 도입하도록 적극 권장했다. 참여 희망자들을 경쟁시키는 경쟁입찰제도가 경제적 관점에서 더 효율적이라지만, 어쨌든 이 제도는 지역 협동조합의 에너지 사업 참여를 방해했다. 입찰에 참여하려면 입찰 서류를 준비하고, 타당성 조사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상당한 초기 투자가 필요하다. 수주를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초기 투자금을 전부 날리게 된다. 지역 협동조합은 이런 위험을 지면서까지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면 유럽연합 회원국이나 집행위원회가 아무리 시민 에너지 사업의 중요성을 역설해봤자 공허한 수사에 그칠 뿐이다. 물론 여러 국가에서 의무구매제도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할 보완 장치를 마련했다. 프랑스는 지역단체의 출자 지분이 20%를 넘으면 메가와트시(MWh)당 3~4.5유로(약 3800~5700원)의 ‘참여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 독일은 협동조합에 다른 입찰자보다 완화된 조건의 입찰 서류 제출을 허용했다. 이런 조처들은 의무구매제도 폐지를 보완하는 데 한참 못미친다. 역효과마저 낳는 게 현실이다.
 
독일에선, 지원 메커니즘 개혁 뒤 도입된 풍력발전 경쟁입찰의 95%를 협동조합에서 낙찰받았다. 수치만 보면 큰 성공이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협동조합의 이점을 누리기 위해 ‘유령’ 조합을 만들어 입찰한 전력기업들의 꼼수가 통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독일 입법 당국은 기업들이 이런 맹점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법령을 정비하는 대신, 시민 에너지 사업의 우대 조처를 폐지하기로 2017년 6월 결정했다. 2018년부터 협동조합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경쟁입찰에서 어떤 우대도 받지 못하게 됐다.
 
시민 참여는 신재생에너지 생산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얽혀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2017년 7월 환경부 장관이 발표한 기후변화계획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개인, 기업, 단체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하는 계획을 세워 실질적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 -편집자)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런 야심찬 목표는 에너지 생산을 100%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 전력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만드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주거, 교통, 여가, 식생활 등 에너지 소비와 사용 측면의 혁명적 변화를 전제로 한다.
 
에너지 전환 노력을 모든 이해당사자, 특히 시민들의 일상적 참여 없이 오직 정부에만 맡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정책보다 보통 더 혁신적이고 규모도 큰 시민 에너지 사업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지역경제 살리는 시민 에너지 사업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지역 자본과 기업을 동원하기 때문에 지역경제의 진정한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사업 개발자들도 이런 이점을 강조할 것이다. 옛 동독 지역, 특히 브란덴부르크주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지역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은 모범 사례다. 쇠락해가는 탄광지대이던 브란덴부르크가 불과 몇 년 사이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석권하고, 오늘날 이 분야에서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도시가 된 것이다. 현재 신재생에너지는 이 지역 전력 생산의 65%를 차지한다. 일자리 1만8천 개를 창출했고, 주 당국에 연간 10억 유로(약 1조2700원)가 넘는 부가가치를 가져다주고 있다.
 
이런 선순환은 시민과 지역사회의 참여로 더 강화될 수 있다. 헤센주 지역에너지공기업연맹의 연구에 따르면, 시민·지자체·지역기업 등 지역사회가 지분 100%를 보유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외부 전력회사의 관리 사업보다 8배나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8년 1월호(제375호)
La transition a besoin de l’énergie citoyenne
번역 박현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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