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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린 약자들의 분노가 역류하다
[Focus] ‘동유럽은 우향우’ 현장 보고서- ① 극우화의 배경
[94호] 2018년 02월 01일 (목) 얀 풀 등 economyinsight@hani.co.kr
동유럽 국가, 유럽연합 가입 13주년… 난민 할당량 일방 통보 등 서유럽 오만함에 불만 팽배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만큼 유럽연합에 열광했고 유럽연합 가입으로 혜택을 톡톡히 본 국가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 국가의 상당수 유권자가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극우 세력에 한 표를 행사했다. 이들은 항상 가르치려 하고 따르라고 통보하는 서유럽의 잘난 척에 진저리를 친다. 동유럽 고유의 정체성을 회복할 필요성도 느낀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을까.
 
얀 풀 Jan Puhl
토비아스 라프 Tobias Rapp <슈피겔> 기자
 
   
체코 극우정당 자유직접민주주의당 토미오 오카무라 대표가 2017년 10월21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총선 이후 선거본부의 기자회견에서 기자에게 질문하라고 손짓하고 있다. REUTERS
 
체코 프라하 전역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번쩍거리는 등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난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다. 단 하나를 제외하면 말이다. 프라하시는 구시가 광장 진입로를 콘크리트로 막아놨다. “독일인들 탓”이라고 체코의 극우정당 자유직접민주주의당(SPD) 토미오 오카무라 대표가 힐난조로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불법 이슬람 이민자 수백만 명을 초청하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안전하게 살았을 것이다. 불법 이슬람 이민자를 원치 않는다. 테러가 일상화된 사회에 적응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카무라 SPD 대표를 맥주향이 배어 있고 미트볼 메뉴가 있는 지하 술집에서 만났다. 이 술집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유럽연합(EU) 때문이다. 2017년 10월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SPD는 11%를 득표해 극우정당으로서는 대단히 선전했다. 더구나 SPD는 사실상 오카무라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정당이 아닌가.
 
이민자 출신인 오카무라의 아버지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고, 어머니는 체코인이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오카무라는 프라하에서 성장했다. 그는 현지인처럼 완벽한 체코어를 구사하지만, 14살 때 침대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외국인혐오에 시달렸다. 그는 몇 년 동안 일본에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팝콘을 팔며 살았는데, 일본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다시 프라하로 돌아와, 아시아 관광객을 겨냥한 여행사를 만들어 짭짤한 재미를 봤다. 오카무라의 삶은 글로벌 성공 스토리지만 정작 본인은 이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카무라 SPD 대표의 정치는 오히려 정반대를 지향한다. 그는 세계, 적어도 유럽에 벽을 쌓자고 외치며 최대한 서둘러 체코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실시하려 한다. “유럽연합 가입 이전의 체코 상황이 더 좋았다”고 그는 확신한다. 체코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전망은 나쁘지 않다. 오카무라가 이끄는 SPD는 체코 소수 정권의 다수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카무라 대표는 최근 독일 함부르크에서 자신의 애스턴마틴 차량을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겪었고, 2017년 12월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독일 베르히테스가덴을 방문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그런데도 그는 “유로화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럽연합은 거짓말을 토대로 세워졌기 때문이란다. “체코가 유럽연합 수준의 삶에 도달할 거라고 당신들이 약속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말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이 오카무라뿐만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일상이 됐다. 지난 총선에서 선전한 체코의 모든 정당 역시 비슷한 견해를 보인다. 심지어 총선 최대 승자이자 서유럽 투자로 백만장자가 된 안드레이 바비시도 유럽연합에 비판적인 말을 한다. 그는 독일에서 대형 베이커리 리켄(Lieken)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체코뿐 아니라 폴란드와 헝가리 등 동유럽 여러 국가에서 나타난다. ‘철의 장막’이 무너진 지 25년도 더 지난 지금, 동유럽은 서유럽에 더 이상 기대하는 바가 없다. 유럽연합 가입 13주년을 맞은 동유럽 국가들은 간절히 가입을 희망했던 유럽연합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유럽연합에 대한 적대적 정서가 무르익고 있다.
 
분명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는데 정확히 무엇이 잘못됐을까? 그리고 왜 하필 지금일까?
 
난민으로 꼬인 실타래
 
원래 동유럽 국가들의 유럽연합 가입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한 편의 성공 스토리였다. 이렇게 동유럽은 중유럽이 됐다. 중공업이 몰락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체제의 동유럽이 성공적인 시장경제 체제로 변모했다. 사회주의의 재갈이 물려졌던 동유럽 사회는 새롭게 정의됐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유럽에 찾아왔고 자리를 잡았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체코, 헝가리가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했을 때 이들 국가에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듯 보였다. 이들 국가가 서구화하며 이 지역에서 지리와 역사가 더는 문제가 안 되는 듯 보였다. 이 때문에 지금 유럽연합 동유럽 회원국들의 서구화 과정이 그대로 멈춰버리고 심지어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한 것은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동유럽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왜 동유럽 국가들에서 자유주의 정부가 실각하고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극우 정치인들이 대거 정권을 잡는 것일까? 이들 국가와 사회가 유럽의 돈과 유럽의 제도 덕을 보는데도 말이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동유럽 회원국 국민 대부분이 유럽을 지지하면서도 정작 투표소에서는 반유럽 성향 투표를 하는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체코 프라하와 폴란드 바르샤바,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방문했다. 극우정당이 정권을 잡은 국가들의 수도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답은, 동구권에 관심 없고 퇴보하는 동구권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서구권과도 당연히 관련이 있다. 동유럽 국가들은 서유럽에 집착하면서도 서유럽에 속하지 않는 느낌을 억누르지 못한다.
 
관계 치료사라면 서유럽과 동유럽의 관계가 파탄났으니, 서로 대화하고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도록 노력해보라고 충고할 것이다. 문제는 현실세계에 국가 관계 치료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민 위기는 상황을 더욱 꼬이게 했다.
 
유럽의 귀족 카렐 슈바르첸베르크(80)는 1989년 프라하로 돌아왔다. 그는 동유럽 민주화 이후 승자이자 패자다. 공산주의 시절 슈바르첸베르크 가족은 서유럽으로 이주했고 이후 엄청난 땅과 숲, 성을 돌려받았다. 정계에 입문한 슈바르첸베르크는 체코 외무장관이 됐다. 그는 인기 많은 동유럽 문제 관련 인터뷰 대상이자 논객이었지만, 지난 총선에서 그의 자유주의 정당은 득표율 5.3%라는 형편없는 성적표로 고개를 떨궈야 했다.
 
슈바르첸베르크는 체코 유일의 아프가니스탄 레스토랑 카불(Kabul)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다.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레스토랑’의 존재 자체가 정치적 견해 표명으로 간주될 수 있다. “동유럽인 대다수가 난민 수용을 거부한다”고 슈바르첸베르크는 지적했다. “외국인을 자국에 받아들일지는 자국민과 긴밀히 협의해야 했다. 그 과정을 건너뛰면서 독재로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슈바르첸베르크는 외무장관으로서 체코를 동유럽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로 만들었으나 지금은 자신의 일생 역작인 유럽연합이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한다. 이는 유럽연합에 오직 반기를 드는 극우 정치인들과 서구 정치인들의 무관심에 기인한다.
 
“체코인은 유럽연합에 큰 빚을 진 것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유럽연합이 집처럼 편한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에서 동유럽 회원국들은 무시당하기 일쑤라고 슈바르첸베르크는 전했다. “서유럽과 동유럽이 견해 차이를 보이는 사안이 있으면, 동유럽은 제대로 유럽인으로 거듭나라는 말부터 듣는 일이 많았다.” 동유럽 회원국들은 서구 회원국들의 무시하는 어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학생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 동유럽이 소련 지침을 받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슈바르첸베르크 같은 자유주의 정치인도 이런 말을 대놓고 할 정도면 오늘날 상황은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
 
바르샤바의 스카이라인은 지난 몇 년간 폴란드의 거침없는 급부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바르샤바 스카이라인에는 사회주의 시기에 건설된 낡은 잿빛 건물이 빠지지 않는다. 스탈린이 바르샤바에 악의를 갖고 선사한 스탈린 건축 양식의 문화과학궁전(총 42개 층과 3288개 방이 있는 소비에트 지배의 상징물로 여겨지는 건물로 현재 영화관과 극장, 미술관 등으로 사용된다 -편집자), 1970년대 장식을 일절 배제해 지은 콘크리트 건물, 다사다난했던 민주화 이후 지은 고층의 은행 빌딩, 수도 바르샤바에서 가장 비싼 건물이자 폴란드계 미국 건축가 대니얼 리베스킨드가 설계해 1년 전 준공된 높이 192m짜리 고급 아파트가 어지러이 혼재해 있다. 축구선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도 이 빌딩의 주택을 매입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스탈린 건축 양식의 문화과학 궁전. 폴란드는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지만 전통 가치가 훼손되고 서유럽화가 진행되자 정체성 위기를 느끼고 있다. REUTERS
 
동유럽 정체성의 혼란
폴란드가 역사상 지금처럼 경제적 상황이 좋은 적은 없었다. 1990년 폴란드 국민의 평균수입은 독일 국민의 12분의 1에 불과했는데, 2016년에는 3분의 1 수준까지 올랐다. 폴란드의 경제 규모는 날로 커지고, 실업률은 독일을 거의 따라잡았다. 폴란드에는 우크라이나인 100만 명이 이주했다. 난민들은 대부분 환경미화와 간병, 공사장 등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고향보다 상황이 나은 꿈을 실현해줄 서구는 폴란드에도 열려 있다. 이는 체코와 발트해 연안국가,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심지어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불가리아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폴란드인은 경제호황기를 보내면서도 위협을 느낀다. 원인은 서유럽에 있다. 폴란드인은 서유럽을 가리켜 ‘자전거 운전자와 채식주의자의 세상, 재생에너지를 중시하며 새로운 문화와 인종이 혼합된 세계’라고 한다. “서유럽은 전통적인 폴란드의 가치와 전혀 상관없다”고 비톨트 바슈치코프스키 폴란드 외교장관이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폴란드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지시하는 서유럽을 오만하고 잘난 척하는 엘리트로 여기는 수많은 폴란드인의 반감을 제대로 보여준다.
 
바슈치코프스키 외교장관이 농담처럼 이 말을 했을 수도 있다. 그가 속한 폴란드 정부가 이런 말을 진지하게 하고 이런 기조의 정책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동유럽인은 유럽연합이 책정한 할당량에 따라 동유럽이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오는 건 시리아 내전보다는 대체로 독일 총리가 초대했기 때문이라고 동유럽인은 생각한다.
 
“난민 위기는 유럽의 분열을 유발한 원인이 아닌 촉매제”라고 바르샤바의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이사회 피오트르 부라스는 말했다. 그는 폴란드의 저명한 정치학자로 오랫동안 베를린에 거주했다. 특권층인 서유럽이 누구를 난민으로 받아들일지 동유럽에 지시한다고 동유럽은 인식한다는 것이다. 반면 서유럽은 동유럽인을 공산주의 시절 적지 않은 사람이 해외로 도피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도 난민에게 동정심을 갖지 않는 냉혈한으로 생각한다. 양쪽의 윤리적 격차는 동유럽에서 정확하게 인지된다. 이것에 많은 동유럽인이 점점 더 격하게 거부반응을 보인다.
 
“서유럽으로의 복귀와 유럽연합 회원 가입은 정체성 회복의 강력한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 부라스는 지난 25년간의 무자비한 변화는 동유럽인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줬고 이제는 서유럽 같은 생활수준을 보장한다는 약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이 때문에 폴란드의 집권여당인 법과정의당(PiS) 대표이자 최대 실권자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와 오르반 빅토르(헝가리에선 성을 이름 앞에 쓴다 -편집자) 헝가리 총리가 국가주의를 성공적으로 부활시킬 수 있었다.”
 
법과정의당은 관습과 국가주의적 화법, 역사적 피해자 신화를 단골 메뉴로 활용한다. 2010년 당시 대통령이자 법과정의당 공동설립자인 레흐 카친스키가 탑승했던 비행기를 러시아가 스몰렌스크 상공에서 추락시켰다고 믿는 피해자 신화도 여기에 포함된다.
 
ⓒ Der Spiegel 2017년 51호
Beziehungskrise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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