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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삶 사이, 아파트의 욕망
[경제와 책]
[94호] 2018년 02월 01일 (목) 이코노미 인사이트 economyinsight@hani.co.kr
최예원 편집자 nervously@minumsa.com
 
“왜 굳이 아파트여야 해요?”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니 주거비 부담이 커졌다고 말하는 내게 동료가 던진 질문이다. 다른 주거 형태를 선택했다면 같은 비용에 더 넓고 깨끗한 집을 구하거나, 비슷한 조건에 더 저렴한 집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전 문제 때문이라고 대답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빌라나 다세대주택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많은 세대수가 가져다주는 익명성, 단지 내부에 조성된 녹지, ‘관리비’를 내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자질구레한 문제가 해결되는 편리함.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많았지만, 그런 선호를 고백하기가 어쩐지 부끄러웠다.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정헌목 지음
반비 펴냄
1만8천원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언제나 ‘문제적’인 주거 형태로 여겨지기 때문이었을까. 한국에서 거론되는 ‘부동산 문제’의 상당 부분은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자산 증식 수단으로 자리잡은 뒤 아파트는 종종 투기의 현장이었다. 그 때문에 주거공간의 본질이 왜곡된다는 비판과 집값을 잡으려는 갖은 노력의 역사(그리고 실패의 역사)를 익히 안다. 여기에 더해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아파트라는 공간 형식이 지닌 문제점, 즉 획일적인 공간 배치, 주변 도시 공간에 배타적인 단지 형태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이 꾸준히 지적됐다.
 
‘문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욕망하고 어떻게 살까. 인류학자가 직접 아파트 현장에 들어가 쓴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한다. 저자는 9천 가구에 이르는 수도권의 한 재건축 대단지 아파트로 들어가 2년여를 머물며 주민들을 만났다. 재건축조합과 입주자대표회의 같은 의사결정기구를 관찰하고, 이제는 오프라인 커뮤니티만큼이나 중요해진 온라인 입주자 카페에 8년여간 축적된 수만 건의 게시물을 분석했다. 가치판단을 일단 접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는, 고도성장기가 지나고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전환기의 아파트 거주 공동체’에 대한 세밀하고도 충실한 묘사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저자는 한국에서 아파트가 왜 지금 같은 형태가 됐는지 간략한 역사를 추적한다. 저소득층 주거 대책의 하나로 도입됐다가 중산층의 주거지로 목표를 선회한 정치적 배경, 아파트에 브랜드가 도입돼 가격의 중요 요소로 작용한 과정, ‘단지’가 외부의 진입을 차단하는 장치로 둘러싸이고 내부에 각종 편의시설과 학교까지 갖춘 형태로 진화해 ‘표준’으로 자리잡은 역사를 훑는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면, 아파트에 대한 현재의 기대와 욕망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런 배경으로 펼쳐지는 현장연구의 내용은 소설 한 편을 읽듯 흥미진진하다. 10만여 평 부지에 지은, 벚꽃이 아름답던 ‘성일주공아파트’(가명)가 최고 35층 90여 개동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 ‘성일노블하이츠’(역시 가명)로 재탄생하기까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아파트 단지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상호작용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책은 재건축 과정에서 입주 예정자들이 아파트 가격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입주 뒤 대부분의 입주자들이 단지 내부 일에 무관심해지며 생겨난 문제, 그 와중에 더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소수의 적극적인 입주민들을 따라간다.
 
그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은 (책 제목에도 담긴) ‘가치’의 중의적 의미다. 물론 아파트의 가치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뜻한다. 성일노블 입주 예정자들이 지하철역 위치 변경과 브랜드 도입을 요구하며 민원을 넣고 집회를 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농성할 때도 얻으려 한 것은 경제적 가치였다. 하지만 아파트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입주 뒤 사람들은 삶에서 돈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안전이나 환경 같은 생활공간을 둘러싼 가치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을 경험한다. 변화하는 시장 상황이나 삶의 형태와 맞물려, 기존 경제적 가치를 삶의 가치와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가치’의 의미가 다면화되고 평가 요소가 다양해지면서 아파트의 공동성도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인상적이다. 수천 가구가 함께 살면서도 옆집 사람 얼굴도 모르는 곳이 아파트이지만, 개인 또는 한 가구의 노력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요소가 점점 많아지면서 입주민들은 공통의 문제에 집단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때때로 이들의 실천은 단지 바깥의 지역사회나 사회 전반의 공공성과도 맞닿게 된다. 생업도 뒤로하고 아파트 자생단체를 열심히 꾸려나가는 몇몇 입주민, 그리고 단지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에 주민들이 대응해가는 과정은 아파트에서 ‘공동체’가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애초 아파트에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했던 저자는 “‘현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기대와 다소 달랐다”고 고백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길어낸 인류학적 접근은, 여전히 ‘부동산’과 ‘집’ 사이의 거리가 너무 먼 한국 사회의 문제를 풀어내는 데 중요한 성찰을 제공한다. 당위나 규범으로 주거의 가치를 규정하기 전에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실제 욕망에 대한 직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주거 문제의 현실적 조건을 검토하는 좋은 출발점이 돼줄 것이다.
 

● 인사이트 책꽂이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라나 포루하 지음 | 이유영 옮김 | 부키 펴냄 | 1만8천원
메이커스는 만드는 자들 곧 실물경제계, 테이커스는 저자의 표현으로 ‘거저 먹는 자들’ 곧 금융계를 말한다. 언론인인 저자는 미국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금융이 경제 성장을 돕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더 바람직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금융과 실물경제의 힘 차이를 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금융계와 실물경제의 갈등을 돌아보고 대안을 논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
 
요시카와 히로시 지음 | 최용우 옮김 | 세종서적 펴냄 | 1만4천원
일본의 거시경제학자가 인구와 경제의 관계를 논한 책이다. 18세기 영국의 맬서스와 20세기 전반 케인스의 주장을 살피고 다른 나라보다 먼저 인구 문제 해결에 나선 스웨덴의 경제학자들을 소개한다. 이어 일본의 인구 감소로 생긴 여러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선진국의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것은 인구가 아니라 혁신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성장이 정말 바람직한 것인가”를 묻고 이것의 답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씽크스몰
 
오웨인 서비스·로리 갤러거 지음 | 김지연 옮김 | 별글 펴냄 | 1만5천원
2010년 영국 내각 기구로 설립된 ‘행동통찰팀’ 소속 학자들이 쓴 책이다. 행동통찰팀은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독려하고 도와주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다. 저자들은 심리학 문헌과 자신들이 확보한 현장 정보를 바탕으로, 목표 달성에 도움을 주는 ‘기술 도구’를 제시한다. 이 책이 건축물이 완성될 때까지 받쳐주는 임시가설물 곧 비계 같은 것을 만들 기술과 재료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 노윤기 옮김 | 책세상 펴냄 | 1만7500원
영국 철학자인 저자는 많은 사람이 소비지상주의를 비판하며 소박한 삶을 강조하지만 실제 사람들은 사치로 더 큰 행복을 얻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모순된 상황에서 저자는 ‘소박함’은 무엇이고 ‘단순함’은 무엇인지 따져 본다. 저자는 단순한 삶의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이지만 일방적인 주장을 펴지 않고 소박함의 철학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독자가 어떤 삶을 살지 스스로 고민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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