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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는 ‘정치’, 투자·고용엔 영향 미미
[Finance] 미국 사상 최대폭 법인세 인하의 파장
[93호] 2018년 01월 01일 (월) 윤석천 maporiver@gmail.com
미국 상원이 2017년 12월20일 마침내 법인세를 35%에서 21%로 14%포인트나 내리는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사상 최대 인하폭이다. 이번에도 아서 래퍼 교수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감세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인물이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캠프에서 경제 자문을 한 그는 이번 세제 개혁안이 미국 경제를 살릴 거라고 자신한다. 일정 세율을 초과하면 외려 세수가 줄어든다는 ‘래퍼 곡선’ 이론의 창시자로서는 당연한 주장이다. 반면 클린턴 정부의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는 이번 감세안이 경제를 퇴보시키는 방안이라 비난한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2월 백악관에서 법인세 대폭 인하 등이 포함된 세제 개편안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REUTERS
 
새삼, 미국 경제학계는 감세 논쟁으로 뜨겁다.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경제학이 ‘정치경제학’이라는 본질을 꿰뚫지 못해서다. 감세는 분명 누군가의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된다. 법인세 인하는 기업과 주주들에겐 이익을 준다. 동시에 감세는 또 누군가의 이익을 해친다. 백번 양보해 장기적으론 래퍼의 주장대로 세수가 늘어날 수 있다. 단, 중·단기적으론 분명 세수가 줄어든다. 세수가 줄어든 만큼 누군가는 더 부담해야 한다. 일단 정부는 국채를 발행할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는 갚아야 할 빚이다. 경제 운용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표면적으론 다수를 위한다고 하지만 속살을 파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의 법인세 인하도 마찬가지다.
 
법인세 인하로 미 연방정부의 적자는 불가피할 것이다. 향후 10년 동안 적자가 1조5천억달러(약 1600조원) 정도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래도 상관없단다. 세금 인하가 성장을 가속화해 세수가 늘어나면 법인세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를 얼마든지 상쇄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뿐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성장률이 감세 효과로 4%에 이르고, 심지어 이보다 더 높을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정말 그럴까. 일단, 미국 법인세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았다. 22% 정도가 평균인데 35%였다. 게다가 감면이나 공제가 거의 없어 실효세율이 명목세율과 비슷했다. 수치만 놓고 본다면 과도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법인세 인하는 표면적으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과연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거냐다. 성장의 기폭제가 되어 다수가 그 혜택을 볼 수 있을까. 아니면 경제의 속성이 지극히 정치적이란 점에서 이번 감세안도 누군가에게 이득을 몰아주는 수단에 불과할까. 이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감세와 증세 논쟁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 이전은 세금 아니라 수익성 때문
미국은 이미 법인세를 내린 경험이 있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이다. 미국 경제는 좋아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았다. 레이건 시대 법인세 인하는 실패한 정책이다.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은 법인세를 48%에서 35%로 낮췄다. 법인세를 낮췄으니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해야 한다. 기대와 달리 그 뒤부터 미국 기업의 투자는 쪼그라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투자 움직임이 가장 약한 기간이었다. 미 경제분석국 데이터에 따르면, 법인세 인하 전인 1977~81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투자 비중은 연평균 8% 정도였다. 1982년엔 15%였다. 반면 1986년 법인세 인하 뒤 5년간 그 비중은 연평균 1.5%로 급감했다. 투자가 외려 곤두박질한 셈이다.
 
이런 투자 급감을 법인세 인하의 후폭풍이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 투자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 악화 등이 좋은 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세율 변화가 기업 투자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인세를 낮췄다고 기업의 투자가 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법인세를 올린다고 반드시 기업의 투자가 줄어든다고 단언할 수 없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이론은 다음과 같은 현상이 발생할 거라 기대한다. 세율이 낮아지면 그동안 세금이 무서워 해외로 떠났던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귀환한다. 이들 기업은 미국 내에 새 공장을 짓고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 것이다. 노동자의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증가할 것이다. 성장은 가속화하고 모두가 지금보다 부유해질 것이다.
 
얼핏 봐도 이 이론엔 몇 가지 함정이 존재한다. 우선 ‘오프쇼링’(Off Shoring)은 세금 과다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은 대부분 인건비와 물류비 등 비용을 절감하거나 전략적 필요성 때문이다. 법인세는 이익이 나야 내는 세금이다. 법인세 인하 혜택은 많은 이득을 내는 기업에 국한된다.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적자인 기업은 법인세가 낮아져도 경영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다. 따라서 법인세를 낮춰도 해외로 이전했던 기업들이 인건비와 비용이 높은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미국으로 되돌아올지는 해외 생산과 비교해 전체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에 따른다. 그 비용이 해외보다 높다면 세금 인하만으로 미국 기업들을 돌아오게 할 수 없다.
 
다음으로, 경영진이 세금 인하로 남는 이익을 투자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현재 미국은 이론상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대부분 취업을 한 ‘완전고용’ 상태다. 이 상황에서 기업들의 투자가 봇물이 터진다면 어찌될까. 노동 수요 증가는 임금 인상을 유발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는 기업들의 수익을 악화하고, 그보다 먼저 임금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부를 것이다.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지면서 감세 효과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노동 수요 증가는 기업이 감세에 반응해 투자를 활성화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외바퀴 손수레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미 정부는 2017년 말 사상 최대폭의 법인세 인하가 투자와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회의론도 많다. REUTERS
 
실제 법인세 인하에 경영자들은 기뻐하지만 투자에는 미온적이다.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은 법인세 인하 때 투자나 고용을 확대하겠느냐는 물음을 경영자들에게 던졌다. 이 질문에 겨우 8%만이 고용을 늘리고, 11%만이 자본 투자를 상당히 확대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수는 변화가 없고 늘려도 약간에 그칠 거라고 응답했다. 간추리면, 고용과 투자를 현저히 늘릴 거라는 기업은 10곳 중 1곳이다. 이 정도면 성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길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최고경영자는 이익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늘린다. 이익이 나지 않는다면, 게다가 그런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면 세금을 낮춰준다고 투자하지 않는다. 설사 세율이 0이라 해도 미래의 가능성이 없으면 투자나 고용을 확대하지 않는다. 그게 현명한 경영자다. 살 사람, 즉 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 세율 변화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론이 작동하지 않는 근본적 이유
법인세 인하는 분명 기업의 이익을 높일 것이다. 이익이 늘면 노동자 임금은 늘어날까. 우린 이미 지난 10년, 기업 수익 증가가 투자나 고용 확대, 인금 인상에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보단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증가와 같이 투자자 이익을 위해 쓰인 것을 알고 있다. 기업의 수익성 증가는 바람직한 일이다. 하나, 그것이 고용 확대나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지난 10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감세보다 더한 이익을 기업에 줬다. 천문학적 돈을 뿌려 기업을 살렸다. 결과는 언제나 그렇듯, 그 이익이 소수에게 집중됐다. 법인세 인하로 인한 이득 역시 극소수 투자자들 주머니로 향할 것은 자명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익이 결국 다수를 이롭게 할 거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낙수(트리클다운) 효과’ 이론이다. 상부의 물이 넘치면 하부로 흐르는 것은 자연에선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지극히 정치적인 경제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의 혈액인 돈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아래에서 위로 흐를 뿐이다.
 
미국의 법인세 인하는 나름 명분이 있다. 국제적 흐름에 발을 맞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로 인한 폐해는 생각보다 클 것이다. 국가부채는 늘어나고 기업들은 남는 이익을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쓸 것이다. 그 때문에 만연한 시장의 거품은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다. 법인세 인하는 결코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법인세 인하로 4%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궤변에 가깝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 확대는 수요가 늘어날 때만 가능하다. 수요가 있으면 하지 말라 해도 한다. 그게 기업이다. 수요는 소비자의 주머니가 두둑해졌을 때 생긴다.
 
우리가 고민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대중의 여유를 어떻게 늘릴지 숙고할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법인세 인하만으로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했다면 ‘침체’나 ‘공황’이란 단어는 벌써 경제학 교과서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정치경제학은 이미 검증이 끝난 문제를 다시 논쟁거리로 만들고 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 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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