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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생산과 소비, 그 간극을 문제 삼다
[경제와 책]
[93호] 2018년 01월 01일 (월) 이코노미 인사이트 economyinsight@hani.co.kr
우석영 번역자·생명철학 연구자
 
어떤 백화점에 다녀왔다. ‘식품관’의 과자가게 앞을 지나다 궁금해서 살펴보니 ‘계란: 국내산’이라고 적혀 있다. 이것이 표기의 전부란 말인가? 저 말은, 그 과자에 들어간 계란이 밀집 사육시설에서 힘들게 사는, 생물이라기보다 차라리 계란 제조기에 가까운 어느 물질이 성장을 촉진하는 합성 사료를 주입당한 뒤 제조해 낸 계란이라는 뜻이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 지음
우석영 옮김
책세상 펴냄
1만6천원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식(식재료, 요리, 레시피, 식당 등)의 사안을 농(농산물, 농업, 농민, 농지 등)의 사안과 분리해서 사고하고, 식과 농 사이에 걸친 커튼을 잘 열어보려 하지 않는다.
 
인도의 물리학자이자 유기농업 운동가이며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가 쓴 이 책은 먹을거리를 ‘전체론적 접근법’으로 바라보며 ‘식농 분리’라는 현대인의 사고 오류를 치료한다. 아울러 건강과 농업 사이 잘 보이지 않는 점선을 실선으로 그어 연결해준다. 저자의 논의 지평은 전세계여서, 독자를 세계 이해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의 기본 음조는 ‘정리’라 할 것이다. 제목이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인데, 그건 저자가 이 책을 일종의 교과서 수준으로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들뢰즈와 가타리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슈뢰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썼듯, 시바 역시 일생의 화두를 이 책에서 정리했다.
 
과연 무엇이 이 세계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가? 이 물음은 이중나선 구조의 답변을 요한다. 식량의 생산과 이동에는 두 갈래 질서의 흐름, 즉 물리적 질서와 사회적 질서라는 두 흐름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이중나선의 구조를 소상히 밝혀낸다.
 
우선, 물리적 질서. 모든 음식물은 최초의 음식물에서 시작하는데, 그걸 만들어내는 건 대체로 토양에 뿌리를 둔 식물이다. 그 식물 중 다수는 자기 삶을 위해 토양만이 아니라 벌과 나비에도 의존한다. 토양의 세계든, 벌과 나비의 세계든, 생물다양성이 그 세계를 건강하게 해 농작물도 건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생물다양성 역시 물리적 질서의 긴요한 부분일 것이다. 한마디로, 농생태계의 생물 질서가 종다양성을 유지한 채 안정될 때, 식량 생산도 순조롭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눈을 들어 오늘날 농지를 살펴보면, 이런 물리적 상식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생뚱맞은 현실’을 본다. 생물다양성, 토양의 공생계, 화분 매개자를 중시하기는커녕 되레 적대시하는 ‘전쟁형 농업’과 그와 연관된 식품산업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저자가 문제시하는 건 종자, 사료, 식음료 가공, 유통 부문의 글로벌 식품 대기업이 주축이 되고 ‘착취의 법칙’에 따라 가동되는, 산업화되고 세계화된 농업·푸드 시스템이다. 공언과는 다르게 기아를 해결하기는커녕 양산하고, 현대인의 식 관련 질병의 주요 원인인데다 세계 천연자원의 75%를 사용하면서도 식량 생산량에선 겨우 30%만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식량과 농업 권력에서 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세계의 식량 불안, 농지 감소, 지구생태계 교란 등 악화일로의 현 상황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비록 대기업에 종속돼 있지만 생물 질서와 생물다양성을 살피는 농법 지식(농생태학)을 가장 잘 보유하고, 종자 보존에 힘쓰며, 지역 살림살이에 기여하고, 세계 전체 식량 생산량의 70%를 책임지는 세계 각지의 소농들, 특히 여성 농민에게 농업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적 질서를 다룰 때 주된 서술 기조는 당위의 역설이 되는데, 이 책의 두 번째 음조는 그리하여 ‘비판’이 된다.
 
결미에서 저자는 로드맵을 제시한다. 세계 소농으로 권력을 이동시키고 푸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9가지 로드맵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패러다임의 전환일 것이다. 자연과 생명체를 조작 가능한 대상이나 기계, 죽은 물질, 서로 분리 가능한 물질, 분자 같은 최소 단위로 환원할 수 있는 물질로 보는 사고방식이 현 산업형 농업의 근간이라고 저자는 본다. 이런 사고방식이 특정한 식량 경제관으로 이어져 현재의 식량경제를 지탱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농 문제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점을 재정립하는 일일 것이다(그래서 세계관, 생명관, 과학관의 문제를 다루는 1장이 이 책의 뇌와 척추가 된다). 이것이 대단히 어려운 관점은 아니다. 땅과 씨앗, 식물과 동물의 지능을 인정하고 이들과 더불어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농생태학적 관점일 뿐이다.
 
흠결도 있는 책이다. 식량이 생산되는 물리적 질서의 핵심인 광합성의 언급이 누락돼 있다. 또 하나, 세계 식량 생산의 70%를 맡는 소농들 모두가 ‘착취의 법칙’과 대별되는 ‘반환의 법칙’을 따르는지 적이 의문이다. 현재 세계 농지 가운데 유기농업 땅은 1%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소농들 자신이 깨어나 유기농업·자연농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제에 대한 논의가 이 책에는 빠졌다. 하지만 이만한 거시적 시각의 정리도 지금껏 우리에게는 없었다.
paixici@gmail.com
 

● 인사이트 책꽂이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
니콜 애쇼프 지음 | 황성원 옮김 | 펜타그램 펴냄 | 1만5천원
미국 급진주의 저널 <자코뱅> 편집주간이 쓴 유명인 4인 비판서다. 4인은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 유기농 식품 체인 홀푸드 창립자 존 매키, 언론계 스타 오프라 윈프리,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다. 저자는 이들이 기업의 횡포나 환경오염 같은 자본주의 문제를 거론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정면 대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의해 설계되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선택 가능한 미래
비벡 와드와·알렉스 솔크에버 지음 | 차백만 옮김 | 아날로그 펴냄 | 1만4800원
미국의 창업가 육성 전문가가 기술기업 마케팅 전문가와 함께 썼다. 인공지능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이 빠르게 현실화하고 있지만, 신기술의 위험을 방지하고 그 혜택을 골고루 나누는 길을 찾아야 할 기관들은 변화에 뒤처졌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다. ‘인간의 욕구와 필요가 모두 충족되는 사회’와 ‘인류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세계’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우리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말한다.
 
 
 
 
애프터 크라이시스
루치르 샤르마 지음 | 이진원 옮김 | 더퀘스트 펴냄 | 1만8800원
투자운용회사 모건스탠리의 전략가인 저자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상황을 돌아보며, 국가 지도자와 글로벌 투자자의 종말은 일정한 형태를 따른다고 말한다. 호황기에 지나치게 안주하다 “밟고 있던 땅이 바뀌자 모래늪에 빠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 경기침체는 중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국가 경제의 흥망성쇠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글로벌 경제는 시끄러운 정글이라는 사실을 체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를 넘어
로베르토 웅거 지음 | 이재승 옮김 | 앨피 펴냄 | 2만3천원
브라질 출신 법학자가 1998년 펴낸 책이다. 동구권 붕괴 뒤 세계 문제를 염두에 두고 ‘민주적 실험주의’를 이야기한다. 민주주의자들의 첫 번째 희망은 실천적 진보와 개인의 해방 조건이 겹치는 지점을 만들어내고, 두 번째 희망은 보통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와 열망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가 ‘급진민주주의자의 구체적인 정책’이라고 자부하는 이 책이 2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유효한지 따져볼 만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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