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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시대의 여백
[Editor’s Letter]
[93호] 2018년 01월 01일 (월) 신기섭 marishin@hani.co.kr
신기섭 편집장
 
1.
한 달 전쯤 들고 다니는 전화기를 바꿨습니다. 그동안 쓰던 전화기가 화면은 작고 작동 속도까지 점점 느려져 못 쓰겠다는 게 핑곗거리입니다. 기록부터 사진까지 갖가지 자료를 담아 두고, 시시때때로 뉴스와 정보를 접하는 기계에 돈을 좀 들이는 게 현명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화면도 크고 속도도 빠른 새 전화기를 며칠 들고 다니니 하루라도 빨리 바꾸지 않은 걸 탓하는 심정이 들었습니다. 새 기계를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며 어떻게 해야 더 잘 활용할까 궁리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할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새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접하려 계속 ‘새로고침’을 하고, 사람들이 나누는 정보를 하나라도 놓칠까 ‘타임라인’을 아래로 당기고, 지나쳐버린 알림이 없나 화면을 잡아내리는 게 고작이라는 말입니다.
 
조바심을 내봐야 꼭 필요한 뉴스 속보는 뜨지 않고, 반가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알림은 오지 않습니다. 결코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는 신세와 다름없다는 걸 뻔히 알지만, 여전히 전화기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합니다.
 
2. 
몇 년 전인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퇴근길에 무심히 지하철 자동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뭔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오가는 사람들 눈길을 끌기 위해 소리 없이 경쟁하는 광고판들 사이에 자리잡은 흰 공간이었습니다. 광고주를 못 찾아 비어 있는 자리와는 뭔가 달랐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래쪽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대강 ‘지친 이들을 위해 이 자리를 여백으로 남겨둡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후 한동안 퇴근길에는 꼭 같은 지하철역을 이용했습니다. 여백으로 남은 광고를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니, “오가는 사람들에게 빈자리를 보여주자”는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의 마음씨를 되새겨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몇 개월 뒤 ‘여백 광고’가 철거됐을 때의 아쉬움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3. 
방송 프로그램을 몰두해서 보고 텔레비전을 끈 직후의 상황을 기억하십니까? 감동적인 음악이 끝나고 찾아오는 순간은 어떻습니까? 저는 ‘침묵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어쩌면 음악은 침묵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4. 
미국 신경생물학자 에바 마더는 실험실에 있을 때가 아니라 빈둥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지루할 때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합니다(자세한 이야기는 100쪽에 실린 ‘스마트폰 세대’ 기사에 있습니다).
 
영감을 자극할 ‘여백’을 잡지에 담을 수 있을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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