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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고유의 색깔을 입혀라
[Cover Story] ‘약속의 땅’ 농촌- ① 차별화 전략
[92호] 2017년 12월 01일 (금) 카트린 엘거 등 economyinsight@hani.co.kr
오늘날 농촌을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메뚜기가 들녘을 뛰어다니는 ‘과거의 공간’으로 여겼다간 큰코다친다. 성장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주요 대도시들은 리모델링한 농촌의 성공 스토리를 미래의 눈으로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 농촌이 온갖 풍파를 견뎌내고 ‘포스트 농촌’으로 거듭난 여정은 현재 대도시들이 반추해야 할 대목이다. 저마다 장점을 살려 성공적인 미래를 그려낸 독일의 대표적 농촌 도시 4곳을 소개한다. 아울러 글로벌 농축산 대기업의 동향을 살펴 농촌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디지털 농업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_편집자
 
할레, ‘묻지마 투자’ 대신 교육과 연구 도시로 특화… 오펜바흐는 문화도시로 탈바꿈
 
독일 도시와 농촌은 갈수록 격차가 커지고 있다. 경제 호황은 독일 정부의 얘기고, 농촌은 고립된 딴 나라의 섬 같다. 하지만 일부 농촌 자치단체는 나름의 장점을 잘 키워 미래 농촌의 대안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탈산업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할레안데어잘레는 교육과 연구·개발 시설, 대규모 문화시설을 유치해 도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바꿨다. 외국인이 많은 오펜바흐암마인은 ‘범죄도시’라는 오명을 벗고 외국인의 창의성을 적극 발굴해 문화산업을 융성시키고 있다.
 
카트린 엘거 Kathrin Elger 하우케 구스 Hauke Goos
이자벨 휠젠 Isabell Hülsen 닐스 클라비터 Nils Klawitter
마르틴 뮐러 Martin U. Müller 필리프 자입트 Philipp Seibt <슈피겔> 기자
 
2017년 가을, 독일은 언뜻 최고의 경제 상황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업률은 5.5%, 1인당 국민소득은 3만8114유로(약 4900만원)로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가구소득 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개인 소비와 수출, 기대수명도 덩달아 늘고 있다. 도로는 곳곳이 공사장으로 변해 통행이 어려울 정도다. 독일연방 경제부가 작성한 현황 보고서에는 ‘모든 것이 탄탄하고 가속화하며 역동적’이라는 긍정적인 형용사 일색이다.
 
   
쇠락의 길을 걷던 할레안데어잘레는 테마파크와 유명 연구소, 대학을 유치해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났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슈테판 헬 막스플랑크 연구소장이 나노현미경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독일 도시들은 점점 커지고 있다. 2035년까지 프랑크푸르트 인구는 지금보다 11% 늘고, 뮌헨이나 베를린 인구는 14% 이상 늘어나 40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총인구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대도시는 성장하지만 다른 지역은 인구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성장이 농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2005~2015년 독일 중소도시 인구는 각각 37%, 52% 줄었다. 미발표된 독일 연방정부의 2016년 공간이용 계획안에 따르면, 대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향후 점점 더 커질 것이다.
 
함부르크, 뮌헨, 슈투트가르트, 쾰른,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특히 베를린의 관점에서 본다면 독일의 나머지 지역은 모두 농촌이다. 하지만 여러 지역을 다녀보면 이런 선입견이 잘못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 내용처럼 농촌의 자치단체와 마을이 인구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발전하는 소도시와 시골 마을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대다수 농촌 자치단체들이 쇠락하는 현상은 오랫동안 정치권의 관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대체로 농촌에 거주하며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에 투표하는 ‘뒤처진 사람들’이라는 용어가 나온 뒤에야 사람들은 농촌에 눈을 돌렸다. 녹색당에서 기독사회당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은 농촌의 낙후함 대신 긍정적 면을 부각하려 애썼다. 이후 갑작스럽게 시골 고향이 사회적 화두로 나와, 향토부처 신설을 논의하게 됐다. 마치 말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독일 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물음은 시의적절한 면이 있다. 도시나 지방자치단체의 몰락을 멈추고 농촌의 인구 유출을 막는 데 필수적인 것은 무엇일까? 농촌이 미래를 대비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이미 있다. 일부 농촌 마을과 소도시, 지자체가 그 존재 자체로 답변하고 있다. 할레안데어잘레(Halle an der Saale), 오펜바흐암마인(Offenbach am Main), 프라이웅그라페나우(Freyung-Grafenau), 베라마이스너(Werra-Meißner)가 그 주인공이다. 이 가운데 두 곳은 옛 동독, 다른 두 곳은 옛 서독에 있다. 둘은 도시고, 다른 둘은 농촌이다.
 
[ 할레안데어잘레 ]
교육, 연구, 문화는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도 중요하다
-‘신흥 도시’ 할레 방문 보고서
 
   
 
라이프치히에서 40km 떨어진 할레는 인구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대표적 지자체다. 할레는 오랫동안 인구 유출로 몸살을 앓았고 이로 인해 쇠락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상황이 반전됐다. 이곳 상황이 나아진 것은 어쩌면 라이프치히의 상황이 개선된 덕택일 수도 있다. 관련 학계는 이 현상을 ‘스필오버 효과’(Spillover Effect·물이 넘쳐 흘러 인근의 메마른 논까지 혜택이 전해지듯, 특정 지역에 나타나는 현상이나 혜택이 다른 지역까지 퍼지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라고 부른다.
 
동독 시절 할레는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체 화학 생산의 40% 이상이 할레에서 나왔고 이는 할레에 일자리와 부, 자신감을 안겨줬다. 할레 주민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모터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더 많이 구매했고, 담배도 더 많이 피웠으며, 우유도 더 많이 마셨다. 하지만 동독 붕괴 뒤 할레는 과거의 영광을 잃었다. 대대적인 탈산업화를 겪어 대량해고가 이뤄졌다.
 
베르트모르텐 아르니케(44)는 1990년 할레에서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쳤다. 지금 그는 동독 시절 옛 소련 군대 주둔지였던 대형 주차장에 폴크스바겐 관용 차량을 주차 중이다. 아르니케는 옛 동독 지역에선 베를린의 아들러스호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테크노파크 바인베르크캄푸스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한다. 바인베르크캄푸스 부지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전체 부지의 3배가 넘는다.
 
아르니케는 “최고 수준의 연구환경이 할레에 갖춰져 있다”고 강조하며 프라운호퍼연구소 1곳, 막스플랑크연구소 1곳, 바이오공정공학센터, 라이프니츠연구소 2곳 등 할레에 있는 대학 건물과 크고 작은 민간연구소, 대학병원까지 대표적인 연구기관을 거침없이 읊어댔다. 에볼라바이러스를 막는 성분이 할레에서 공동 개발됐고, 유명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학자 중 한 명이 할레에서 연구하고 있다. 할레 학계는 알츠하이머와 당뇨병 방지를 연구하고 있다. 바인베르크캄푸스의 구내식당에선 할레 사투리만큼이나 스페인어와 영어로 말하는 손님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글로벌한 분위기는 도시를 바꾸기에 충분하다. 할레에는 이국적인 레스토랑과 술집이 즐비하고, 독일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예술대학에 힘입어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고 있다. 할레에서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 음악의 후반 작업도 이뤄진다. 할레는 신흥도시가 됐다. 사회학자들은 좋은 교육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매력을 가진 도시를 신흥도시라고 칭한다.
 
할레 주민들의 소득 수준은 하노버나 본의 주민들보다 여전히 낮다. 소득 격차는 높은 연봉을 주는 대기업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 그래서 할레시는 공장과 대기업 본부를 유치할 부지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할레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을 세워 움직였다. 연방정부와 연방주, 유럽연합, 할레시 합작으로 할레의 테크노파크 바인베르크캄푸스에 1990년 이후 10억유로(약 1조3천억원)가 투자됐다. 할레시가 선투자를 했고, 연방정부로부터 과거의 병영 부지를 사들였다. 옛 동독 시절부터 할레에 유구한 학문의 전통이 있던 것이 도움이 됐다. 이 전통을 통일 뒤에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예나(Jena)시가 광학기기 생산의 유구한 역사 덕을 톡톡히 본 것과 비슷하다.
 
정치권도 할레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해냈다. “오늘날 독일의 발전 수준에서 경제성장은 주로 혁신을 통해 이뤄진다.” 마르틴루터 할레비텐베르크대학의 올리버 홀테묄러 경영학 교수가 설명한다. 그는 할레 라이프니츠 경제연구소의 거시경제 부문 이사도 맡고 있다.
 
할레를 비롯한 여러 도시가 겪은 구조적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 질문에 홀테묄러 교수는 “토목산업 투자와 ‘묻지마’ 지원 등을 대폭 줄여야 한다. 그 대신 연구와 개발을 지원하고, 고급 인력을 유치하며, 매력적인 입지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고 수준의 연구가 가능해야 창업이 성공하고, 민간경제가 닻을 내릴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오펜바흐암마인 ]
높은 외국인 비율과 창의성에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인구 다양성의 입지 경쟁력에 대한 보고서
 
   
 
고속철도 이체(ICE)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오펜바흐로 가는 여정에서는 오펜바흐를 그다지 많이 관찰할 수 없다. 몇몇 초원과 온실, 휴경지가 풍경의 전부다. 이것만으로는 오펜바흐가 어떤 곳일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독일 래퍼 레(Ree)의 노래 <오펜바흐> 가사처럼 오펜바흐는 더럽고 지저분한 곳일까, 외국일까? 레는 “여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가 왔던 곳, 독일로 돌아가라. 여기는 오펜바흐다”라고 랩을 했다.
 
오펜바흐의 외국인 비율은 37%로 독일 전역에서 높은 수치에 속한다. 오펜바흐가 독일의 국제도시 중 하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펜바흐 인구의 약 60%는 본인 또는 부모 세대가 외국 출신이다. 도심에서는 그 비율이 70%에 이른다. 오펜바흐에는 오랫 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범죄는 항상 오펜바흐의 큰 골칫거리였다. 래퍼들은 오펜바흐의 창녀들과 마약 딜러들을 소재로 한 랩으로 유명해졌다. 래퍼들은 “오펜바흐에서는 찢어지고 피를 흘리는 것이 일상이며,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빌어먹을 짭새들 앞에서 날뛰고 있다”고 랩을 한다.
 
하지만 래퍼들이 노래하는 가사와 달리 오펜바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거칠고 잔인하지 않은 곳이다. 인구는 늘어나고 범죄는 줄고 있다. 2016년에는 전년보다 10% 줄어든 1만1607건의 범죄가 신고됐다. 현재 실업률은 10% 수준이다. 상공회의소 설문조사에 따르면, 오펜바흐 기업의 27%가 추가 채용 계획이 있다. 전체 70%에 육박하는 기업이 지난 5년간 오펜바흐의 입지 조건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오펜바흐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이란 태생의 그래픽디자이너이자 오펜바흐를 사랑하는 마지어 라스테가르(36)가 말했다. 그는 오펜바흐의 유명한 조형예술대학에서 공부했고, 몇 년 전 노르트엔트 지구에 있던 가죽공장을 대형 창문을 갖춘 주거공간과 작업실로 개조했다. 그는 여기에 목재가구, 가죽소파, 페르시아 양탄자를 들였다.
 
항구 반대편에 있는 마인강변의 과거 낙후 지역이었던 노르트엔트 지구에는 주택 수백 가구가 새로 건설됐다. 프랑크푸르트로 출퇴근하는 오펜바흐 주민들을 위해 레스토랑과 유치원이 생겨났다.
 
오펜바흐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대목은, 창의적 직업군의 종사자 비율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다문화와 창의성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라스테가르는 로고 개발, 레스토랑 실내 인테리어, 오펜바흐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 판매 등의 일을 한다. 그는 독일식 글자체와 아라비아 글자체를 혼용한 새로운 ‘오펜바흐 신서체’도 개발했다. “오펜바흐 신서체는 오펜바흐의 개성을 완벽하게 표현한다”고 그는 자평한다.
 
오펜바흐의 이미지가 지저분한 도시에서 문화도시로 바뀐 배경에는 중소기업들과 라스테가르처럼 창의력이 풍부한 주민들이 자리잡고 있다. 창조경제 비율은 오펜바흐 총생산의 7%를 상회한다. 베를린의 창조경제 비율은 8.5%이고 독일 전체로는 2% 수준에 불과하다.
 
“오펜바흐에는 조깅복조차 잘 차려입은 옷차림으로 분류될 만큼 빈곤한 지역이 있다. 그런 빈곤 지역에선 모든 것이 깨끗하게 반짝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그런 곳에서도 창의성은 생겨난다.”
 
독일은 여전히 제조업에 과도하게 기대는 경향이 있다고 올리버 홀테묄러 교수는 지적했다. “제조업 위주의 관점은 근시안적일 수 있다.”
 
ⓒ Der Spiegel 2017년 43호
Gelobtes Hinterland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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