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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터널 끝에 놓인 불길한 암초
[국내이슈] 현대자동차 위기론의 본질
[92호] 2017년 12월 01일 (금) 권순우 soonwoo@mtn.co.kr
사드 위기 탈출하며 실적 반등 성공… 미래 자동차 투자 저조해 장기 비전 불투명
 
현대자동차가 2017년 3분기 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긴 터널 주행의 마침표를 찍은 분위기가 역력하다. 신차 사이클에 새로 진입한데다 약점으로 지적된 스포츠실용차(SUV)의 잇따른 출시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현대차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전기자동차 등 미래 자동차 개발과 관련해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업체들의 합종연횡에서 현대차가 외톨이 신세로 내몰리는 점이 불안 요소로 꼽힌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현대자동차가 2017년 3분기 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신차를 대거 출시하며 반등을 꾀하고 있다. 미국 뉴욕 국제자동차쇼에 제네시스 GV80 콘셉트 자동차가 등장했다. REUTERS
 
현대자동차가 2017년 3분기 실적을 발표한 10월26일 이 회사의 주가는 7% 넘게 급등했다. 전년 3분기가 파업의 여파로 워낙 실적이 나빴기 때문에 상대적 개선은 누구나 예상했다. 그런데도 투자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현대차의 주가 급등은 놀라운 실적의 축포라기보다 악재의 긴 터널 끝에 보인 한 줄기 빛에 대한 안도였다.
 
현대차의 터널 진입 시발점은 중국이었다. 2017년 2월까지만 해도 현대차 중국공장의 판매 실적은 전년 동기보다 13% 늘어난 수준이었다. 2017년 2월 말 경북 성주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가 배치되고 중국 내 반한 감정이 거세지자 3월에는 -44%로 곤두박질쳤다. 이후 4~6월 매달 60% 넘게 급락했다. 현대차는 딜러망을 정비하고 법인장을 교체하는 등 대안을 모색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미국 쪽 상황은 중국보다 더 안 좋았다. 미국 시장의 판매 저조는 자동차 자체의 문제였다. 금융위기 뒤 불어닥친 스포츠실용차(SUV) 열풍은 세단 중심 라인업을 갖춘 현대차에 치명적이었다. 2017년 상반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닛산 로그, 도요타 RAV4, 쉐보레 이퀴녹스 등 SUV였다. 현대차의 경우 투싼의 상반기 판매가 그나마 21% 확대되는 등 선전했지만 세단 중심 라인업의 판매 감소를 방어하지는 못했다.
 
최악의 대외 환경 속에 국내 문제도 여럿이다. 기아자동차는 2017년 8월 3조원 규모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했다. 노조는 6년째 파업을 이어가고, 11월 중순 현재 임금협상을 끝내지 못했다.
 
신차 사이클 돌입
2017년 3분기 실적 발표는 현대차를 둘러싼 상당수 악재를 걷어내는 전환점이 됐다. 최근 한국과 중국의 해빙 분위기로, 전년 동기 대비 65%까지 급감했던 중국 판매가 2017년 10월 -11%로 대폭 개선됐다. 9월에 비하면 60% 이상 늘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내놓은 대응책이 우호적인 환경 변화로 더 큰 효과를 내고 있다. 중국 맞춤형으로 2017년 9월 출시한 ‘올 뉴 루이나’는 두 달 만에 5만 대 이상 팔렸고, 11월에는 SUV ix35가 시장에 나왔다.
 
현대차의 약점으로 꼽히는 SUV 부문은 소형 SUV 코나와 스토닉 출시로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 그저 그런 차라는 인식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결정체로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 G70도 출시됐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플래그십 EQ900(수출명 G90), 대형 G80, 중형 G70으로 세단 라인업을 갖췄다. 또 대형 럭셔리 SUV 등을 포함해 6종으로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내수 시장에서 코나는 월 5천 대, G70은 1500대가량 팔리며 좋은 성적을 거뒀다. 코나는 소형 SUV가 잘 팔리는 유럽을 향해 2017년 9월 떠났고, 10월 이후부터 실적에 잡힐 것이다. G70은 2018년 초부터 중동,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북미로 글로벌 판매를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코나와 G70은 단순한 신차 출시 이상의 의미가 있다. 참혹했던 신차 사이클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사이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2018년 현대차는 코나(B세그먼트)보다 작은 A세그먼트 SUV와 C세그먼트 투싼 페이스리프트, D세그먼트 신형 싼타페, E세그먼트 대형 SUV를 출시할 예정이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현대차 이름을 버리고 독자적인 판매망을 구축해 글로벌 시장을 두드린다. 한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는 “이렇게까지 다 쏟아내고도 판매가 개선되지 않으면 현대차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평가해도 될 만큼 2018년에 역량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과거는 암울했고, 현재는 희망적이다. 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자율주행차, 전기차, 커넥티드카 등 미래 자동차의 연구·개발을 대하는 현대차의 태도가 지나치게 폐쇄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분야를 철저한 보안 속에 준비하는 것은 비판할 문제가 아니다. 폐쇄성을 우려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글로벌 미래 자동차 경쟁의 흐름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내는 여전히 자율주행차 시대에 의문을 품지만 미국과 유럽, 중국은 미래 자동차가 불변의 미래다. 글로벌 자동차, 정보기술(IT), 통신 기업들은 미래 자동차에 확신을 갖고 수조원의 연구·개발비를 쏟아붓고 있다. 각국 정부도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를 대비해 통신, 규제, 인프라 표준을 정비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0년, 독일과 인도는 2025년, 프랑스와 영국은 2030년 내연기관 자동차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내연기관을 건너뛰고 전기차에 주력하는 중국은 곧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금지 계획을 발표할 전망이다. 볼보는 2019년부터 내연기관만으로 가는 자동차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들도 향후 5년 안에 수십 종의 친환경자동차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버틴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현대·기아차그룹 자료에 따르면 100만 대를 파는 자동차 회사 기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2020년 유럽에서 약 3조7천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현대·기아차의 2016년 유럽 판매량은 96만 대다. 이 정도 과징금을 물고 수익을 낼 수 있는 자동차 회사는 전세계에 없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3분의 2는 해외로 수출된다. 설사 한국 국내의 준비가 미흡해 자율주행차, 친환경차가 도로를 누비지 못해도 한국 자동차 회사들은 세계 추세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중국 스타트업 퓨처모빌리티의 최고경영자이자 공동 창업자인 칼슨 브라이트펠트가 2017년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018년 초 공개 예정인 전기자동차 바이튼(Byton)을 배경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REUTERS
 
미국 미래 자동차 개발의 합종연횡은 뉴스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죽어가는 공룡’이라고 혹평을 받았던 GM은 미래 자동차 경쟁의 선두에 서 있다. 투박한 디자인과 연비 낮은 엔진, 고임금 노동자의 GM은 이제 없다. GM 이사회는 ‘여공’ 출신 메리 배라 회장을 제외한 모든 이사가 휼렛패커드, 시스코 등 IT 회사 출신이다. 미래자동차 경쟁의 주도권을 쥔 쪽은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차량공유 업체다. 최종 그림은 자동차가 소유가 아닌 공유의 개념으로 전환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다.
 
GM은 미국 내 2위 차량공유 업체인 리프트에 5억달러(약 5495억원)를 투자했다. 자체적으로는 차량공유 서비스 메이븐을 시작하고, 전기차 볼트EV를 내놓음과 동시에 거대한 차량공유 플랫폼을 가진 업체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던 구글은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리프트에 10억달러(약 1조990억원)를 투자했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며 GM-리프트-구글 연합 전선을 형성한 셈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내연기관 부문은 과감히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중소형 세단 중심의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 등의 시장은 대부분 철수했다. GM의 심장인 디트로이트 햄트램크 공장에서조차 인원을 감축하며 혹독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113년의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며 미래 자동차를 독자 개발하던 포드도 자존심을 접고 경쟁사인 GM과 손잡은 리프트에 5억달러를 투자해 연합군에 합류했다.
 
‘큰손’ 우버의 싹쓸이
리프트 연합의 반대 진영에는 세계 최대 차량공유 업체 우버가 있다. 우버는 로봇공학 명문인 카네기멜론대학 국립로봇공학센터 교수 40여 명을 영입하며 자율주행 분야의 인재를 싹쓸이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기초과학은 누가 연구하냐’며 우려를 표명할 정도다. 우버는 우호관계였던 구글의 인력(자율주행 개발 자회사 웨이모 출신 엔지니어가 만든 ‘오토’ 인수)조차 빼갔다.
 
우버에 또 다른 길을 제시한 인물은 소프트뱅크를 이끄는 손정의 회장이다. 소프트뱅크는 100억달러(약 10조9900억원)를 투자해 14%의 우버 지분을 확보하기로 했다. 소프크뱅크의 ‘큰 그림’은 글로벌 차량공유 연합이다. 소프트뱅크는 중국 최대 차량공유 업체인 디디추싱, 싱가포르 그랩, 인도 올라, 브라질 99 등 각국 차량공유 업체의 주요 주주다. 차량공유, 자율주행차는 국경을 넘어 글로벌 동맹으로 확대되고 있다.
 
유럽과 중국에서도 미래 자동차 개발을 위한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다. 유럽은 1천 명의 드라이버가 100대의 자율주행차로 11개국을 도는 ‘L3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경을 자주 넘어야 하는 유럽 환경에 맞게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기 위한 범국가적 프로젝트다. 유럽의 자동차 회사는 물론 통신사와 보험회사도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거대 IT 업체인 바이두를 중심으로 ‘프로젝트 아폴로’가 시행 중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만큼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가 대부분 참여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IT 회사들도 함께한다.
 
미래 자동차 개발이 공동으로 이뤄지는 것은 자율주행을 위해 지도, 연산처리, 자동차, 통신, 센서 등 각종 제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연합 전선을 통해 기술 표준과 규제를 만들며 고객을 창출한다. 1년, 늦어도 2년 뒤 상용화된 서비스가 나올텐데 그때 더 좋은 기술이 있다고 뒤늦게 뛰어들어봐야 낄 자리가 없다.
 
치열한 미래 자동차의 동맹 경쟁 속에 현대차의 입지는 매우 좁다. 모빌아이 등 몇몇 IT 업체와 접촉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만, 공식적으로 참여한 곳은 중국 합작사 베이징자동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류한 ‘프로젝트 아폴로’뿐이다. 현대차의 기술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전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술(ICT), 자동차, 지도, 에너지, 금융 회사들의 연맹체가 만들어낼 장벽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자동차 환경은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는데 현대차가 여전히 고도성장기를 기준으로 형성된 경영, 노사문화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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