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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따도 자리 없다, 외국으로 뜨자”
[Issue] 프랑스 박사학위 준비자들의 현실
[92호] 2017년 12월 01일 (금) 토마 레스타벨 economyinsight@hani.co.kr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 축소 탓에 열악한 재정과 불안정한 고용 ‘이중고’
 
프랑스 박사학위 준비자들이 열악한 재정과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 신음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인색한 연구·개발 투자가 불러온 결과다. 법적으로는 전문 직업인이지만 실제로는 학생도, 계약직 공무원도 아닌 모호한 신분으로 몇 년씩 논문 준비와 일을 병행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실업수당을 받으며 논문을 쓰는 연구자들도 있다. 박사학위 계약제도에 따라 지원을 받더라도 기한이 3년이어서, 그사이 논문을 완성하지 못하면 일자리를 찾아 전전해야 하는 신세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토마 레스타벨 Thomas Lestavel 언론인
 
   
프랑스 박사학위 준비자들이 불안정한 고용 상황으로 학위 취득 뒤 국외로 나가는 일이 늘고 있다. 파리 제11대학 의학부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원. REUTERS
 
2017년 6월 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상 연설에서 외국 연구자에게 프랑스로 오라며 이렇게 말했다. “연구원에게 유리한 환경을 구축해 목표 달성을 돕고 과학적 진보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러나 현실은 마크롱의 연설처럼 장밋빛이 아니다. 이는 박사학위 준비자들의 현실이 어떤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현재 프랑스에는 박사학위 준비자 7만5천여 명이 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연구의 기쁨보다 분노와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연구·개발을 위한 공적자금 조달은 크게 축소됐다. 프랑스 국립연구청(ANR)이 선정해 연구자금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의 비율은 2005년 25.7%에서 2016년 14.7%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프로젝트별 평균 지원액도 23%나 줄었다. 박사학위 소지자가 지원할 만한 교직이나 연구직의 수도 급감했다. 대학 전임강사직은 2000년 3천 개에서 2017년 1500개로 17년 사이 반토막 났다.
 
게다가 6월 마크롱 정부는 ‘연구와 고등교육’에 할당된 3억3100만유로(약 4300억원)의 대출 예산을 폐지했다. 시민단체 ‘시앙스 앙마르슈’(Science en marche)는 “프랑스 정부가 학위 취득 뒤 진로에 대한 해법도 없이 연구자를 수년간 교육하는 현 박사학위 제도의 적절성을 자문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최근 2018년 고등교육·연구·혁신 분야 예산을 2017년 대비 7억유로(약 9100억원) 증액해 어느 정도 의지를 보였다. 증액된 예산의 일부는 연구·개발에 할당될 것이다. 민간부문에서 연구·개발 세액 면제가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를 촉진해 젊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고용을 촉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젊은 연구자들의 모임인 청년연구자연맹(CJC)은 지금까지 정부가 연구·개발 세액 면제에 지출한 금액이 4400만유로(약 570억원)임을 고려할 때 세액 면제의 정책적 효과가 미미하다고 판단한다.
 
박사학위 준비자들은 박사학위 관련 법령에 따라 완전한 전문 직업인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2009년 전문 직업인으로서 박사학위 준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도입된 박사학위 계약제도는 계약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아, 실제 학위 취득 소요 기간이 인문과학 평균 5년, 순수과학 평균 3.5년인 현실과 맞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그나마도 대부분의 박사학위 준비자에게 박사학위 계약은 그림의 떡이다. 인문과학의 경우 박사과정 1년차 등록자의 38%만이 박사학위 계약 혜택을 받는다. 나머지 62%는 대학에서 시간제로 일하거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부모에게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순수과학에선 1년차 박사과정 등록자의 95%가 박사학위 계약으로 3년 동안 재정 지원을 받는다.
 
   
2017년 10월10일 파리 제1대학 학생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열악한 재정, 불안정한 고용
도시학 박사과정을 밟는 소피(30)는 자신의 처지가 연구실 동료들보다 낫다는 것을 안다. 소피는 박사과정을 지방자치단체가 공동 참여하는 학술연구교육산업협정(CIFRE) 계약으로 시작했다. 계약 기간은 3년이었다. 그는 계약 기간이 끝나면 논문 완성에 2년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 기간에 소피는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다. “실업수당으로 먹고살아야 하니 사실 고용부가 연구활동 자금을 지원해주는 셈인데, 이게 정상은 아니죠.” 물론 2년 동안 소피의 소득은 줄 것이다. 소피는 그래도 잘 풀린 경우다. 많은 박사학위 준비자가 계약 갱신을 한 번밖에 할 수 없고, 월평균 1100유로(약 143만원)를 받는 1년짜리 대학 시간강사직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마련한다.
 
교육학을 전공한 다미앵은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출신으로 올해 28살이다. 그는 주중에 특수교육 교사로 37시간을 일하고, 주말엔 지역 일간지 스포츠면에 칼럼을 써서 원고료를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미앵이 박사논문에 투자하는 시간은 주당 5〜6시간에 불과하다. “정말 최악은 매년 500유로(약 65만원)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모교의 명성에 기여하는 연구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돈을 내야 하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연습문제 풀이 조교로 일하는 법학 전공자 로르(30)는 질병·육아 휴직이 불가능하고 실제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시급 6유로(약 8천원)도 안 되는 보수를 현재 일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 때문에 로르는 조교 수당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해 법률저널에 기고하고 있다. 로르는 일이 너무 많아 미래가 불안하고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박사학위 준비자들의 불안정한 고용 상황은 개인적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규직이 아니라서 아파트 임차도 쉽지 않다. 나이 서른에 방 한 칸 얻는데도 부모의 보증을 요구받는 일이 많고, 여성은 경제적 이유로 임신을 미룬다. 로르는 이제 가식을 버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 “결국 둘 중 하나다. 박사학위 준비자를 학생으로 간주하거나, 계약직 공무원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전자라면 논문 준비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최대 3년, 그 이상은 안 된다. 그래야 학위를 딴 뒤 다른 걸 할 수 있다. 후자라면 학위를 딴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많은 박사학위 소지자가 학위를 딴 뒤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대단히 미묘한 문제다. 물론 전공에 따라 상황이 다르긴 하다. 프랑스 고용자격연구센터(CEREQ)에 따르면, 정보기술(IT) 전공자의 4분의 3이 박사학위 취득 뒤 빠르게 안정된 일자리를 얻는다. 반면 ‘지구생명과학’(SVT·천문학, 생물학, 지질학 등을 지칭한다 -편집자)은 박사 25명이 전임강사 자리 하나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실제 지구생명과학 전공자의 38%가 학위를 딴 뒤 5년이 지나도 여전히 계약직을 면치 못하고, 12%는 실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 진출, 만만치 않아
시민단체 ‘시앙스 앙마르슈’는 프랑스가 세계적으로 연구가 가장 활발한 학술 분야 중 하나인 생명공학에서 민간의 연구·개발을 촉진하는 데 애먹는다고 지적한다. 교육학 전공자인 다미앵은 수많은 박사학위 준비자와 마찬가지로 학위를 딴 뒤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학력과 경력에 맞는 일자리를 구한 적이 없다. 차라리 미국이나 캐나다로 가면 여기보다 더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다미앵은 마치 프랑스에서는 경력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연구자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5년 뒤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고용자격연구센터가 젊은 박사학위 소지자 140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8%가 정규직으로 일하고 이들의 평균 월급은 2400유로(약 312만원)였다. 실업률이 9%에 달했지만, 이는 전국 평균 실업률보다 약간 낮은 수치다.
 
2015년 민간 연구·개발 부문에 종사하는 연구원 가운데 박사학위 소지자의 비율은 19%까지 늘었다. ‘시앙스 앙마르슈’는 2017년 6월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민간부문에 종사하는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선택했지만 일반적으로 만족도가 높고, 연구 경력도 공공부문보다 더 인정받는다고 설명했다. 어떤 이들은 민간부문을 선택한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박사학위가 기업의 인사 담당자에게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있다. 5년째 도시인류학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파올라가 말했다.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이라고 하면 쓸데없이 눈만 높아 고액 연봉을 요구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박사학위 소지자가 기업의 인정을 더 잘 받으려면 국가 차원의 고용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의 능력은 프로젝트 관리 분야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사실 박사학위 자체가 훌륭한 프로젝트 아닌가.”
 

외국인 박사학위 준비자들의 열악한 상황
프랑스 연구기관을 선택하는 외국인 연구자는 여전히 많다. 프랑스 박사학위 준비자의 약 40%가 외국인이다. 언제까지 외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프랑스를 선택할 수 있을까. 물론 1998년 법 개정으로 외국인 박사학위 준비자를 위한 체류증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실제 이들이 체류증을 발급받는 경우는 4명 중 1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노동계약이 불가능한 학생비자를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사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외국인 박사학위 준비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학위를 딴 뒤에도 프랑스에 머무를 것이라고 답변한 외국인 박사학위 준비자 수는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프랑스에서 연구직으로 일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사회과학 자리는 한정돼 있고, 임금도 낮다. 학위만 따면 콜롬비아로 돌아갈 것이다.” 국립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도시인류학을 전공하는 파올라의 말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7년 10월호(제372호)
Le blues des doctorants
번역 박현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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