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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폭등, 약세 사이클 탈출 난망
[Finance] 불붙은 국제 유가 오름세 언제까지 계속될까
[92호] 2017년 12월 01일 (금)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최근 국제 유가의 급등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촉발했다. 여기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연장 기대, 러시아와 나이지리아의 동조 등이 맞물려 오름세를 떠받치고 있다. 이 추세는 상당 기간 지속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국제 유가의 장기 약세 사이클이 몇 년 되지 않았다. 과거 경험에 비춰, 5~10년은 더 박스권에 머물면서 과당경쟁이 충분히 해소돼야 본격적으로 유가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셰일과 기술혁신을 앞세운 미국의 공세적 석유 생산과 수출도 유가의 발목을 잡는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칼리드 팔리흐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이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회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REUTERS
 
국제 유가가 지난 몇 개월 강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 석유 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2018년 3월 이후에도 감산 정책을 지속할 것이 비교적 확실한데다 ‘왕자의 난’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정 불안이 한몫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셰일가스 대량 개발과 생산이 계속돼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에서 발생한 대규모 숙청 사태가 이 전망을 흔들고 있다. 숙청을 주도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감산 정책 강경론자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우디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2018년 기업 공개를 앞두고 있다. 사우디로서는 그 가치를 높이려 무엇이든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유가를 높여 가치를 띄우는 것이다. 여기에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가 생산을 줄일 거란 소식이 더해졌다. 2017년 11월 말로 예정된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 회의에서 원유 감산 합의를 연장할 것이란 기대까지 합해져 상승폭을 키웠다.
 
국제 유가는 최근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11월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57.35달러를 기록해 2년5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5년 6월30일 종가 62.83달러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17년 6월보다 무려 15달러나 올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두바이유 역시 11월7일 배럴당 62.39달러로 29개월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원유시장의 분위기가 최근 2년 동안 이처럼 뜨거웠던 때는 없었다. 시장의 재균형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것’이란 오펙의 레토릭이 먹혀드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는 10월 말 이래 계속 배럴당 60달러를 웃돌고 있다. 선물시장에선 수개월째 ‘백워데이션’(backwarda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물가격이 선물가격을 넘어선 것이다. 원유 등 실물자원의 선물가격은 보통 현물가격을 상회한다. 보관비용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요가 우세할 때는 현물을 보유하는 게 이익이란 판단에 현물가격이 선물가격보다 높아진다. 브렌트유 시장에선 현재 시점에서 원유를 더 높은 비용에 구매할 용의가 있는 수요자가 많음을 뜻한다. 이 분위기는 WTI 시장도 마찬가지다. 점차 백워데이션이 가시화하고 있다.
 
약세장 5~10년 더 지속 전망 우세
시장은 흥분하고 있다. 11월 오펙 회의에서 2018년 3월 종료 예정인 감산 결정이 9개월 연장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은 오펙의 추가 감산을 반영하지 않는 시나리오에서 2018년 유가를 50달러대로 제시했다. 추가 감산이 이어진다면 유가는 언제든 반등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국제 유가가 머잖아 70달러 선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심지어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투자은행 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해, 단기간에 브렌트유가 배럴당 75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원유가격의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현대는 석유문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원유가격은 물가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최근 각국의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높이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석유가격의 상승세다. 이는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정상화 명분으로 작용한다. 과연 가격이 이른바 ‘재균형’에 도달할 수 있을까? 세계의 인플레이션은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이는 여전한 의문이다.
 
원유 등 원자재를 포괄하는 상품시장은 커다란 사이클을 그린다. 이를 ‘슈퍼사이클’이라 한다. 1800년 이래 상품시장의 약세장 슈퍼사이클은 평균 20년 동안 지속됐다. 물론 최근엔 그 기간이 짧아졌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발생한 원유시장 약세장 슈퍼사이클도 16년 동안 계속됐다. 1983년에서 1999년까지 지속됐다. 이런 점에서 상품시장 약세장이 5~10년 더 이어질 것이란 추정은 합리적이다. 상품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폭락한 뒤 2011년 1분기까지 꾸준히 회복했다. 이후 약세로 돌아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상품시장 약세장의 시작은 2011년인 것이다. 이번 슈퍼사이클은 겨우 6년이 지났을 뿐이다.
 
현재 원유시장은 이 슈퍼사이클의 두 번째 단계에 있다. 가격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는 단계다. 미국 은행 웰스파고에 따르면 WTI 가격은 30~60달러 선에 갇혀 있다. 이 국면은 5~10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는 WTI 가격이 50달러 중반보다 약간 높아질 수는 있지만 그 이상 오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말한다.
 
이번 사이클이 이전처럼 오랫동안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사이클은 과학적 결과물이 아닌 역사적 경험치에 불과하다. 과거와 오늘은 다르다. 환경도 다르고 변수도 다르다. 그래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상품시장의 역사적 경험치인 슈퍼사이클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해당 산업의 흥망 사이클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통상 약세장 슈퍼사이클은 세 국면으로 이뤄진다. 가격 붕괴, 수년 동안의 박스권, 장기간의 낮은 가격으로 인한 원유 기업들의 파산과 뒤이은 투자자들의 이탈 국면이 그것이다. 강세장이 오기 위한 필수 조건은 허약한 생산·탐사 기업들이 무너지는 것이다. 현재는 이 국면을 지나가고 있다. 미국 법률회사인 헤인즈앤드분(Haynes and Boone)의 최근 통계를 보면, 북아메리카에서 2015년부터 2017년 초까지 모두 128개의 오일·가스 생산 회사가 파산 신청을 했다. 이 정도면 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직 강세장이 오기까지 충분한 수가 파산한 것은 아니다. 원유 탐사, 개발, 생산 기업들의 파산은 12~18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벌어질 전망이다. 파산 사이클이 끝나려면 갈 길이 여전히 멀다.
 
현재 살아남은 곳은 내핍을 학습한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유가가 반등하는 국면에서 언제든 생산을 재개할 수 있다. 시장이 강세장으로 바뀌려면 파산의 절정기가 지나야 한다. 그로 인해 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돼야 잠재적 공급 가능성을 능가하는 수요가 발생한다. 아직은 그런 단계가 아니다. 1800년부터 축적된 자료를 보면 가장 짧은 약세장도 13년간 지속됐다. 현재의 약세장은 이제 겨우 6년이 지났다. 약세장은 박스권 가격대로 상당 기간 지속되며 허약한 기업들의 파산을 부채질할 것이다. 강세장이 오려면 약한 기업들이 무너져 과도한 경쟁 구도가 깨져야 한다. 그 과정이 완료돼야 약세장은 비로소 끝난다. 현재로선 약세장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원유 채굴이 한창인 미국 텍사스의 유전. 미국의 원유 개발은 최근 유가를 안정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REUTERS
 
미국의 수출·기술혁신 완충재 구실
현재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달러 정도 가격차를 보이고 있다. 브렌트유가 더 비싸다. 이런 차이는 수년 만에 처음이다. 그래서 미국산 원유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 실제 미국산 원유 수출은 역사적 고점을 경신했다. 시장의 최대 고객인 중국을 포함해 전세계 정제 기업들은 미국 걸프만의 선적을 예약해놓은 상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생산도 급증하고 있다. 2016년 하루 50만 배럴 수준에서 2017년 100만 배럴 수준으로, 그리고 10월 말에는 200만 배럴을 넘어섰다. 사상 최대다. 이는 미국의 셰일오일 산업이 관련 기업들의 파산에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산 원유 수출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미국산의 수출은 석유가격 급등을 막는 완충재가 되고 있다.
 
원유가격의 급등을 막는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바로 기술혁신이다. 셰일오일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전통 원유 분야에서도 기술혁신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채굴 장비인 리그(rig) 수는 원유가격의 반등에 힘입어 늘고 있지만 관련 노동자 수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원유 채굴의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급속히 바뀌기 때문이다. 리그의 자동화는 리그당 필요한 노동자 수를 줄이고 있다. 과거엔 20명을 필요로 한 일이 지금은 5명이면 충분하다. 석유산업 역시 생존하기 위해 효율성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살아남기 위해 자본이 선택한 길은 하나였다. 직원들을 해고하고 자동화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덕에 채굴 원가는 나날이 내려가고 있다. 이는 결국 원유 가격을 내리는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듯, 석유가격 역시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인다. 가격이 오르려면 최소한 지나친 경쟁 구도가 해결돼야 한다. 그 과정이 슈퍼사이클로 나타나며 오랫동안 지속된다. 일부에서 말하는 원유가격의 급등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과잉생산은 동반자적 관계에 있다. 자본은 돈이 되는 곳에 몰려 과잉 생산을 낳고 마침내 가격을 폭락시켜 공황을 낳는다. 석유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과잉 투자·생산으로 가격 폭락이 지속되면서 지나친 경쟁과 투자가 자연스레 해소돼야 비로소 가격이 다시 오를 수 있다. 그 과정은 언제나 그렇듯 생각보다 오래 간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 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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