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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러시아’에서 활로 찾는 작은 경제
[세계는 지금] 유럽화 바람 거센 동유럽국 몰도바
[92호] 2017년 12월 01일 (금) 박대희 pth9430@kotra.or.kr
옛 소련에서 독립한 동유럽의 작은 나라 몰도바는 최근 몇 년간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유럽과 통합하려는 행보를 이어가며 경제도 활기를 띠었다. 농업국가에서 벗어나려는 국가 개조 사업을 벌여 동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로 주목받고 있다. 몰도바의 지정학적 위치에 주목한 외국 기업들의 투자 움직임도 활발하다. 주요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고 한국국제협력단 사업도 진행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없지 않다. 하지만 2016년 말 친러시아 성향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정세가 복잡해졌다. 앞으로 몇 년이 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시기다.
 
박대희 KOTRA 우크라이나 키예프무역관 과장
 
   
2017년 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이고르 도돈 몰도바 대통령(가운데)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기 전 크렘린궁에서 열린 무명용사 헌화식에 참석해 지나가는 군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REUTERS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7~2018 글로벌 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몰도바는 2016년보다 11계단 오른 89위를 기록했다. 이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가장 높은 상승폭으로 최근 빠르게 변화하는 몰도바의 상황을 대변한다. 인구 약 350만 명, 면적 3만3851km2인 동유럽의 작은 국가로 우리에겐 다소 낯선 곳이지만 몰도바는 최근 5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며 동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나라 중 하나다.
 
몰도바는 옛 소련 시절 국가 전체 포도밭의 3분의 1이 집중돼 ‘소련의 포도주 공장’이라는 별칭을 가졌지만, 독립 뒤 각종 부패와 내전 등의 영향으로 경제가 무너져 ‘동유럽 최빈국’의 오명을 얻었다. 그러나 전통적 우방국인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 최근 유럽연합(EU)과의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몰도바 전체가 국가 개조로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몰도바가 과연 과거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 사람들에게 ‘몰도바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에서 찍어보라’고 하면 정확한 위치를 지목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이종종합격투기(UFC) 파이터로 유명한 김동현 선수가 2004년 몰도바에서 열린 세계삼보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선발됐다. 대회 참가를 위해 비행기에 올랐지만 정작 대회장에는 발도 들이지 못했다는데, 그 이유가 ‘몰도바’(Moldova)를 ‘몰디브’(Maldives)로 착각했기 때문이란다. 다소 어처구니없는 일화지만, 우리에게 몰도바가 얼마나 생소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과 몰도바의 관계가 다른 옛 소련 국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몰도바는 1992년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25년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몰도바에는 삼성, LG, 현대·기아자동차 같은 한국의 대표 브랜드들이 진출해 있고 몰도바 연수생 초청 사업 등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사업도 이뤄졌다. 덕분에 몰도바 사람들은 우리가 몰도바를 아는 것보다 우리에 대해 더 잘 안다.
 
현재는 발칸반도 북동쪽 끝에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와 국경을 맞댄 작은 내륙국이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몰도바는 유럽과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라였다. 몰도바는 중세 유럽 오스만제국에 대항했던 ‘몰다비아, 왈라키아 공국’이 기원인데, 당시 활동 영역이 지금의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서남부 지역을 아울렀다고 하니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현재의 몰도바 지역이 러시아제국에 편입되면서 루마니아와 분리됐으나, 몰도바와 루마니아는 역사적으로 공통점이 많고 문화적·민족적 동질성이 매우 강하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몰도바의 공용어는 루마니아어다.
 
이 때문에 독립 직후 루마니아와 통합 여론이 형성됐다. 통합 움직임은 몰도바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슬라브계 주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1992년 민족간 대규모 유혈 사태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루마니아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됐지만, 지금도 동부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분쟁 지역으로 남아 국가 경쟁력을 약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몰도바는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국내총생산(GDP)의 14.3%를 농업이 차지하고 있다. 농업 종사자는 전체 노동 인구의 33.7%에 달한다. 그래서 그해 작황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몰도바는 곡물·과일·채소·와인·담배 등을 생산하는데, 특히 몰도바 와인 ‘크리코바’(Cricova)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제조업은 몰도바 GDP의 20.9%를 차지한다. 주로 직물과 일반 소비재 품목 생산이 많다. 최근에는 저렴한 노동력과 유럽 및 독립국가연합(CIS) 국가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을 고려해, 몰도바에 제조기지 건립을 추진하는 외국계 기업이 늘고 있다. 내륙국이지만 다뉴브강 하구의 항만시설을 이용하면 흑해를 통한 해상 교역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아직까지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정부 차원의 투자 인센티브는 없으나, 몰도바 국내에 산업공단 10곳과 자유경제구역(FEZ) 7곳이 있고 이를 활용한 외국계 기업의 투자 유치가 이뤄지고 있다. 몰도바의 서비스업은 GDP의 64.8%로 전체 노동인구의 54.2%가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와인 전문가가 몰도바 티라스폴의 크빈트 코냑 공장에서 와인과 코냑을 저장한 통 앞을 지나가고 있다. 러시아가 소비하는 와인의 50%가 몰도바산일 정도로 몰도바는 ‘와인 천국’이다. REUTERS
 
몰도바에 부는 ‘유럽화’ 바람
다른 옛 소련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몰도바의 경제 역시 러시아 의존도가 높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지하자원이 없는 몰도바는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 이 때문에 몰도바는 러시아의 에너지 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2013년 친유럽 성향의 니콜라에 티모프티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몰도바의 대외 정책은 크게 달라졌다. 러시아와 밀월관계를 정리하고 과감한 친유럽연합(EU)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2013년 11월 유럽연합과 협정 체결을 시작으로, 2014년 4월 단기 무비자 협정 발효, 2014년 9월 포괄적 자유무역협정(DCFTA) 발효 등 유럽연합과 통합하려는 조처를 잇달아 시행했다.
 
몰도바는 2006년부터 ‘중부유럽 자유무역협정’(CEFTA)에 가입해 발칸반도 국가들과 10년 이상 자유무역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몰도바와 유럽연합의 경제적 연결고리를 더욱 강하게 해주는 기폭제가 됐다. 몰도바의 전체 무역 규모는 2016년 기준 60억달러 수준으로 그리 많지 않다. 대유럽 수출은 13억달러, 수입은 1억9천만달러다. 각각 몰도바 전체 수출입의 66%와 49%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몰도바와 CIS의 교역액과 비교하면 2~3배 많은 규모다. 몰도바의 대CIS 수출은 4억달러(전체 수출의 20%), 수입은 1억달러(전체 수입의 25%) 수준이다.
 
러시아 처지에선 몰도바가 자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달갑지 않다. 하지만 전체 인구의 약 75%가 루마니아어와 다름없는 ‘몰도바어’를 쓰는 ‘몰도바인’임을 고려하면 몰도바의 유럽화는 시간 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또 이웃나라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혁명’이 몰도바 국내의 분위기를 고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러시아는 몰도바의 유럽연합 통합 움직임에 대해 에너지 공급 중단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으며, 몰도바의 주요 수출품인 와인 수입 금지 같은 통상 압박을 가했다.
 
몰도바 경제는 2000년대 들어 크게 두 번 부침이 있었다.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세계경제 위기, 2015년부터 본격화한 러시아의 경기 침체와 몰도바-러시아 관계 악화로 인한 마이너스성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를 제외하면 5% 안팎의 비교적 견실한 성장세를 보였다. 또 인접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 비해 빠른 위기 회복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13년에는 몰도바 역사상 최고인 9.4%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고, 2016년에는 CIS 국가 전체의 경기 침체 상황에서도 4.1%의 높은 경제 회복세를 보였다. 2017년에도 3%대의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몰도바가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유럽 표준에 맞춰 각종 제도를 개선하고 규제를 개혁함으로써, 기업의 경제활동을 돕고 외국인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기업 환경평가서(Doing Business 2018)에 따르면 몰도바는 전체 190개국 중 44위를 차지했다. 이는 친유럽 성향 정부가 구성되기 전인 2012년 81위보다 무려 37계단 뛰어오른 기록이다.
 
그러나 최근 몰도바 국내의 정치 상황은 미래를 점점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2016년 말 당선된 친러시아 성향의 이고르 도돈 대통령은 유럽연합과의 협정 무효화, 친러시아 노선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 정권이 교체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7년간 집권했던 친서방주의 여당 지도자들의 대규모 부정 축재다. 도돈 대통령의 등장은 그동안 친서방주의를 표방한 몰도바의 각종 정책 추진을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친러시아 대통령 등장
실제 상황은 복잡 미묘한 양상을 띤다. 대통령은 친러시아주의자지만, 행정부를 운영하는 총리는 친서방주의 인물이다. 몰도바 국회 역시 친유럽 정당이 다수를 차지해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업무를 추진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몰도바 대통령과 행정부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정부가 국가 수장의 지시를 듣지 않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몰도바 내부의 중요 과제를 처리하는 데 나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 중심의 허약한 경제구조, 후진적인 금융 시스템, 인프라 개선 필요, 민족 갈등, 고급 인력 유출 등 현안 하나하나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몰도바의 외교정책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이웃나라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유로마이단 혁명의 원인에서 찾아볼 수 있듯, 갑작스러운 친서방주의 노선 폐기는 몰도바 내 정치적·민족적 갈등을 격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돈 대통령이 이끄는 향후 3년이 몰도바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과거의 유산을 청산하고 미래지향적인 나라로 변화할지, 내부 정치 투쟁에 사로잡혀 혼란스러운 정국을 이어갈지, 지금 몰도바는 기로에 서 있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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