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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의 마케팅, 거기에 있는 무엇
[편집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92호] 2017년 12월 01일 (금) 이코노미 인사이트 economyinsight@hani.co.kr
정상우 발행인·편집자 book@writinghouse.co.kr
 
   

<무인양품, 보이지 않는 마케팅>
마스다 아키코 지음
노경아 옮김
라이팅하우스 펴냄
1만3천원

<무인양품, 보이지 않는 마케팅>, 이 책을 계약할 때 출판사의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첫 책을 출간한 지 5년이 다 돼가는데 어떤 분야에서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다. 내심 경제·경영서가 주력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출간하는 책들은 실용서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며 널뛰고 있었다. 당연히 어떤 분야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 때 이 책의 원서가 눈에 들어왔다. 원제는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MUJI식 마케팅’으로 무인양품을 마케팅 관점에서 분석한 최초의 책이다. ‘브랜드 없는 좋은 품질의 상품’(無印良品)을 판다는 콘셉트만으로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기업. 기존 마케팅 이론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승승장구하는 기업. 목표 고객을 압축하는 전용 상품 대신 최대공약수식 범용 상품을 만드는 기업. 도서 소개 자료를 읽다가 이 부분에서 무릎을 쳤다. 바로 이거였다. 내가 시급히 분석해야 할 벤치마커는 무인양품이었다. 하나의 카테고리에서도 살아남기 힘든 시장에서 어떻게 식품, 의류, 가구, 가전, 주택을 망라하는 라이프스타일 제안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 비밀을 알고 싶었다. 경영학의 대가들이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선택과 집중에 전념하라고 소리칠 때, 무인양품은 7천 개 이상의 품목으로 구색을 넓혀가며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기존의 모든 마케팅 공식을 무력화하며 시장을 장악해갔다. 과연 어떻게?
 
책 판매의 가능성을 따지기보다 이 물음에 대한 개인적 궁금증이 앞서 계약을 서둘렀다. 결과적으로 출판사는 좋은 책을 얻었다. STP(세그멘테이션, 타기팅, 포지셔닝) 분석이 점차 무의미해지는 시장 상황에서 무인양품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 기업에도 시급한 과제였으니까. 저자 마스다 교수가 분석한 무인양품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했다. 지금부터 그 성공의 비밀을 살펴보자.
 
먼저 무인양품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와비사비’라는 말을 이해해야 한다. ‘고요한 아취’를 뜻하는 이 말은 다도에서 발달한 일본 전통의 미의식이다. ‘투박하지만 본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와비와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인 오래된 것’을 의미하는 사비가 결합된 말이다. 양품계획의 마쓰자키 사토루 사장에 따르면 “무인양품의 상품들은 군더더기 없고 일본적인 와비사비를 풍기는 물건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세계에 진출한 무인양품의 매장은 교토의 호젓한 다실에 온 듯 와비사비의 아취를 간직한 공간이 되고, 무인양품의 철학을 담은 상품들은 와비사비 라이프의 경험 자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무인양품의 가나이 마사아키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인 소매 업체는 고객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팔려고 합니다. 그러나 무인양품은 더 나은 삶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은 팔지 않습니다.” 기업체 회장의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 말은 완고한 장인의 자세를 떠올리게 한다. 무인양품은 끝없이 만들어 파는 일, 게걸스럽게 소비하는 일을 일단 멈추고, ‘풍요한 생활’ ‘느낌 좋을 만큼’의 가치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래 쓰면 쓸수록 와비사비의 아취를 풍기는 상품을 만들겠다는 약속. 자신들이 상대하는 고객을 ‘소비자’에서 ‘생활자’로 바꾼 이 인식의 전환이야말로 무인양품의 오늘날을 있게 한 결정적 한 방이다. 생활자에게 어떻게 ‘타깃’이란 말을 들이댈 수 있을까? 무인양품이 이런 철학을 견지하는 한 기존 마케팅 도구는 모두 의미를 잃고 만다.
 
그렇다면 무인양품은 정말 마케팅을 하지 않는 기업일까? 저자는 마치 마케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 제품 개발 단계부터 이미 ‘보이지 않는 마케팅’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른바 ‘3무(無) 전략’이라는, 이젠 너무나 유명해진 세 전략이 그것이다. 첫째, 경쟁사들이 너도나도 브랜드 이미지를 팔 때, 무인양품은 과시용 소비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하며 상품 어디에도 브랜드 표시를 하지 않는 ‘노 브랜드’를 지향했다. 둘째, 타깃 분석을 하고 소비자의 기호에 맞춘 상품을 출시하는 대신, 기획자가 전세계를 돌며 찾아낸, 생활에 쓸모 있는 현대의 민예품을 선보였다. 그야말로 ‘노 마케팅’을 실천한 것이다. 셋째, 디자이너의 개성보다 ‘개성의 한 걸음 앞에서 멈춘’ 심플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생략하고 간소화해서 오히려 여백의 미를 더하는 힘, 이 ‘노 디자인’ 전략 덕분에 무인양품은 오히려 최고의 디자인 파워를 지니게 되었다. 모두 기존 경영 상식과 정반대로 움직여서 얻은 성취다.
 
무인양품의 철학과 마케팅 전략을 분석한 이 책을 만들고 나서, 나는 한 분야에서도 카테고리 킬러가 되지 못한 불안과 조급증 대신 어떤 느긋함과 평화를 얻었다. ‘무지러’(MUJIRER)는 무인양품의 철학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무지다운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고객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타깃을 분석하고 틈새를 공략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자발적인 팬들이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은 전쟁의 은유로 가득하다. 하지만 소비자의 정반대편에는 ‘생활자’가 있다. 목표를 공략하려는 노력 대신 독자와 함께 어울리겠다고 생각하자, 전혀 다른 일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인사이트 책꽂이
 
   
굿차트
스콧 베리나토 지음 | 이미숙 옮김 | 한스미디어 펴냄 | 2만5천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주필이 쓴 데이터 시각화 입문서다. 데이터 시각화는 자료에 담긴 내용을 차트나 지도 등 시각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저자는 훌륭한 차트를 만들려면 시각화의 기본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보여줄 상대가 누구인지, 전달하려는 내용이 뭔지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적인 데이터 비즈니스, 시각적 발견, 아이디어 설명, 아이디어 창출 등 4가지 상황으로 나눠 설명한다.
 
 
   
현실의 경제학
스티븐 코언, 브래드퍼드 들롱 지음 | 정시몬 옮김 | 부키 펴냄 | 1만5천원
경제학자 2명이 쓴 미국 경제정책의 역사다. 생산성 향상에 매진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며 바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번영을 이루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책이다. 저자들은 미국의 경우 특정 유형의 정책을 고집하기보다 정책의 연속적 재설계를 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선도적으로 새로운 경제 영역을 열어나갔고, 이는 이념에 입각한 게 아니라 실용적 선택이었다고 지적한다.
 
 
   
진공관, 소리의 빛
서병익 지음 | 필요한책 펴냄 | 1만5천원
50여 년 동안 진공관 앰프 등 오디오 기기를 연구한 오디오 업체 대표가 일반인에게 필요한 오디오 기초 지식을 풀어쓴 책이다. 오디오는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많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기여서, 어떤 것이 좋은 오디오인지를 두고 여러 의견이 충돌한다. 이런 상황을 틈타, 완전히 엉터리인 주장이나 허황된 과대광고가 판을 치곤 한다. 음악을 즐기는 일반인이 잘못된 주장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기초 지식을 다뤘다.
 
 
   
온 트레일스
로버트 무어 지음 | 전소영 옮김 | 와이즈베리 펴냄 | 1만8천원
길은 왜 생겼을까? 동물은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왜 누군가는 이끌어가고 누군가는 따라갈까? 언론인인 저자가 이런 의문을 품고 전세계를 돌아다닌 뒤 쓴 책이다. 먼저 화석을 바탕으로 동물들이 이동을 시작한 이유를 탐구한다. 이어 곤충이 ‘집단지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떻게 이동 네트워크를 만드는지 논한다. 그 뒤 포유류와 고대 인류의 이동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교통체계와 통신망, 연결 방식을 살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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