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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내는 순간 빠져나가는 것
[곽윤섭 기자의 포토 인]
[92호] 2017년 12월 01일 (금) 곽윤섭 kwak1027@hani.co.kr
   
 

글·사진 곽윤섭 <한겨레> 선임기자

 
<존 버저의 글로 쓴 사진>은 소설가, 사회비평가, 예술평론가로 이름을 떨친 존 버저(1926~2017)가 쓴 책이다. 글을 보고 사진이 떠오르는 경험이 전에도 없진 않으나 이 책에서 나는 숱한 사진들을 봤다. 짧은 글 29편으로 이뤄진 이 산문집에는, 사진이라곤 저자 본인과 마리사 카미노의 흐릿한 기념사진 한 장뿐이다. 책의 8번째 글 제목은 ‘바위 아래 개 두 마리’다. “두 사람 모두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개들이 물끄러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인은 등을 돌리고 서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마치 소금병을 찾아 주기라도 하려는 듯 엉거주춤 서 있었다.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가만히 선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중학교 시절 나의 주 매체는 라디오였다. 마셜 매클루언(맥루한)의 얘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라디오가 텔레비전보다 훨씬 상상력을 촉발하는 매체라는 것은 상식이다. 연재 드라마 <파란낙엽>을 즐겨 들었는데 주인공(주로 여자다)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고 배경화면도 생생히 전달되곤 했다.
 
“궁극적으로 어떤 한 장의 사진은 그 사진에 찍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나와 닮아 있다”고 롤랑 바르트가 말했다. 사진은 찍히는 순간의 모습만 나타낼 뿐, 그의 다른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게 고정한다.
 
서울 충무로역 지하 통로에 ‘충무로 영화의 길’이 있고 대종상을 받은 영화인들의 사진이 있었다. 최근 리모델링 뒤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100인의 캐리커처’로 바뀌었다. 그림이다보니 특정인의 여러 이미지를 떠올릴 만한 확장성이 있긴 하다.
 
가만보니 배우의 얼굴 사진을 놓고 그린다. 한 명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을 놓고 그리기도 하는데, 한 인물을 새롭게 해석할 여지도 있겠으나 저 캐리커처는 저 사진 속 인물로 굳어버린다는 점에서 사진과 별다를 바 없다.
 
둘러보고 걸어 나오는데 녹음된 배우 안성기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충무로는 한국 영화의 본고장이며 한국 영화를 많이 아끼고 사랑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라디오 스타>가 떠올랐는데 누군가는 <겨울 나그네>를, 또 다른 이는 <깊고 푸른 밤>이나 <투캅스>를 떠올릴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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