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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상실과 현지화 전략 실패
[집중기획] 중국 사드 보복 ‘불편한 진실’- ① 위기의 본질
[91호] 2017년 11월 01일 (수) 김외현 oscar@hani.co.kr
중국 정부 차별적 조처 이면에 가려진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성장 둔화
 
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결정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롯데마트는 이미 ‘사업 철수’를 선언했고, 중국 시장의 대표적 한류 기업인 오리온그룹과 아모레퍼시픽그룹은 매출이 반토막 날 정도로 사업이 휘청대고 있다. 일부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 등 새로운 동남아 시장으로 공장을 옮길 궁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의 원인을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진단을 잘못하면 처방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 기업의 위기는 중국 경쟁 기업의 성장, 현지 인건비 상승, 현지화 전략의 실패 등 사업적·구조적인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_편집자
 
한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철수는 한국의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외형적 보복이 어느 정도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깊은 슬럼프에 빠진 구조적 배경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업 철수를 선언한 롯데마트는 여러 원인들을 뭉뚱그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으로 치환하며 중국에서 발을 뺐다는 비판도 있다.
 
베이징(중국)=김외현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 처음 온 건 2002년이었어요. 그때 한국 사람들은 중국을 ‘우리를 따라오는 시장’으로 봤죠. 중국의 현실을 보면서, 이 다음은 어떤 단계가 올 거라고 나름 예상했던 거죠. 물론 모두가 성공한 건 아니었지만 그 메리트(장점)가 컸어요.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이 많은 분야에서 한국을 앞지르니, 이제는 중국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죠. 한국 위로 올라선 중국의 발뒤꿈치만 바라보면서, 중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이 불안해진 것 아닐까요?”
 
2014년 정보기술(IT) 업체를 창업해 운영하는 한기만(41·가명)씨처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논란과 무관하게, 그 이전부터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는 현상은 사드 이후 처음 등장한 게 결코 아니다. 2017년 10월17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국정감사에서 정광영 중국본부장의 ‘야반도주’ 발언이 문제가 됐지만, 이는 한국 기업들의 무단 철수가 중국에서 사회적·경제적·외교적 문제가 됐던 10년 전부터 입에 오르내린 표현이다.
 
<중국철수전략>이란 책을 쓴 이택곤 비케이씨(BKC)컨설팅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철수는 중국 내 인건비 상승, 중국 정부의 규제 강화, 동남아 시장 진출 확대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에 있는 롯데백화점이 2017년 9월16일 토요일 오후 영업 중인데도 매장에 손님이 없어 한산하다. 롯데는 최종 사업 철수 결정 전까지만 해도 중국 현지에서 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했다. 한겨레 김외현 기자
 
현재 베트남 롱안 인근에서 봉제 공장을 운영하는 변준석(54) 소망비나 사장은 2004년 중국에 진출했다가 몇 년 뒤 한국으로 철수한 경험이 있다. 변 사장은 “당시 장쑤성 쑤저우에 공장을 차리고 한국으로 봉제 제품을 수출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오르면서 중국 공장의 운영이 의미 없어졌다. 그때만 해도 아직 인건비 부담은 크지 않았는데, 가장 큰 원인은 환율 변동이었다”고 말했다. 비록 소망비나가 중국에서 곧장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긴 경우는 아니지만, 변 사장은 요즘 중국에 근거지를 둔 많은 기업인, 특히 노동집약성이 큰 동종(섬유)업계 기업인들의 연락을 자주 받고 있다. 중국을 떠나 베트남에 가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기만씨도 요즘 베트남 진출을 검토 중이지만 중국을 아주 떠나기보다 전형적인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 사업의 성장 속도가 꺾였다. 앞으로 사업을 더 키우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 털고 떠날 상태는 아니라고 본다. 여기서 자리잡은 것을 바탕으로, 새로 확장시켜 한 발 걸치는 형태를 만들려는 것이다. 당장 신규 시장을 만들지 않으면 현 상태로는 이 쪽도 고꾸라질 위험이 있다.”
 
언젠가부터 중국 교민들 사이에 베트남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공장 이전을, 어떤 이들은 부동산 투자를 이야기한다. 대기업을 따라가는 2차·3차 벤더 등 협력 업체, 식당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 업체들의 이야기도 많다. 모두 ‘중국 경험’이 베트남에서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씨는 “베트남의 사회제도나 시스템이 중국과 비슷하다. 현재 베트남은 2000년대 초반 중국과 비슷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중국에서 배운 중국어 실력만으로도, 한국어를 배운 베트남인에 더해 중국어를 배운 베트남인까지 현지 인력풀이 확장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국과 베트남을 모두 경험한 변 사장은 “외국인 직원 관리 면에서 확실히 중국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적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한 ‘실적 급여’ 사례를 들었다. 베트남 진출 초기 생산 속도가 너무 느려 걱정이었는데, 중국 시절 경험을 살려 실적 급여제를 도입한 것이다. 중국에선 직원들의 경쟁 속에 생산성이 크게 올랐다. 베트남에서도 생산성이 올랐으나 중국보다는 시간이 걸렸다. 중국만큼 경쟁이 심하진 않지만, 남보다 적은 급여가 자신의 실력 부족을 뜻하는지 신경 쓰는 심리가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변 사장은 해석했다.
 
‘경험의 응용’ ‘경험의 이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한 사장처럼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하지 않고 다른 시장을 알아보는 게 합리적이다. 인건비 상승 등 생산 환경 변화와 피해에 따른 이탈이라면 몰라도, ‘중국 경험’을 위해 그동안 쏟아부은 투자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중 수교 25주년은 교민 사회 형성 25주년을 뜻한다. 재미동포나 재일동포들과 달리 재중 조선족 동포에게는 ‘교민 사회’라는 호칭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탓에 한인 교민 사회는 중국의 부상과 사드 논란을 겪으면서 이제야 뿌리를 내리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1994년 이래 줄곧 베이징에 사는 서만교(46) 포스코아이씨티(ICT) 중국법인장은 “단적으로 말하면, 중국의 한인 사회는 미국이나 일본의 한인들처럼 현지 사회의 맨 밑바닥에서 시작해 성장의 역사와 스토리를 만들어낸 게 아니다”라며 “25년 전에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다가 이제야 한국인들이 중국과 제대로 교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온 한국인들이 예전과 달리 중국을 최소한 대등한 시선으로, 또는 우러러보는 지금이 돼서야 교민의 현지화 과정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겉도는 한인 사회
물론 이런 현지화에 한계는 있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이민이나 영주권 부여에 인색하고, 일본과 달리 동포들의 국적을 모두 흡수해버렸다. 한기만씨는 “사업을 아무리 오래 해도 단지 외국인일 수밖에 없어 붕 떠 있는 상황이 계속 된다. 완전한 토착화는 힘들다”고 말했다. 조선족 동포들과의 관계 재설정도 과제로 떠오른다. 과거 한국인과 함께 일했던 조선족은 농민 출신이 많았지만, 이제는 중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사회·경제적 위상이 높아진 이가 많다.
 
한국어를 전공했거나 한국에 관심 있어 한국 기업의 문을 두드렸던 중국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 일하다 더 높은 임금을 찾아 영어권 기업으로 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무늬만 글로벌’인 한국 기업에서 한국 주재원들과 일하며 임금 격차를 감수해야 했던 것과 달리, 이들은 능력과 실적에 따른 보수를 받으며 ‘신분 상승’도 한다.
 
사드 논란 이후의 국면이 한국 기업의 상황을 힘겹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중국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들은 중국 내 매출 감소를 호소한다. 2016년 7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여행·관광 업계에 가해진 타격은 전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관광이나 친지 방문을 목적으로 한 개인적 방문은 예년 수준을 유지하지만, 단체 관광은 2017년 3월 한국행 패키지 관광 상품 판매를 중단한 당국의 지시 이후 같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중대사관 쪽은 “2017년 9월 개인 방문 비자 신청은 10월 초 국경절 연휴를 앞둔 시점이어선지 다소 늘었다. 그러나 전년 같은 시기와 견줘보면 50~6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국경절 연휴 동안 중국인 600만 명이 88개국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한때 인기 여행지로 꼽히던 한국은 10위권을 벗어났다. 이 기간 롯데면세점은 매출이 2016년보다 15% 줄었다.
 
한류 콘텐츠 업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2017년 1~8월 음향·영상 관련 서비스 수지는 2억2070만달러(약 2500억원) 흑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9% 줄었다. 이 분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라디오, 뮤지컬 등을 포함하는 한류 주력 상품군이다. 2014년 이후 흑자를 유지하다 성장세가 꺾인 것이다. 2017년 3월 중국 당국이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방영 및 포맷 수입과 한국 연예인의 방송 출연 등 각종 제휴를 중단하는 이른바 ‘한한령’을 실시한 이래, 현재까지 계약 중단 27건, 제작 중단 6건, 투자 중단 4건, 행사 지연 3건, 기타 20건 등 총 60건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혔다.
 
장훙썬 중국 신문출판광전총국 부국장은 이와 관련해 2017년 10월20일 기자회견에서 “문화 교류는 온도의 교류이고 이 온도는 마음과 감정에서 나온다”면서 “민심이 통하고 감정이 융합되면 문화 교류와 협력이 적극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류에서 민심이 떠난 것일뿐 당국은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방송국이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고스란히 표절하는 사례가 잇따른 데서 보듯이, 여전히 한류는 중국 대중에게 매력을 잃지 않았다는 반론도 나온다.
 
희망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17년 10월19일 새로 부임한 노영민 주중대사 주최로 열린 베이징 소재 경제유관기관 간담회에서는 2017년 한국의 중국 수출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국무역협회의 2017년 9월 수출입 동향 자료를 보면, 한국의 중국 수출은 2014년 10월 이후 가장 많은 135억2천만달러(약 15조3천억원)로 11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2017년 1~9월 누계 역시 1017억달러(약 115조17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3.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치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질주하는 한국의 중국 수출은 ‘슈퍼 호황’이라 불리면서 항상 수출 품목 1위를 차지해온 반도체 등 부품 수출이 가장 큰 동력으로 꼽힌다.
 
중국이 IT 산업을 새로운 산업 동력으로 삼기 위해 성장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부품 분야는 피해가 크지 않은 셈이다. 자국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한국이라 해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롯데마트의 중국 철수, 현대자동차의 위기 등을 보면서 한국 기업과 교민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2017년 9월 롯데마트 매각 결정과 관련해 위챗 등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롯데가 얼마 전까지도 중국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며 철수 배경을 의심하는 말들이 오간다.
 
   
베이징현대가 2017년 9월25일 추석 미디어 감사 행사를 열어 합작 파트너인 현대자동차와 베이징 자동차의 화합을 과시했다. 담도굉 신임 베이징현대 총경리(왼쪽)와 베이징자동차 천구이샹 상임부총경리가 건배하고 있다. 한겨레 김외현 기자
 
중국의 차별적 보복
롯데는 2017년 4월 이후 중국 주재 한국 기자들에게 “투자 손실을 봤지만 유통망 사업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 “예상보다 실적이 좋다”는 등 중국 철수설을 부인해왔다. 일각에선 롯데의 중국 사업이 2015년 경영권 분쟁 때 신격호 명예회장에게 보고 여부가 문제 됐을 정도로 신동빈 회장의 업적성 프로젝트인 만큼, 완전 철수는 힘들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롯데마트 매각 결정은 모든 것을 단번에 뒤집어버렸다.
 
현대차는 베이징현대 합작법인 공장이 대금 지급을 중단한 데 따른 부품 공급 중단으로 일시적으로 생산라인을 세우는 상황까지 갔다. 현지 언론은 중국 파트너 베이징자동차가 ‘합작 종료’를 고려한다고 보도했다. 베이징현대는 현대차와 베이징자동차가 절반씩 투자한 기업으로 중국 내 공장 5곳을 운영 중이다. 이 보도를 부인하던 베이징현대는 2017년 9월25일 베이징의 중국·한국 기자들을 불러 감사회라는 행사를 열었다. 실질적으로 ‘두 회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는 자리였고, 불안한 시선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읽혔다. 같은 날 현대차가 파견한 담도굉 신임 베이징현대 총경리와 베이징자동차에서 온 천구이샹 상임부총경리는 한 무대에서 건배를 해보이기도 했다.
 
정보기술 업체 대표 한기만씨는 “롯데처럼 ‘중국 철수’를 선언하고 떠나는 일은 롯데니까 가능한 것 아닐까 싶다. 대기업이라도 다른 곳은 그렇게 하기 힘들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야반도주하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권 분란 속에 여론의 온갖 비난을 받다가, 사드 부지 제공이 결정된 뒤 중국의 보복 조처에 시달리면서 갑자기 한국에서 동정 어린 시선을 받는 롯데의 현실이 겹쳐 보이는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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