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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인수전과 재벌의 구태
현대엠코 최대주주인 글로비스의 정몽구 부자 지분 현금화 기회
[7호] 2010년 11월 01일 (월) 김선웅 economyinsight@hani.co.kr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
 
   
 
매각이 발표된 현대건설을 놓고 재계의 형제그룹 간에 한바탕 일전이 펼쳐질 예정이다. 그동안 현대건설 매각 소식이 나올 때마다 현대건설을 부실하게 만든 장본인인 현대그룹이 다시 인수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자격 논란은 없어진 듯하다. 지금은 자격 문제가 아닌 누가 돈을 더 많이 낼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현대건설 매각은 과거 회사를 부실하게 만든 재벌이 다시 자신의 계열로 편입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부실회사를 떼어버린 뒤 재벌이 구조조정과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계열회사들이 건실해지자 다시 그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다. 자격 논란이 일단락된 상황에서 인수 후보자들의 경쟁과 계열사들의 참여는 다시 재벌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상선 등 현대그룹 경영권 핵심 변수
현대건설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는 현대그룹은 인수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넘어서 과장된 행위까지 연출하고 있다. 현대건설 매각 공지가 나오기가 무섭게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은 주요 계열사들이 이사회를 개최해 인수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고인이 되었지만 현대건설 부실의 책임자들을 전면에 내세워 연일 언론에 인수 적임자임을 광고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이렇게 현대건설 인수에 목을 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가장 핵심적 회사인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이 아닌 현대중공업이 명목상 최대 주주로 돼 있다(현대중공업 계열 25.47%, 현대그룹 계열 20.53%). 현대중공업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현대상선의 경영권 위협은 현대상선에 그치지 않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 등 순환출자로 이뤄진 현대그룹 전체의 경영권 위협이 된다. 따라서 현정은 회장이 경영권을 잃지 않으려면 반드시 현대건설을 인수해 현대상선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현대건설 인수는 현대그룹의 경영권이 달린 문제지만, 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현대증권 등 현대그룹의 주요 상장 계열사들의 주주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금호그룹은 대우건설 인수를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재무적 투자자나 채권자에게 상당한 이익을 보장해줘 유동성 위기에 몰려, 결국 다시 뱉어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승자의 저주’가 현대건설 인수에도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현대그룹은 최근 재무적 투자자보다 전략적 투자자를 유치해 원리금 지급 부담 없이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대그룹은 금호그룹보다 더 불리한 상황이다. 금호그룹은 당시 대우그룹을 인수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의 그룹 경영권이 걸려 있고, 경쟁 상대방이 현대자동차로 자금 경쟁에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 등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기존 회사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계열사 동원해 주주 이익 희생
현대상선 등 계열회사 처지에서는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추가로 자금을 투입해야 하고, 이런 상장 계열회사의 주주들은 현정은 회장의 지배권 때문에 희생당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현대건설 인수 참여 소식에 현대상선 등 계열사의 주가가 올라가는 것은, 주주들이 현대건설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방증이다. 현대건설 인수에 계열사들이 동원되고 다른 주주들이나 이해관계자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현대그룹은 여전히 과거 재벌의 경영체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그룹과는 달리 조용한 듯하다 결국 현대건설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현대자동차그룹도 마찬가지다.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고 하지만, 역시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들을 동원해 현대건설 인수를 밀어붙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가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며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그룹이 굳이 3조~4조원의 현금을 투자해 건설회사를 경영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현대자동차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제조 관련 계열사들이 건설회사를 인수할 이유는 없다. 현대건설이 아주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나와서 나중에 되팔아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재무적 투자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동차 글로벌 메이커로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는 현대자동차 등이 건설 계열사 인수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 계열사 주주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결정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르는 사실상 독점기업으로, 내수시장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가격과 품질에 대해 소비자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주주 입장에서는 독점적 이익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 현대차는 건설 인수 자금을 자동차 개발에 투자하고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정의선 경영권 상속 자금줄 시각도
   
 
현대자동차는 하청업체의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 단가 후려치기, 비정규직 문제 등 불공정 하도급 거래의 상황에서 과연 하청업체와 노동자가 건전한 파트너십을 맺고 현대자동차의 품질 개선에 혁신적인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이 중요한 시기에 건설 인수에 쏟아부을 수조원의 자금을 품질 개선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쓴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는 소유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현대건설을 인수해 현대차그룹의 건설 계열사인 엠코와 합병시킨다면, 현재 엠코의 최대 주주인 글로비스의 자산이 커지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부인하지만 이로 인해 글로비스의 최대 주주인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 가치가 커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표> 참조).
이런 시나리오에 따라 현대건설 인수 뒤 현대엠코와 합병을 한다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는 자신의 지분을 현금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특히 정의선 부회장은 그룹 전체에 대해 안정된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현대자동차나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현대건설과 현대엠코의 합병은 또 하나의 자금줄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모두 현대건설을 인수하게 되면 그룹 내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며 합리적인 투자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총수의 이해관계를 위한 것이며, 개별 상장회사의 주주나 이해관계자의 이익은 철저히 무시하는 투자 행위다. 과연 현대건설 인수가 ‘승자의 저주’가 될지, 총수의 지배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될지 지켜볼 일이지만, 수조원의 기회비용을 써야 하는 계열회사의 처지에서는 안타까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피보다 진한 현대 가문의 쟁투

   
 
“아버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현대건설….” 고 정주영 회장의 적통임을 홍보하는 현대그룹의 TV광고다. 현대중공업은 2년여 전부터 옛 울산조선소를 창업한 정 회장의 육성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광고전만큼이나 현대그룹과 범현대 가문의 경영권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바다의 ‘선상’에서도 피보다 진한 돈의 쟁투사가 벌어졌다.
2000년 ‘왕자의 난’ 이후 정주영 명예회장이 3부자의 동반 퇴진을 선언하면서 2000년 현대차그룹, 2002년 현대중공업이 순차적으로 ‘현대 왕국’에서 분리된다. 그 사이에 정 회장은 타계하고 현대건설은 채권단에 넘어갔다.
2003년 정몽헌 회장의 비극적 투신 이후 범현대가 연합군은 현대그룹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다. 정주영 회장의 막냇동생인 정상영의 KCC, 2남인 정몽구의 현대차그룹, 6남인 정몽준의 현대중공업이 합종연횡하며, 현정은의 현대그룹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2003년 KCC는 외국인의 인수·합병 위험에서 현대그룹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였다. ‘백기사’를 자처한 KCC는 돌연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사실상 적대적 인수·합병인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 것이다. 2004년 금융감독 당국이 KCC가 매집한 엘리베이터 지분을 매각하라고 결정하면서 경영권 인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2006년에는 현대중공업 역시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아야 한다면서 장외거래를 통해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그 뒤 현대그룹은 유상증자와 우호지분을 확보해 현대상선 경영권을 방어했다. 이제 골육상쟁의 대상은 현대건설이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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