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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풍은 있지만 낙하산은 없다?
[국내 이슈] 연임이냐 교체냐, 불붙은 은행 CEO 선출전
[90호] 2017년 10월 01일 (일) 변휘 hynews@mt.co.kr
2017년 말과 2018년 초 대거 임기 만료… 정권 교체 맞물리며 ‘외풍’ 우려
 
은행권 주요 최고경영자(CEO)의 인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은행들이 사상 최고 실적을 내면서 현직 CEO들의 연임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지만 정권 교체 뒤여서 외풍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동안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낙하산’ 논란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권력 실세나 금융 관료에 줄 잘 대는 사람이 거대 은행의 수장이 되곤 했다. 이번엔 권력 실세와 관료 집단의 지원 없는 내부 출신 인사나 외부 전문가가 대거 추천될 수 있을까.
 
변휘 <머니투데이> 기자
 
   
은행권 주요 최고경영자(CEO) 인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정권 교체와 맞물려 ‘외풍’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비상경제대책단에서 활동하다 최근 KDB산업은행 수장에 오른 이동걸 회장(오른쪽)이 2017년 6월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9월부터 주요 금융지주사와 은행의 최고경영자(CEO) 교체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은행권 지배구조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금융권은 정부가 특수 목적으로 설립한 정책금융기관은 물론이고 정부 지분이 1%도 없는 민간 주주 회사까지 정권 교체의 영향을 받아왔다. 공적 기능을 부여받은데다 대표적 인허가 산업인 탓에 금융 당국과 정치권의 압력·감시에서 늘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뒤 첫 CEO 인사 시즌인 2017년 말과 2018년 초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최근까지 완료된 은행권 CEO의 인사 결과에 대한 금융권의 대체적인 관전평은 “외풍은 있지만 전보다 약하다”로 모아진다. 미풍의 결과는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동걸(李東杰) 회장이 이동걸(李東傑) 회장으로 교체됐다. 전임 이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금융인 지지 선언’을 주도하는 등 뚜렷한 친박(친박근혜) 성향으로 인해 2016년 2월 회장 취임 당시부터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새 정부 출범 뒤 ‘전 정권 인사’라며 줄곧 교체 논란에 시달렸다. 민간 금융사 출신으로 산업은행의 핵심 업무인 구조조정과 관련해 경험이 없다는 지적도 받았다. 논란에 비해서는 대우조선해양·한진해운·현대상선·STX조선해양 등 굵직한 구조조정 작업을 재임 기간에 무난하게 수행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국책은행장에게 정권 교체는 버틸 수 없는 파도였다.
 
이름은 같지만 신임 이 회장은 경력이나 성향이 정반대다. 참여정부 때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과 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진보 성향 경제학자로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비상경제대책단에서 활동했다.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는 경기고 동기다. 신임 이 회장과 같은 날 선임된 은성수 한국수출입은행장은 행시 27회로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 세계은행 상임이사를 지낸 국제금융통이다. “낙하산과는 거리가 멀지만 굳이 고리를 찾자면 호남 출신”이라고들 한다.
 
부산과 대구에 휘몰아치는 ‘외풍’
민간 금융사 중 외풍이 가장 거센 곳은 부산이었다. 새 정부 출범에 즈음해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이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불명예 퇴진했기 때문이다. BNK금융 이사회는 몇 차례 연기 끝에 9월8일 이사회를 열어 김지완 전 하나금융투자 사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최종 낙점했지만, 김 내정자는 낙하산 논란에 시달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부산상고 동문으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서 경제 고문으로 참여한 이력 때문이다. 참여정부 실세들이 김 내정자를 지지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BNK금융은 부산·울산·경남 등 지역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표 지방 금융사로 서울에서는 못 느끼겠지만 지역에서 회장의 향배는 엄청난 화제였다”고 말했다. “TK(대구·경북) 출신으로 전 정권과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던 성 전 회장이 검찰 수사로 낙마하고 예상치 못한 김지완 내정자가 등장해 대세로 여겨졌던 박재경 BNK금융 사장을 넘어선 것은 외압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라고 말했다.
 
대구에도 강풍이 불고 있다. 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상품권 깡’을 활용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경찰 내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박 회장은 9월 초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를 만나 거취를 논의하기도 했다. DGB 노조는 박 회장과 현직 임원들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DGB금융 안팎에선 박 회장이 임기를 2년6개월이나 남겨둔 만큼 당장 사퇴 여부를 결정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최근 변호사를 선임한 것도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법적 공방에 대비하겠다는 의도다. 박 회장은 사외이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수사 상황 등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반기 금융권 최대 관심사였던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은 예상외로 싱겁게(?) 마무리됐다. KB금융은 9월1일 회장 선출 작업을 개시하고 약 2주 만인 9월14일 심층면접 후보로 윤종규 현 회장을 단독 추천했다. 애초 윤 회장과 함께 김옥찬 KB금융 사장,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이 최종 후보군에 올랐지만 고사했다. 윤 회장의 연임이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KB금융은 국내 최대 규모의 완전 민간 금융회사지만 낙하산 인사, 정치세력을 등에 업은 경영진 간 내분 사태 등이 반복돼왔다. 2007년 통합 3기 은행장 선출을 앞두고 강정원 행장과 2인자 김기홍 수석부행장이 맞붙었고 지주사 출범 뒤에는 예상을 깨고 초대 회장이 된 황영기 회장과 강 행장이 반목했다. 또 금융권 경력이 전무한 ‘MB맨’ 어윤대 회장과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 임영록 사장, 이후 1인자가 된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갈등이 계속됐다. 결국 2014년 국내 금융권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낸 ‘KB 사태’를 초래했다. 특히 열거된 갈등의 당사자들 중 단 한 사람도 KB 출신이 없다는 건 조직원들에게 더 큰 ‘CEO 트라우마’를 안겼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3년 전에도 외압은 마찬가지였다. 유력한 회장 후보는 금융 당국이 미는 외부 인사였고, 호남 출신으로 정치권 ‘뒷배’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온 윤종규 회장의 선임 가능성은 낮게 점쳐졌다. 하지만 당시 이사회가 조직 안정을 목표로 KB에서 장기간 일했던 윤 회장을 최종 낙점했다. 이번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로 노동계와 유대가 깊다는 김정민 전 KB부동산신탁 사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등 각종 외압설이 난무했지만 KB금융 이사회는 “안정적 성장”에 무게를 두고 윤 회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2017년 8월17일 부산 남구 문현금융단지 부산은행 본점 로비에서 전국금융산업노조 부산은행지부 조합원들이 BNK금융 회장 ‘낙하산 인사’ 반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심사는 은행연합회와 하나금융 회장
KB금융 회장 선출 결과에 대해 금융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연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평가했다. 추락했던 그룹의 위상을 3년 만에 다시 리딩뱅크 반열로 이끈 윤 회장의 경영 성과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과거 민간 금융 인사에 ‘관치’가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시장에선 여전히 걱정이 많지만 현 정부에선 개입 ‘비슷한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BNK금융의 낙하산 논란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당국은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여론이 각종 루머를 퍼나르며 의혹을 부풀리면서 이사회가 알아서 ‘실세’를 뽑는 선택을 한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참여정부와 현 정부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김 내정자를 낙하산으로 여기기보다 권력과 ‘말이 통하는’ 실세로 여기고 이 능력을 활용하려는 선택을 했을 것이란 평가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이다. 우선 차기 은행연합회 회장 경쟁은 하영구 회장의 임기 만료(2017년 11월30일)를 앞두고 10월 중순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은행연합회 회장은 한때 모피아의 전유물이었지만 최근 은행업을 경험한 민간 출신을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금융권에선 과거 신한지주 내분 사태의 주역이던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이 은행연합회장을 명예회복의 기회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와 함께 재무관료 출신으로 기업은행장·외환은행장을 역임하는 등 민관을 두루 경험한 윤용로 전 행장, 옛 국민·주택은행 통합 뒤 유일한 행원 출신 행장이던 민병덕 전 KB국민은행장 등이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8년 초에는 하나금융지주에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김정태 회장이 국내 금융 지주사 체제 출범 뒤 사상 처음인 ‘3연임’에 나서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그룹 최대 난제이던 외환은행 합병 작업을 조기에 마무리하면서 조직을 안정시킨 게 최대 성과로 꼽힌다. 하나금융의 주가가 최근 1년 새 2배 가까이 오른 것도 김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높이는 배경이다. 다만 3연임 앞에 붙는 ‘사상 처음’이란 수식어는 부담이 된다. 아울러 외환은행 합병은 성과로 꼽히지만 그 출발은 김승유 전 회장 시기였던 만큼 이후 김 회장이 두 차례 연임하면서 눈에 띄는 인수·합병(M&A)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무엇보다 국정 농단 사태와 얽혀 있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앞서 검찰은 ‘최순실 모녀의 해외 체류를 도운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본부장의 승진은 김 회장이 청와대로부터 청탁받은 결과’라고 최순실씨 공소장에 기재한 바 있다. 반면 하나금융은 청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김 회장이 은행장에 전달한 바는 없었으며 은행 내부 기준에 따라 승진이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도 임기 만료가 다가오고 있으나 외국계 은행 특성상 연임이 유력하다. NH농협은행은 그간 단 한 차례도 행장의 연임 사례가 없어 이경섭 행장의 교체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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