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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 줄고 일자리 늘어날까
[국내이슈] ‘기아차 판결’로 본 통상임금 논란의 본질
[90호] 2017년 10월 01일 (일) 최하얀 chy@hani.co.kr
표면적으론 ‘체불임금’ 둘러싼 대립이지만 본질은 노동시간 단축 문제
 
법원이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1심 판결에서 기아차 노동조합에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따른 법정수당을 책정하는 데 기본이 되는 임금이다. 통상임금 판결 때마다 재계는 “패소하면 망한다”며 법원에 ‘읍소’했고, 노조는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받는 것”이라며 ‘법리’로 맞섰다. 표면적으론 ‘체불임금’을 둘러싼 노사 대립으로 비치지만, 한국 노동시장의 근본 문제인 장시간 노동이 통상임금 논란의 본질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연장·야간근로를 당연시하고 신규 채용 대신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기 때문에 통상임금 논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노동 현장의 뿌리 깊은 장시간 노동이 줄고 일자리가 늘어날지 주목된다.
 
최하얀 <한겨레> 기자
 
   
2017년 8월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기아자동차 공장 앞에 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을 촉구하는 노동조합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법원은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1심 판결에서 기아차 노동조합에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
 
통상임금 논란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통상임금 개념이 복잡하다. 고정성, 정기성, 신의칙 등 알 듯 모를 듯한 법률 표현이 나열된다. 그 논란을 다루는 방식은 아주 일차원적이다. ‘한 기업이 통상임금 때문에 짊어진 부담은 얼마인가.’
 
2017년 8월31일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관련 1심 선고 전후로도 그랬다. “기아차가 3조원의 부담을 지게 됐다. 경영 위기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통상임금 개념은 간단하다. 간추리자면 ‘기본급+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정기적 고정급 수당’이 통상임금이다. 그런데 통상임금 논란이 파생된 배경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한국 노동시장의 근본적 문제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통상임금 논란에 뒤엉켜 있다.
 
지난 세월 한국 노동시장을 망가뜨려 온 것은 크게 세 가지다. 합법과 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조금이라도 싼값에 오래 일을 시키려 했던 사용자의 욕심, 당장의 협상 성과에 급급해 임금명세서가 A4용지 두 장에 이르도록 별별 수당을 신설하는 ‘샛길내기’식 임금 인상 효과를 만든 노동조합, 합리적 갈등 조정자이자 정책 입안자여야 할 정부 및 정치의 실종. 통상임금 논란처럼 이 세 문제가 그대로 녹아든 사안도 없을 듯하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정해진) 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이라고 정의한다. 통상임금이 중요한 것은 이 금액이 연장·야간·휴일·연차수당 등의 기준 임금이 되기 때문이다. 소정 근로(예를 들면 주 40시간)를 벗어난 일을 하면, 통상임금의 150%를 받아야 한다. 초과 노동이 없는 사업장이라면 통상임금 범위가 어떻게 되건 임금 총액은 달라질 게 없다.
 
추상적 규범 ‘신의성실의 원칙’
또 하나, 우리는 받아야 하는데 못 받은 돈을 ‘체불임금’이라고 부른다. 내가 떼먹힌 줄 몰랐어도 체불임금은 체불임금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조건의 최저선을 정한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노사가 이 법보다 낮은 노동조건에 합의하는 것은 ‘무효’다. 그런데 통상임금 논란만큼은 이 규칙에서 비껴서 있다. 2013년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전까지는 근로기준법 관련 다툼에서 배척되던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것을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줄여서 ‘신의칙’이라고 하는 이 원칙은 “법률 관계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방법으로 권리 행사를 해선 안 된다”는 뜻의 추상적인 규범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선 “우리가 예전에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잖아”란 회사 쪽 논리로 활용된다. 또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한다’는 문구를 내세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생기는 과거(법상 최대 3년치)의 미지급 수당분을 일시에 지급하면 경영상 위기가 온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서부터 상황은 희한하게 흘러간다. 체불임금이 있는 노동자는 법리를 따지는데, 대형 로펌을 앞세운 기업들은 눈물겨운 호소를 한다. 보통은 돈을 떼먹힌 이들이 읍소하고 돈을 안 주려는 이들이 냉철한 법리 다툼을 하려는 것과는 딴판이다. 국내 대형 로펌인 화우의 한 변호사는 2016년 3월 한 언론에 쓴 칼럼에서 “1심에서 패소했더라도 그로 인해 유동성 위기와 회사의 수익 구조가 악화됐다면 이를 항소심에서 적극 주장해 반대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조언했다. 1심에서 패소했다면 더 크게 울어 항소심에서 승패를 뒤집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현대중공업·금호타이어는 1심에선 신의칙이 적용 안 돼 노동자가 승소했지만, 항소심에선 신의칙이 적용돼 회사가 이겼다.
 
기아차 1심 선고를 앞두고 자동차 업계의 ‘우는 소리’도 대단했다. 기아차는 “패소하면 망한다”는 주장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놨고, 국내 완성차 5개 업체 모임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8월 초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똑같은 내용의 기자간담회나 업계 간담회, 성명 발표 등을 만들어 언론에 반복적으로 기삿거리를 던져줬다.
 
주요 통상임금 판결을 앞두고 곧잘 벌어지는 여론전은 재판부를 향한 ‘읍소’ 성격이 강하다.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질 만한 ‘경영상 위기’는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다. 기업들은 ‘자의적 해석을 해야 하는’ 재판부를 향해 최대한 크게 우는 소리를 낸다. 그럼으로써 통상임금에 속하는 수당을 하나라도 줄이고, 신의칙을 인정해 체불임금을 줄이고 싶어 한다. “귀족노조 때문에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기업들이 휘청거린다”는 반(反)노동 정서가 커지는 것은 부수적 효과다.
 
이렇게 자의적 판단 영역을 두고 싸우다보니, 노사 모두 판결문을 받아들기 전까지 좀체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다. 이번 기아차 재판부는 노동자 2만7424명의 총 청구 금액 1조926억원보다 한참 적은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도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아차에 굉장히 곤혹스러운 판결일 수밖에 없다. 지급 총액이 줄었기 때문에 “3조원이 더 들어 기업 존립이 위태롭다”는 주장을 펴기는 어려워졌다. 판결 직후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경영상 위기의 심각성을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며 유감을 표했는데 사실 속내는 더 복잡했을 것이다.
 
‘법리’ 따지는 노동자, ‘읍소’하는 기업
재계의 우는 소리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대부분 재판 결과 노조 쪽 청구액은 상당 부분 깎인다. 게다가 재계의 계산식이란 것은 부풀려져 있기 마련이다. 일례로 기아차는 판결 이후 “간접노무비용(퇴직금충당금, 사회보험료 등)을 포함해 1조원의 부담이 생겼다”고 밝혔다. 기아차의 2016년 영업이익이 2조4천억원 규모였으니, 한 해 벌어들인 돈의 42%가 체불임금으로 나가야 할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기아차가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신용 평가기관인 한국신용평가는 2017년 9월1일 낸 보고서에서 “2017년 발생한 기아차의 통상임금 관련 비용은 일시적인 요소이며 영업현금 창출력, 우수한 재무구조, 자본 여력 등을 감안할 때 이번 이슈가 기아차의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했다.
 
경총발 ‘38조6천억원’이란 숫자에도 문제가 많다. 경총은 2013년 ‘통상임금 산정 범위 확대시 경제적 영향 분석’에서 정기상여금과 일부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향후 1년과 지난 3년(미지급금) 노동비용 증가액은 38조6천억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다른 조건에 변함이 없다는 가정 아래 단순 계산한 결과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연장근로를 줄이고 연차휴가를 소진시키는 등의 대응을 강구하면 경총 추산액에서 6조1천억~8조9천억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연구위원은 또 퇴직 전 3개월 평균임금 기준으로 산정되는 퇴직금은 3조6천억~5조5천억원 정도 줄 것이라고 계산했다. “실제 노동비용이 얼마나 증가할지 정확한 추산은 쉽지 않지만, 경총 주장의 10분의 1 수준일 것”이라는 게 김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고용노동부는 1988년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제멋대로 내렸다. 이 난리통의 시작점이다. 이 유권해석 덕에 기업들은 그동안 초과노동의 인센티브를 누려왔다. 더 싼 값에 초과노동을 시킬 수 있으니 장시간 노동문제가 심화했다. 한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으니 그만큼 신규 채용은 안 해도 돼 일자리도 덜 생겼다. 노조는 당장의 성과를 내기 위해 통상임금인지 아닌지 애매한 각종 수당을 일단 신설하고 보는 방식으로 사 쪽과 협상했다. 최근 통상임금 논란은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가 경제에 부담만 지우는 것도 아니다. 일단 노사 쌍방이 내는 사회보험료가 증가한다. 경총은 2013년 보고서에서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를 2조5천억원으로 계산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노사 쌍방이 낼 사회보험료 재정은 5조원 수준이 된다. 근로소득세수 증가분도 5조원(세율 15%로 계산) 가량 된다. 김 연구위원은 “이렇게 늘어난 재원을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을 위해 사용한다면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의 격차 확대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 해결에 속도를 키울 수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법안은 수년째 국회에서 발이 묶여 있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는 기업에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줄이게 할 좋은 채찍이다.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통상임금 범위를 명확히 하는 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지 싶다. 경제 당국자들이 지금 주력해야 하는 쪽은 노동시간 단축이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노동 법안을 오래 다룬 한 환경노동위원회 의원의 보좌관이 말했다.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 정의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노동시간만 줄이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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