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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쏙 빠진 환경호르몬 규제안
[Issue] 난항 겪는 유럽의 내분비교란물질 규제 방안
[90호] 2017년 10월 01일 (일) 플로랑탱 피노 economyinsight@hani.co.kr
EU 전문가위 기준안 확정… 학계 등 “핵심 원칙 삭제” 비판에 의회 통과 미지수
 
인체 호르몬 체계 교란 화학물질(내분비교란물질)을 법으로 규제하기 위해 유럽연합(EU) 전문가위원회가 내분비교란물질의 정의를 확정지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가 ‘업계의 로비에 굴복해 핵심 원칙을 삭제했다’고 비판하며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실제 EU 전문가위원회를 통과한 기준안에 따라 내분비교란물질로 정의되려면 매우 높은 수준의 증거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화장품, 플라스틱 식품용기 등은 전문가위원회의 내분비교란물질 정의와 관련이 없다. 프랑스·스웨덴·덴마크 등은 내분비교란물질을 좀더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강력한 방안을 요구한 반면, 화학산업이 강한 독일 등은 지나친 규제에 반대해 전문가위원회의 기준안이 유럽의회와 이사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플로랑탱 피노 Florentin Pineaud 싱크탱크 ‘파브리크 에콜로지크’ 프로젝트 관리자
 
   
플라스틱 식품용기, 화장품 등은 유럽연합(EU) 전문가위원회가 확정한 내분비교란물질 정의와 관련이 없다. 재활용 플라스틱병으로 만든 조형물이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전시관에 설치돼 있다. REUTERS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적 위협’이라고 규정한 내분비교란물질(일명 환경호르몬)이 2017년 여름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내분비교란물질을 금지 또는 규제하려면 일단 무엇이 내분비교란물질인지 합의해야 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유럽 차원에서 어떻게 내분비교란물질을 정의할지를 둘러싸고 몇 년 동안 갑론을박을 벌였다. 마침내 2017년 7월4일 EU 전문가위원회는 집행위원회가 제시한 최종 기준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집행위원회의 기준안은 시민단체와 학계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내분비학 분야의 대표적 3대 학회인 내분비학회, 유럽내분비학회, 유럽소아내분비학회는 6월15일 EU 28개 회원국에 집행위원회 기준안을 부결하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내분비교란은 플라스틱, 살충제, 화장품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화학물질의 작용과 관련 있다. 내분비교란물질은 갑상샘, 난소, 고환, 뇌하수체 같은 내분비기관의 작용을 저해하거나 교란하는 물질이다. 따라서 내분비교란물질은 신진대사, 생식,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유방암이나 전립선암 같은 호르몬 이상과 관련이 깊은 암을 유발하는 물질로 분류된다. 당뇨, 비만, 자폐 같은 질환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참고로 프랑스에선 1980~2012년 연간 암 발생이 17만 건에서 35만5천 건으로 110%나 증가했는데, 이 중 대부분이 호르몬 이상과 관련된 암이었다. 더구나 내분비교란물질은 단순히 해당 물질에 직접 노출된 사람뿐만 아니라 후대의 건강과 정상적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분비교란물질 작용 추적의 어려움
동물에서든 사람에서든 내분비교란 물질의 위험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연구는 매우 많다. 내분비교란물질이 위험하다는 것은 학계에서 공히 인정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확실한 부분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어떤 물질이 내분비교란물질로 인정되더라도 인과관계 증명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오직 복용량(투입량)만이 관건인 전통적 독성물질과 달리, 내분비교란물질의 작용 방식을 정확히 추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여러 물질이 조합돼 나타나는 이른바 ‘칵테일 효과’, 내분비교란과 그로 인해 인체에 어떤 증상이 나타나기까지의 잠복기,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는 내분비 교란의 영향 등이 인과관계 증명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요소다. 예컨대 임산부·태아·영유아는 내분비교란물질에 노출될 경우 일반 성인이 노출됐을 때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내분비학자들은 내분비교란물질이 여타 독성물질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내분비교란물질은 여타 독성물질처럼 과다 복용 또는 검출되면 안 되는 한계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매우 적은 양이라도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분비교란물질은 일상생활 도처에 존재한다. EU 집행위원회는 내분비교란물질이 포함될 수 있는 제품군을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인 규제안을 제시해야 했다. 더구나 포괄적 규제안을 마련하는 것은 2013년 유럽이사회와 유럽의회가 확정한 제7차 환경프로그램에 명시된 의무사항에도 부합한다.
 
그러나 집행위원회는 부문별 접근 방식을 택했다. 우선 살충제와 살생물제(유해 생물 제거·제어 물질)에 대한 기존 EU 규정을 기준으로 내분비교란물질의 정의를 내렸다. 따라서 화장품, 플라스틱 식품용기, 페인트, 섬유 같은 식품 외 일상소비재 등은 집행위원회의 내분비교란물질 정의와 관련이 없다. 사실 내분비교란물질 규제 방식을 부문별 방식으로 한다면 그만큼 입법 과정도 신속해야 했지만, 집행위원회는 기준안을 마련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다. 원래라면 집행위원회가 아무리 늦어도 2013년 12월14일까지는 식물성 약물과 살충제를 대상으로 내분비교란물질의 정의를 담은 기준안을 내놓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기한이 지나자 스웨덴은 덴마크와 프랑스의 지지를 얻어 2014년 집행위원회를 상대로 업무 해태 및 규정 위반으로 유럽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고, 유럽재판소는 2015년 12월16일 스웨덴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2016년 6월15일 집행위원회는 마침내 입법안을 마련했다. 집행위원회는 기준안에서 WHO의 내분비물질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분비계 기능을 교란해 생물체와 그 후대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외인성 물질을 내분비교란물질로 정의한 것이다. 그러나 집행위원회의 기준안에 따라 어떤 물질이 내분비교란물질로 지정되려면 매우 높은 수준의 증거가 필요하다.
 
집행위원회가 유럽이사회와 유럽의회에 내분비교란물질의 정의를 담은 기준안을 제출하려면 전문가위원회인 식품·동물건강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전문가위원회는 EU 28개 회원국의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다. 2016년부터 전문가위원회는 아홉 차례 회의를 열었고, 집행위원회는 그때마다 기준안을 표결에 부치려 했으나 실패했다. 매번 다수표 획득에 실패한 것이다. 실제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나라가 집행위원회의 기준안에 반대했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선 뒤 프랑스가 집행위원회 기준안에 대한 이전 정부의 입장을 바꿈으로써 지난 7월4일 투표에서 기준안이 전문가위원회를 통과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해충 박멸을 위해 내분비교란물질로 만든 살충제 사용을 금지할 계획이다. 파리 인근의 한 가든숍에 세계적 농화학 기업 몬샌토의 라운드업 등 각종 살충제가 진열돼 있다. REUTERS
 
기준안 표결 앞두고 치열한 업계 로비
물론 전문가위원회를 통과한 기준안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기준안을 바탕으로 내분비교란물질을 조사하고 규제할 수 있게 한 것도 사실이다. 집행위원회 초안에 비해 몇 가지 측면에서 진일보했다. 예컨대, 최종 기준안은 몇몇 물질을 재평가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유럽 차원의 전략’, 즉 내분비교란물질이라는 주제에 보편적 효력을 갖는 EU 규정의 도입을 촉구했다. 또한 5천만유로(약 670억원)를 내분비교란물질 연구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번 기준안은 집행위원회가 2016년 초안을 내놓았을 때부터 비판의 화살에 직면했던 두 가지 핵심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기준안에 따르면 어떤 물질을 내분비교란물질로 정의하는 데 필요한 증거 수준이 CMR(Carcinogenic·Mutagenic·Reprotoxic, 발암·유전자변이·생식독성) 물질 정의에 필요한 증거 수준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 따라서 내분비교란물질 작용 방식의 복잡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문제는 내분비교란물질의 위험이 인체가 해당 물질을 얼마나 흡수했느냐보다 사람 개개인의 특징과 해당 물질에 노출된 기간에 달렸다는 것이다.
 
둘째, 집행위원회는 과학계가 합의한 확실성 수준에 따라 발암물질의 정의에 적용되는 기준과 유사한 ‘명백한’(verified), ‘추정되는’(presumed), ‘의심되는’(suspected) 세 가지 분류 기준을 내분비교란물질 정의에 적용하지 않았다. 만약 세 분류 기준을 적용했다면 내분비교란물질로 정의되는 물질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심지어 독일의 요구로 몇몇 살충제는 내분비교란물질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이제 집행위원회 기준안은 유럽의회와 회원국 정부 대표로 구성된 유럽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유럽의회는 앞으로 4개월 이내에 기준안을 표결에 부쳐 승인 또는 거부할 수 있다. 따라서 유럽이사회와 의회를 상대로 관련 업계의 로비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시민단체와 유럽의회 의원들이 기준안을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더구나 살생물제 부문의 내분비교란물질 규제는 이후 다른 부문의 규제를 위한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현재 유럽식품안전청(EFSA)과 유럽화학물질청(ECHA)은 벌써 실무적 측면에서 내분비교란물질의 정의를 어떻게 적용할지 극히 기술적이고 복잡한 논의를 시작했다. 논의의 핵심은 앞서 언급한 내분비교란물질의 정의에 요구되는 증거 수준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정말 까다로운 일은 세부 사항을 정하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내분비교란물질 피해 치료비
내분비교란물질의 위험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쌓이고 있다. 예로 전기절연체에 오랫동안 사용된 폴리염화바이페닐(PCB)은 여성 불임과 50살 전 유방암 유발 위험이 높아 프랑스에서 1987년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또한 프랑스에서 1977년까지 병원 처방약 중 하나였던 합성에스트로겐 DES도 암과 선천성 기형을 유발한다. 또 다른 연구는 쥐를 비스페놀 A에 노출시켰을 때, 고농도보다 저농도에서 더 심하게 유방 조직 세포의 변형을 유발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유럽의 관련 규제는 젖병 외에 식품용기에서 비스페놀 A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이런 물질이 인체에 주는 영향은 엄청날 수 있다. 2015년 <임상 내분비학과 신진대사 저널>에 발표된 한 연구는 유럽인의 내분비교란물질 노출은 수많은 병의 근원이며 그로 인한 연간 치료비만 유럽 국내총생산(GDP)의 1.2~2%, 즉 1500억유로(약 202조원)에서 2600억유로(약 35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내분비교란물질 규제에 엄격한 프랑스
프랑스는 내분비교란물질 문제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예로, 프랑스는 2012년 식품용기에서 비스페놀 A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해 2015년 1월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반면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여전히 비스페놀 A가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또한 2014년 프랑스는 내분비교란물질을 위험수준에 따라 분류하는 국가전략을 도입했다. 2017년 1월 상원이 발표한 보고서는 비록 ‘미래 세대’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가 논의의 진전에 기여했다고는 해도 프랑스 의회가 이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2017년 7월4일 전문위원회 투표에서 프랑스가 집행위원회 기준안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많은 실망을 안겼지만, 프랑스는 앞으로 남은 유럽이사회와 유럽의회 승인 과정에서 엄격한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비스페놀 A를 유럽집행위원회 입장과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금지한 것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단독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새 정부의 환경부 장관인 니콜라 윌로는 프랑스 영토에서 특정 해충 박멸을 위해 의도적으로 내분비교란물질로 만든 살충제 사용을 금지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참고로 이 살충제는 집행위원회 기준안에서 규제 적용 예외가 인정됐다. 그런데 살충제를 생산하는 화학기업들의 경제적 이익 규모를 고려할 때, 이 결정은 강력한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7년 9월호(제371호)
Perturbateurs endocriniens: une définition à hauts risques
번역 박현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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