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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단절’ 위로하는 가족예능
[Culture & Biz]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로 자리잡은 가족예능
[90호] 2017년 10월 01일 (일) 문동열 redbros@redbros.co.kr

최근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은 ‘가족’으로 넘쳐난다. 연예인과 그 가족이 함께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가족예능’을 표방하며 대세를 이루고 있다. 몇 년 전 아빠와 어린 자녀의 동반 여행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서 시작된 육아예능이 점점 그 범위를 넓혀 이젠 다양한 조합의 가족들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쉽게 볼 수 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먹방’이나 ‘쿡방’ 같은 음식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족예능이 대세로 자리잡은 이유를 살펴봤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아빠! 어디가?>에서 시작된 가족예능 프로그램이 점점 그 범위를 넓혀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아빠! 어디가?>의 성빈·성동일·성준 가족, 김민국·김성주 부자(왼쪽부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는 ‘가족예능’ 프로그램 수만큼 연예인 가족들의 출연은 아빠와 어린 자녀부터 시작해 부부, 시부모와 며느리, 처가 식구와 사위, 엄마와 장성한 미혼 아들, 엄마와 딸, 아빠와 딸, 조부모와 손자 등 나올 수 있는 조합은 다 나왔다. 연예인 가족들의 방송 출연은 과하다 싶을 만큼 많아 ‘가업승계’라든가 ‘가족테이너’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가업승계’는 연예인들의 자녀나 가족이 가족예능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와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등장해 자연스럽게 연예인 반열에 오른 가족을 엔터테이너와 조합해 ‘가족테이너’라 부른다. 예전 연예인들은 사생활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 가족을 매체에 노출시키는 걸 꺼렸다. 늘 대중의 시선을 받아 사적 영역만큼은 보호하고 싶어 했지만, 최근에는 가족예능을 통해 자신의 집을 포함한 생활공간이나 사생활을 보여주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연예인은 가족예능을 통해 가정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섭외를 반긴다. 얼마 전 종영한 <효리네 민박>(JTBC)에서 이상순이 자상한 모습으로 ‘이효리 남편’이 아닌 ‘이상순’이라는 이름을 시청자에게 각인시킨 것이 대표적 예다. 그래서인지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가족예능 출연에 적극적이다. 얼마 전 이재명 성남시장이 부인과 함께 <동상이몽 시즌2: 너는 내 운명>(SBS)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물론 친근한 이미지 형성이 가능한 것은 방송 속 가족의 모습이 제작진의 구성과 편집에 의해 통제되는 이상적인 가족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가족예능 흥행의 열쇠는 ‘판타지’와 ‘공감’이라고들 한다. 연예인의 귀여운 자녀를 보며 육아에 지친 자신을 위로하거나, 유명 연예인 부부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노년부터 젊은이까지 정말 넓은 대역의 계층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예능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인간관계 단절의 대리만족
가족예능의 인기 요인으로 많은 것을 들 수 있겠지만, 그중 ‘인간관계 단절에서 오는 감정 결핍의 대리 만족’이라는 주장에 개인적으로 공감한다. 일본에선 몇 년 전부터 가족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 최근 일본의 한 조사에 따르면 2011년부터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콘텐츠를 분석해보니 공통 키워드가 ‘가족’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었다. 일본 콘텐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하겠지만, 일본에서 가족이나 인간관계를 다룬 콘텐츠 붐은 방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음악부터 영화, 공연, 만화, 아동용 애니메이션까지 ‘가족’ ‘동료’ ‘친구’ 같은 인간관계를 테마로 한 콘텐츠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일본에서 가족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현재 일본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10년부터 일본에선 ‘무연고 사회’라는 말이 유행어 사전에 오를 정도로 사회적 이슈가 됐다. ‘무연고 사회’란 저출산, 젊은 층의 결혼 기피, 황혼 이혼 등 여러 이유로 전통적 가족관이 붕괴하고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는 사회에서 개개인의 관계가 점점 단절돼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미 1년에 3만 명 이상이 ‘고독사’로 세상을 떠나는 일본에선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무연고 비즈니스’가 급성장할 정도로 개인의 관계 단절이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13년 출간돼 스테디셀러로 인기를 끄는 <미움 받을 용기>는 상처 받기 싫어하는 사람의 자존감이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인간관계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걸 꺼린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역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수많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좋아요’와 댓글 한두 개로 소통하는 무미건조함에 사람들은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다. 사람을 사귀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젊은 층이 늘고 친구를 경쟁자로 볼 수밖에 없는 가혹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스스로 관계를 끊고 고립되는 이 사회 현상의 틈을 가족예능 같은 콘텐츠가 파고드는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부인과 함께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 시즌2>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이 시장 부부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를 위한 ‘가족’ 끌어안기
텔레비전 보급 뒤 방송 비즈니스에서 가족 집단은 주요한 시청 계층이었다. 그래서 방송 프로그램은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제작자는 소재, 출연자 선정 등 고령의 조부모부터 10대의 어린 자녀까지 모두 흥미를 가질 만한 장치를 배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순간 이런 모습은 점점 사라졌고 가족은 더 이상 방송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대상이 아니었다.
 
가족이 방송 시청 계층 자리를 내놓은 가장 큰 이유는, 방송 비즈니스의 구조적 변화에 있다. 2000년대 후반 인터넷TV, 모바일 등 다매체·다채널 시대가 열리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방송 이탈 현상이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시청 계층이 고령화됐고 그 만큼 젊은 층을 주 소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이 광고를 줄이면서 각 방송사들의 광고 매출은 서서히 떨어졌다. 수익성을 고민하던 방송사들이 지금까지의 광고 수익 모델을 콘텐츠 판매 수익 모델로 서서히 전환하기 시작했다. 2005년 방송사별로 3~4%에 불과하던 콘텐츠 판매 수익은 현재 20~30%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각 방송사의 전체 매출 중 콘텐츠 판매 수익이 증가하면서 방송사별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 이른바 ‘잘 팔리는’ 장르의 편성 비율이 높아졌다. 콘텐츠 판매에 집중하며 각 방송사가 ‘돈이 안되는’ 공익 다큐멘터리나 어린이 프로그램, 노년층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을 줄이자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나타났다.
 
이렇듯 시장 논리에 의해 방송 프로그램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특정 대상만을 위해 제작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채널 수가 늘면서 어린이·여성·게임 등 계층이나 취향별로 채널이 분산되며 가족 집단은 사라지고 ‘개인’만 남게 됐다. 개인화된 방송 프로그램은 사회 구성원 간 소통과 이해를 넓혀야 할 방송의 의무를 저버리고 특정 집단의 이익이나 취향만 반영한 ‘그들만의 리그’로 남으려 했다. 하지만 ‘불통’의 모습이던 10년간의 세월을 통해 방송 비즈니스의 위상은 크게 떨어졌다. 이전에는 시청률 20%이면 조금 잘된 프로그램으로 평가했지만, 이젠 5%만 나와도 ‘잘 나왔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 정치 환경의 변화와 함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등의 영향으로 중국 시장이 닫히면서 아이돌이나 한류 스타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버리자, 자연스럽게 대안으로 부상한 가족예능의 성공은 그야말로 예상외의 결과다. SBS의 대표 가족예능 <미운 우리 새끼>를 보면 그렇다. 주말 황금시간대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면서도 이례적으로 시청률 20%를 넘나드는 이 프로그램은 처음 방송될 때만 하더라도 ‘시청률 5% 넘기면 대박’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가 함께 본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익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이다.
 
이러한 성공 사례와 함께 방송 콘텐츠 시장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더 이상 몸값 비싼 스타를 부르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콘텐츠를 만들면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방송 콘텐츠 시장 내부에서도 조금씩 퍼지고 있다. 제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조금 느리더라도 방송의 책임을 다하는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면 방송 비즈니스가 다시 한번 가족 모두에게 사랑받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 문동열은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 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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