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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딜레마
[Finance] 실업률 떨어져도 물가 안 오르고…
[90호] 2017년 10월 01일 (일) 윤석천 maporiver@gmail.com

물가와 실업률은 중앙은행의 주요 고민거리다. 금융위기 뒤 미국·유로존·일본 등 주요국의 실업률이 떨어졌으나 물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물가와 실업률, 두 목표에 통화정책을 고정한 중앙은행은 실업률을 낮추려 시중에 돈을 쏟아부었다. 목표는 이뤘지만 물가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이렇듯 실업률과 임금(물가) 상승률이 반비례한다는 ‘필립스 곡선’이 고장 나면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도 꼬였다.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으로 풀린 돈을 거둬들일 시기를 저울질하는 중앙은행은 요지부동인 물가 때문에 고민이 깊다. 이제 중앙은행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할 시기가 왔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실업률은 떨어지는데 물가는 오르지 않으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2017년 9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ECB 집행위원회 회의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이상한 일이다. 인플레이션이 거의 사라졌다.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은 보편적 현상이었다. 1980년대 초까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도 심심치 않았다. 이후 한 자릿수로 고정되더니 금융위기부터는 5% 이하가 일반화됐다. 최근엔 2% 인플레이션도 보기 힘든 상황이다. 물론 미국 등 선진국 얘기다. 지난 몇 년간 주요국의 중앙은행은 천문학적 돈을 공급했다. 돈이 풀리면 물가가 올라야 한다. 경제학 교과서는 그렇게 설명해왔다. 한데 물가는 요지부동이다.
 
이뿐만 아니다. 이른바 ‘필립스 곡선’도 길을 잃었다. 실업률과 임금상승률은 반비례한다는 이론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금융위기 뒤 미국·유로존·일본 등 주요국의 실업률이 하락했다. 하지만 임금은 게걸음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주요국의 임금상승률은 금융위기 전보다 하락했다. 미국은 2001~2007년 연평균 3.2%씩 올랐으나 2014~2016년 연평균 2.3% 오르는 데 그쳤다. 유로 지역의 상승률은 같은 기간 연평균 2.9%에서 1.5%로 하락했다. 그에 따라 명목임금 상승에 크게 의지하는 물가 역시 오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2017년 8월 4.4%로 완전고용에 가까운 수치다. 반면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9% 오르는 데 그쳤다. 유럽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유럽 중앙은행은 2017년 6월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을 기존보다 낮춰 1.5%로 수정했다.
 
경기는 지표상으론 분명 개선되고 있다. 실업률은 하락하고 있다. 한데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소비가 늘지 않는다. 소비가 증가하지 않으니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 경기회복, 실업률 하락, 임금 상승, 소비 증가, 기업의 제품 가격 인상이란 연결고리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실업률 하락하는데 임금은 제자리
이런 경제학의 오작동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가계와 기업 등의 인플레이션 기대 약화, 고령층의 노동 참여로 인한 임금 상승률 제한, 임시직·일용직 등 저임금 일자리 증가, 노동계의 영향력 약화 등을 꼽는다. 혹자는 세계화를 저물가의 주범이라 주장한다. 세계적 분업 체제가 확산되면서 경기회복기에 임금 인상 압박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또 구글·아마존 등 혁신기업의 등장으로 인한 가격 파괴 현상 일반화를 들기도 한다. 모두 일리 있는 분석이다. 하나, 분석이 곧 해법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현실은 엄혹하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에 따라 당연히 가야할 길 앞에서 머뭇거린다. 추가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극단적 통화정책으로 풀린 돈을 어떻게든 거둬들여야 하는 중앙은행은 좀처럼 그 시기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물가와 실업률이란 양대 목표에 통화정책을 고정한 중앙은행은 실업률을 낮추고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중에 돈을 퍼부었지만 목표 중 하나만을 겨우 달성했다. 실업률은 끌어내렸지만 물가를 올리는 데 실패했다. 이것이 주요 중앙은행이 긴축 시점에 혼선을 빚는 이유다.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속도는 애초 예상과 달리 느리게 진행되고 유로존의 양적완화 축소 개시 시점 역시 변죽만 올릴 뿐 불확실하다. 중앙은행은 딜레마에 빠졌다.
 
혹자는 풀린 돈을 그냥 두면 되지 왜 애써 걷어들이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간단하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흘러들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통화를 공급하는 이유는 기업과 가계의 유동성을 늘려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한데 유동성이 엉뚱한 곳으로 새나가고 있다. 자산시장만 폭주하고 있다. 금융위기 뒤 세계의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은 말 그대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실물경제의 움츠림과 반대로 자산시장은 끊임없이 팽창했다. 자산시장 팽창이 이른바 ‘부의 효과’를 불러와 실물경제에 도움을 준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부의 효과’가 실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증거는 미약하다. 물가 안정세가 말해준다. 자산시장 부양이 좀처럼 수요와 투자 확대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통해 만들어진 컨설팅업체 매킨지의 보고서를 보면 확실해진다. 2000년 4분기 87조달러였던 글로벌 부채는 2007년 4분기 142조달러로 늘었다. 2014년 2분기에는 199조달러로 다시 증가했다. 대략 7년마다 55조〜57조달러씩 늘고 있다. 한데 부채 증가 양상이 2007년 전후로 차이를 보인다. 2000~2007년까지는 가계·금융 부문의 부채가 주로 늘었다. 가계 부문은 연평균 8.5%, 금융 부문은 연평균 9.4% 증가했다. 기업과 정부의 부채 증가율은 각각 5.7%, 5.8% 수준이었다. 그런데 2007년 이후부터 가계·금융 부문은 각각 2.8%, 2.9%로 증가율이 이전과 비교해 급감했다. 기업은 5.9%로 이전과 비슷했다. 부채가 폭증한 곳은 정부 부문이다. 연평균 9.3%로 부채 성장률이 급등했다.
 
금융위기 뒤 가계·금융 부문은 부채 축소에 진력했다. 반면 정부는 부채 증가를 통해 민간 부문의 쪼그라드는 수요를 메우려 했다. 결론은 실패였다. 중앙은행의 극단적 통화정책이 가계의 부채 수요를 자극하지 못했고 금융 부문은 대부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부 또한 수요 감소를 충분히 떠받치지 못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으로 부채는 급증했다. 한데 그 유동성이 소비와 투자 등 생산적인 분야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늘어난 유동성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바로 자산시장이다. 그로 인해 믿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채 10년물과 유로 정크본드(고금리·고위험 회사채) 수익률이 비슷하다. 최고의 안전자산과 극단의 위험자산 가격이 동일한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갈 곳 잃은 돈이 위험자산 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자산시장 폭주가 영원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미 유명 이코노미스트들은 그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 위기는 어느날 갑자기 온다. 위기는 시장 폭락을 부른다. 폭락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 불과 몇 년 전 우리가 목격했듯 금융시장의 패닉은 실물경제의 공황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막대한 돈이 자산시장에 집중되면서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폭주를 불렀다. 미국 뉴욕의 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REUTERS
 
출구 찾지 못하는 중앙은행
이쯤 되면 중앙은행이 왜 유동성을 거둬들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산시장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르면서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조차 어디까지 오를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역사가 말해주는 하나의 진실이 있다. 모든 게 끝이 있다는 것이다. 자산시장 붕괴는 실물경제를 나락으로 몰아간다. 2008년 금융위기는 10여 년이 흐른 현재까지 후유증이 막대하다. 다음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단언할 수 없지만 분명 더 오랜 기간 세계는 고통받아야 할 것이다. 중앙은행은 이런 상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엄청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유동성을 회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연착륙이다.
 
정부 개입을 중요시하는 신케인스학파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에 포진해 수요를 자극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있다. 그러나 실패하고 있다. 결국 중앙은행은 자산시장의 이상 폭등을 보면서도 좀처럼 출구전략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찾는다 해도 이미 실기했다. 적어도 중앙은행이 고전적 목표를 고수하는 한 그렇다. 중앙은행은 두 목표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유도 목표는 지난 수십 년의 지표가 말해주듯 달성하기 어렵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 목표를 고수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경제학의 기초인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가격은 수요에 의해서도 결정되지만 공급에도 영향받는다. 공급 곡선이 오른쪽으로 가면, 다시 말해 상품 공급이 늘면 해당 상품의 가격은 내린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제조업체는 몇 년 전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만들어낸다. 양도 늘고 있다. 한마디로 과잉생산 상태다. 이 현상은 미래에 더욱 심해질 것이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공급량은 디플레이션 압력을 강화해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와 부채 증가를 통한 수요 증가분을 무력화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정책은 응급 처방에 불과하다. 긴급한 재난을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인위적 수요 유발로 과잉 공급을 유지할 게 아니라 시장 기능이 작동해 공급이 조정돼야 한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유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수정돼야 한다. 고용안정 목표만 달성해도 충분하다. 실업률을 낮추고 경기가 호전되면 물가에 개의치 말고 유동성을 회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산시장 폭등은 세계를 언제든 다시 깊은 침체로 몰고갈 수 있다. 중앙은행이 수요와 공급을 쥐락펴락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시장에 거품이 더 끼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 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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