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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경제’ 만드는 협동조합의 힘
[경제와 책] <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90호] 2017년 10월 01일 (일) 이세현 sehyon.lee@gmail.com

이세현 번역자(번역협동조합 이사)

경제에서 협동조합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작고 아름다운 부문일까, 자본주의를 대신하는 근본적 대안일까? 캐나다의 협동조합 운동가이자 연구자인 존 레스타키스는 ‘대안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협동조합의 역사와 세계 각지의 사례를 10여 년간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존 레스타키스 지음, 번역협동조합 옮김, 착한책가게 펴냄, 1만8천원

저자가 볼 때 협동조합은 ‘자본의 시대’에 저항한 여러 운동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다. 시장 자체를 거부한 사회주의는 ‘강요된 협동’이라는 모순 속에 실패했다. ‘상상 속 자유시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가 보여주듯 실패의 길을 가고 있다. 여전히 대안이 필요한 지금, 협동조합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인간적인 경제를 만들고 삶의 통제력을 확보하는 데 쓸모 있는 모델임을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2017년 현재 세계의 협동조합 조합원은 10억 명이 넘고 고용 인원은 다국적기업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협동조합이 세계의 다양한 맥락 속에 끊임없이 발견·발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선 모범적인 ‘협동경제’를 구축한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의 사례를 소개한다. 협동경제란 협동을 지역경제 전체의 발전 전략이자 원리로 삼으면서 협동조합과 자본주의 기업이 공존하는 체제를 말한다. 자본주의 기업의 혁신과 기업가적 추진력은 협동조합에 좋은 자극을 주었고, 소규모 자본주의 기업들은 협동과 상호부조라는 방법을 받아들여 세계화 시대에 생존했다. 세계 곳곳에 수십 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다국적 협동조합의 사례는 특히 흥미롭다. 건설협동조합컨소시엄(CCC) 등 이탈리아의 다국적협동조합은 ‘협동조합 원칙을 세계화라는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현지를 찾아 협동조합인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하면서, 협동조합은 성공을 거듭하고 사업영역을 확장할수록 진정한 시험대에 놓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인도에선 콜카타의 성매매 집결지 소나가치의 성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발견’했다. 성매매 업주, 인신매매 조직, 사채업자에 맞서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모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평등과 민주주의를 기본 원리로 삼는 협동조합을 선택한 것이다. 1995년 결성된 세계 최초의 성노동자 협동조합 ‘우샤다목적협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한 소규모 신용대출 사업으로 경제적 독립을 촉진하는 등 많은 성과를 냈다. 다만 저자는 성매매 업주와 성노동자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성매매를 법적으로 어떻게 다룰지 이견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선 ‘회복기업’ 형태로 노동자협동조합이 새롭게 발명됐다. 2001년 채무불이행 선언 뒤 버려지는 공장이 속출하자 노동자들이 직접 공장을 점거해 생산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협동조합은 ‘사장 없는 공장’을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질서이자 수단이었다. 10년 동안 300개 이상 생겨난 회복기업은 지역사회의 지지 속에 높은 생존율을 기록했고 우루과이·니카라과·볼리비아 등 중남미 곳곳에 퍼져나갔다.
 
<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일본의 생활협동조합·의료협동조합·어업협동조합, 스리랑카 찻잎 재배 농민들의 협동조합, 남미의 공정무역 커피 생산자 협동조합, 그리고 최근 급성장하는 사회적 돌봄 서비스 협동조합까지 수많은 분야를 넘나들며 협동조합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시장이 사회적 가치보다 우위에 서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서술에선 <거대한 전환>의 칼 폴라니와, 공유지 비극을 넘는 협동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에선 200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과 만나며 이론적 기반도 제시한다.
 
저자는 단순한 사례 소개를 넘어 날카로운 비판과 새로운 제안을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돌봄 서비스 협동조합은 시민을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선택권과 발언권을 가진 주체로 세울 수 있고, 복지 정책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방어적 태도를 취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이 먼저 개혁을 요구할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공정무역 운동은 생산지 지역경제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에 투자하는 ‘협동조합 국제개발은행’을 설립해 소비자와 생산자의 권력관계를 바꾸는 한편,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 등 기존 국제기구에 대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제안을 통해 저자는 ‘협동조합 공화국’ 같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대안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공간으로서 오랫동안 생존하기 바란다.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기업의 관행을 모방하며 보수화하는 대신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경제생활 영역을 넓혀간다면, 언젠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기업보다 다수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효율을 절대시하는 자본주의를 넘어 협동과 호혜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그려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협동조합 착한책가게가 기획 및 출판을, 번역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번역을 맡은 이 책은 구체적 사례와 200년에 걸친 역사적 관점을 함께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제 첫발을 내디딘 한국의 협동조합 운동에 충분히 쓸모 있으리라 기대한다.
 

● 인사이트 책꽂이
 
   
착한 기업에 투자하라
아라이 가즈히로 지음 | 신혜은 옮김 | 이콘 펴냄 | 1만2천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착한 기업’에 투자하는 일본 가마쿠라투자신탁 창업자가 쓴 책이다. 이 투신사는 “투자에는 좋은 회사를 지지해줄 힘이 있다. 금융은 돈을 통해서 이런 회사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며 2008년 창업해 2014년 5월 수백 개의 일본 투자신탁 중 1위를 했다. “경제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에 투자한다. 투자처와 고락을 함께한다”는 자세로 자금을 운영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 안기순 옮김 | 김영사 펴냄 | 1만4800원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현금을 주고, 노숙자를 지원해 빈곤을 퇴치하고, 노동은 일주일에 15시간만 한다.’ 많은 사람이 꿈같이 느낄 일이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네덜란드인 브레흐만은 현재 상태를 벗어나려는 큰 정치를 살려내면 실현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정치적 주장만 펴지 않는다. 각국의 소득 격차 등을 분석하고, 적절한 경제지표를 논하고, 노동시장 현황을 따지기도 한다.
 
 
 
   
소비의 역사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 2만5천원
소비를 진지한 학문 주제로 끌어올리고, 소비 행위를 통해 인간의 내밀한 행위와 동기, 그리고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효과를 살피는 책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혁명이 양복을 탄생시킨 이야기, 중국 도자기가 유럽 사람에게 이국적 물건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킨 이야기를 다룬다. 세계 최초로 대량 판매된 기계인 미국 싱어의 재봉틀 성공 신화, 의학서를 표방했지만 포르노로 소비된 근대 유럽의 책 이야기도 소개한다.
 
 
 
   
웅크린 호랑이
피터 나바로 지음 | 이은경 옮김 | 레디셋고 펴냄 | 2만2천원
미국 무역정책 전문가가 “미중전쟁은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책이다. 저자는 이를 ‘지정학 추리 소설’이라 표현했다. 대학교수부터 군사매체 편집장까지 미국 각계 인사 25명을 인터뷰했다. 중국의 부상과 군사력 증강 과정, 이에 따른 국제 질서의 변화를 다룬다. 저자는 이 책의 중요한 임무를 “일반 대중이 계속 증가하는 전쟁의 위험을 인지하도록 돕고, 평화로 향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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