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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보편증세... 핀셋증세 ‘임시처방’
[국내 이슈] ‘불붙은 증세 논란’ 당·정·청 갑론을박
[89호] 2017년 09월 01일 (금) 노현웅 goloke@hani.co.kr
증세 둘러싼 여권 내 엇박자로 중부담·중복지 향한 보편증세 ‘큰 그림’ 논의 사라져
 
문재인 정부 초부터 증세 방안을 놓고 당·정·청이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기획재정부는 증세에 보수적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증세를 통한 복지국가 기틀 마련’이라는 대선 공약대로 증세에 군불을 지폈다. 당·정·청 갈등을 봉합하는 타협의 산물로 이른바 ‘부자증세’가 세법개정안에 담겼다. 정치적 부담이 없는 ‘핀셋증세’를 통해 ‘보편증세’라는 민감한 조세개혁 논의의 고갱이를 슬쩍 뒤로 미룬 것이다.
 
노현웅 <한겨레> 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부자증세 방안을 청와대에 건의했다. 추 대표가 2017년 8월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세법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불붙은 부자증세 논란에는 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가는 한국 사회의 이정표에 대한 시각차가 여실히 드러났다. 보편증세를 기반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중부담·중복지를 추구해야 한다는 쪽부터,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고소득층 증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문재인 정부 내부 인사들의 인식차 역시 간극이 컸다. 난데없는 증세 논란이 시작된 배경과 그 속에 숨은 힘겨루기의 과정을 짚어본다.
 
증세 논란의 시작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7년 7월19일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보고서였다. 국정기획위는 보고서에서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 5년 간 178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연평균 35조6천억원의 막대한 재원 가운데 증세로 조달하는 비중은 비과세·감면 정비 등을 통해 마련하는 11조4천억원이 전부였다. 법인세·소득세 등의 명목세율 인상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 세수 자연증가분 60조5천억원, 재정지출 절감 60조2천억원 등이 주요 재원 마련 대책으로 제시됐다.
 
자연스레 ‘증세 없는 복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복지비용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리란 점은 불 보듯 뻔하다. 경기변동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세수 증가분에 기댄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구나 세출 구조조정은 역대 보수 정권이 단골로 내놓던 재정 대책이었다. 그때마다 ‘마른 수건 쥐어짜기’라는 반발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5·9 대선 때 공약집에서 고소득자 과세 강화, 법인세 정상화, 상속·증여세 강화, 자본이득 과세 강화 등 세율 조정으로 5년간 31조5천억원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내놨다. 당시에도 증세 규모가 작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집권 뒤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난 셈이다.
 
이는 보수적 재정 운용에 익숙한 기획재정부와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야 하는 국정기획위가 짬짜미한 결과물로 보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정기획위 보고서 발표 이전에 “명목세율 인상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확고한 태도를 수차례 밝혔다. 조세정책의 결정 과정이 정치적 문제임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강경한 발언이었다. 여기엔 초과 세수라는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지하경제 양성화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고, 국세청 국세행정시스템(NTIS) 도입에 따른 세원 관리 강화로 최근 국세 수입은 유례없는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세수 추계를 맡는 기획재정부가 “부담스러운 증세 없이도 공약 이행이 가능하다”며 국정기획위를 설득했을 공산이 크다.
 
‘김동연 패싱’의 실체
국정기획위 보고서 발표와 동시에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반발이 일었다. 민주당은 앞선 총선과 대선 등에서 증세를 통한 조세정책 정상화와 복지국가 기틀 마련을 공약으로 내걸어왔다. 대선 승리 뒤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인 증세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제 막 집권여당으로서 체질 전환을 해야 하는 민주당 처지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지였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도 결국 예산 관료 출신”이라며 “보수적 재정 운용과 재정건전성 관리를 지상 명제로 여기는 재정 당국 같은 DNA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선언한 국정기획위 보고서 작성에 민주당이 소외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국정기획위 보고서 발표 이튿날인 2017년 7월20일 오전과 오후,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과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잇따라 증세론에 불을 지폈다. 보통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김부겸 장관은 이날 오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주재한 회의에 참석해 “해내지도 못하는 지하경제 양성화, 이런 얘기 말고 소득세율 조정 등 증세 문제를 갖고 정직하게 얘기하고 국민 토론을 요청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추미애 대표는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현행 40%인 5억원 초과 고소득자의 세율을 42%로 올리고, 과세표준 2천억원 초과 대기업의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며 증세 추진을 본격화했다.
 
이 과정을 거쳐 세법개정안은 급격한 방향 전환을 겪어야 했다. 당시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2017년 8월 초 발표 예정인 ‘2017 세법개정안’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는 김동연 부총리의 지시에 따라 비과세·감세 정비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세제 개편을 중심으로 작업하던 기재부 세제실은, 추미애 대표의 발언 뒤 부랴부랴 소득세·법인세 개편을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기재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에는 추미애 대표가 언급한 법인세율(2천억원 초과 25%)과 소득세율(5억원 초과 42%) 인상이 그대로 담겼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정권 초 증세 논의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관련 기초 작업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 소득세·법인세 인상을 위한 세제 개편 작업은 7월20일 발언 직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안다”며 “재정 당국 수장으로서 김동연 부총리의 면이 깎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동연 부총리도 이런 사정을 의식한 듯 2017 세법개정안 브리핑에서 “세제 개편과 관련해 네 차례나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고 말해왔다. 시장에 일관된 시그널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이때부터 ‘김동연 패싱’이라는 단어가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경제팀 수장인 김동연 부총리가 청와대와 민주당의 등쌀에 못 이겨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신조어로, 문재인 정부 경제팀의 원활한 팀워크가 깨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김동연 패싱이 사실이라면 정책 결정과 운용은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고, 시장 주체에 전달되는 메시지에도 혼선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복수의 당·정 관계자들은 지금 사정을 반드시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김부겸 장관의 돌출 발언과 추미애 대표의 증세 제안이 모두 김동연 부총리를 포함한 당·정·청 협의를 통해 조율된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증세안이 배제된) 국정기획위의 재원 마련 대책이 발표된 뒤 당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대한 당·정·청 논의가 있었다”며 “추 대표가 제안한 증세안의 구체적인 숫자 역시 김동연 부총리를 통해 컨펌(승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도 “증세안을 제외한 국정기획위 보고서에 대해 반발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이후 증세안 마련 과정에 김동연 부총리가 중심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명목세율 인상을 배제한 재원 마련 대책을 국정기획위와 함께 제시해 체면은 구겼을지언정, 재정 당국 수장이자 경제팀 사령탑으로서 통제력을 상실한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017년 8월16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는 증세에 보수적이다. 연합뉴스
 
“중산층 증세는 없다”
이런 논란에서 가장 큰 문제는 ‘보편증세’라는 화두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애초 문재인 정부는 2017년 9월 이후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증세의 내용과 범위를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봄 치러질 지방선거를 감안해 민감한 증세 논쟁을 뒤로 미루겠다는 복안이었다. 다수의 조세 전문가들은 이 과정을 통해 근로소득세 면세점 인하, 임대소득·금융소득 과세 강화, 에너지 상대가격 개편 등 민감한 조세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2016년 기준 근로소득세의 면세자 비율은 46.7%에 육박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복지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세원 발굴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형편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정책공간 국민성장’도 보편증세를 지향점으로 한 세제 전반의 개혁 보고서를 캠프 쪽에 전달했다. 중부담·중복지를 통한 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의 복지국가를 건설하려면 보편증세를 중심으로 한 증세 논의가 절실하다.
 
그러나 느닷없이 벌어진 증세 논란의 결과물은 연소득 5억원 초과 ‘초고소득층’과 과세표준 2천억원 초과 ‘초거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증세에 그쳤다. 국정기획위와 기획재정부, 여당과 청와대가 일관된 조세정책 메시지를 내는 데 실패하면서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 수준으로 층위가 낮아진 셈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재임 동안 서민·중산층에 대한 증세는 없다”고 선언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앞으로 보편증세 원칙이 조세개혁 과정에 관철될 입지를 스스로 좁혀놓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소득불평등이 심화됐지만 조세정책이 (소득재분배 등) 제구실을 못 했다는 공감대가 문재인 정부를 포함한 여권에 널리 형성돼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일차적으론 보수 정부 동안 거꾸로 간 조세정책을 정상화한 뒤 공론화 과정을 거쳐 보편증세를 포함한 큰 틀의 조세개혁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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