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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으로 풀이한 지역 불균등 발전
[경제와 책]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
[89호] 2017년 09월 01일 (금) 이윤 leeyune@inu.ac.kr
이윤 역해자(인천대 무역학부 교수)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이윤 옮기고 해설함, 창해 펴냄, 1만6천원

지역 발전은 왜 불균등할까? 고속도로나 철도의 역할은 지역 발전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기존 국제경제학은 이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국가 내부의 지역 간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은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지역 발전 이론을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려 폴 크루그먼의 대표작 <Geography and Trade>를 번역·해설한 책이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권은 1965년 이후 미국과 일본 등 자본주의국가와의 무역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고립돼 낙후됐던 국가경제를 급속히 성장시켰다. 이는 무역과 경제성장의 관계에 대한 국제경제학 이론을 현실에서 증명한 고전적 사례다. 그러나 산업화는 수도권과 정권의 기반인 영남 지역에 집중됐고, 기타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인구 유출을 겪었다. 이 책은 이 과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보정할 기본 틀을 제공한다.
 
경제활동은 지역마다 고르게 분포하기보다 특정 지역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지역 불균등 발전이 일반적이라는 말이다. 멀리 눈 돌릴 필요 없이 사람과 경제활동이 집중하는 도시의 존재 자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규모의 경제와 수송비의 관점에서 경제활동의 집중 현상을 설명한다.
 
폴 크루그먼은 특정 지역에 경제활동이 집중되는 이유를 우선 규모의 경제에서 찾는다. 규모의 경제 또는 규모에 대한 수확 체증은 규모가 커질수록 단가가 하락해서 이득이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생산을 늘리는 게 유리해져 그 지역에 경제활동의 집중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 때 수송비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송비가 하락하면, 경제활동이 집중된 지역의 접근성이 좋아져 생산 집중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은 아울러 경제활동 분포에서 경로의존성도 강조한다. 한번 경제활동의 집중이 형성되면, 비록 나중에 불합리한 것으로 드러나도 쉽게 약화되지 않는다. 미국의 식민지 시대 초기 13개 주 주변에 형성된 제조업 벨트에 여전히 미국 제조업의 태반이 집중해 있는 것이나, 식민지 시대 일본과 인접성 등을 고려해 구축된 부산항과 경부철도를 배경으로 형성된 영남권 제조업 벨트가 90년 이상 유지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리경제학은 여러 면에서 유용하다. 정책 면에선 산업 입지를 결정할 때 정치적 고려에서 벗어나 명확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유용성은 통일 뒤 북한 지역에까지 확대 적용될 수 있다. 개인에게는 역세권 효과를 고려해 집을 구하거나, 사업을 위한 사무실·가게의 입지를 고를 때도 지침이 될 수 있다.
 
미시경제학이나 거시경제학은 일반인이 그 지식을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분석을 위해 모형 자체에 존재하는 가정과 고려할 변수가 너무 많다. 반면 지리경제학은 간편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사례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설명하기보다 단순한 모형을 제시해서 여러 경우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인천에서 전남 목포까지 새 고속도로를 뚫는다고 해보자. 이 책은 그 결과 수송비가 하락하고, 고속도로 통과 지역 중에서 규모의 경제를 발휘하는 곳은 수송비 하락에 따라 경제활동이 더욱 집중돼 번성할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모형에서 다른 효과도 유추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를 발휘하지 못하는 지역의 산업은 중심부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고속철도(KTX) 같은 신속한 교통체계의 발달이 일차적으로 지방의 숙박업 몰락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의료와 교육 등 서비스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 우리의 경험과 일치한다. 서울에 서비스업이 집중된 상황에서 수송비 하락이 이를 더욱 부추긴 것이다. 근래에 두드러진 지방 거점 국립대학의 쇠락도 수송비 하락과의 관련성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 책은 훈련된 경제학자가 일하는 방식의 전범을 보여준다. 훈련된 경제학자는 모형을 기반으로 경제문제를 사고하는데, 모형은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핵심적 요인과 현상을 끄집어내 그 구조와 관계를 설명한다. 따라서 훈련된 경제학자들 사이의 논쟁은 모형의 기본이 되는 가정, 정합성, 현실 설명력 및 예측력을 중심으로 단순화된다. 모형을 기반으로 논의하면, 동일한 사안에 대해 상황에 따라 과거와 상반되는 주장을 제기하거나, 소속 집단의 이익을 반영해 모순적 주장을 늘어놓는 일이 줄어든다.
 
이 책은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다. 긴 해설과 역해자 주를 담고 있다. 폴 크루그먼의 원서가 애초 대중을 상대로 했지만 이론을 설명한 것이기에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따라서 50여 쪽의 해설을 앞에 두고 지루할 정도로 긴 역해자 주를 단 것은, 독자가 맥락을 잘 이해하고 그 현실적 함의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독자가 처음에는 생경하게 느껴지다가도 꼼꼼히 읽어가면 한국의 지역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는 지적 놀이 과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근본적 원리를 밝히는 ‘이론’에 대한 논의는 거의 보이지 않고, 개개의 사안에 대해 자기가 속한 ‘진영’에 ‘복무’하는 평론이 횡행한다. 이 세태에서 작지만 빼어난 이론서를 출간해 준 출판사의 용기와 노력에 감사드린다.
 

● 인사이트 책꽂이
 
   
금융의 딴짓
존 케이 지음 | 류영재 옮김 | 인터워크솔루션즈 펴냄 | 2만3천원
‘금융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금융 산업의 문제점을 따진 책이다. 경제학자인 저자는 ‘종잇 조각’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가치를 만들 수 없는데, 금융계 사람들이 특별한 수익을 낸다면 분명 누군가의 희생 때문이라고 말한다. 금융의 영향력이 커진 과정을 따져본 뒤 금융 기여도가 과장됐다고 결론짓는다. 금융이 경제에 기여하게 하려면 규제를 강화할 게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더박스
마크 레빈슨 지음 |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펴냄 | 3만원
컨테이너가 운송비용을 낮춤으로써 세계화가 시작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논하는 책이다. 저자는 평범한 철제 상자가 무역을 바꿔놓은 과정을 통해 혁신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의도치 않은 일이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애초 컨테이너는 사소한 혁신으로 치부됐고, 상품이 만들어지는 지역과 제조 방식에 거대한 변화를 촉발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센스메이킹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 지음 | 김태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 1만6천원
“현재 우리는 과학·기술·공학·수학 기반 지식과 ‘빅데이터’의 추상적 개념에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현실을 설명하는 대안적 기틀을 거의 쓸모없게 여긴다”는 문제 의식을 담은 책이다. 인간의 추론과 판단에 가치를 두지 않고, 수치와 모형에 집착해 세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문제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비판적 사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거야말로 혁신적이라는 것이다.
 
 
 
   
독립수업
그레이스 보니 지음 | 최세희·박다솜 옮김 | 윌북 펴냄 | 1만9800원
작가, 도예가, 패션디자이너, 요리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미국 내 여성 112명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저자는 여성들에게 어릴 적 꿈, 일이나 직업적 고민, 회사 경험에서 얻은 교훈 등에 대해 묻는다. 112명의 모습과 그들의 작업 공간을 보여주는 사진을 함께 실었다. 저자는 세계 곳곳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디자인*스펀지’ 설립자이며, 이 책은 10년간 미국 곳곳을 찾아다닌 기획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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