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동요 <고향의 봄>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런 산골마을에 아주 오래전 ‘선거술 먹고 죽은 할머니’가 계셨다. 예전 어느 해 선거 때 공짜 술을 얻어먹고 탈이 나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제 마을에 그 할머니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이 든 노인 몇 명만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30년이 지나도록 그 집은 아직도 동네에서 ‘선거술 먹고 죽은 할머니집’으로 불린다. 여간 불명예스럽지 않다. 그 집이나 할머니에 대해 어떤 악의를 가지고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니었다. 이유라면 그렇게 부르는 게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설명하기도 쉽고 알아듣기도 쉽기 때문이다. 오래 고향을 떠나 있던 사람들도 그렇게 설명해야지만 그게 어느 집 얘긴지 제대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름의 집들도 있다. 문 앞에 아주 큰 물감나무가 있어서 ‘물감낭구집’, 아주머니 얼굴에 주근깨가 많이 박혀 있어서 ‘깨박이네’, 아저씨 목소리가 커서 ‘양재기네’, 서울서 이사 왔다고 해서 ‘다마네기네’.
이웃마을에 가면 선거술 먹고 죽은 것보다 더 슬프고도 억울하게, 밖에 나가 공부를 하던 아들 하나 말고는 온 가족이 복어를 먹고 횡액을 당했다 해서 ‘뽁쟁이 먹고 소솔 다 죽은 집’도 있고, 아주머니가 목청이 크고 수다스럽다고 ‘   라네’, 뭘 먹을 때가 되면 어찌 알고 와서 마루 끝에 먼저 와서 떡하니 앉아 있는 ‘떡커니 할머니집’도 있다.
 불이 나서 부엌이 타버리자 새로 집을 짓지 않고 궁여지책으로 안방 바닥을 파서 그것을 부엌처럼 썼던, 그러나 이제 아들이 돈을 벌어 그 자리에 멋진 전원주택을 지었는데도 여전히 ‘부엌 없는 집’으로 불리는 집도 있고, 그냥 말이 많은 것과는 다르게 언변이 시원시원하다 해서 ‘변호사집’, 동네 아이들이 잡아오는 도롱뇽을 눈깔사탕 한 개씩 주고 바꿔 날걸로 먹는다고 해서 ‘도롱뇽 할배집’도 있다.
 거의 초가집만 있던 시절 옛날 기와집이라고 해서 ‘재집’, 벽을 흰 회벽으로 발라서 ‘회벽집’, 함석지붕에 검은 콜타르를 발랐다고 ‘골타루 함석집’도 있고, 그 집 어른이 젊어서 여자를 여럿 보았는데 나중에 그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서 ‘여자 셋 있는 집’, ‘며느리 도망간 집’처럼 본인들 모르게 은밀하게 부르던 이름도 있었다.
 어린 시절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마을의 그 많은 집들 가운데 아직도 동네에 그대로 살고 있는 집은 3분의 1도 채 안 된다. 모두 ‘선거술 먹고 죽은 할머니집 논을 부치다가 싸움이 나 논에 불 싸지르고 시내로 이사간 집’처럼 예전에 차례대로 마을을 떠났다. 더러는 동네빚, 농협빚에 눌려 ‘돈 떼먹고 밤에 몰래 떠난 집’도 있다.
 요즘 강원도에 ‘바우길’이라는 트레킹 코스를 개척해놓고 거의 매주 고향에 가지만, 가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노인뿐이다. 그걸 언변 좋은 ‘변호사집’ 할아버지는 이제 사람 하나 죽으면 마을에 집도 하나씩 따라 없어진다고 했다.
 나의 살던 고향 꽃피는 산골은 지금 그렇다. 여러분이 돈 벌러 떠난 사이 여러분의 고향 역시 그렇다. 그런데도 우리는 입버릇처럼 그곳이 그립다고 말한다. 그리우면 신경이라도 좀 써야 하는데, 모두 먹고살기에 바빠 말로만 립서비스하듯 그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