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내
     
독일에선 전자우편·블로그 상속
[IT@econo]
[7호] 2010년 11월 01일 (월) 심영섭 economyinsight@hani.co.kr

심영섭 편집위원·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94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제러미 토먼의 할머니는 생전에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활동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였다. 방대한 전자우편과 인간관계를 남긴 할머니의 유품을 관리하기 위해 토먼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정보관리 서비스업체인 ‘레거시 로커’(Legacy Locker)를 설립했다. 레거시 로커는 사자(死者)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남긴 전자우편 계정과 블로그, 사진, 동영상 등을 관리해주는 대행업체다. 미국에서 설립된 레거시 로커와 유사한 업체가 전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비탈로크’(Vitallock)를 비롯해 스위스에 본사를 둔 ‘데이터 인헤리트’(Data Inherit), 스웨덴에 본사를 둔 ‘마이웹윌’(Mywebwill)은 대표적인 디지털 유품 관리회사다.
 
독일선 일반 유산과 동일하게 처리
이런 회사가 설립된 배경은 사랑하는 사람을 병이나 사고로 잃은 가족이 고인을 기억하기 위해 생전에 그가 남긴 유품인 디지털 기록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2004년 11월 이라크 전쟁에 미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저스틴 엘스워스 해병 병장의 가족은 인터넷 검색 포털 ‘야후’를 상대로 엘스워스 병장이 사용한 전자우편 계정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야후는 사생활 보호를 명분으로 이를 거부했고, 엘스워스 병장의 가족은 민사소송을 통해 2005년 4월 미국 미시간주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유럽에서도 디지털 유품을 처리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는 국가마다 다르다. 아직까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나 법원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나 지침은 없다. 별도의 입법을 통해 디지털 유품의 처리 방법을 결정한 국가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전자우편 계정과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인터넷계정관리회사와 개인 간의 갈등은 종종 법정 소송으로 연계된다. 그래서 죽은 자를 기억하고 싶어하는 유족과 개인의 예민한 정보가 들어 있는 디지털 유품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인터넷서비스제공회사(ISP) 사이의 작은 전쟁은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된다.
독일에서는 고인의 디지털 유품을 일반적인 유산 상속과 동일한 절차에 따라 다룬다. 디지털 미디어 이용이 늘어나면서 인터넷 공간에서 ‘디지털 유품’을 남기는 일도 늘어난다. 디지털 유품에는 전자우편 주소와 전자우편, 주소록뿐만 아니라 고인의 일상생활을 찍은 사진과 블로그, 홈페이지, 가상화폐에 이르기까지 극히 개인적인 일상생활의 정보와 재산이 포함된다. 최근에는 ‘페이스북’(Facebook) 같은 인맥쌓기 사이트가 늘어나면서 디지털 유품 수도 급증하고 있다.
디지털 유품은 어떻게 상속할 수 있는가? 상속법 전문 변호사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페터 쿠피시는 “디지털 유품은 고인의 재산이며, 특히 ‘인격권’에 해당하는 재산의 상속은 민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상속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유언장이나 위임장을 생전에 직접 작성하거나 변호사를 통해 공증해두면 더 안전하게 디지털 유품을 상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정보보호담당관인 틸로 바이헤르트도 최근 한 강연회에서 “유족에게 디지털 유품을 남기려면 반드시 변호사에게 유언장과 자신이 사용하는 계정, 홈페이지 등의 비밀번호를 맡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바이헤르트는 독일에서 개인정보 보호는 유족의 고인의 인격권 상속 권리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유언장이 없을 경우 인터넷계정관리사업자가 개인의 정보보호를 1차적 정책 목표로 내세우면 디지털 유품을 승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열람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유족이 고인의 디지털 유품을 상속받으려면 관련 절차를 밟아야 한다. 상속권은 고인의 직계비속(자손)에게 우선적으로 있으며, 이어서 배우자와 부모가 해당된다. 또한 상속에 대한 주장은 고인의 사후 10년 안에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고인의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디지털 유품을 찾아야 하며, 이에 대한 처리는 별도의 유언장이 없는 한 상속인이 결정한다.
   
트위터 계정 이용자가 사망했을 때 계정 처리 절차를 설명하고 있는 트위터 공식 홈페이지의 안내 문구.

 
삭제·관리 여부 유족이 선택
상속인은 고인이 남긴 모든 디지털 유품을 상속할 수 있다. 만일 자신이 상속인임을 증명할 수 있다면, ISP에 새로운 비밀번호를 요구할 수도 있다. 독일의 전자우편 서비스 업체인 ‘gmx.de’와 ‘web.de’는 고인의 상속인임을 확정할 수 있을 때 모든 디지털 유품의 상속을 허용한다. 유족이 고인의 사망증명서와 유족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면 계정의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고인의 정보를 처리할 시간을 준다. 고인의 전자우편 계정은 계속 사용할 수 없지만 저장된 편지와 주소록 등 디지털 유품은 유가족이 상속을 위해 저장할 수 있고, 일정 기간 추모를 목적으로 계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야후는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는 고인의 디지털 유품 상속 신청을 준법감시팀(Criminal Compliance Team)에서 처리한다. 유족이 승계를 희망할 경우 신청일로부터 늦어도 두 달 안에 고인의 계정 정보가 든 CD나 DVD를 유족에게 전달한다. 계정 삭제는 명백한 요청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야후는 여전히 고인의 전자우편 계정 내용을 제3자가 변형·승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는 고인의 계정을 유족에게 전달하지 않고 삭제만 해준다.
마지막으로 상속한 디지털 유품을 삭제할지 계속 관리할지도 유족이 선택할 수 있다. 상속을 위한 증빙 서류는 사망증명서와 상속증명서다. 많은 유족들이 일정 기간 계정을 유지하면서 방명록을 관리하거나 고인의 친지에게 추모할 수 있는 기간을 주기 바란다. 소셜 미디어로 인맥쌓기 누리집 중 하나인 ‘StudiVZ’이나 ‘SchuelerVZ’ ‘MeinVZ’ 등은 고인의 유족과 합의해 계속 계정을 유지할지 혹은 추모 공간으로 활용할지를 정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유사한 약정을 운영한다.
디지털 유품 상속은 일반적인 상속과 동일하게 일정한 선행 조건이 있다. 즉, 상속 가능한 디지털 유품의 소재지를 알아야 한다. 상속 가능한 디지털 유품에는 전자우편 계정에 있는 편지, 글, 사진, 동영상, 가상화폐(싸이월드의 도토리나 이베이의 가상화폐), 아바타 등 고인이 생전에 남긴 모든 저작물과 재산이 해당된다. 이것들이 어느 소셜 미디어에 존재하는지, 혹은 고인의 전자우편 주소와 계정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 또한 상속인은 고인의 디지털 유품을 찾아서 목록화해야 한다. 이는 마치 유족이 부동산이나 동산을 상속할 때와 같은 절차가 적용된다. 소재를 알지 못하는 재산은 상속할 수 없다. 고인의 디지털 유품을 ISP가 별도의 작업을 통해 찾아야 할 때는 ‘수혜자 원칙’에 따라 상속재산을 특정하고 수집·제공하는 비용을 유가족이 모두 내야 한다. 보통 전자우편 주소와 편지, 사진 등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료실로 넘어가는데, 이때 자료실에서 해당 유품을 찾아오는 일은 별도의 용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유족은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유산을 상속할지, 아니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유품만 상속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유품찾기 서비스 사이트 늘어
독일에서는 최근 들어 디지털 유품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늘어나고 있다. 유족이 유산을 물려받는 데 선행돼야 할 고단한 유산찾기를 대행해준다. 고인의 유족이나 친구를 찾아 디지털 유품을 상속받게 도와주거나 인터넷상에서 삭제할 수 있도록 용역을 제공한다. 계약이 성사되면 웹 전문가가 디지털 유품을 검색해 인터넷상에서 고인의 정보를 삭제한다. 유족이 정보를 따로 보관하기를 희망하면 별도의 조치를 취한다. 스웨덴에 있는 마이웹윌은 인터넷 이용자가 생존 기간에 ‘인터넷 유언장’을 작성토록 하고, 여기에 은행계좌, 전자우편 계정, 홈페이지 가입 계정 등 중요한 비밀번호를 보관토록 한다. 마이웹윌은 가입비로 125유로 (약 20만원)를 받고 있으며, 생존하는 동안에 회비로 매년 20유로(약 3만 1천원)씩 받는다.
독일에서는 사후 10년간 고인의 디지털 유품이 유족의 상속 대상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는 별도의 유언장이 없으면 타인이나 유족이 고인에 대한 정보를 언제든지 얻을 수 있다. 고인의 디지털 유품 관련 분쟁은 지적재산권·인격권과 관련된 사후처리를 둘러싸고 발생한다. 저작권은 저작자로서 고인의 권리보다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과 몽타주, 캐리커처 등 저작물과 저널리즘적 원칙에 따라 작성된 기사나 촬영된 보도사진, 방송영상 등이 해당된다. 반면 인격권은 고인의 개인적 권리를 의미한다. 유럽연합은 시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공인이나 유명인의 공적 활동에 대한 보도와 표현에 대해서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그 밖의 영역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더 중요한 원칙으로 정한다. 이와 관련해 독일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공표되는 것 가운데 저널리즘적 원칙(탐사와 취재, 편집)에 따라 생산된 콘텐츠와 개인적 관심에 따라 유포되는 콘텐츠는 사안별로 다른 법적 처리 기준이 적용된다. 사후 10년 상속권은 주로 개인적 사생활 영역에서 발생한 사건의 디지털 유품에 해당한다. 만일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 아니라 공적 활동 혹은 공공의 관심사와 이익이 포함될 때는 언론의 자유가 우선한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구분돼야
온라인 공간에서 고인의 디지털 유품 관리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넷 공간에서 사생활 보호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구분되며, 디지털 유품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둘째, 경제적 이해관계와 상업적 목적의 공표 행위와 비상업적 목적의 공표 행위는 구분된다. 상업적 목적에서 대가를 지급한 사진이나 영상 등의 저작권은 개인이 아닌 저작물 제작자에게 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돈을 목적으로 포르노그래피를 찍은 한 스위스 여성이 이후 자신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해당 사진과 영상의 인터넷 삭제를 요구했지만, 법원은 대가를 지급하고 만든 저작물로 판단해 원고 패소를 결정한 사례가 있다. 이는 고인의 디지털 유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셋째, 유럽에서는 인터넷 공간에서 공표된 디지털 저작물과 관련한 갈등의 해소는 일차적으로 자율규제기구를 통해 중재되고, 중재가 어려울 때는 당사자 간의 합의를 유도하는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된다. 넷째, 사생활 정보가 포함되는 전자우편이나 블로그, 홈페이지, 소셜 미디어의 계정과 정보는 상속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때 유족이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려는 디지털 유품의 목록과 상속권을 명확하게 증명해야 한다.


제3자가 운영하는 홈피는 폐쇄 조치

지난 10월13일,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사자의 디지털 유품 관리 현황과 개선 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에서 안진혁 SK커뮤니케이션즈 소셜네크워크실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사자의 디지털 유품 취급현황 및 문제점’을 발표했다.
현행 정보통신 관련법과 민법의 일신전속권(특정 주체만 향유하거나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따라 고인의 미니홈피와 블로그는 △제3자(배우자 및 직계가족을 포함한 타인)에게 승계(양도·상속) 불가 △제3자에 의한 운영 불가 △임의 수정 불가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고인의 미니홈피·블로그가 제3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고객센터로 신고가 접수된 경우 기본 원칙에 따라 제3자가 운영하는 것은 명의 도용으로 확인 뒤 증거가 명백할 때 해당 미니홈피·블로그를 폐쇄한다. 또한 고인의 미니홈피를 모니터링하면서 비회원 글쓰기를 차단하고 관리자 임의메뉴를 클로징한다. 다만 사망한 연예인 등의 경우 ‘이슈 미니홈피’로 등록하고 방문자 글쓰기를 차단한다.
2500만 개 미니홈피 중에서 고인의 미니홈피·블로그의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이 방치되거나 제3자가 운영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제3자가 운영하는 경우 고인을 추모할 목적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원칙을 강제하기 어렵다. 고객센터로 접수되는 고인 관련 문의 중 약 52%가 미니홈피의 비밀번호를 확인 요청하는 것이다. 미니홈피 탈퇴 요청 문의는 33% 정도다. 제3자가 고객센터로 비밀번호를 문의하는 경우 원칙에 따라 처리 불가하다고 통보하지만, 고 최진실 미니홈피 등은 제3자나 가족이 운영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 쪽은 “고인의 미니홈피·블로그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으며, 사망자임을 식별하거나 표시하는 형태의 서비스 보완에는 이용자들이 부정적 의견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_편집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심영섭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