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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추구’가 키운 100억원대 시장
[국내 특집] 팽창하는 비디오판독(VAR) 시장- ① 시장 규모와 현황
[88호] 2017년 08월 01일 (화) 김창금 kimck@hani.co.kr
1mm 오차까지 잡아라. 갈수록 정확한 판정을 요구하는 스포츠팬들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비디오판독 시장도 세를 키우고 있다. 비디오판독의 핵심은 공정성이다. 기술 발달은 숨은 1인치를 찾아낸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오래된 신화는 기술 발달로 깨져나갔다. 가장 보수적인 스포츠 가운데 하나인 축구에서조차 “비디오판독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태도를 바꾼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프로·아마추어 스포츠 구분 없이 비디오판독 시스템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외국 기업은 물론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비디오판독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뜨겁다. _편집자
 
K리그에 비디오판독 도입하며 판 키워... 팬들 ‘정심’ 욕구 커지면서 관련 산업도 발달
 
최근 프로축구 K리그에 비디오판독(VAR·Video Assistant Referee)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비디오판독 시장 산업에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은 아시아권에서 단연 비디오판독 도입의 선두주자다. 비디오판독 시스템을 갖추려면 종목별 차이는 있지만 축구의 경우 대당 6천만원 비디오판독 서버, 각종 모니터와 케이블을 하나로 묶어 장착한 대당 2억원 미니밴 한 대 등이 필요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비디오판독 시스템 구축에 33억원을 투자하는 등 업계에선 전체 비디오판독 시장 규모가 100억원대를 훌쩍 넘을 것으로 내다본다.
 
김창금 <한겨레> 기자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비디오판독 시스템 구축에 33억원을 투자한 것을 포함해 국내 비디오판독 시장의 규모는 100억원대로 추정된다. 2017년 5월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U-20 월드컵 경기에서 주심이 비디오판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각의 시대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과거엔 실수로 넘어갔다. 그런데 비디오가 보여준다. 잘못이 보이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축구는 가장 보수적인 스포츠 가운데 하나다. 쉽게 룰을 바꾸지 않는다. 과거 조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오심은 경기의 일부”라고 했다. 10여 년 지난 2017년,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은 “비디오판독은 시대의 흐름” 이라 했다. 상전벽해다.
 
축구 보수주의가 변화를 수용한 배경은 무엇인가? 생존이다. 기술 발달은 숨어 있는 1인치를 보여준다. 느린 동작이 반복돼 리플레이된다. 피파는 경기장 전광판에 논란이 될 판정 장면을 보여주지 못하게 한다. 경기장 폭동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는 관중보다 훨씬 많은 텔레비전 시청자가 있다. 이들은 본다. 경기장 관중도 모바일폰에서 재생 화면을 본다. 오류를 숨길 수 없다. 기술 진보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신화를 깨트렸다.
 
한국은 아시아권에서 비디오판독(VAR·Video Assistant Referee) 도입의 선두주자다. 2017년 7월1일부터 프로축구 K리그 1부(클래식) 전 경기에 비디오판독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로축구가 상반기 부분적으로 실시했고,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는 8월 올스타전이 끝나면 실시한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2018년 초부터 비디오판독을 가동할 예정이다. 일본과 중국은 아직 도입하지 않아, 한국이 동북아에서는 가장 먼저 치고 나갔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비디오판독 시스템 가동이 확실시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발빠른 대응은 잇따른 프로축구 오심 때문이다. 한국에는 심판 불신이 깊어 작은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프로축구연맹은 팬을 경기장으로 불러모으려고 판정의 공정성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프로축구 초기 투자비 33억원
살림 규모에 비해 큰 비용이 들어가도 비디오판독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다. 2017년 투입된 초기 투자비는 약 33억원이다. 일단 대당 6천만원인 비디오판독 서버와 각종 모니터, 케이블을 하나로 묶어 장착한 미니밴 1대에 2억원이 들어갔다. 프로축구연맹은 차량 3대를 준비했고, K리그 클래식 12개 팀 경기가 전부 열리면 6곳에 장비를 보내야 하므로 차량을 제외한 똑같은 설비 세 세트를 따로 장만했다. 기본 장비 구축에 총 10억원이 들어갔다. 여기에 화면을 많이 확보하려고 경기마다 방송사 카메라를 기존보다 늘려 투입하면서 지원한 비용이 22억8천만원이다. 업계에서는 야구, 농구, 배구 등 프로스포츠와 10개 이상 아마추어 종목에 구축된 비디오판독 시스템 규모가 100억원대를 훌쩍 웃돌 것으로 추산한다.
 
보통 10대 이상 방송사 카메라를 설치하면 웬만한 장면은 모두 잡힌다. 효과는 뚜렷하다. 첫 경기에서 영상 화면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판독에 5분이 걸린 것을 제외하면 판독 시스템은 5 경기에서 50초 이내에 결정을 이끌었다. 프로야구가 올해 서울 상암동에 판독센터를 설치해 전국 9개 구장의 상황을 한곳에서 파악하는 집중형을 도입했지만, 경기장에 배치된 카메라 수가 적어 판정에 몇 분씩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효율이 뛰어나다. 프로농구는 현장 코트에 장비를 설치하고, 프로배구는 방송사 중계 화면을 되돌려보며 판단한다. 축구는 장비가 장착된 특수차량을 경기장에 파견하는데 차 안에서는 숙달된 오퍼레이터가 비디오 화면을 편집해 올려주고, 두 명의 심판이 화면을 정밀 검토해 주심의 판단을 돕는다. 다른 종목보다 집중도가 높다.
 
비디오는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지만 축구 판독은 4가지로 한정된다. 골, 페널티킥, 퇴장, 잘못된 징계 적용 때만 개입한다. 가령 오프사이드에 이은 골을 주심이 놓쳤을 때 비디오 판독은 즉각 주심에게 신호를 울린다. 물론 주심이 비디오의 도움을 받기 전에 내린 판단이 옳다면 그냥 간다. 페널티킥 반칙 때도 정확한 판단을 위해 비디오가 가동되고, 퇴장을 줄 때도 도움을 받는다. 주심과 송수신하는 장비에 이상이 없어야 하고, 카메라 영상을 끌어오는 케이블은 서버에 정확히 장착돼야 한다. 2017년 6월 러시아에서 열린 대륙별 챔피언 대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비디오판독 시스템이 적용됐다. 판독으로 인한 경기 중단에 불만을 표시한 팬들이 있었지만, 대개 새 시스템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비디오판독이 인간의 자율 영역을 훼손한다는 걱정도 있다. 그러나 주심은 여전히 그라운드의 최종 결정권자이고, 현장에서 내린 모든 판단은 일차적으로 존중받는다. 주심은 네 가지 치명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비디오판독을 하는 두 명의 다른 심판에게 도움을 받아 오심으로 인한 징계와 하부리그 강등 걱정 등 심적 압박에서 해방됐다. 심판의 권위는 무너지지 않았다. 하루 6경기가 열리는 프로축구에서 주심의 페널티킥 휘슬이 비디오판독에 따라 뒤집히는 경우가 여러 번 나오는데, 팬들은 오심한 주심을 질타하기보다 정당한 규정 적용에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다.
 
다만 비디오판독으로 주심의 애초 결정이 뒤집혔을 때 느끼는 쑥스러움은 있다. 3천 분의 1 프레임으로 상황을 되돌려보는 초고속카메라에 의해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을 현미경처럼 보여주면 인간은 할 말이 없다. 1mm 오차까지 들여다보며 정확한 판정을 요구하는 팬들의 욕구는 더 커졌다.
 
종목 특성도 비디오판독의 유형을 가른다. 가령 야구에서는 주심도 선수도 아닌 감독이 판독을 요청하고, 농구나 배구에서도 주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상대팀 감독만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에서만큼은 여전히 주심이 비디오판독 권리를 주관한다. 그라운드의 지휘자를 존중하는 축구 보수주의의 한 측면일 수 있지만, 경기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한 현실적 선택으로 여긴다.
 
야구나 농구, 배구에서는 감독이 요청하는 판독 기회가 경기당 1~3회다. 팀에서는 판독 기회가 더 많길 바라지만 무한정 늘려 경기 시간이 길어지면 종목 자체가 팬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축구에서 이상적인 비디오판독은 경기당 2~3회로 상정하고, 결정도 40초 이내에 끝내는 것이 목표다. 디지털 판독으로 최종 결정을 하기 때문에 축구장에서 종종 등장하는 ‘극장골’ 순간의 감동도 뒤집힐 수 있다. 비디오의 눈은 냉정하기 때문이다. 0과 1의 디지털 기계에 인간의 실수를 보완해달라고 요청한 대가로 지불하는 일종의 트레이드오프다.
 
   
심판 비리와 성적·승부 조작을 없애기 위해 아마추어스포츠에서도 비디오판독 시스템이 도입됐다. 전국체육대회 태권도 경기에서 심판들이 판독용 비디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아마추어스포츠로 확산
비디오판독은 프로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빙상계에서는 대표선수 선발이나 전국대회 이상급이면 모두 비디오판독을 해 판정 시비를 없앤다. 검도, 유도, 럭비, 레슬링, 하키 등 다양한 종목에서 판독이 이뤄진다.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50여 개 가운데 10개의 아마추어 종목에서 비디오판독이 활성화됐다. 심판 비리와 성적·승부 조작 등을 없애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스템 도입 지원을 했다. 학부모나 선수 처지에서도 대학특기자 선발의 주요 평가 요소인 대회 성적이 정확히 반영되기를 원하면서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동네 스포츠클럽에서는 캠코더나 스마트폰 영상으로 경기·훈련 모습을 찍은 뒤 선수의 장단점을 파악하거나 전술을 다듬는 한편 판정을 위해 영상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한국의 특수한 환경뿐 아니라 기질, 문화가 비디오판독 문화를 확산시킨 경우도 있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에서 안톤 오노에 의한 김동성의 실격과 금메달 박탈을 계기로 대한빙상경기연맹은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쇼트트랙 경기의 비디오판독 도입을 강조했다. 골인 지점에서 스케이트 날의 순위를 가리는 것은 예전부터 해왔지만, 한국의 강력한 요구로 결국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코너에서의 몸싸움 등 접촉에 대한 비디오판독을 2006년부터 실시했다. 국내 프로배구가 2007년부터 비디오판독을 일찌감치 도입하고 프로축구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서 비디오판독을 시행한 것도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예민한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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