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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맛·스토리로 혼술족을 홀려라
[국내이슈] ‘수입 vs 국산’ 시원 쌉싸래한 맥주 전쟁
[88호] 2017년 08월 01일 (화) 이천종 skylee03@naver.com
수입맥주, ‘4캔 1만원’ 마케팅으로 생수 매출 추월... 발포주와 지역 수제맥주로 국산맥주도 반격
 
한국 대형마트와 편의점 맥주 진열대를 보면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린다. 시장을 독점한 몇몇 국내 맥주업체가 밍밍한 한두 종류의 맥주에 안주한 사이 가격경쟁력과 다양한 맛, 고유의 역사를 가진 수입맥주가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소비자는 같은 값이면 골라 먹는 재미로 수입맥주를 선호한다. 대형 주류업체는 기존 맥주와 차별화한 제품을 내놓고 중소 규모 맥주업체는 지역명을 딴 수제맥주로 수입맥주의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
 
이천종 <세계일보> 기자
 
   
서울 시내 대형마트 수입맥주 코너에서 점원이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4캔 1만원’ 열풍으로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수입맥주 매출은 생수 매출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퇴근길에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듯 종종 편의점을 찾는다. ‘수입맥주 4캔에 1만원’이란 솔깃한 상술에 넘어간 지 오래다. 3900원짜리를 묶어 30%가량 싸게 파니 ‘혼술’(혼자 먹는 술)에 맛 들인 주당들의 주머니를 훑기 딱 좋은 마케팅이다. 보통 벨기에산 ‘스텔라 아르투아’ 한두 개를 찜하고 기분에 따라 독일과 일본, 미국, 중국 맥주를 번갈아 담는다. 필자 같은 이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단골 편의점의 냉장고를 유심히 보니 눈길이 잘 가는 곳에 수입맥주가 빼곡하다. 국산맥주는 아랫단으로 밀려나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수입맥주의 인기가 실감난다. 롯데마트가 2017년 6월 발표한 5년간의 생수 대비 수입맥주 매출 비중 분석이 유통가의 화제였다. 생수 매출을 100으로 봤을 때 수입맥주 매출이 2017년 상반기(1월1일~6월24일)에 124.2를 기록했다. 수입맥주 매출이 생수 매출을 뛰어넘은 것은 처음이다. 3년 전만 해도 수입맥주 매출이 생수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폭발적 성장세다. ‘혼술’ ‘집술’(집에서 먹는 술) 바람을 타고 수입맥주 시장이 급성장한다는 방증이다.
 
편의점에선 마트보다 먼저 수입맥주가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세븐일레븐의 최근 5년간 생수 대비 수입맥주 매출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13년 84.9%, 2014년 100.3%, 2015년 146.4%, 2016년 170.8%로 파악됐다. 3년 전부터 경제 상황이 팍팍한 편의점 사장님에게 물보단 수입맥주가 더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해온 것이다.
 
가격경쟁력·다양성·스토리
맥주 수입액도 급증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맥주 수입액은 2011년 5884만달러(약 668억원)에서 2012년 7359만달러(약 836억원), 2013년 8996만달러(약 1022억원), 2014년 1억2268만달러(약 1394억원), 2015년 1억4168만달러(약 1610억원)로 해마다 늘고 있다. 2016년 한 해 국내에 들어온 수입맥주량은 22만여t으로 2015년보다 29% 증가했다.
 
수입맥주 급성장의 비결은 우선 가격경쟁력이 꼽힌다. 편의점에서 1만원에 4개씩 팔리는 수입맥주는 대형마트에선 약간 더 싼 가격에 팔린다. 2015년 미국에서 지낼 때 스텔라 아르투아(330ml 병 기준) 6개 묶음의 마트 가격이 9달러(약 1만원) 안팎이었다. 1병에 약 1.5달러(약 1700원)꼴인데, 우리 동네 편의점에서 1캔(500ml)에 2500원 정도니 미국에서 마실 때와 큰 차이가 없다. “미국에 온 김에 싼 맥주 많이 먹는 게 남는 거예요”라던 교민들의 조언을 금쪽같이 믿고 따랐는데 뱃살만 남은 셈이다.
 
수입맥주가 이렇게 값을 후려칠 수 있는 것은 수입단가가 내려가고,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수입관세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 최근 5년간 1t당 수입가는 평균 984달러(약 111만원)로 시작해 823달러(약 93만원)로 낮아졌다.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맺은 FTA의 영향으로 맥주에 부과되는 수입관세는 2012년 20%대에서 2017년엔 3~4%로 줄었다. 내년엔 0%로 아예 사라진다.
 
국내 세금 부과 체계가 수입맥주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산 맥주는 제조원가에 판매관리비와 영업비용, 마진 등을 합친 출고가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지만, 수입맥주는 원가에 관세를 합친 값에만 과세한다. 국산과 외국산 맥주 사이에 주세 과세표준의 구성 항목 차이로 인한 역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에서 생산·판매되는 맥주는 국세청에 제조원가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고 출고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 수 없다. 반면 수입맥주는 원가를 신고할 필요가 없어 출고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산맥주는 수입맥주보다 30% 넘는 주세율이 적용된다는 게 국내 업체들의 항변이다. 이 주장에는 수입맥주가 이런 방식으로 확보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4개 1만원’식의 마케팅을 펼친다는 논리가 담겨 있다. 2017년 6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주세 과세체계의 합리적 개편에 관한 공청회’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졌다.
 
수입맥주는 나라 수만큼 종류가 다양하고, 맛도 개성이 강하다. 한국에서는 발효 중 아래로 가라앉는 하면 효모(이스트)를 써서 9~15°C 저온에서 발효시키는 라거맥주가 대세다. 저온 발효를 하는 만큼 대형 생산설비가 필요해, 자본력이 되는 몇몇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했다. 대량생산이 쉽고 시원한 청량감은 강점이지만, 향이 좋고 깊은 맛을 내는 맥주는 드물다.
 
수입맥주는 라거맥주뿐 아니라 에일맥주도 많다. 에일맥주는 상면 발효 효모로 실온에 가까운 온도에서 발효된다. 향이 좋고 깊은 맛을 내는 수입맥주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 팔리는 수입맥주만 500여 종에 달한다.
 
한 세기 가까이 2~3개사가 경쟁한 한국 맥주시장은 이와 천양지차다. 그러다 보니 필자 같은 40대는 ‘OB와 크라운’을 보며 자라, ‘하이트와 카스’ 중에 광고모델이 끌리는 맥주를 골라 마시다, 요즘에는 ‘소맥’으로 맛은커녕 몇 안되는 브랜드 구별조차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오죽하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다니엘 튜더 전 한국 특파원이 2012년 ‘한국 맥주가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라는 칼럼 하나로 그토록 유명세를 탔겠는가.
 
수입맥주의 또 다른 강점은 브랜드마다 스토리를 가졌다는 점이다. 2016년 국내 수입맥주 브랜드 평판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호가든은 벨기에의 대표적인 에일맥주다. 1445년 벨기에 호가든 지역의 수도사들이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퀴라소섬의 오렌지 껍질과 고수 열매, 밀, 효모, 맥아, 홉을 넣은 새로운 제조법으로 맥주를 양조했다고 한다. 벨기에의 스텔라 아르투아는 프랑스 칸영화제 공식 맥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잘 팔리는 수입맥주의 본고장에는 세계적인 맥주 축제가 해마다 열린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와 일본의 ‘삿포로 여름축제’, 중국의 ‘칭다오 국제맥주 축제’ 등은 축제 자체가 맥주 브랜드의 스토리를 새롭게 만들어간다.
 
   
2017년 6월 서울 등촌동 홈플러스 강서점에서 모델들이 수제맥주인 ‘해운대맥주’를 선보이고 있다. 수입맥주의 파상 공세에 국내 수제맥주 업체들은 지역명을 딴 제품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연합뉴스
 
국산맥주의 반격
도시 자체가 맥주 브랜드를 높이는 곳도 있다. 로키산맥을 병풍으로 두른 미국 콜로라도주의 덴버는 미국 최대의 맥주 도시다. 세계 최대 시설을 자랑하는 쿠어스 양조장이 덴버 인근 골든에 있다. 덴버 야구팀 콜로라도 로키스의 구장 이름 ‘쿠어스 필드’는 야구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국산맥주가 2017년 여름 뜨거운 반격을 벌이고 있다. 일단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하이트진로는 4월 발포주 ‘필라이트’를 내놨다. 발포주는 맥주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을 피하려고 맥주의 기준인 맥아(겉보리 싹을 띄운 것) 사용량을 줄인 일종의 유사 맥주다. 보통 일본 맥주의 맥아 사용 기준은 67%인데, 맥아 비율을 67% 미만으로 제조한다. 원가와 세금 절감,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전략이다.
 
필라이트는 355ml 캔 제품이 대형마트에서 ‘6캔 묶음 포장’으로 5천원 초반인 게 강점이다. 업계에선 2017년 6월 말 기준으로 필라이트의 누적판매량을 1267만 캔으로 집계한다. 식당이나 주점용이 아니라 순수 가정용으로 마트 등에서만 판매한 점을 감안할 때, 두 달 만에 1천만 캔 이상 팔린 것은 이례적이라고 한다.
 
롯데주류는 2017년 6월 정통 라거맥주 ‘피츠’를 출시했다. 자체 개발한 고발효 효모(슈퍼 이스트)를 사용해 발효도를 90%까지 끌어올려 잡미·잡향을 최소화했다.
 
국산 수제맥주의 선전도 눈에 띈다. 전국 주요 도시의 이름을 딴 수제맥주들이 뜻밖에 선전하고 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2017년 6월 한 달간 ‘해운대맥주’의 부산 지역 점포 판매량은 전국 평균보다 약 3.2배 많았다. 특히 해운대구에 위치한 해운대점과 센텀시티점에선 전국 평균보다 7.7배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강서맥주’는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점포에서 전국 평균보다 약 3.2배 높은 판매량을 올렸다. 대구 달서구의 이름을 딴 ‘달서맥주’도 대구 지역 판매량이 전국 평균보다 1.3배 높았다. 홈플러스는 중국의 ‘칭다오’, 뉴욕 ‘브루클린’처럼 국내에서도 중소 맥주 제조사가 지역명을 따 선보인 맥주를 적극 발굴해 지역을 대표하는 맥주로 성장시키려 한다.
 
정부에서도 수제맥주 등 소규모 생산 맥주를 할인마트·슈퍼마켓 등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2017년 안에 관련 규제를 완화해 측면 지원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맥주 원료의 허용 범위도 확대돼 밤·고구마·메밀 등 다양한 맛의 맥주 생산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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