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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힘
[Editor’s Letter]
[88호] 2017년 08월 01일 (화) 신기섭 편집장 marishin@hani.co.kr
“최선의 비판적 사고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겸손’이다. 이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개념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뭔가를 배우지만,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최근 번역 출판된 대니얼 레비틴의 <무기화된 거짓말>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신경과학자이자 인지심리학자인 저자는 머리말(12쪽)에서 이렇게 지적한 뒤 겸손, 다시 말해 자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세계를 위협하는 거짓말에 당하지 않는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번영할 유일한 방법이 이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번역자가 직접 쓴 서평을 잡지 142쪽에 실었습니다.)
 
서평을 부탁할 책을 고를 때 저는 대개 머리말을 봅니다. 잘 쓴 책은 머리말 또는 서론에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머리말이 흐리멍덩한 책은 웬만하면 제쳐둡니다. <무기화된 거짓말>은 앞에 인용한 대목이 나오는 데까지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서평을 부탁했습니다. 머리말에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말이 담긴 책이라면 소개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 가운데 많은 분이 ‘가짜뉴스’를 떠올리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얘기하려는 건 가짜뉴스가 아닙니다. 가짜뉴스란 용어는 더 중요한 거짓말을 감추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짜뉴스란 말이 이젠 너무 남용되고 있지만, 처음엔 “거짓을 뉴스로 가장해 온라인을 통해 퍼뜨리는 것”을 지칭했습니다. 이 말을 가장 앞장서서 퍼뜨린 이가 언론인과 정치인이라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언론인과 정치인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위험하고 영향력이 큰 거짓말을 퍼뜨리는 이들입니다. 왜곡 보도를 일삼는 언론인이나 거짓말을 퍼뜨리는 정치인이 끼치는 해악에 비하면 가짜뉴스의 위험은 아직 ‘새 발의 피’입니다.
 
정치인(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지식인)이 거짓말로 사람들을 얼마나 위태롭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예는 이번호에서도 찾으실 수 있습니다. 영국 집권당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유럽연합 탈퇴 방안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졌는지를 다룬 30쪽 ‘트렌드’ 기사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정치인과 일부 학자가 희망사항을 사실인 양 퍼뜨리면서 영국 경제와 국민의 삶을 위태롭게 할 정책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정치인의 거짓말이든, 왜곡 보도나 가짜뉴스든, 거짓말의 가장 큰 피해자는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무기화된 거짓말>의 저자 레비틴이 “민주주의가 번영할 유일한 방법”이란 말을 꺼낸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레비틴이 말하는 ‘겸손’은 힘없는 사람이 누구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권력자에게나 요구할 것이지, 힘도 없는 사람에게 겸손까지 요구하다니”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권력자에게 겸손은 미덕일지 모르지만, 힘없는 사람에게 겸손은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곧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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