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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소니’ 되살린 장인정신
[People] 소니 부활 이끈 히라이 가즈오 최고경영자
[87호] 2017년 07월 01일 (토) 박은수 eunsoo77@naver.com

 평사원 출신 히라이 취임 뒤 ‘기술 소니’ 부활... 이미지센서 호조로 2017년 영업이익 5조원 예상

몇 년간 적자에 허덕이던 일본의 대표 전자기업 소니가 부활하고 있다. 소니는 2017년 이미지센서와 게임기 호조에 힘입어 5천억엔(약 5조3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통해 반등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니 부활의 중심에 히라이 가즈오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소니뮤직의 전신인 CBS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히라이 CEO는 2012년 취임 초 개인용컴퓨터 사업 철수와 워크맨 분사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했고 이어 ‘기술 소니’ 부활에 나섰다. 그의 경영철학인 장인정신은 ‘기술 소니’를 되살리는 힘이다. 장인정신이 빚은 대표 상품인 이미지센서는 소니 부활의 일등 공신이 됐다.
 
박은수 <머니투데이> 기자
 
   
적자에 허덕이던 소니가 2017년 5조원가량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소니 부활의 중심에 히라이 가즈오 최고경영자가 있다. EPA 연합뉴스
“소니가 달라진다(It’s the Time for SONY to Change).” 2012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가전박람회(IFA) 기자회견장. 히라이 가즈오 소니 최고경영자(CEO·56)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소니의 부활에 자심감을 내비쳤다. “침체에 허덕이는 소니는 이제 잊어주십시오. 소니의 변화와 혁신을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소니를 바꿀 때입니다.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 내실을 다져 다시 흑자로 전환할 것입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17년 5월23일, 히라이 CEO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7년 경영설명회’에 참석해 소니의 부활을 선언했다. “지난 5년간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소니는 충분히 힘을 되찾았습니다. 성공적인 사업재편을 통해 확실히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이미지센서를 비롯해 스마트폰, 텔레비전, 게임 등 주력 분야가 정상 궤도에 오르고 있습니다. 올해 목표로 삼은 5천억엔(약 5조300억원)의 영업이익은 이제 그 출발에 불과합니다.” 영업이익 5천억엔은 소니의 72년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이는 비단 히라이 CEO의 자평만은 아니다. 미국 경제뉴스 <블룸버그>는 “증권가에서 보는 소니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5070억엔이다. 이는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소니가 지는 시장에서 떠오르는 시장으로 이동 중”이라고 평했다. 히라이 CEO가 5년 전 장담했던 말을 지킨 셈이다. 소니의 2017년 매출 목표는 8조엔(약 80조6400억원)이다.
 
평사원 출신의 ‘샐러리맨 신화’
일본에서 소니의 위상도 예전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일본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소니는 2018년 대학 졸업 예정자들의 취직 희망 기업 1위에 올랐다. 과거엔 줄곧 1위를 유지했으나 2013년부터 10위권에 진입하지 못하다가 2016년 간신히 10위에 턱걸이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단숨에 1위 자리를 꿰찬 것이다.
 
소니 부활의 중심에 평사원 출신 히라이 CEO가 있다. 1946년 일본인 기술자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가 설립한 소니는 1950년대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1970년대 이후는 휴대용 음악플레이어 ‘워크맨’으로 세계 전자업계를 주름잡았다. 워크맨은 애플의 아이폰과 함께 가전제품이 인류의 생활방식을 바꾼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맥없이 주저앉았다. 삼성, LG 등 후발 주자들이 치고 나오면서 주력 상품이던 텔레비전과 휴대전화 등이 경쟁력을 잃었다. 내수시장에만 몰두하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 것이다. 2005년부터 소니를 이끌던 영국 출신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은 끝 모를 나락으로 치닫는 소니를 일으켜세우지 못했다. 오히려 경쟁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부서 간 소통을 막고 갈등을 부추기면서 최악의 실적을 냈다. 한때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라 불렸지만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강등되는 수모도 겪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히라이 CEO다. 그는 무려 4566억엔(약 4조7천억원)이라는 역대 최악의 적자를 낸 2011년 이듬해 소니 CEO에 취임한 뒤, “소니를 바꾸겠다”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만성 적자에 빠져 있던 텔레비전사업부는 판매 지역을 축소하는 등 70% 가까이 도려냈고, 노트북컴퓨터 브랜드 바이오(VAIO)를 매각했다. 소니를 세계적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워크맨도 손실을 덜어내기 위해 분사시켰다.
 
히라이 CEO는 학창 시절 부모와 함께 해외 여러 곳을 여행하며 자랐다. 이 경험은 훗날 글로벌 경영자로 거듭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히라이 CEO는 도쿄에 있는 국제기독교대학을 졸업하고 1984년 소니뮤직의 전신인 CBS에 입사했다. 이후 여러 부서를 거쳐 2006년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부문을 맡았다. 이때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게임사업을 회사의 주력으로 키워냈다. 그리고 2012년 입사 28년 만에 소니 역사상 최연소 CEO 자리에 올랐다. CEO에 취임하자 마자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환부를 도려낸 히라이 CEO는 스트링거 전임 CEO와 달리 ‘기술의 소니’에 초점을 맞췄다. 워크맨·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이 혁신 제품을 만드는 ‘소니 정신’을 잇겠다는 것이다. 사실 스트링거는 CEO 취임과 동시에 마케팅을 중시하고 영화·음악·게임 등 콘텐츠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하면서 ‘기술의 소니’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다.
 
반면 소니의 부활을 이끈 히라이 CEO의 경영철학은 장인정신과 다름없다. 그는 장인정신을 강조하며 전임자가 소홀히 했던 기술 중시 문화를 다시 소니에 심었다. 첨단 이미지센서는 히라이 CEO의 장인정신이 만들어낸 대표 상품이다. 히라이 CEO는 2015년 유상증자로 조달한 4천억엔 대부분을 이미지센서 설비투자에 썼다.
 
   
2017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게임박람회 E3에서 관람객들이 가상현실 기능을 갖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S4)을 체험하고 있다. 소니의 게임 부문 2017년 매출과 영업이익 목표는 각각 2조엔(약 20조4천억원)과 1700억엔(약 1조7300억원)이다. REUTERS
 
이미지센서가 부활의 일등 공신
실제 히라이 CEO가 소니의 부활을 장담하는 이유는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이미지센서 기술 덕분이다. 소니 기술진은 과거부터 제품의 소형화와 경량화에 탁월했다.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니는 정밀하면서도 크기가 작은 이미지센서 제품을 애플과 삼성전자 등 주요 스마트폰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매월 애플에만 1천만 개가량을 공급할 정도로 수요가 급증했다. 스마트폰 1대가 팔릴 때마다 소니는 이미지센서 가격으로 20달러(약 2만3천원)를 벌어들인다. 이미지센서가 소니 부활의 일등 공신인 셈이다. 히라이 CEO는 5월23일 경영설명회에서 “이미지센서 사업을 앞으로 어떻게 확대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자동차용 사업과 공장 자동화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히라이 CEO는 침체에 빠진 전자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이미지센서와 함께 게임기, 텔레비전을 3대 동력으로 선정했다. 플레이스테이션(PS4) 역시 2016년 폭발적인 판매 신장을 보였다. 가상현실(VR) 기능을 갖춘 PS4는 2016년 12월에만 전세계적으로 620만 대가 팔렸다. PS4를 앞세운 게임 부문의 2017년 매출과 영업이익 목표는 각각 2조엔(약 20조4천억원)과 1700억엔(약 1조7300억원)이다. 히라이 CEO는 경영설명회에서 “2017년 게임사업 부문에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사업도 고가 브랜드 위주로 재편하면서 흑자 전환하는 등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소니의 2016년 텔레비전 판매 대수는 1210만 대로, 2010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지만 전체 판매량의 절반이 프리미엄 초고화질 제품에서 나왔다.
 
‘기술 소니’ 부활에 나선 히라이 CEO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AI 로봇 개발에도 착수했다. 소니가 자랑하는 정밀 기술력을 바탕으로 10년여 만에 로봇산업에 다시 진출한 것이다. 강아지형 로봇 아이보(AIBO)를 개발한 소니는 2006년 아이보 생산을 중단한 바 있다. 히라이 CEO는 조직문화 개선에도 크게 공들였다. 과거 소니는 조직 간 의사소통이 원할하지 못한 ‘칸막이 문화’로 유명했다. 그러나 히라이 CEO는 무엇보다 사내 의사소통을 강조했다. 결국 차단돼 있던 조직은 부서 간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소통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히라이 CEO의 경영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달린 것은 아니다. 히라이 CEO는 취임과 동시에 전자제품에서 부활의 길을 찾겠다고 했지만 주변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당시 더 이상 소니에 전자제품은 장래성이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해 있었다. 외부에서도 추락하는 소니를 살려낼 인물로 그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특히 수십 년간 소니의 주요 보직을 독식해온 엔지니어 출신들은 비엔지니어인 히라이 CEO를 ‘스트링거의 아이’라고 부르며 깎아내렸다. 일부 언론은 히라이 CEO가 기술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전자제품에는 혁신이 있다’는 신념 아래 자신의 목표를 꾸준히 밀어붙였다. 마침내 주변으로부터 ‘부활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흔들리는 소니를 바로 세운 히라이 CEO가 10년 뒤 소니의 먹거리로 꼽은 것은 무엇일까. 히라이 CEO는 경영설명회에서 전자·엔터테인먼트·금융을 중심으로 하되, 가상현실과 의료 분야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는 “이제 대규모 구조조정은 모두 끝났다”며 “앞으로 새로운 가치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활기로 가득 찬 소니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히라이 CEO는 최근 사내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마지막 1인치’를 강조한다. 이는 고객에게 감동을 주고 호기심을 충족하는 회사가 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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