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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 쌓는 재미, 돈 되는 취미
[국내특집] 레고의 재발견, 상상력에 불을 지피다- ② 열풍
[87호] 2017년 07월 01일 (토) 최은영 euno@edaily.co.kr
모듈러 시리즈 ‘10182 카페코너’, 최초 판매가 16만원에서 현재 160만~300만원 거래
 
최근 레고 열풍은 ‘레테크’라는 기현상까지 낳고 있다. 레고에 투자해 재테크를 하는 것이다. 한정판 레고 세트는 단종되면 가격이 두 배 이상 껑충 뛰기도 한다. 수십만원에 구매한 레고가 중고시장에서 수백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주식시세를 보듯, 레고 가격의 등락폭을 시세로 제공하는 모바일 앱까지 등장했다. 전문가는 레고 투자에 대해 돈 번다기보다 취미생활을 즐기며 일석이조 효과를 누린다는 여유로 접근하라고 조언한다.
 
최은영 <이데일리> 기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레고 배트맨> 시리즈 캐릭터들. 인기 레고 시리즈는 중고시장에서 값비싸게 거래된다. REUTERS
 
20세기 가장 성공한 디자인 아이디어 상품으로 꼽히는 레고는 벽돌(브릭·Brick)을 쌓듯 플라스틱 블록을 쌓아올려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장난감이다. 한 해 전세계 7500만 명이 구매하고 연간 2억 상자 넘게 팔리는데, 2000년대 들어 재테크 수단으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레테크’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레테크는 ‘레고’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레고의 한정판 완구류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구할 수 없는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오르고 이때 되팔면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다.
 
과거 해마다 제품 가격이 올라 중고로 되팔아도 돈을 벌 수 있었던 ‘샤테크’(샤넬+재테크),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이전 보조금으로 낮은 가격에 휴대전화를 산 뒤 의무사용 기간이 지나면 되팔아 차익을 남겼던 ‘폰테크’(폰+재테크)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레고는 높은 호환성과 완성도로 ‘재미로 조립하는 완구’에서 ‘소장하고픈 수집품’으로 가치를 더하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각종 우주선 등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레고는 서로 다른 블록의 크기를 표준화해 호환성을 높인 게 특징이지만, 스타워즈 시리즈에는 다른 제품과 호환되지 않는 전용 브릭에 사람 모양의 토르소도 헤어스타일 등을 달리해 섬세함을 더했다. ‘모듈러’(건축물) 시리즈도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는 모델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레고 마니아로 ‘팰리스시네마’ ‘타운홀’ ‘펫샵’ 등 모듈러 시리즈를 장만해 조립하길 즐긴다. 국내에서 레테크가 신종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건, 레고 인구 유입이 본격화한 2014년부터다. 레고사는 특정 모델을 한정 수량 생산하는데 공급이 수요에 못 미쳐 몇몇 상품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려는 소비자가 늘었다. 레고 가격이 치솟는 순간은 한정 수량 제품이 단종될 때다. 단종되면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수요가 늘기 때문에 가격이 최소 1.5배에서 2배 이상 치솟는다.
 
단종되면 웃돈 거래
2007년 나온 모듈러 시리즈로 ‘레테크’라는 신조어를 낳은 ‘10182 카페코너’는 출시 뒤 줄곧 품귀 현상을 빚다 2009년 단종됐다. 지금 이 모델을 손에 넣으려면 최초 판매가(16만원)의 최소 10배에서 많게는 30배에 달하는 웃돈을 내야 한다. 실제 2016년 중고거래 장터에서 150만~300만원에 거래됐다. ‘카페코너’는 2056개 블록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제품을 300만원에 샀다고 가정하면 블록 1개당 가격이 1500원에 달하는 셈이다. 현재도 국내 한 온라인쇼핑몰에선 같은 모델을 549만원에 병행 수입해 팔고 있다.
 
같은 해 출시된 ‘10190 마켓스트리트’는 한국에서 10만원에 발매됐지만 2009년 생산이 중단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금도 비싸게는 7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두 모델에 앞서 나온 ‘10179 밀레니엄팔콘’은 2007년 당시 60만원대로 출시됐으나, 현재 국내에서 신품 기준 600만~7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중고 시세도 한때 400만원을 웃돌았다.
 
통상적으로 레고는 1월과 6월, 연 2회 신상품을 대거 선보이는데 2017년 6월 나온 새상품 중에는 아이디어 상품 ‘21309 아폴로새턴’이 온·오프라인에서 품귀 현상을 빚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옥션 관계자는 “레고코리아의 수입 물량 자체가 많지 않아 가치가 빠르게 올라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레고의 인기는 시간과 세대를 초월한다. 80여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다. 레고의 인기 비결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높은 호환성’이다. 레고 블록이 처음부터 호환이 가능했던 건 아니다. 서로 다른 블록 크기를 표준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후 1958년 오늘날 ‘스터드 앤드 튜브’(Stud and Tube) 방식의 레고 블록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블록의 표준화는 레고가 급성장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무한한 형태로 조립이 가능한 장난감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1995년 생산된 제품의 블록은, 2007년 생산된 ‘바이오니클’ 시리즈는 물론 유아용 레고 ‘듀플로’에도 결합된다.
 
또 레고는 안전하다. 아이들이 갖고 놀아도 안전하도록 무독성 플라스틱만을 사용한다. 상자를 제작할 때 종이나 잉크 등도 인체에 무해한 재료만을 쓴다. 연령별로 블록 크기를 달리하는 것도 특징이다. ‘듀플로’ 시리즈의 경우 영·유아가 입에 넣어도 삼키지 못하도록 보통 레고 블록보다 크게 제작한다.
 
레고는 국내에 시판되지 않은 제품이 많기 때문에 주로 해외 직구를 통해 구입한다. 국내 최대 배송대행 업체 ‘몰테일’은 이런 수요를 감안해 2015년 7월 레고 배송 특화 서비스 ‘브릭 익스프레스’를 론칭했다. 두 달 뒤인 9월에는 몰테일 모바일 앱에 ‘레고’ 상품군도 만들었다.
 
이 상품군에선 화제가 되는 시리즈 상품 300여 개를 나열해 마치 주식현황표 보듯 최초 출고가와 당일 시세 등 레고 상품의 자산 가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주식시세처럼 거래 가격의 등락폭 역시 그래프로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가격 변동 추이는 실제 아마존과 이베이 등에서 판매되는 현재 제품들의 가격을 토대로 작성된다. 최근 카테고리를 새로 단장해 테마별, 연도별, 가격 등락·수익 순 등으로 시세 안내를 고도화했다.
 
2017년 6월14일 기준 레고 ‘시티(타운) 시리즈’ 가운데 가격 상승폭이 가장 큰 제품은 ‘3221 시티트럭’이다. 2010년 출시 당시 가격은 34.99달러(약 4만원)였으나 현재는 225.98달러(약 25만5천원)로 가격이 6배 이상 껑충 뛰었다. 한 달 전인 5월 평균거래가 182.37달러(약 20만5천원)보다 5만원이 더 올랐다.
 
몰테일에 따르면, 서비스 개시 뒤 꾸준히 이용고객이 늘어 2015년 12월에는 론칭 첫달보다 레고 배송 건수가 145%, 2017년 1월에는 485%로 6배 가까이 증가했다. 소셜커머스 ‘티몬’에 따르면 레고와 나노블록, 피겨 등을 판매하는 키덜트·게임 카테고리 상품이 2017년 5월 기준으로 전년 대비 매출이 58% 늘었다. 이는 2년 전과 비교하면 108% 증가한 수치다. 레고를 구매하는 핵심 연령대는 40대(40%)와 30대(39%)다. 20대는 15%다.
 
   
헝가리 ‘프란츠 리스트 아카데미’ 로비에 연주회를 형상화한 레고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전문가들은 취미를 즐기며 덤으로 돈도 번다는 자세가 이른바 ‘레테크’의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조언한다. EPA 연합뉴스
 
중국산 짝퉁 레고 주의
모든 레고 제품이 높은 가격으로 재판매되는 것은 아니다. 레테크를 위해서라면 제품번호가 10000번대로 시작하는 전문가용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유리하다. 일반적으로 전문가용일수록 브릭 수가 많은 반면 물량이 적게 풀려, 단종될 경우 가치가 더 크게 올라간다. 다만 2017년 들어서는 레고 10000번대 모델 중 히트한 상품이 드물었다.
 
전문가들은 레테크 입문용으로 ‘모듈러’ 시리즈가 적합하다고 말한다. 모듈러 시리즈는 매년 한 제품만 출시해 해가 갈수록 가치가 높아질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크기는 작지만 레고 미니피겨도 레테크에 적합한 모델로 꼽힌다.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제품일수록 수익률이 높아지는데, 미니피겨의 경우 미니피겨만 모으는 전문 수집가가 있을 정도로 고정팬이 확실하다.
 
최근 달라진 점은 얼핏 보면 같은 제품으로 속기 쉬운 중국산 짝퉁 레고의 등장이다. 예를 들어 같은 ‘마켓스트리트’라 하더라도 제품명에 ‘대륙레고’ ‘중국레고’ ‘중국호환레고’ 등 중국 관련 수식어가 온라인몰 상품 소개 페이지에 붙는 것이 많다. 이 경우 100% 모조품이다. 회사명도 ‘레고’가 아닌 ‘레핀’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1년여 전, 2000년 이후 출시 당시의 상태로 보존된 레고 세트 가격이 연 12%씩 올랐다고 발표하며 레고가 금(연간 9.6%)이나 주식(4.1%) 투자보다 낫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레고 투자 팁’을 공개했는데, 그 내용은 ‘하나는 만들기 위해 사고 하나는 아껴두라’ ‘한정판과 계절특별판은 레고 재판매 시장에서 가격을 높게 쳐준다’ ‘1999년 이후 발매된 레고 세트에 투자하라’ 등이다.
 
한 레고 마니아는 “꼭 돈을 번다기보다 취미생활을 하며 덤으로 수익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이보다 더 건강하고 즐거운 재테크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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