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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친환경 전력 슈퍼 하이웨이’ 본격화
[SpecialReport] 신재생에너지 둘러싼 싸움- ③ 국제 협력망 ‘슈퍼그리드’ 추진 현황
[87호] 2017년 07월 01일 (토) 정규재 jgj1234@keei.re.kr
북해 연안국 협력사업 가장 견실... 남유럽·중동·북아프리카, 남아프리카 사업도 진행 중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전력회사들의 견제 등 신재생에너지의 확산을 막는 걸림돌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촉진하려는 국제 협력도 이뤄지고 있다. 풍력이나 태양열이 풍부한 지역에서 전력을 생산해 소비가 많은 지역에 공급하는 국제 전력 전송망 사업이 대표 사례다. ‘슈퍼그리드’라고 불리는 이 사업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활발하다. 동북아 지역에서도 비슷한 국제 협력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정규재 연구위원이 전세계 슈퍼그리드의 현황과 전망을 분석했다.
 
정규재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실 연구위원
 
   
영국 동부 해안의 해상 풍력발전기 앞에서 낚시꾼들이 한가하게 낚시를 즐기고 있다. 북해 연안 국가들은 풍력·수력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유럽에 공급하는 ‘북유럽 슈퍼그리드’ 사업을 벌이고 있다. REUTERS
 
슈퍼그리드(Supergrid)는 2개국 이상의 인접 국가 사이에 전력망을 연계해 전기를 공유함으로써 전력 공급과 소비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참여국의 경제적 편익을 증가시키려는 협력사업이다. 전세계 많은 나라들은 오래전부터 인접 국가들과 전력망을 연결해 전기를 나눠쓰고 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대규모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기술, 대용량 전기를 효과적으로 먼 곳까지 보낼 수 있는 고압직류(HVDC) 송전 기술,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효율적 시스템 운용 기술이 발달하면서 슈퍼그리드가 추진되고 있다. 슈퍼그리드는 다양한 에너지원에서 생산한 전기를 대량으로 먼 곳까지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는 ‘전력 융통의 슈퍼 하이웨이’ 개념으로 쓰인다.
 
현재 진행되는 대표적 슈퍼그리드 구축 사업은 북유럽 슈퍼그리드, 남유럽·중동·북아프리카 슈퍼그리드, 아프리카 슈퍼그리드 등이 있다. 이밖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역내 국가 간 전력망 연계가 이뤄지지 않는 동북아 지역에서도 슈퍼그리드 구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대표적 슈퍼그리드의 추진 동향을 살펴보고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한 시사점을 알아보려 한다.
 
북유럽 슈퍼그리드(Nord EU Supergrid)
북해 해상 풍력과 연안 국가들의 육상 풍력·수력 자원을 활용해 생산한 전력을 유럽연합(EU) 국가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EU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뿐 아니라 단일 전력시장을 구축해 EU 회원국의 복리후생 향상의 핵심 수단으로 추진된다. 북유럽 슈퍼그리드는 2009년 12월 북해 연안 국가들의 합의와 EU의 적극적 지지로 시작됐다. 이 사업은 2050년까지 3단계에 걸쳐 추진될 예정이며, 최종적으로 총 4991억달러를 들여 500GW의 전력을 유럽 시장에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0년 사업 시행을 전담하기 위해 미국 GE, 독일 지멘스, 프랑스 송전망업체 RTE 등 세계적 전력기업 10개사가 참여하는 기관 ‘슈퍼그리드의 친구들’(Friends of the Supergrid)이 설립됐다. 현재 16개 기업이 참여한다.
 
진행 중인 북유럽 슈퍼그리드 1단계 사업은 2020년까지 풍력 발전기 7천 기 이상을 설치해 총 30GW의 전력을 생산하는 해상 풍력발전단지 건설이다. 풍력발전단지 운영을 담당할 허브는 북해 도거뱅크에 인공섬 형태로 건설된다. 생산된 전력은 해저 케이블을 통해 연안 국가에 공급한다. 단계별로 북해 지역에 총 70~100GW의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될 계획이며, 단지별 운영을 담당할 허브도 몇 개 더 건설할 예정이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탈퇴(브렉시트) 결정 직후 영국을 제외한 이 사업의 참여국과 EU는 곧바로 ‘북해 지역 에너지협력 정책선언’을 채택해 본 사업의 지속적 추진을 위한 정책 지원을 재확인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막의 태양열과 풍력을 활용하는 ‘남유럽·중동·북아프리카 슈퍼그리드’ 사업이 2016년 본궤도에 올랐다. 이 사업을 위해 모로코에 건설된 태양열발전소에서 경비원이 무전기로 얘기하고 있다. REUTERS
 
남유럽·중동·북아프리카 슈퍼그리드(Sud EU-MENA Supergrid)
일반적으로 ‘데저테크 프로젝트’(Desertec Project)라고 부르는 남유럽·중동·북아프리카 슈퍼그리드는 중동과 북아프리카(MENA)의 사막 지역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태양·풍력 에너지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사업이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은 MENA 지역 국가뿐 아니라 남유럽 국가에도 공급한다는 계획 아래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은 2050년까지 MENA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을 50% 줄이고, 동시에 유럽 전력 수요의 15%를 공급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약 4천억유로를 들일 계획이다.
 
이 사업은 2003년 로마클럽에서 시작된 ‘데저테크 개념’(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다는 구상 -편집자)을 실제 적용하기 위해 설립된 데저테크재단이 2009년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독일 주도로 전력 관련 기업과 금융기관 등 12개 기업이 참여하는 DII(Desertec Industrial Initiative)가 같은 해 결성됐다. 이후 DII 참여 기업이 20개로 늘었으나 곧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다. 1차 사업으로 선정한 모로코 태양열발전단지의 수익성이 불확실하고, ‘아랍의 봄’ 이후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정세가 불안해지고, 재단과 DII 사이의 갈등이 생긴 탓이다.
 
그러나 2015년 본부를 독일 뮌헨에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옮기고 33개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사막에너지 후원자들’ (Supporters of Desert Energy)이라는 기업 네트워크를 새로 구성했다. 1차 사업인 모로코 태양열발전단지 1기 사업(Noor 1)이 2016년 완공되면서 사업 추진이 서서히 본궤도에 진입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슈퍼그리드(Grand Inga Project)
포장수력(잠재 발전 능력)이 100GW에 이르는 콩고강의 수력 자원을 활용하려는 사업이다. 대규모 발전소를 건설하고 여기서 생산되는 전기를 북으로는 이집트 카이로, 남으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공급하려 한다. 여기에 필요한 전력은 기존 발전소(Inga1·2, 설비용량 1775MW) 2개 외에 현재 건설을 추진 중인 4800MW 규모의 잉가3(Inga3) 발전소와 3만9천MW 규모의 그랜드잉가(Grand Inga) 발전소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그랜드잉가 발전소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인 중국 싼샤댐의 1만8200MW보다 2배 이상의 설비 용량을 갖출 예정이어서, 건설이 완료되면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가 된다. 그랜드잉가 프로젝트에는 2기의 발전소 건설과 송전선로 등 인프라 건설에 총 350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프로젝트는 유럽 슈퍼그리드보다 상당히 앞서 시작됐으나 재원 조달 어려움, 투자자 철수 등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콩고 정부와 남아공 정부가 발전소 건설에 합의하고 2.5GW의 전력을 남아공이 구매하기로 하면서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1단계 사업인 잉가3 발전소를 2022년 완공한다는 목표로 2013년 사업자 선정을 위한 국제 입찰이 시행됐다. 여기에는 한국의 대우인터내셔널과 포스코건설이 캐나다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다. 그러나 아프리카개발은행(AfDB)과 함께 자금 지원을 하기로 한 세계은행(WB)이 콩고 정부의 사업계획 변경과 자금운용 투명성을 문제 삼아 지원을 동결해 사업자 선정이 완료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발전소 건설은 상당 기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움직임
동북아에서도 슈퍼그리드 논의가 있다.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와 극동 러시아의 수력과 천연가스, 몽골 고비사막의 풍력과 태양에너지 같은 신재생에너지 자원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방안이다. 생산된 전력은 고압직류송전(HVDC)으로 한국·중국·일본 등에 공급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사업이 이뤄지면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이용, 신재생에너지 이용 확대를 통한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저감, 전기가격 인하를 통한 복리후생 향상, 대규모 투자사업을 통한 경제 및 산업 발전, 대규모 협력사업을 통한 역내 정치적 긴장 완화가 기대된다.
 
사업 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개념이 변화, 발전했다. 동북아 지역에서 국가 간 전력망 연계 논의는 198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슈퍼그리드가 논의된 것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뒤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고비사막의 신재생에너지 자원을 이용한 ‘아시아 슈퍼그리드’(ASG)를 제안하면서다. 이후 중국에서 자국의 국가 전략인 일대일로의 에너지 부문 전략으로 전세계 전력망을 구축하는 ‘글로벌 에너지 상호접속’(GEI·Global Energy Interconnection)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1차로 진행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논의는 한·중·일 전력망 연계 사업이다. 이 사업은 2016년 한국(한국전력)-중국(국가전력망공사)-일본(소프트뱅크)-러시아(국영전력망기업 로세티) 사이에 체결된 동북아 전력 계통 연계 협력협약(MOU)에 따라 1단계 사업으로 선정됐다. 현재 예비타당성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 러-일, 러-중, 러-북 전력망 연계 등 양자 연계사업도 논의하고 있다. 러-북 전력망 사업은 2015년 동방경제포럼에서 러시아 최대 수력발전회사인 루스하이드로(RusHydro)가 나진·선봉 경제특구에 최대 40MW의 전력 공급 계획을 발표하고 전문가들이 현장실사까지 했다. 하지만 2016년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로 실현되지 못했다.
 
북한을 경유하는 한-러 전력망 연계 사업은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대두되기 이전인 2000년대 후반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북한의 연평도 포격 등으로 중단됐고, 최근 동북아 슈퍼그리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후속 논의가 침체된 상황이다. 향후 다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살펴본 슈퍼그리드 사업을 평가하고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효과적 추진을 위한 시사점을 따져본다.
 
현재 시행하는 3개 주요 슈퍼그리드 사업 가운데 북유럽 슈퍼그리드가 가장 견실하고 안정적으로 시행된다고 평가받는다. 북유럽은 다른 지역보다 정치적·사회적으로 안정돼 사업 추진에 유리하다. 하지만 참여국과 EU에서 일관된 정책적 지원을 하는 것이 사업 정착의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사업 추진을 위해 설립된 전담 기구가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남유럽·중동·북아프리카 슈퍼그리드는 적용 기술의 가격경쟁력 미확보, 사업 주체 사이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본부를 두바이로 이전하고 새로운 사업자 네트워크를 구성하면서 사업이 안정됐다. 특히 모로코 태양열 단지 1단계 사업이 완료되고 2·3단계 사업 시행이 확정되면서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남아프리카 슈퍼그리드는 전담 기관을 두고 사업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콩고 정부의 국책사업으로 이루어지면서 투명성 문제가 대두됐다. 그에 따라 국제기구로부터 재원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사업이 상당 기간 지연될 전망이다.
 
앞에서 보았듯 현재 진행 중인 3개 슈퍼그리드 사업은 각각 다른 특성을 보인다. 이를 종합해보면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사업같이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대규모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건을 파악할 수 있다. 3가지를 꼽자면, 참여국 정부의 일관되고 확고한 정책 지원, 사업 주체 사이의 갈등 해소 방안 수립, 사업 추진의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
 
* 에너지경제연구원(KEEI·Korea Energy Economics Institute)은 국내외 에너지·자원 관련 동향과 정보를 수집·조사·연구해 국가의 에너지·자원 정책 수립, 국민경제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1986년 설립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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