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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출 확대해 소비·투자 이끈다
[Cover Story] 문재인 노믹스를 말한다- ① ‘소득 주도 성장’ 경제 기조
[86호] 2017년 06월 01일 (목) 김경락 ssp96@hani.co.kr
한국 국민이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한 데는 정치 혼란을 하루속히 해결하고 팍팍한 살림살이를 개선해달라는 희망이 크게 작용했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저성장의 덫, 치솟는 청년실업률, 갈수록 악화되는 양극화 등 온갖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대한민국 경제를 치료하고 서민경기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이 해법으로 내세운 것은 재정정책 강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대규모 공공지출로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증대해 경제문제를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재정 확보 방안이 모호하다. 공공일자리 창출만으론 한계가 있다. 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여건을 마련해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목소리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구상인 ‘문재인 노믹스’를 해부한다. _편집자
 
   
 
연평균 7% 확대는 기존 계획 2배의 파격적 수준... 재정 확보 방안이 가장 큰 과제
 
많은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저성장의 덫’에 빠진 한국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 새 정부가 내놓은 것은 공공지출 확대와 일자리 창출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이란 점에서 케인스주의와 맥이 닿지만, 재정으로 공공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독창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세금을 늘리고 공공채무를 확대하는 것에는 소극적이다. 이렇게 되면 재정을 쓸 여력이 줄어든다. 문재인 노믹스의 최대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지점이다.
 
김경락 <한겨레> 기자
 
문재인 정부가 닻을 올렸다. 2017년 5월9일 대통령선거에서 2위와 큰 표 차이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은 크다. 여기에는 보수정권 10년 동안 훼손된 절차적 민주주의 복원에 대한 희망 외에 ‘저성장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바라는 기대도 자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펼쳐나갈 경제정책을 미리 조망해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꺼낸 카드는 공격적인 재정지출 확대다. 소득과 이익이 정체된 탓에 소비와 투자를 늘리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 대신 정부가 직접 돈을 써 경기 회복을 이끌겠다는 전략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재정지출을 연평균 7%씩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임기 마지막 해의 예산 규모는 2017년 예산(400조5천억원)보다 160조원 더 많은 561조원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가 잡은 목표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 7%’는 과거 정부의 재정 운용에 견주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5%는커녕 4%에도 못 미친 해가 과거에 수두룩했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말 국회에 제출한 ‘2016~2020 국가재정운용 계획’에선 재정지출 연평균 증가율이 3.5%로 설정돼 있다. 기존 계획보다 두 배가량 더 나랏돈을 푼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구상이다.
 
공격적 재정 운용에는 국민연금도 구원투수로 등장한다. 550조원가량 쌓인 기금 재원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를 위해 발행하는 국채를 국민연금이 사들이는 방식이다. 국민연금 재원을 정부가 임의로 가져다 쓴다는 것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간접투자 방식인 터라 손실 위험은 없다.
 
재정지출 확대는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 등을 비롯해 나라 안팎에서 나왔던 단골 권고 사항이다. 그만큼 과거 나랏돈 씀씀이가 적었던 탓이다. 박근혜 정부는 높은 대외 개방성을 가진 한국 경제의 특징이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현상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재정지출 확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해왔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공공개혁’의 주요 목표 중 하나도 공공기관의 부채비율을 낮추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새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공공지출 확대를 통해 저성장을 극복한다는 복안이다. 연합뉴스
 
공공일자리 창출 최우선
문재인 정부는 나랏돈을 일자리 창출에 쓴다고 말한다. 역대 정부도 재정을 일자리 창출에 썼지만, 어디까지나 마중물이거나 불쏘시개 구실에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의 구상은 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재정으로 직접 사람들을 고용한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과거 정부는 민간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일자리 창출 관련 공공시스템을 만드는 데 재정을 썼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을 포함해 공공일자리를 직접 창출한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일자리를 ‘국가 어젠다’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재임 기간 동안 공무원 17만4천 명을 포함해 모두 81만 개의 공공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재정은 21조원 남짓이 될 전망이다.
 
나랏돈으로 공무원 등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전략은 대선 과정에서 여러 경쟁 후보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너무 쉬운 일자리 정책이고 부작용도 크게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경제학자 출신인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는 “재정으로 일자리를 만들 거면 왜 81만 개만 만드나”라고 힐난했다. 상당수 경제·재정 전문가들도 의아해하는 대목이다. 이런 우려에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단호한 편이다. 문 대통령은 “경기가 좋지 않아 민간에서 투자도 줄고 있고 일자리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는데 정부가 가만히 있는 것은 직무유기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실제 문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 의지는 매우 강해 보인다. 그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 중 하나가 ‘일자리 상황판’이다. 문 대통령은 집무실에 일자리를 포함한 경제통계는 물론 공공일자리 창출 관련 정책의 추진 현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상황판을 설치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매일매일 일자리 상황을 직접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매일 아침 기상과 함께 ‘일일 외환 정보’ 보고서를 읽은 것을 빼면 대통령이 매일 경제 관련 통계를 챙긴 사례는 없다. 거의 1개 부처 규모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신설하는 것도 문재인 정부에서 ‘일자리’의 위상을 가늠케 한다.
 
재정은 격차 해소에도 집중 투입된다. 복지를 대거 확충한다는 게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이 10%에 그칠 만큼 한국은 저복지 국가로 손꼽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은 한국보다 두 배 정도 많다. 과거 정부는 연금제도 미성숙 등을 들어 점차 복지 지출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 아래 복지 확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문재인 정부는 좀더 이른 시간 내에 복지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우선 ‘교육·육아 국가책임제’를 대선 기간 동안 강조했다. 유아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공교육 비용을 가능한 한 국가가 부담한다는 구상이다. 누리과정(만 3~5살 아동) 예산을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초등학교 전 학년에 돌봄교실을 설치할 방침이다. 고등학교를 무상교육 범위에 포함시키고 대학생에겐 공공기숙사 확대를 공약했다. 0~5살 아이가 있는 가구에 월 10만원씩 주는 아동수당 도입도 추진된다.
 
고령층 복지도 확충된다. 현재 65살 이상 소득 하위 70%에 속하는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기존 10만~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할 방침이다. 소득수준을 따지지 않고 매월 30만원씩 균등 지급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 계획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월 25만원, 2021년부터는 월 3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올릴 방침이다. 대략 연평균 4조4천억원의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외에 치매 치료비 중 90%를 국민건강보험에서 부담하고, 치매지원센터와 치매안심 공립병원도 설립할 방침이다. 요양의 질을 높이고 저소득 노인 가구를 위한 공공요양 서비스를 확충한다는 것이다. 틀니와 임플란트의 본인부담금을 30만원 수준으로 내리고 보청기 구매 비용도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고, 맞춤형 공공주택을 지어 저소득 노인 가구에 줄 방침이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고령층에 주는 수당도 현재 22만원에서 2020년까지 40만원으로 인상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 주도 성장론’은 재정을 풀어 내수를 진작하는 게 핵심이다. 2016년 10월 국내 최대 규모의 쇼핑 행사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열린 서울 명동 거리가 인파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소득 주도 성장의 뿌리
확장적 재정 정책과 그에 기반을 둔 공공일자리 창출, 복지 확대와 격차 해소를 한 줄에 꿰는 것은 무엇일까.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론’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성장론 아래 각 정책이 배치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성장론에 언론들은 ‘문재인 노믹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대통령 이름을 따 그 정부의 경제 운용 기조를 ‘○○○ 성장론’이라고 한 첫 번째 사례는 ‘DJ노믹스’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을 기치로 삼은 DJ노믹스는 경제와 정치는 별개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당시 상황에선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그 뒤로는 전 정부와 이렇다 할 만한 차이나 특색이 없지만 대통령 이름을 따 표현하는 게 관행처럼 등장했다. ‘MB노믹스’나 ‘박근혜 노믹스’가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러나 소득 주도 성장론을 가리키는 ‘문재인 노믹스’는 성패 여부를 떠나 ‘노믹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경제정책 기조를 품고 있다. 과거의 경제성장론은 공급 중시 경제학의 처방을 충실히 따랐다. 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보조금을 주며 임금 상승은 최대한 억제했다. 규제도 풀었다. 이런 방식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면 매출이 늘고 수익이 많아져 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그림을 갖고 있었다. 반면 문재인 노믹스는 수요를 더 강조한다. 재정을 풀어 내수를 진작한다. 직접 일자리를 만들어 가계의 주머니를 채운다. 소득이 늘어난 가계는 소비를 늘리고, 자연스레 기업은 매출이 늘어 경제는 성장한다. 이는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졌을 때 정부의 구실을 강조한 ‘케인스주의’가 내린 처방과 흡사하다. 실제 문재인 노믹스의 뼈대를 만든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참모들은 스스로 케인스를 따랐다고 말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놓인 과제
큰 틀에선 수요 중시 경제성장론이지만 정통 케인스주의에 여러 변형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케인스는 수요 창출 방식으로 복지 확대와 더불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투자에는 소극적이고 그 대신 공공일자리 사업에 더 많은 재정을 쓸 예정이다. 케인스한테서 착상을 빌려오되 구체적 실행 계획에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더 멀리 소득 주도 성장의 또 다른 뿌리인 ‘임금 주도 성장론’과도 맞닿아 있으나 차이 역시 존재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주창한 임금 주도 성장론 역시 케인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무게 중심은 시장 소득을 키우는 데 더 쏠려 있다. 노조의 협상력을 높이는 등 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부의 구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재정으로 공공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문재인 노믹스만의 독창적인 구석이다.
 
문재인 노믹스는 케인스에서 따왔으나 실행 방법은 독창적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대만큼 우려도 있다. 우선 문재인 노믹스의 출발점인 확장적 재정정책이다. 나랏돈을 많이 풀기 위해선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쓸 돈을 많이 걷거나 나랏빚을 많이 져야 한다. 증세나 국가채무 확대나 모두 정부가 넘어서기에 아주 높은 산이다.
 
증세를 살펴보자.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주창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증세를 많이 한 정부이다. 재임 기간 동안 조세부담률이 17% 수준에서 19%대까지 올랐다. 담뱃세 인상을 빼면 나머지 증세는 대체로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고소득자들의 주머니에서 주로 걷은 2013년 소득세법 개정이나 재벌 대기업에 쏠린 비과세 감면 제도를 대폭 축소한 게 그 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현재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도 2013년 소득세법 개정에 대해 ‘월급쟁이 털이 증세’라며 조세 저항에 불을 붙였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문재인 정부는 증세에 강력한 신호를 주지 않고 있다. 고소득자 증세나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등을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조세 형평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지언정 중부담-중복지를 구현하는 증세 수준은 아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어떤 의미에선 문재인 정부도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친 박근혜 정부와 조세정책 면에서 엇비슷하다”고 혹평한다. 국가채무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는 모호한 자세를 취한다. 공약집에선 외려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유지한다”고 써놨다. 채무도 늘리지 않고 증세도 하지 않으면 결국 재정을 쓰고 싶어도 쓸 여력이 줄어든다. 문재인 노믹스의 최대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소득 주도 성장론 자체에 대한 근본적 의문도 있다. 통상 케인스주의에 따른 수요 확충 전략은 ‘성장론’이라기보다 ‘경기 관리 대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케인스의 처방은 지속적 성장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성장은 노동이나 자원 공급을 늘리거나 기술혁신을 통해 이뤄진다. 케인스식 처방은 경기가 구조적 불황에 빠졌을 때 응급처방 효과만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 중 한 명인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소득 불평등 해소와 확장적 재정과 더불어 기술혁신이나 규제 합리화 같은 대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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