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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무장’ 꿈의 스마트공장
[집중기획] 독일 산업4.0 실태보고서- ① 팔 걷은 대기업
[86호] 2017년 06월 01일 (목) 알렉산더 융 economyinsight@hani.co.kr
2011년 정부 주도로 첫걸음을 뗀 독일의 산업4.0은 사물인터넷과 로봇 등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전반의 혁신 움직임을 가리킨다. 산업4.0은 세계경제포럼(WEF)이 4차 산업혁명 어젠다를 화두로 던지기 5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사실상 세계 최초의 국가 단위 4차 산업혁명 모델이다. 현재 독일의 산업4.0 진행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기업은 ‘맑음’, 중소기업은 ‘흐림’이다. 독일 대기업들은 미국과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기술력 하나로 승부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누가 옳은 길을 가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_편집자
 
   
 
주문부터 발송까지 모두 자동화... 독일 대기업 디지털화에 미국 IT 기업도 긴장
 
독일 주요 대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분주히 움직인다. 2000년대 이후 미국 정보기술(IT) 공룡 기업들과 경쟁에서 크게 밀린 탓에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전반전에 참패한 이 대기업들은 후반전에 역전을 노린다. 이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 가장 공들이는 부분은 디지털화를 통한 스마트공장의 구현이다. 탄탄한 제조업 기반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 아이비엠(IBM)과 테슬라(Tesla) 등 미국 IT 기업들은 최근 이 역동적 움직임에 주목해 독일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있다. 친구이자 적이기도 한 이들의 동거가 향후 4차 산업혁명 흐름을 주도할 수도 있다.
 
알렉산더 융 Alexander Jung <슈피겔> 기자
 
92년 전 슈바벤(독일 남서부 -편집자) 출신의 발명가 휴고 슈토츠는 일생일대의 역작을 발명했다. 그는 전기회로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합선이 생기면 간헐적으로 전류를 차단했다가 시간이 지난 뒤 원래 기능이 작동되는 자동장치를 발명했다. 이 회로차단기는 전류가 세게 흐르면 전기 부품보다 먼저 녹아 끊어져 전류의 흐름을 차단해버리는 퓨즈와는 달랐다. 한스게오르크 크라베 에이비비(ABB·스위스에 본사를 둔 자동화기술 다국적기업 -편집자) 독일본부 대표는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파괴적 기술이었다”고 설명한다.
 
상고머리(앞머리만 약간 길게 놓아두고 옆머리와 뒷머리를 짧게 치켜 올리며 정수리 부분은 편평하게 다듬은 머리모양 -편집자)로 50대 중반인 크라베 대표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에이비비박물관의 한 진열장 앞에 섰다. 그는 진열장에서 도자기처럼 새하얀 전시품을 꺼낸다. “이게 바로 당시 발명품이다.” 크라베는 손에 든 회로차단기를 내려다본다.
 
전세계에서 회로차단기 수억 개가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회로차단기의 작동 원리는 1924년 발명됐을 때의 천재적 원리와 다르지 않다. 에이비비박물관 맞은편에서 볼 수 있듯 회로차단기의 생산방식만 달라졌을 뿐이다. 에이비비는 회사 박물관 맞은편에 꿈의 디지털공장을 만들었다.
 
에이비비 디지털공장의 길이 60m 조립라인에서 회로차단기는 단계별로 조립된다. 사람 손이 조립 과정에 끼어들 여지는 없다. 조립 과정에는 산업용 로봇 플렉스피커(Flexpicker)가 투입된다. 플렉스피커는 가늘고 긴 양팔을 사용해, 셀 수 없이 많은 구리 코일 중 순서가 돌아온 구리 코일을 0.1mm까지 정확히 집어 용기에 넣는다. 이 과정에서 오류란 없다. 조립라인은 1분당 회로차단기 100여 개를 조립하며, 가동 중인 조립라인에서 5천 개에 달하는 변형 모델을 생산할 수 있다.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계 산업무역 박람회 ‘하노버 페어’에 스웨덴·스위스 다국적기업 에이비비(ABB·ASEA Brown Boveri) 로고와 인터넷 연결 기술의 핵심인 사물·서비스·사람의 영문자 형광판이 설치돼 있다. REUTERS
 
고효율의 스마트공장
산업4.0(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부분 -편집자) 또는 사물인터넷이 일선 공장에선 ‘100% 디지털화돼 자체적으로 조정·관리하는 정교한 생산 시스템’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 회로차단기 공장은 잘 보여준다. 여기서는 회로차단기 주문부터 영수증 발송까지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으로 처리된다. “이는 ‘주문에서 결제까지’로 불린다”고 크라베 대표가 말했다. 에이비비 설비를 관리하는 각 교대조당 직원 수는 4~8 명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80여 명이 필요했다.
 
에이비비는 하이델베르크, 지멘스(Siemens)는 암베르크, 보슈(Bosch)는 홈부르크 등 독일 대표 기업은 예외 없이 모범적인 스마트 공장을 두고 있다. 스마트공장은 다른 공장들의 청사진 구실을 한다. 독일 대기업들이 스마트공장에서 생산하는 기계는 인터넷이 연결돼야만 한다. “오늘날 보슈 제품의 절반이 네트워크에 연계돼 있다.” 폴크마 데너 보슈 최고경영자(CEO)가 말했다. 그는 “2020년까지 자동차 와이퍼, 드릴기계, 낙엽 송풍 청소기 등 보슈의 전체 제품 생산을 디지털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독일 산업은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었다. 최소한 독일 산업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그렇다. 영국의 다국적 회계감사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PricewaterhouseCoopers)의 설문조사에 응한 기업 200곳 중 90% 이상은 ‘공장의 디지털화에 본격 투자하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또 98%는 ‘공장 디지털화의 목적은 효율 향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공장 디지털화로 효율을 높이는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2017년 4월24~28일 하노버 박람회에서 한 독일 기업은 휠베어링(wheel bearing)이 깨질 위험이 있으면 사전에 알리고 자동으로 부품을 주문하는 기계를 선보였다. 어떤 기업은 정비사에게 부품 조립법을 설명해주는 최첨단 안경을 시연했다. 어떤 기업은 태블릿PC에서 작동 과정을 미리 보여주는 이른바 ‘디지털 쌍둥이’(부착된 센서와 메모리를 통해 기계가 보내오는 디지털 정보를 모아 가상공간에 구현한 사이보그로, 스스로 동작이나 에너지효율을 제어하는 자율생태계를 지칭)를 선보였다. 어떤 기업은 공장에서 직원을 지원하고 직원의 실수를 보완하는 로봇을 시연했다.
 
디지털 최첨단 기술이 독일 산업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디지털 최첨단 기술은 전통적인 공장을 고효율 스마트공장으로 탈바꿈한다. “에이비비는 디지털 최첨단 기술을 통한 공장의 스마트화에서 국제적으로 선도적 역할을 한다”고 크라베 대표가 말했다.
 
크라베 대표의 말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당시 상당수 독일 경영자들은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디지털 공룡들이 독일의 대표 산업인 기계설비, 자동차 제조 부문을 파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휴고 슈토츠가 발명한 회로차단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는 사물보다는 데이터가, 제품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이 더 중요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사이 옛 경제(제조업 중심 경제체제 -편집자)는 자부심을 회복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최대 규모의 리튬이온 전지 공장 ‘기가팩토리’ 건설에 필요한 노하우를 독일의 한 기업으로부터 거액을 주고 샀다.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기가팩토리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REUTERS
 
독일로 몰리는 미국 IT 공룡
“업계가 디지털화란 거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이해했다.” 베른트 로이케르트 에스에이피(SAP·비즈니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독일의 다국적 소프트웨어 기업 -편집자) 혁신부문 사장이 말했다. “우리의 현재 위치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 티모토이스 회트게스 도이체텔레콤 대표는 “독일에서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독일이 게임의 전반전에 패했다’고 자주 말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후반전의 승률이 월등히 좋아졌다고 여긴다. “독일이 후반전에도 패배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 아이비엠(IBM)이 독일 뮌헨 북부의 이른바 ‘실리콘 슈바빙’(Silicon Schwabing)에 사물인터넷 연구 목적의 글로벌 본부를 설치한 것이 좋은 사례다. 왜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중국 상하이가 아니라, 하필 뮌헨일까? “뮌헨은 제조업의 심장이기 때문”이라고 아이비엠 연구부문 존 켈리 사장이 설명했다.
 
뮌헨의 28층 초고층 오피스빌딩의 위 14개 층에 아이비엠이 입주했다. 이곳에서 아이비엠은 고객사들과 함께 사물인터넷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다. 보슈와 BMW도 협력하며, 자동차부품 제조기업 셰플러(Schaeffler)도 알프스산맥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25층에 입주했다. 셰플러 사무실 칠판에는 아이디어 회의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노란색·붉은색·녹색의 에딩(Edding·독일 필기류 회사 -편집자) 로고가 들어간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포스트잇은 ‘처리할 업무’ ‘진행 중인 업무’ ‘완료된 업무’ 등 진행 상황별로 구분돼 있다.
 
존 켈리 아이비엠 사장은 전통산업의 고객들을 공략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는 제조업에 맞춘 ‘안경’으로 볼 수 있게 됐다.” 미국 디지털 공룡들이 과거 유럽을 깔보던 오만함은 요즘 찾아볼 수 없다. 아이비엠과 보슈, 마이크로소프트, 지멘스, 구글, 다임러는 서로를 ‘프레너미스’(frenemies)로 부른다. 이 단어는 영어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로, 협력자이자 경쟁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외로 독일 제조업체들이 미국 디지털기업보다 디지털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전기자동차 개척자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2016년 11월부터 미국 네바다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리튬이온 전지 공장인 ‘기가팩토리’(Gigafactory)를 건설 중인데, 독일의 노하우를 사들이는 데 돈을 써야 했다. 자동화 생산시설을 위해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에 있는 자동화된 특별한 기업을 인수한 것이다. 하지만 독일 산업이 전세계 어떤 나라보다 뛰어난 제조업 생산과정의 최적화 기술을 확보한 것만으로 충분할까? 이것으로 새로운 경제 형태로 전환이 완성될까?
 
ⓒ Der Spiegel 2017년 17호
Die digitale Zumutung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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