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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즉사 사즉생’ 젊은이여, 연대하라!
[Issue] 극우의 패악에 맞서는 자세
[86호] 2017년 06월 01일 (목) 폴 메이슨 economyinsight@hani.co.kr
신자유주의, 일상 송두리째 파괴... 극우에 맞선 좌파는 무기력증
 
2016년은 ‘극우의 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대처리즘’이란 깃발을 들고 출현한 신자유주의가 36년 가까이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를 양극화로 몰아넣은 사이, 주류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던 극우는 절망에 빠진 대중을 포퓰리즘으로 유혹하며 어느덧 지배적 위치에 서 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지켜낸 인권과 평등은 하루아침에 헌신짝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제 젊은이들이 세계를 구할 때가 왔다. 연대를 통해 대대적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어깨동무하고 세계화의 서사적 이야기를 다시 쓴다면 인종차별 따위는 금방 침묵하게 만들 수 있다.
 
폴 메이슨 Paul Mason 방송인
 
   
▲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라치오의 한 선수가 경기 전 열린 ‘인종차별 반대’ 행사에서 흑인 어린이의 손을 잡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연대의식을 파괴했고, 어느새 극우의 폭력적 언어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1976년 영국 북부 탄광 마을 리(Leigh)에서 벌어진 일이다. 내가 인생 최초로 공개 석상에서 ‘깜둥이’란 말을 들은 것은 아버지와 함께 관중 4천여 명이 들어찬 럭비 경기장 관람석에 있을 때였다. 우리 팀에서 영입한 흑인 선수의 첫 홈경기였다.
 
신입 흑인 선수가 럭비공을 손에 쥘 때마다 원정팀 팬들이 원숭이 소리를 냈고 몇몇 사람은 “멍청한 깜둥이”라고 욕했다. 더 끔찍한 점은, 우리 팀 팬 중에도 야유에 가담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뒤 신입 흑인 선수가 럭비공을 받아, 상대편 선수 3명을 제치고 상대팀 터치인골 라인에 공을 찍었다. 지금도 그때 아버지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가 관중석을 향해 팔을 벌리며 “자, 깜둥이가 뭐 어쨌다고?”라고 외쳤을 때 경기장에 감돌던 침묵을 기억한다.
 
과연 무엇이 많이 배우지 못한 백인 노동자에게 인종주의에 맞서는 도덕적 권위를 부여한 것일까? 아버지는 노조위원장도 아니고, 술집에서 난폭한 싸움을 일으키며 두려움을 조장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그들의 전통적 가치관을 상기시키기로 결심한 노동자였을 뿐이다.
 
아버지 세대의 광산 노동자들은 폴 로브슨의 영화 <더 프라우드 밸리>(The Proud Valley)에 나오는 “지하 탄갱에선 우리 모두 새까맣지 않나?”라는 대사로 동료가 된 흑인 노동자들을 환영했다. 리는 극단주의가 성행한 지역은 아니었지만 이곳의 정치 문화는 세 가지 필수 요소가 있었다. 부자와 관계된 것을 증오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불신하고, 무역대표와 임대업자, 도둑처럼 인간의 존엄성보다 시장경제적 사고를 우선시하는 인간을 거부하는 것이다.
 
영국이 1980년 경기침체에 빠지고 노동자계급이 대량실업에 직면했을 때다. 1930년대 대공황을 유년 시절에 경험한 아버지는 “또다시 대공황이 발생하면 인종차별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인종주의가 되살아나는 데는 대공황까지도 필요 없었다.
 
2016년 고향 도시의 유권자 3분의 2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편집자)에 찬성표를 던졌다. 2016년 노동당이 지방의회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이 선거구의 절반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펍과 클럽에서 전 광산노조원과 노사협의회 위원들이 평소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자본 저항 문화를 세계화와 이민, 인권에 대한 반란의 문화로 대체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신자유주의 경제가 실패했을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사도들이 설파한 이론이 결국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탓이기도 하다. 오늘날 좌파가 마비된 원인은 자유시장에 대한 경제적 비판의 틀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무능에 있지 않다. 극우파가 자신들의 투쟁을 이끌며 쏟아낸 그럴듯한 서사적 이야기에 제대로 반박하거나 맞서지 못한 무능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 서사적 충돌에 대한 미시적 분석은 사회민주주의에는 죽느냐 사느냐의 중대한 문제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0~81년 경기 흐름에 동조하는 경제정책의 막을 올렸다. 신자유주의파의 등장은 수백만 명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강요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 시대의 노동자는 원치 않더라도 마치 시장 논리가 지역 논리나 계급 정체성 논리보다 우선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 1990년 12월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왼쪽)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소파에 앉아 대담하고 있다. 대처와 레이건 시대의 노동자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시장 논리에 내몰렸다. 연합뉴스
 
신자유주의의 공격
아버지 세대에게 경쟁과 경제적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은 금기였다. 실업과 굴욕의 시간이 몇 년째 이어지면서 이 세대는 어느새 뒷전에 있던 복지 시스템에 의존하는 신세로 내몰려야 했다.
 
임금은 하락했고 연대는 소멸됐다. 우리 지역에서 전형적 아웃사이더였던 도둑과 사기꾼, 임대업자, 동맹파업 이탈자는 대처주의에서 대중의 영웅이 됐다. 이들은 청소회사와 보안회사, 선탠 스튜디오, 공장노동자의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대행사 같은 소규모 사업을 설립했다. 이렇게 생겨난 업체들 주변에서 범죄가 조직적으로 자라났고, 한때 지역공동체에서 일종의 질서의식을 제공해온 연립주택 지구에 마약거래 업자와 매춘부, 대출업자가 스며들었다. 명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우리를 공중분해시켰다.
 
노동자계층이 1990년대 삶의 질이 이전 10년보다 훨씬 더 윤택해졌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금융권의 대출과 값싼 중국산 제품이 그들의 가장 큰 문제인 임금 정체 현상을 보완한 데서 기인한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자는 세계화와 금융 규제 완화가 노동자에게 긍정적 효과를 끼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한다.
 
신자유주의는 수많은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중요한 변화로 저임금 국가로 제조업 공장 이전, 대기업을 대체한 ‘가치사슬’, 공공부문 해체를 위한 세금 인하, 공공서비스 민영화, 금융 일상화를 꼽을 수 있다. 이것들이 가져온 직접적인 ‘경제적 변화’뿐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서사적 변화’를 읽어내야 2016년 시작된 이데올로기 붕괴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흐름 속에 내 고향이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산업적 변화는 폴란드로 이전한 대형 건설장비 제조업체 콜스크레인(Coles Cranes)이다. 동시에 가장 중요한 서사적 변화는, 데이비드 하비(미국 뉴욕 시립대학 지리학과 교수 -편집자)가 표현했듯이, ‘공간의 파괴’였다. 특정 사회계층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인 지역이란 공간이 의미를 상실했다는 신호가 감지된 것이다.
 
이제 클럽과 볼링장(1979년 내가 고향의 공장에서 일할 때만 해도 두 시설이 모두 있었다)에서 여가를 즐기는 일은 사라졌다. 카페테리아는 아직 남아 있지만 직접 음식은 만들지 않고 외부 업체에서 음식이 공급된다. 그래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 역시 ‘기업이 모든 비공식 사회적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명확한 신호다.
 
다른 중요한 구조개혁은 진보적 과세 제도의 축소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목표는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광범위하게 시작되고 지구 곳곳에 조세회피처가 출현하면서 세금 인하 정책은 부수적 효과를 불렀다. 불평등을 심화하고 사회계층 간 이동을 어렵게 한 것이다. 국가와 무료 공공서비스의 쇠퇴는 제2차 세계대전 뒤 줄곧 유지돼온 사회적 합의에 마침표가 찍혔다는 점을 노동자계층에게 알려준 신호다.
 
고속도로와 철도의 민영화, 지역 교통망의 혼란스러운 분할, 가난한 이들에게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새로운 기술 등 이 모든 것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공공서비스를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대처는 영국의 공공지원주택(저렴한 가격에 구입·임차하도록 지역 개발위원회 등에서 제공하는 주택 -편집자)의 종말을 알렸다. 이것이 노동자계급 가족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지금부터 너희 스스로 알아서 살아라.’
 
   
▲ 극우 포퓰리즘은 그럴듯한 서사적 논리를 내세워 무능하고 게으른 좌파를 따돌리고 대중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이들에게 맞서려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전세계 젊은이들이 연대해야 한다. REUTERS
 
노동자들의 반란
노조원과 친근하게 대화하는 기업의 회장은 더 이상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대처주의의 영웅은 투자은행의 증권부서에서 일하는 이기주의자다. 내 아버지 세대가 반인종주의와 국제주의, 스스로 체득한 이타주의를 자연스럽게 숨 쉬듯 받아들인 반면, 신자유주의는 그 반대 성향을 부추겼다. 신자유주의가 붕괴됐을 때 관습적 보수주의는 힘을 잃고 권위주의 우파의 극단주의가 성행했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영국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백만 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몇몇 보수 성향 백인 노동자의 졸렬한 인종주의는 이민자들이 영국 문화에 통합됨으로써 완화됐다. 극소수 백인 노동자들만 파시즘으로 전향했다.
 
동유럽 10개국의 유럽연합(EU) 가입은 이민에 부정적인 영국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다. 영국 정부는 이들 국가의 시민이 유럽연합 협약에 명시된 이동의 자유 권리를 행사해 영국에 적극 오도록 힘을 실어줬다.
 
영국이 이민의 문을 분명하게 개방한 시기는 케냐와 인도, 방글라데시에서 유입된 노동자를 철저히 관리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다. 하지만 동유럽 이민자들은 허가를 받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영국으로 이주할 권리가 있다. 2016년 영국에는 300만 명의 유럽연합 소속 국가 국민이 살지만 이들은 영국의회 선거에는 참여할 수 없으며, 영원히 영국 국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영국 정부는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노동조건을 악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유럽인의 이민을 유도했다. 이는 영국 노동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서사적 신호’였다. 편의에 따라 해고할 수 있고 온순하며 권리가 없는 이 노동자들이 바로 영국 정부가 원하는 노동자다.
 
노동시장의 최저임금이 더 밑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처음 발표되자,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은 부수적 현상으로 치부하며 거시경제적 혜택으로 충분히 상쇄된다고 주장했다. 동유럽 노동자들의 이주가 본격화하면서 영국인 노동자가 사회복지 비용 부담을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명백해지자, 중도좌파는 ‘이 현상은 해당 지역에 재정 지원을 하면 해결된다’고 간단히 생각했다. 하지만 재원을 어디서 구할 거냐는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자는 이민자 수용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자는 지난 30년 동안 성공적으로 영국의 공간과 개성, 지역의 고유성을 파괴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나타났다.
 
영국의 노동빈곤층이 다국적 세계화 시스템의 첫 번째 구멍에 균열을 일으키는 반란을 개시했다. 바로 브렉시트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찬성표를 던진 영국인 52% 중에는 백인 노동자가 아닌 이들도 있다. 흑인 27%, 아시아계 영국인 33%도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그리고 영국 전체 지지자의 59%는 중산층이나 상류층에 속한다.
 
영국에서 태어난 흑인과 백인 노동자는 이민자보다 영국의 이민제도 자체에 더 높은 분노지수를 보인다. 이민제도는 예나 지금이나 공간과 지역사회, 비추상적 노동의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신자유주의자들 노력의 상징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를 폐기하지 않으면 세계화가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권위주의 포퓰리즘은 기본적으로 탈세계화를 추구한다. 권위주의 포퓰리즘의 반동성은 인종차별과 이슬람 혐오, 사회적 보수주의를 선호할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문제의 복잡성을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관용과 다문화주의의 얇은 덮개 아래 반동적이고 가부장적이며 민족주의적 사고가 잠든 바이마르 공화국과 현대사회를 비교할 필요는 없다. 각 세대는 외국인 혐오증을 가진 극단적 우파를 경계하는 신념은 물론이고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분방한 행동방식에도 잘 적응해왔다.
 
구조개혁의 5가지 길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사회 시스템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역사의 집단 주인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젊은이들이다. 이제 이들이 나서야 한다. 젊은이들은 스스로 참여해 국제주의자와 소도시의 노동자가 협력하도록 도와야 한다. 젊은이들은 아버지 세대 힘의 밑바탕인 바로 그 서사에 남아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서사는 과거 럭비 경기장에서 인종차별 언동을 침묵시킨 바 있다.
 
신자유주의는 개인 이야기를 꺼내들면서 협력과 연대의 오랜 서사를 대체했다. 이 개인들은 추상적 권리를 가진 추상적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개인의 유니폼에 달린 이름표는 자신이 누구인지 나타내는 정체성의 표현이 아니라, 단지 고객과 상사가 그들을 구분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패배한 노동자와 잊힌 지역사회는 그들의 집단 정체성 가운데 아직 남아 있는 것에 매달린다. 사회주의의 정체성을 가진 유토피아가 사회주의 정당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 의해 불가능한 것으로 최종 선언되자 노동자는 지역 방언과 고향, 가족, 민족성 같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뒤, 서방세계는 물론 서방세계와 함께해 온 세계화와 자유민주주의의 사회적 가치, 인권, 법치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일이 실제 발생한다면 자본주의는 모스크바에서 워싱턴까지 외국인혐오증과 소수의 독재정치, 국수주의로 물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피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제거함으로써 세계화를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5가지 구조개혁으로 상황을 되돌려놓아야 한다.
 
첫째, 북반구에 산업노동자 일자리를 다시 만드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남반구의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말이다.
 
둘째, 대기업이 추상적인 시민사회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다하도록 인식시키고 강제해야 한다.
 
셋째, 주요 공공서비스를 국영화해서 국민에게 무료나 저가로 공급해 불안정한 고용 상황을 상쇄해야 한다.
 
넷째, 조세회피처로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과세 대상 자산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기 위해 ‘그림자금융’을 강력 규제해야 한다. 증세를 통해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드는 공공투자를 즉각 대폭 확대해야 한다.
 
다섯째, 소득을 높이고, 대출 의존도를 낮추며, 물가 안정과 인플레이션 억제를 통해 공공부채와 개인부채를 안정화하고, 적정한 부문에 자본을 투입해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이 조처들이 세계화에 종말을 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되돌려놓을 것이다. 아울러 전세계를 안정시키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계경제에서 보호해야 하는 것을 지켜낼 것이다.
 
트럼프의 승리와 브렉시트는 좌파가 신자유주의를 오직 경제 부문만 비판하는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구체적인 형태의 정치적·경제적 도전은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가 만들어낼 서사적 이야기를 디자인하는 작업이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 Der Spiegel 2017년 15호
Eine Frage von Leben und Tod
번역 황수경 위원
 
폴 메이슨(57)은 영국의 방송기자다. 영국 울버햄프턴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는 2016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 <포스트 자본주의, 새로운 시작>을 출간했다. 이 글은 2017년 4월10일 독일 주어캄프(Suhrkamp) 출판사가 펴낸 세계 12개국 지식인들의 수필 선집 <위대한 회귀>에 실린 그의 글 요약본이다. 이 책은 전세계적으로 대두하는 극우세력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다국적 대중의 힘을 제시하고 있다. 13개 국어로 출간됐다. 영어와 독일어로 된 인터넷 사이트 www.diegrosseregression.de에서 추가 정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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