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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몰표’ 공식이 무너지다
[윤희웅의 선거와 경제] 제19대 대선 달라진 풍속도
[86호] 2017년 06월 01일 (목) 윤희웅 waymaker@opinionlive.co.kr
제19대 대선이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대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정당 구도로 치러졌다. 영남과 호남 각 내부의 경쟁 정당이 명함을 내밀며 세대·지역 간 정당 쏠림 현상이 현격히 누그러졌다. 무엇보다 후보자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바탕으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의 주체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점은 긍정적 신호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제19대 대선에서 지역 구도 완화와 세대투표 강화를 별개의 현상으로 얘기하는 분석이 있는데, 이는 옳지 못하다. 지역 구도가 무너진 것은 세대투표 때문이다. 둘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그동안 영호남 지역 구도가 강하게 작동할 때는 세대투표가 제약됐다. 영남과 호남, 각 지역 내에서 세대 대결 양상은 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두 지역 간 대결 흐름으로 선거가 전개되면서 세대 정체성보다 지역 소속 정체성이 더 힘을 발휘했다. 노년층뿐 아니라 젊은 층도 지역 정서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이번엔 달랐다. 2017년 5월9일 치른 제19대 대선에서는 영호남 지역 구도가 이전 선거에 비해 현저히 약화됐다. 방송 3사 출구조사를 살펴보면, 영남과 호남에서 한쪽 후보로 쏠리는 현상이 무뎌졌음이 확인된다. 영남 정서와 가까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대구, 경북, 경남에서 득표율 1위를 하는 데 그쳤다. 부산과 울산에서는 1위를 하지 못했다. 경남에서는 1위를 하고도 득표율이 40%를 넘지 못했다. 대구에서도 1위이지만 절반에 못 미치는 44.3%였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광주에서 59.8%, 전남에서 62.6%, 전북에서 65%를 득표했다. 이것도 높은 수준이지만, 과거 90% 내외를 얻던 민주당 계열 후보들의 득표율에 비하면 몰표 현상이 상당히 옅어졌다. 이전에는 선거 초반부터 쏠림 현상이 표출됐고 변동성이 거의 없었으나, 제19대 대선에서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선전이 있을 때까지 접전 양상이 펼쳐지며 호남 표심이 고민하는 모습이 상당 기간 연출됐다.
 
2012년 제18대 대선 출구조사를 보면 대구에서 박근혜 후보의 득표율은 80%였다. 경북은 81%였다. 광주에서 문재인 후보는 92%를 얻었다. 전남은 89%, 전북도 85%였다. 특정 정당 소속 후보가 각 지역에서 싹쓸이했다. 이에 비하면 이번 영호남에서 드러난 특정 후보 쏠림 현상 약화는 매우 큰 변화다. 지역 대결 구도가 완전히 소멸될 순 없지만 한국 사회 갈등에서 제1의 균열축으로서 위상은 이제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제19대 대선에서 유권자는 과거에 비해 지역·세대 투표에 얽매이지 않는 특성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투표 당일인 2017년 5월9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투표소 앞에서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예측 불가 세대·지역 득표율
과거엔 영호남 지역 구도가 뚜렷했는데 이번에는 왜 약화됐을까? 앞서 밝혔듯 세대 대결 양상이 각각 영남과 호남 내에서도 표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가적 의문이 남는다. 왜 이번 선거에서 유독 영호남의 세대 간 표심 대결이 펼쳐졌는가. 이들 지역에서 정당 간 경쟁 체제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호남에서는 민주당 계열 정당이 지역 민심을 독점해 왔으나, 이 지역 장년층과 노년층의 지지를 주요 기반으로 국민의당이 출현하면서 유권자에게 처음으로 복수의 선택지가 제공됐다. 영남에서는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들이 막강한 장악력을 유지해 다른 정당들의 존재와 도전이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당시 여당이던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위상이 매우 낮아짐으로써 정당 간 경쟁 구도가 작동했다. 젊은 세대는 진보 성향을, 노년 세대는 보수 성향을 드러내고 그에 맞는 후보를 선택하는 여건이 영호남 모두에서 처음 마련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지역 구도가 무너진 것은 다행이나 세대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면서 우리 사회가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세대 대결 양상이 확인됐지만,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 내에서 획일성이 줄고 다양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무조건 진보에 매였다고 할 수 없다. 비록 20대에서 문재인 후보가 월등히 높은 득표율을 보였지만, 홍준표 후보를 제외하고 다른 주요 후보 모두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했다. 출구조사를 보면 20대 득표율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17.9%,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13.2%, 심상정 정의당 후보 12.7%였다. 특히 심상정 후보와 함께 유승민 후보는 전체 득표율에 비해 20대 젊은 층에서 훨씬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보수 성향인 유승민 후보의 목소리에 20대도 상당히 반응했음을 의미한다.
 
보수 세력에 일방적 충성도가 매우 강한 50〜60대도 변화가 감지된다. 먼저 50대의 유동성이 매우 높아졌다. 양자 대결로 실시된 2012년 대선에서 보수 후보인 박근혜 후보는 50대에서 62.5%를 득표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37.4%에 그쳤다. 이번 대선에선 진보 성향인 문 후보가 50대에서 36.9%로 1위를 차지했다. 홍준표 후보는 26.8%로 2위, 안철수 후보는 25.4%로 3위였다. 50대 표심이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고 진보, 보수, 중도 후보에게 비교적 고르게 분산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가 대결 양상으로 치닫던 형국을 완화해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양쪽이 비슷한 규모의 세력으로 대치할 경우 대결 양상이 더 강해지는 법인데 50대가 유연성을 보임으로써 전선 자체가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60대 이상도 마찬가지다. 2012년 보수 성향 박근혜 후보가 72.3%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지만 이번엔 달랐다. 60대에서 보수 성향 홍준표 후보는 45.8%를 얻는 데 그쳤고, 70살 이상도 50.9%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반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60대와 70살 이상에서 모두 20% 이상 득표율을 보였다. 두 수치를 합하면 홍준표 후보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번 대선을 세대 대결 구도가 매우 심각해진 것으로 치부하기보다, 오히려 각 세대 내 다양성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긍정적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높아진 유권자 의식이 세대 내 다양성을 강화하는 데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지역, 어느 세대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관성과 관행에 따라 투표하던 이전 모습에서, 후보들을 엄밀하게 비교·검증해 자율과 소신에 따라 투표하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전과 달리 유권자 주체성이 높아진 것이다.
 
지역이든 세대든 특정 구도에 의해서만 유권자가 반응하면 정치세력은 노력하지 않는다. 그 구도만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권자가 이 구도의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이런 구도를 깨는 주체적 존재가 되면, 정당은 변화를 실천하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다. 우군이 언제든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야 정당은 움직인다. 변화된 유권자의 모습을 면밀히 살펴 정당들의 변화 경쟁이 더 치열해지기 기대한다.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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